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자책· 수필

땅굴 파는 노인

김현거사 2012. 12. 23. 10:38

 

     땅굴 파는 노인

 

 아마 그 프로그램이 '세상에 이런 일이'였을 것이다. 자기집 둿산에 땅굴을 파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굴속에 침대를 놓고 그 위에서 자고, 배고프면 라면 꿇여먹으며 땅굴만 파고 있었다. 무척 만족한 표정 이었다. 굴 속 바위에서 동그란 석질의 무뉘가 나오면 그걸 달이라고 소개하고, 천정의 희끄무레한 무뉘가 나오면 구름이라 소개했다. 간혹 동네사람들이 먹거리 들고 찾아오면 굴 속 수맥에서 떨어지는 석간수를 시원하고 맛있다며 자랑하곤 하였다. 그는 그 땅굴을 계속 파서 뒷산에 자연적으로 난 풍혈에 연결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 목표가 과연 의미있는 목표인지 나는 모른다. 굴속은 항상 상온이 유지되고 신비랄 것은 없지만, 뭔가 아늑한 비밀스런 아지트같은 인상은 있었다. 나는 노인 생전에 그 굴이 완성되어 동네 사람들이 더욱 좋아했으면 싶다. 그 노인네가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에 나오는 노인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직장을 은퇴한 이후 수필가가 되었다.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어떤 날은 작업을 5시간 이상 계속하기도 한다. 백수로서야 이보다 좋은 시간 활용이 어디 있겠나 싶다. 글을 쓰다보니 소 뒷걸음에 쥐 잡는다고 간혹 잘 쓴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간혹은 무참히 무시되기도 했다. 문단에 평론가로 널리 알려진 고교 선배님 소개로 여나믄개 문학잡지에 글을 실은 적도 있고, 몇군데 문학상에 도전하여 가차없이 낙방당하기도 했다. 문학상이 심사위원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친면으로 뽑는다는 말도 있는 처지에, 별로 실망할 건 없었다. 그러나 좀 서운한 건 사실이다. 노년에 당선상 받았다면, 그걸로 친구들과 한 잔 꺽는 그 재미야말로 얼마나 달콤하였겠는가. 한편으로는 나는 붙으면 어떻고 안붙으면 또 어떠냐고 생각한다. 노인의 땅굴처럼 스스로 파면서 흐믓해하고 만족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럭저럭 세상 다 살아 칠십이 눈 앞이지만, 내가 이태백이냐 두보냐, 이광수냐 김소월이냐, 늦깍이로 시작한 글로서 문단의 평가에 큰 가치 둘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나를 아는 가장 가까운 분들에게 내 정서를 알리고 공감 받으면 그만이지 하고 생각한다. 그래 나는 내 고교 동창 싸이트와 고향 진주의 남강문우회 싸이트를 소중히 여기고 작품을 가장 많이 싣는 작가이다.

 

 전에 책을 서너권 내 본 적이 있다. 한권은 재벌 회장 자서전이다. 만권을 찍었으나, 종업원과 정재계 인사들에게 보내어 없어졌다. 둘째 책은 동양 고전들을 다이제스트한 책이다. 출판사가 판매에 밝아 만오천권 팔아 고료 천오백만원을 받았다. 세번째는 수필집 천권을 찍었다. 여류시인이 운영하는 그 출판사에선 십원 한장 오지 않았다. 자비 출판비 오백만원 날라가고, 지인에게 책 발송하느라 우편비만 돈 백 날라갔다. 얻은 것이라곤 딱 한번의 칭찬이었다. 대학선배로 4선 의원에 초대 보사부장관을 하신 분에게서다. 그분은 전에 <사상계> 편집장 하신 분인데  '근래 읽은 수필집 중에 가장 잊히지 않는 책'이라며 언제 한번 조용히 만나자 하셨다. 수필집 낸 보상을 호탕한 그 분한테서 유일하게 받은 셈이다. 마침 나와 수지 성복동 한동네 사시던 분이라 조용한 광교산 자락 음식점에 그 분과 사모님을 초청하여 남자 두명이 소주병 세 병을 비운 적 있다. 그러나 이렇게 코드가 딱 맞는 분은 흔하지 않다. 피를 말리고 뼈를 깍으며 며칠씩 끙끙대며 만든 수필을 알아주는 사람 드물다. 잡지에 글을 실어도 낮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라도 한번 받은 작가가 과연 있던가.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리인 것이다.

 

 문학의 현주소는 어디 일까. 강남 테헤란로에 넓기가 만장같은 대형 서점에 가보면 안다. 거기 문학책을 진열한 한구석 코너는 챙피하도록 초라하다. 닭장이나 개집보다 작다. 여행안내서나 취미 코너의 책은 칼라양장판이 노량진 수산시장 어물전보다 다양하고 번화한데, 문학책은 왜 이런가. 독자들한테 익힐 글이 드물기 때문이다. 작가는 많아도 좋은 글 쓴 작가는 드물다. 가물에 콩 나기 좋은 작품 쓴 작가가 떼돈 버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옛날엔 잡지란게 있어, 거기 시 소설 수필같은 문학 작품이 실렸다. 그런 잡지들이 언제부턴가 멸종되었다. 한번은 우체국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무슨 여성잡지가 있어 펼쳐보니, 전부가 화장품 패션 광고였다. 달랑 하나 실린 글을 읽어보니 연예인 신변잡기 인터뷰 기사였다. 시 한 줄 수필 한 편 없었다. 요즘 사람은 문학을 다 외면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뜻도 깊지않으면서 말만 어렵게 써버릇하는 잘난 작가들 탓이라고 나는 믿는다. 빈곤한 문제의식과 도매금 체제에 대한 반항, 현실에 대한 비난은, 골빈 작가들이 상투적으로 써먹는 주제다. 이 때문에 독자들이 외면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지구는 돈다'고 갈릴레이가 말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쓴다. 땅 속에다 굴을 파는 그 노인처럼 스스로 수필 쓰는 일을 즐그움으로 삼는다. 간혹 득의의 구절을 얻으면 혼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집필을 통하여 사물을 깊이 생각해보는 버릇을 얻었다. 잡지에 글을 실어도 원고료도 받지 못하는 현실, 실어주는 잡지가 없어 애태우는 현실을 생각하면, 과연 이 길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좋은 노년 취미 하나 가진 것은 사실이다. 땅굴 파는 그 노인처럼, 나는 남 모르는 나혼자의 은밀한 취미 하나는 확실히 가졌다.(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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