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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주련(矗石樓柱聯

김현거사 2012. 7. 4. 10:07

.촉석루 주련(矗石樓柱聯)

 

청천 신유한 (菁川 申維翰)

 

晉陽城外水東流 叢竹芳蘭綠暎洲

天地報君三壯士 江山留客一高樓

歌屛日照潛蛟舞 劍幕霜侵宿鷺愁

南望斗邊無戰氣 將壇笳鼓半春遊

 

잔양성 밖으로 강물은 동쪽으로 흘러가고

울창한 대숲 아름다운 풀 물가에 비쳐 푸르기만 하네

나라에 몸 바친 삼장사의 넋이 있고

강산을 찾는 길손 머무는 높은 누각이라네

흥겨운 노래 소리에 교룡이 물속에서 춤을 추지만

난리 일어날까 해오라기는 시름에 잠긴다네

남쪽 하늘 바라보니 평화스럽기만 하여

높은 단에 올라 북치고 피리 불며 봄놀이 하려네

 

 

청천 신유한(菁泉 申維翰) (1681~175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주백(周伯), 호는 청천(菁泉). 1713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했다. 벼슬은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에 머물렀다. 1719년 일본에 통신사의 일원으로 다녀와 〈해유록 海遊錄〉을 지었다. 〈해유록〉은 박지원의 중국 기행문인 〈열하일기〉와 비교될 만큼 문장이 세련되고 관찰력이 돋보인다. 문집으로 〈청천집〉을 남겼다.

 

2.촉석루에 걸려 있는 한시 편액(시대순)

 

1.촉석루 矗石樓 (排律六韻)

 

면재 정을보 (勉齋 鄭乙輔)(1285-1355)

 

黃鶴名樓彼一時 崔公好事爲留詩

登臨景物無增損 題詠風流有盛衰

牛壟漁磯秋草沒 鶖梁鷺渚夕陽遲

靑山四面皆新畵 紅粉三行唱古詞

玉笛高飛山月上 珠簾暮捲嶺雲垂

倚欄回首乾坤小 方信吾鄕特地奇

 

이름 높은 황학루도 한 때의 일이러니

최공도 시 지어 남기기를 좋아 하였네

올라보니 경치는 옛날 같은데

시를 읊는 풍류는 성쇠가 있네

소먹이고 낚시하던 언덕엔 가을 풀이 시들고

백로와 수리 놀던 물가엔 해가 저무네

둘러앉은 푸른 산 모두 금방 그린 그림인데

분홍으로 치장한 세 행렬은 옛 노래 부르네

옥피리 소리 멀어져가는 산위에 달이 뜨고

해 저물어 걷는 주렴에 고갯마루 구름 드리웠네

난간에 기대어 둘러보니 시야가 좁아

우리고을 아름다운 모습 확실하게 알겠네

 

 

정을보(鄭乙輔) (1285 - 1355)

 

호가 면재(勉齊), 시호는 문양(文良)이다. 충숙왕 7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1341년 政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라 1343년 청천군(菁川君)에 피봉(被封)되었다. 1352년 도검의찬성사(都檢議贊成事)가되고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광양감무(光陽監務)로 좌천되었다. 뒤에 공신호(功臣號)와 함께 삼중대광도검의찬성사(三重大匡都檢議贊成事) 겸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사 상호군(藝文館大提學 知春秋館事 上護軍)에 올랐다.

 

2.矗石樓

 

우당 박융 (憂堂 朴融)(1347-1424)

 

晉山形勝冠南區 況復臨江有此樓

列峀層巖成活畫 茂林修竹傍淸流

淸嵐髣髴屛間起 白鳥依稀鏡裏浮

已識地靈生俊傑 盛朝相繼薛居州

 

진양의 아름다운 경치 영남의 으뜸이고

게다가 강가 이 누각 있으니

줄지어 두른 산과 절벽은 살아 있는 그림이고

무성한 숲 대나무 곁에 푸른 물이 흐른다.

