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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탁구대회

김현거사 2012. 10. 26. 09:53

  칠십이 코 앞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중고 시절 친구들 얼굴 한번 다시 봐야하지 않겠는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우리는 그동안 서울 부산 대구 울산 마산 진주에 흩어져 살았다. 서로 얼굴 잊고 살았다. 그래서 이리저리 연락해서 해운대서 모이자고 약속 한 것이 이번 경부 탁구 대회다. 고딩 졸업한지 50년. 진중 9회 진고33회 다 함께 모이는 초유의 이벤트인 것이다. 

 

서울은 16명이 내려갔다. 강정 권재상 김두진 김영찬 이건갑 이정수 정우섭 정호영 조현건 조현재 민순식 최상호 손부일 권순탁 이종규, 그 외에 김경옥 유영준 진동인 선수는 부산서 합류했다.

장군이 둘이나 내려가니 서울역 TMO 대접부터 다르다. 담당자가 우리를 VIP실로 모셔놓고 커피 내놓고, KTX  앞까지 에스코트 해준다. 우리측 장군도 품위유지라는게 있다. 중국술 한 병과 봉투 하나 건네준다.

 

시속 200킬로 이상 달리는 차 속에서 김영찬 선수가 시를 한 수 읊었다. 이번 회동 가면서 누구나 쉽게 만들기 어려운 한시 만든 것이다. 제목은 <晉州 933 釜山 會同>

 

巍巍智異校氣像 지리산은 외외히 솟아 우리게게 기상을 가르치고

碧淸南江今自流  푸르고 맑은 남강은 오늘도 스스로 흘러간다.

그 뒷구절을 한글 번역하면 '학생시절 청운의 꿈은 꿈 속에 흘러가고, 노옹들의 백발은 백로처럼 되었다.

술과 안주로 함께 취하여 회춘가 불러보고, 불로장생 기원송도 불러본다.

남은 인생 2천번 揷을 희구하나니 무탈무고하여 내년에 다시 만나세.'로 되어 있다.

 

이 시에서 揷자는 아이들 볼까봐 해석 생략한다. 인생의 향기는 이런 것이다. 노년에 서도와 한시 즐기는 요 경지가 좀 높은 경지다. 저승 문턱에서, 돈. 명예 타령만 하면 불쌍한 화상이다. 

 

부산역에 내리니 거기 강정웅 선수가 봉고차와 승용차 한 대를 대기시켜 놓았다. 승용차 운전석에  함박꽃처럼 화사한 웬 미인이 앉아있다. 거사는 당연히 옆 조수석에 올라갔다. 그는 강선수 여동생으로 진주 천전초딩 후배다. 선후배가 다정히 앉는게 얼마나 당연한가. 그러나  정웅이가 거사는 봉고차 타고가야 한다고 아주 목에 힘까지 주어가면서 막무가내로 우겨서 그만 봉고로 쫒아낸다. 오빠로서 뭔가 거사가 자기 여동생과 나란히 앉는 것, 서로 마주 바라보는 것이 불편한 모양이다. ㅎㅎㅎ 이런 고얀 놈. 내 이 놈이 해운대서 많은 인원에게 고등어 석쇠구이 갈비와 청국장을 쏘지 않았다면, 그리고 영환이 광국이 용암이 셋이서 옆에서 살살 말리지 않았다면,  그냥 요절을 내놓고 왔을 터이다.

 

해운대 <우리 탁구 교실>에 가니, 관전팀인 울산 전봉길 팀, 대구 최용남 팀도 왔고, 부산 전수웅 팀이 보인다. 늙고 고집 센 염소들이 자기 축사 안시키면 그냥 넘어 가는가. 다들 축사 한마디씩 하고 시합에 들어갔다.시합은 복식 단식 각 네 조가 붙었는데, 여기서 부산 갈매기들이 순진한 걸 처음 보았다. 지난 1회도 이겼는데 이번 2회도 이길려고 아주 작정을 하고 덤빈다. 스핀볼과 스매싱 폭탄을 퍼붓는다. 그 중에 정웅이는 일부러 높고 좋은 볼로 서울팀에 두 점 잃어줘 만장의 웃음과 갈채 받았으니, 수준이 좀 노회한 편이다. 시합 끝내니 팀이 두 팀 아닌가. 아무리 못해도 2등 이다. 모로 가도 서울 간다고 서울팀 준우승 했다. ㅎㅎㅎ   

 

 부산팀이 마련해준 횟집 만찬 고마웠다. 숙소인 <그린나래> 콘도 대연회장 마이크 앞에서 벌어진 여흥도 의미 깊었다. 늙은 말이 콩 마다 하는가. 그동안 갈고 닦은 영감들 와이당 실력이 만만찮다. <일본놈은 나오고 조선놈은 들어간다>는 독립기념관 이야기가 아니고 모텔 이야기란다. 발음과 띄어쓰기 정확히 하면 <일 본 놈은 나오고, 좇 선 놈은 들어간다> 란다. 서울 이정수 장군, 울산 전봉길 교수가 이 방면 공부가 깊었다.

섹스폰도 멋져부럿다. 부산 김영환과 대구 김병지 두 김씨가 뻔쩍거리는 쎅스폰을 들고 몇곡 앙콜곡을 선사했고, 그 다음은 국악 시간이다. 진주 오태식 선수는 시조창, 최상호 선수는 대금 몇곡 선보였다. <미시령>도 발표되었다. 어떤 거사가 속초서 직접 작사 작곡한 것이란다. 밤의 해운대 바다 불빛은 너무나 낭만적이고, 50년만의 동기들 모임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익일 스케줄은 고마운 일이 떼거리로 몰려 있었다. 특별히 장군급만 잔다는 방에서 잔 다음날 아침은, 이인환 교수가 쏜 해장국 먹고, 오륙도 관광 유람선 타니 구자연 사장이 뱃삯 전부 지불한다.

 

        오륙도 돌아오는 배 갑판에서

 

배에서 내려 복집에 가니 이용호 선수가 쏜다. 어제는 영주 사업가 유영준 선수가 와서 40만원 봉투 내놓고 갔고, 시티투어 버스 타고 태종대 구경하고 돌아오니, 마지막 자갈치 전어구이집은 이건갑 장로가 쏜다. 환상적인 933 동기애의 발로들이다. 작전 주관한 이종규 장군의 꼼꼼한 계획, 권순탁 선수 내조가 돋보인 장면이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여기 참가한 모든 친구들, 협찬해준 여러 친구들 우정이 찬연히 빛난 그야말로 이벤트 였다. 너무나 고마운 모임이었다. 이제 우리는 인생의 가을. 떠나가는 배.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바라건대 그날까지 모두 몸 건강 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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