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자책· 수필

대만 여행 다녀와서

김현거사 2012. 12. 18. 16:53

   대만여행을 다녀와서 

 

 

 인생의 아름다운 일 중 하나가 여행이다. 여행 중에 뜻깊은 것 중 하나가 황혼의 여행이다. 6월15일 은백의 동기 부부 64명이 대만으로 떠났다. 비행기가 높이 오르자, 바다와 녹색 숲으로 뚜렷이 구분된 영종도 해안선이 보였다. 자그마한 야산들과 실오라기처럼 그 위로 뻗은 산길,옹기종기 모인 집들, 시원히 뚫힌 강, 손바닥만한 호수들이 높은 데서 보니 작난감처럼 보인다. 

다도해 상공이었을까. 작은 백사장 있는 섬이 보였다. 얄리얄리 얄랑성! 머루랑 다래랑 먹고 아름다운 섬에 홀로 사는 것이 젊어서 나의 꿈이었고, 환갑 진갑 지난 지금도 그 꿈은 유효하다. 나는 섬을 살 궁리를 한다.  

 

대만에 내려 나무부터 보았다. 고무나무 파킬라나무 벤자민나무가 우리나라 정자나무처럼 巨木이다. 고구마처럼 길쭉하게 생긴 대만은 경남북을 합친 넓이의 작은 섬이지만, 북쪽은 아열대, 남쪽은 열대, 3천미터급 산이 백여개가 넘는다. 

아침에 호텔 밖 아침 풍경을 보니, 반가운 중국식 지저분함이 보인다. 5층인 아파트 베란다 마다 야채와 호박 등을 심은 화분들이 놓였고, 길바닥엔 개가 몇 마리 어정거리고 돌아다니고, 사람들 입성은 후즐건하고, 타고가는 자전거는 고물이고, 아침부터 웬 일인가? 물가에 낚시대 드리운 사람이 한가히 앉아있다.  

그러나 한류열풍으로 그들이 ‘대장금’의 이영애 좋아하고, ‘겨울연가’ 배용준 팬이고, 드라마 촬영지 볼려고 한국으로 ‘드라마관광’오고, 김치 좋아한다고, 우리가 우쭐할 필요는 없다. ‘대만 사람은 있어도 없는체, 한국사람은 없어도 있는체 한다’는 말 있다. 그들 외견상의 지저분함은 내면의 검소한 미덕을 감추고 있다. 

 

 대만은 ‘고궁박물관’이 볼만한 곳이다.  중국 7천년 역사적 보물이 있는 곳이다. 어서 가 중국 도자기와 고려청자의 비색을 비교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행사는 딴전이다. 장개석 총통 기념관으로, 용산사란 절로, 야시장으로, 바닷가로, 온천장으로, 데리고 다녀, 나도 대충만 보았다. 

장총통 기념관에선 장학량에게 보낸 총통 친필만 보았고, 도교와 불교 겸용 사원 용산사에서는 앉아서 향다발 들고 절하는 맨발의 중국사람들 때묻은 발바닥과 상 위에 놓인 초라한 과일에서 복을 비는 민중의 염원만 보았고, 지저분한 야시장에서는 꾀쬐쬐함만 보았고, 바닷가에서는 정국장 야탑도사와 잡담만 하였고, 온천탕에서는 진흙탕 바른 강정 친구 나체 감상만 하였다. 

그런 속에서 좀 재미난 일이 있었다면, 부인들이 탕 안에서 이인기 부인 지도로 나체로 ‘꼭지점’ 댄스를 춘 것, 基隆 푸른 바닷가를 지나갈 때, 차 안에서 김태석친구 부인이 부른 가수 이정수 노래 ‘당신’이 좋더라는 점 정도였다. 

쓸데없는데 데리고 가서 시간 다 보내고, 고궁박물관은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이다. 올리브 씨앗 하나에 배를 조각하고, 배 속 문 아래 소동파와 8명의 뱃사공을 조각하였다는 세공품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상아공 속에 공 조각하고, 그 속에 공 조각하여, 17개의 공이 들어있다는 그 상아공도 어디 있는지 못보았고, 서태후가 사용했다는,3대에 걸쳐 조각했다는,비취병풍도 보이지 않는다. 

박물관 안은 돗데기 시장이다. 3층 청동기 유물들부터 보았으나, 인산인해 이룬 인파 속에서,친구부인들 살 맞대고 그 속에 끼이기도 어려워 멀찍이 따라다니니 가이드 설명 듣기도 어렵다. 허리가 결리어 지팡이 짚고 다니는 나로서는 애석한 일 아닐 수 없다. 

2층 조각 공예품실에서, 비취로 만든 배추를 보았다. 비취란 옥 속에 초록 무뉘가 든 것을 말함인데, 중국 사람은 돌 중의 왕을 玉이라 글자풀이 하며 특히 비취를 대단한 보석으로 친다. 옥은 차고 단단하여 몸에 지니고 다니면 열을 빼앗아준다고 한다. 