맑은 바람은 병풍사이에 일어나고

흰 새는 거울 속에 떠있는 듯하다

땅이 좋아 인물 많이 남을 이미 알거니와

조정에 이름 있는 신하 이어져 나온다네

 

박융(朴融) (1347-1424)

 

본관은 밀양 자는 유명(惟明) 호는 우당(憂堂) 충숙공 익(翊)의 아들이며 정몽주의 문인이다. 생원과를 거쳐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 전한(典翰) 이조정랑(吏曹正郞) 함안군수(咸安郡守)를 역임하였다. 경북 청도 덕남서원(德南書院)에 배향 되었다.

 

 

3.矗石樓

 

교은 정이오(郊隱 鄭以吾) (1354-1440)

 

興廢相尋直待今 層巓高閣半空臨

山從野外連還斷 江到樓前闊復深

白雪陽春仙妓唱 光風霽月使君心

當時古事無認識 倦客歸來空獨吟

 

흥폐를 거듭하여 지금에 이르러

층층바위 절벽위에 높은 루가 하늘에 닿았네

들 넘어 산줄기 끊어질 둣 이어 돌고

누각 앞에 이른 강물 깊고 넓구나

백설 양춘은 기생들이 즐겨 부르고

광풍제월은 군자의 심사로다

그 때의 옛일을 뉘라서 알리오 만

나그네 돌아와 홀로 시를 읊네

 

정이오(鄭以吾) (1354-1440)

 

본관은 진주 호는 교은(郊隱). 증조는 청천군 정을보(鄭乙輔)이고 아들은 정승을 지낸 정분(鄭芬)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조에 벼슬이 수찬(修撰) 검교(檢校) 한성부사(漢城府事) 승문원제조(承文院提調)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다.

 

4.矗石樓

 

경재 하연(敬齋 河演)(1433-1453)

 

高城絶壑大江頭 冬柏梅花矗石樓

若也登臨留勝蹟 請題佳句記吾州

 

높은 성 깍은 벼랑 큰 강 머리에

동백 매화 우거진 곳에 촉석루가 섰네

만약 여기 올라 좋은 자취 남기려면

훌륭한 글 지어 우리 고을 적어두게나

 

연(河演)(1433-1453)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 본관은 진양이다. 부는 부윤(府尹) 자종(自宗)이며 정몽주의 문인이다. 진주의 여사촌(餘沙村)(산청 남사)에서 태어났다. 1396년 문과에 급제하고 수찬(修撰)과 집의(執義)를 거쳐 세종시 예조참판 대서헌 예∙형 ∙병조참판을 지냈다. 1425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가 후에 대제학 형조판서를 거쳐 1449년 영의정에 올랐다. 문종의 묘정과 하동 종천서원에 배향 되었다.시호는 문효(文孝)이다.

 

5.矗石樓

 

강렴(姜濂)(1544-1606)

 

南烽日警陷諸州 釰語秋燈對白頭

安得良籌除海祲 君歌我酒更登樓

 

남쪽으로 날마다 여러 고을 함락 알리는 봉화 오를 때엔

가을 등불아래 노인들과마주앉아 후퇴걱정 했다오

어찌하여 바다 요기 없 엘 좋은 계책세우면

다시 루에 올라 그대는 노래 나는 술로 어울려 보려무나

 

강렴(姜濂)(1544-1606)

 

자는 연락(沿洛) 호는 만송(晩松) 본관은 진양. 하양 현감(河梁縣監) 인보(仁輔)의 아들. 남명 조식의 문인. 남명의 학문 실천에 전력하였으며 젊은 나이에 덕천서원 건립에 동참하였다. 묘소는 사천 곤명면 송림리 송비산(松飛山)에 있다. 저존재(著存齋)는 만송의 재실이다. 만송당실기(晩松堂實記)가 남아 있다.

