고엽(枯葉)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 애창하던 노래 하나는 있을 것이다. 나역시 그렇다. 나역시 고가(古家)의 이끼처럼 고색찬연한 오래된 애창곡이 있다. '고엽(The autumn leaves)' 이다. 이 노래는 지금부터 약 50년 전 노래다. 당시 젊은이들 누구나 이 노래 몇구절 부를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유행은 지나갔고, 사람들은 다 <고엽>을 잊어버렸다. 사람들은 이제 어디서 이 노래를 들으면, '아! <고엽>' 하면서, 잊혀진 가을노래를 기억할 뿐이다.
<고엽>은 우리나라에 알려진 대표적 샹숑이다. 이 노래는 이벹트지로나 에딧삐아프, 이브몽탕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노래다. 나는 이벹트지로와 에딧삐아프를 특히 좋아한다. 그들의 성대는 바이올린 현 같고, 음색은 비단실 같다. 마치 청량한 밤하늘에서 학의 울음을 듣는 것 같다. 우리를 천상인지 지상인지 알 수 없는 황홀한 음의 오솔길로 안내한다. 나는 두 여인의 <고엽>을 들으면서, 어쩌면 이 세상에 이렇게 매혹적인 음성을 가진 여인도 다 있는가 싶었다. 고음조차 편하게 요리하는 섬세하게 떨리는 그 바이브렡에 홀려서, 노래하는 여인의 입술만 바라본다.
이브몽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눈빛과 부드러운 불어 발성은 세련되고 지성적이다. 그의 노래는 부드럽고 쓸쓸하다. 연인이 있던 없던 연인을 그립게 한다. 추억에 잠기게 한다. 그의 절제된 음성은 어쩌면 남자가 저리 멋있게 나이를 먹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의 콧소리는 빠리가 예술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게한다.
<고엽>은 시작되는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피아노 전주곡이 사정없이 우리 가슴을 후벼판다. 그걸 피아니씨모라 하던가. 한 음 한 음 똑똑 떼면서 둔탁한 망치 같은 것이 뚜루루루루 치고 지나가는 그 음을. 그 뒤에도 몇번씩 반복적으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숨막히게 흩어내리는 그 피아노 기법을 혹시 기억 하시는가. 그건 우리 가슴을 뭔가 모를 애상과 그리움에 젖게 만든다. 전주가 어쩌면 이리 매정하도록 마음 들쑤씨는가 싶을 때도 있다. 참으로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명곡이다. 가사의 뜻을 음미할 수 있어서 좋은데, 원 가사는 자크풀르베르의 시다. 그는 바이런이나 키이츠같은 유명한 시인은 아니지만, 이 시 하나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번안되면서 내용이 약간 수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첫대목부터 사람을 멜랑코리에 젖게 한다.
'창가에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 낙엽은 붉고 노란빛이다. 나는 당신의 입술을 본다. 그 여름의 키스들을 생각한다. 햇볕에 탄 내가 잡곤하던 그 손목을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이 가버린 지금, 날들은 길어져만 간다. 나는 곧 겨울의 노래를 듣게 되나니. 사랑하는 이여! 당신이 가장 그리운 때는 바로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때 입니다.'
나는 간혹 노래방에서 이 노랠 부르는데, 첫구절, 'The falling leaves, drift by my window'에서, 금방 타임머신을 타고 먼 옛날로 가버린다. 하얀 탱자꽃 피던 집이 있었다. 그 집엔 한 소녀가 살고있었다. <고엽>을 부르며 나는 그 집 앞을 얼마나 서성거렸던가. 소녀는 단 한번도 만난 적 없고, 말 한번 건네본 적 없다. 그러자 세월은 가고, 소녀는 고향을 떠났다. 햇볕에 탄 내가 잡곤하던 그 손목도 없었고, 그 여름의 키스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소녀가 떠나버린 고향은, 이제 더 이상 고향이 아니다. 더 이상 꽃은 신비롭지 않고, 달빛은 애잔하지 않다. 이제 노래만 가슴에 애잔하게 남은 것이다.
소녀는 이제 샹숑이 되었다. 나는 <고엽>을 부르며 그를 생각한다. 세월에 사람은 실려 가고, 노래만 남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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