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구름

김현거사 2012. 8. 15. 15:36

     




구름
 

  구름은 만년설 덮힌 설산을 배회하는 솔개다. 
호숫가를 나르는 학이다. 구름은 푸른 산을 더욱 푸르게 만드는 화가요, 숨겨진 폭포를 찾아가서 장막을 치고 노는 풍류객이다. 
들꽃을 만나는 선녀요, 옹달샘에 얼굴을 비쳐보는 여인이다. 
구름은 머루 다래 사랑하는 산아가씨요, 나무에 치마를 걸어놓는 요정이다. 구름은 영마루에
쉬는 나그네요, 먼 암자를 찾아가는 보살이다. 
구름은 청산의 입김이요, 신선이 차를 다리는 연기다. 구름은 산이 편안히 덮는 이불이요, 속인을 차단하는 병풍이다.

 구름은 하얀 물방울과 얼음 가득 담은 은쟁반이다. 
구름은 노을이 금빛 물감을 잔뜩 짜놓은 파렛트일 때도 있고, 무지개를 반사하는 프리즘일 때도 있다.
빤짝빤짝 햇볕으로 비단 수를 놓는 색시일 때도 있다.
구름은 여름하늘에 궁전을 세우기 좋아하고, 소녀가 원하는 솜사탕이 되기를 좋아한다. 끝없이 펼쳐진 목화밭이 되기도 하고, 초원에 날개 접은 나비떼가 되기도 한다. 
구름은 비를 뿌리는 천지의 정원사요, 천둥번개를 불러오는 천상의 음악가다. 구름은 달빛을 그리는 화선지다. 면사포 둘러쓴 신부 같기도 하고, 달 속에 사는 항아가 나부끼는 옷자락같기도 하다.

 우리가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듯 구름은 바람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구름은 해변을 거니는 고독한 신사요, 떠나는 뱃전에서 여인이 흔드는 손수건이다. 
바람을 가득 싣고 대양을 가르는 돗단배요, 양떼를 몰고다니는 하늘의 목동이다. 구름은 방랑자요,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실향민이다. 구름은 섶다리에서 물놀이 하던 소년이요, 원두막에 올라가서 잠이 든 소녀다. 구름은 고향에서 날라온 편지요, 고향으로 부치는 마음 속의 엽서다. 

  우리가 지금도 구름을 쳐다보면, 구름은 우리를 청산과 폭포와 옹달샘으로 데려간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궁전과 솜사탕 좋아하던 시절을 생각케 한다. 고향의 섶다리와 원두막을 비춰주기도 한다. 
만났다 흩어진 모든 인연들을 그립게 한다. 구름은 지금도 하늘을 떠다니면서, 나 자신이 한 척의 외로운 돗배임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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