그리고 기대하던 도자기들을 둘러보았다. 고대부터 청나라까지 도자기 작품들이 있는데, 당나라 이전 것은 조잡하여 작품성은 없었다. 모형도 기법도 칼라도 초라하다. 오래된 역사성으로 귀중한 것이다. 

유명한 당삼채(唐三彩)란 것도 실물은 초라했다. 누런색과 청색이 얽혀있는데, 나머지 한 색은 찾지도 못하겠다. 비전문가 눈에는 볼품이 없다. 송나라 도자기부터는 소박하나마 기법과 칼라가 예술성을 띄는데, 강희제 때 만들었다는 도자기에 사용된 남색(藍色)이 특히 눈에 띈다. 남정의 산수화에 나오는 색감이 반갑고, 그림의 단순성과 압축성도 수준급이다. 청나라 도자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코발트빛 하늘색도 오묘하고,진사(辰砂) 철사(鐵砂) 그림도 절묘하다. 각양각색 기물(器物)의 형태도 세련되고 절묘하다. 19세기 서양사람들이 절찬한, 하얀 도자기에 푸른 그림 그려진, 청화백자도 참으로 세련되고 고결하다.  

 여행사가 아침에 3층 둘러보고, 오후에 다시 2층 둘러보는 여유있는 시간표를 짰으면, 싫컿 눈을 호강시켰을 법 하다. 그러나 많은 시간은 면세점 쇼핑에 활당됐고, 액운인지 우리 방문 때는 그렇게 보고싶던 고서화(古書畵)는 전시하지도 않아 직접 감상할 기회도 없다. 

화장실에는 ‘보지청결(保持淸潔)’이라 써있다. 청결을 지켜달란 말이지만, 한국 발음이 요상하다. 번개불에 콩 구워먹는 스케쥴 때문에 박물관 1층에서 상형문자 새겨진 넥타이 하나 겨우 샀고, 보물들은 고궁박물관 칼라판 도록을 돌아가서 자세히 보기로 했다. 

그러나 고궁박물관 방문으로 확실히 건진 것 있으니, 여기서 중국 도자기와 고려청자의 비색과 형태와 무늬를 비교하며, 왜 우리가 고려청자를 세계적 보물로 자처하는지 수긍이 갔던 점이다. 오호라! 우리 선조님들 도자기 솜씨를 중화인들이 찬탄한 그 이유 알만했다. 

 

 3일째는 기차 타고 화련(花蓮)에 가서 ‘태로각’협곡 구경하였다. 지진으로 반으로 쭉 갈라진 산 협곡 양안(兩岸)이 화강암과 대리석 옥돌인 것이다. 야자수처럼 생긴 빈랑(檳榔)나무와 몽키바나나 농장 구경하며, 자귀나무처럼 생긴 봉황수(鳳凰樹)와 고무나무 가로수 따라가니, 협곡이 나타난다. 

 대리석 협곡 아래로 흘러내리는 청결한 물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갈 때는 이리 상상했으나, 산은 영월 동강 암석처럼 거무틔틔. 물은 얼마 전의 지진으로 흙탕이다. 그러나 90도 수직 천길 낭떠러지 화련곡 협곡에 인공으로 뚫은 도로는 천하일품이다.  이층버스 지붕에 바위가 닿을듯 말듯 파놓은 천정도 스릴있고, 버스가 굽이굽이 산굽이 돌 때마다 구부러진 길도 작난 아니다. 뻐스 창변 계곡 쪽에 앉은 사람은 사정없이 공중에 떠있다. 고소공포증 김원용 친구가 ‘아이고! 밑으로 떨어진다’ 외치고, ‘원용이 성님 먼저 가소. 우리는 나중에....’ 뻐스 안쪽에 앉은 사람들은 배꼽잡고 웃었다.        

삼국지의 촉도(蜀道)가 이리 험난하였을 것이다. 산이 높아 협곡 양쪽에서 내리는 폭포도 일품이다. 푸른 암봉에서 은하수처럼 시원하게 내리는 폭포, 선녀의 허리띠처럼 가늘고 요요(嫋嫋)한 폭포, 비단필같은 폭포 아래 청옥의 구슬 담은 듯한 연못, 혹은 구름 속에서 내려오는듯, 혹은 천상의 숲에서 내려오는 듯, 폭포는 모두가 고고한 탈속의 자태를 간직하였다.  백운대 인수봉처럼 위태롭고 험한 절벽 위엔 빨간 지붕의 누각을 새집처럼 올려놓았다. 중국인은 예술혼을 가진 민족이다. 이 산 전체가 대리석과 옥과 비취는 아닐망정 천하에 이처럼 장관이 어디 숨어있으랴! 산을 관상하는 도로를 이처럼 예술적으로 딱는 민족이 어디 있으랴! 

 

 옥공장 구경하고, 돌아오는 열차 속에서 박홍식 친구는 포카패 모아 심각하게 서로 노려보고 앉았고, 운거사 일행은 허경호 친구 임차인 다루는 법을 경청하고 있었다. 허리 아픈 거사는 참선자세로 꼿꼿이 앉아 반야심경 외면서, 민속춤 추던 아미족 처녀의 아릿다운 미소를 그려보고 있었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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