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눈길을 부드럽게>
흘러간 옛날 <아가씨 손길을 부드럽게>란 영화가 있었다. 거기 미레네 드몽즈, 파스칼 뿌디, 쟈크리느 샤살이라는 세 아가씨가 나온다. 나는 밤에 그 영화 벽보를 떼어 책가방에 넣고 다녔다. 무슨 자랑스런 노획물인양 친구에게 보여주곤 한 적 있다. 미레네 드몽즈는 금발 미인이고, 파스칼 뿌디는 단발머리가 귀엽고, 자크리느 샤살은 눈빛이 아름답다. 나는 쟈크리느 샤살을 좋아했다. 우수에 젖은듯한 눈빛에 끌려서다. 여인은 눈빛이 천량이다. 눈빛에 남자를 매혹시키는 뭔가가 있다. <애수의 워털루 부릿지>에 나온 비비안 리, <돌아오지 않는 강>의 마리린 몬로도 그렇다. 연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워털루 다리 위를 걸어가던 눈빛, 사랑하는 남자를 강에서 잃고 허탈하게 노래하던 눈빛을, 사람들이 잊지못할 것이다.
이런 한 시대의 총각들 마음을 사로잡는 눈빛 아니라도,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도 아름다운 눈빛이 많다. 거리에 나서면 수많은 눈길과 부딪친다. 그 눈빛은 우주의 별빛처럼 많다. 당연히 나는 그 눈빛을 감상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 나는 대개 승강구 옆에 앉는다. 차에 막 올라온 사람들 눈빛을 잘 감상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 자리에서 별 보다 보석 보다 아름다운 눈빛 구경을 한다. 산마루에 지나가는 초생달 같은 눈빛, 고요한 호수처럼 맑은 눈빛, 가난에 지친 쓸쓸한 눈빛, 겨울 끝자락처럼 차디찬 눈빛, 인생의 희노애락을 넘어선 초연한 눈빛, 요염한 눈빛, 슬픈 눈빛, 자애로운 눈빛들 이다. 그 눈빛은 도심 속을 흐르는 별빛 이다. 그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눈빛은 아가씨들 눈빛이다. 애교가 철철 넘쳐 흐르는 눈빛, 행복에 겨워 죽겠다는듯 자지러진 눈빛, 까만 머루알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이다. 그 눈빛 하나하나는 누군가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별빛일 것이다. 이런 눈빛을 보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이런 눈빛을 가진 아가씨는 실제 더 청초하고 고와 보인다.
기피하는 눈빛도 있다. 쥐처럼 음침한 눈빛, 탐욕 가득한 눈빛, 밉살스럽도록 약싹 빠른 눈빛, 음탕한 눈빛, 시무룩한 눈빛, 시근방진 눈빛이 그것이다. 그런 눈빛을 보면, 다같은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저럴까 하고, 공연히 남 걱정을 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한다. 선한 이의 눈빛은 선하기 마련이다. 민완 형사는 눈빛만 보고도 범인을 알아낸다지 않던가. 사람들이 옷에는 신경 쓰면서 자신의 눈빛에 무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안타까운 눈빛도 있다. 간혹 눈빛이 사슴처럼 순결한데도 차그운 아가씨를 만날 때다. 그가 타인을 보는 눈은 마치 그것이 당연한듯 냉정하다. 그는 생명 없는 인형 같다. 그 아가씨 눈빛도 누구에겐가 영원히 잊지못할 별빛이어야 할 것 이다. 그런데 저건 아니다. 공연히 남 걱정을 한다. 사원 면접시 이런 눈빛은 금기 되는 눈빛 이다. 무조건 점수 깍이는 눈빛 이다. 이런 눈빛은 며느리로서도 낙제점 이다. 직장도 가정도 기피하는 눈빛 이다.
하와이 공항에서 승객에게 꽃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는 남국 미녀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눈빛은 낙원의 미녀답게 행복감을 표출하고 있다. 나그네를 반기는 다정함이 샘솟고 있다. 그래서 더 매혹적이다. 그 눈빛은 가히 예술 이다. 엄격히 선발된 눈빛 이다. 눈이 보배라는 말도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몸매도 옷도 아니다. 눈빛 이다. 눈빛은 인품 이다. 남자를 감동시키는 여인의 최종 무기다. 화룡점청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용을 잘 그려도 마지막 눈을 잘 그려넣어야 끝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가끔 나는 아가씨들을 보면, <아가씨 눈길을 부드럽게> 무슨 영화 제목 같은 주문을 외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