 

 

6.矗石樓

 

정문부(鄭文孚)(1565-1624)

 

龍歲兵焚捲八區 魚殃最慘此城樓

石非可轉仍成矗 江亦何心自在流

起廢神將人共力 凌虛天與地同浮

須知幕府經營手 壯麗非徒鎭一州

 

임진년난리가 조선팔도 흽쓸 적에

재앙은 이 성루가 가장 처참했다오

구르지 못하는 돌은 촉석이 되어 섰건만

그래도 강물은 하염없이 흘러만 가네

신도 사람을 도와 일으켜 주려하는데

침범을 당한 이 세상 온통 들떠만 있네

모름지기 알 것 같은 이 고을 다스리던 솜씨

장하고도 훌륭한데 어찌 한 고을만 지키랴龍歲兵焚捲八區 魚殃最慘此城樓

石非可轉仍成矗 江亦何心自在流

起廢神將人共力 凌虛天與地同浮

須知幕府經營手 壯麗非徒鎭一州

 

임진년 전화가 팔도를 흽쓸 적에

재앙은 이 성루가 가장 처참하였어라

굴릴 수 없던 돌은 촉석이 되어 섰건만

강물은 무슨 마음으로 절로절로 흐르는가

신장은 사람과 힘을 합해 폐허를 일으키려 하고

무한한 공간에 하늘과 땅은 같이 뜨있네

모릍지니 알리라 이 고을 다스리던 장수들 솜씨

장려하구나,어찌 한 고을 지키는 그런 무리랴.

 

정문부(鄭文孚)(1565-1624)

 

본관 황해도 해주. 시호는 충의(忠毅) 호는 농포(農圃)이다. 임난(壬亂)을 맞아 임지였던 함경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영흥부사 길주목사를 거쳐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화를 입었다. 함경도에 창열사를 비롯하여 사당이 있고 근래에 후손들이 의논하여 진주 이반성에 충의사(忠毅祠)를 지어 제향을 드리고 있다. 연전에 일본에서 반환된 북관 대첩비(北關大捷碑)는 정문부의 의병 활동이 기록된 것이다. 유언에 따라 후손들이 진주에 터를 잡아 살았다. 묘소는 의정부에 있다.

 

 

 

8.矗石樓

 

한몽삼(韓夢參)(1589-1661)

 

天地初開別一區 何年好事起斯樓

層軒遠接靑山影 彩檻低搖碧水流

斗覺登臨如羽化 却疑身世等萍浮

求封萬戶還非分 願夢三刀聖此洲

 

하늘이 만들어낸 특별한 이곳에

어느 해 호사가가 있어 이 루각을 지었는가

높은 다락에 멀리 푸른 산의 그림자와 닿았고

무늬 아름다운 난간아래 푸른 물이 흐르는 구나

루에 오르면 날개 달려 날아오르는 듯

몸이 부평초처럼 떠다니는 것 같다네

만호봉작을 구하는 것 분수에 맞지 않아

이 고을 벼슬살이 하며 살고 싶구나

 

한몽삼(韓夢參)(1589-1661)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변(子變) 호는 조은(釣隱) 진주동쪽 정수리 출생. 부는 참봉을 지낸 계(誡)이다. 25세에 생원시 합격. 황암 박제인(篁巖 朴濟仁) 한강 정구(寒岡 鄭逑)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의 문하에서 배우다 1639년 자여도찰방(自如道察訪) 1659년 동몽교관(東蒙敎官)을 역임하다. 필력이 뛰어나 촉석루 의암 해자(諧字)는 그의 글씨다. 함안고을에 석정(石亭)과 적암(適巖)에 정자를 짓고 만년을 보냈다. 남인 영수 허목의 방문을 받기도 한다. 묘소는 하동 흥룡리에 있고 임천서원(臨川書院)에 배향 되었다. 조은집(釣隱集)이 있다.

 

9.矗石樓

 

姜大遂(1591-1658)

 

戰場無恙只名區 人世虧成百尺樓 虧이지러질휴

納納乾坤遙峀立 溶溶今古大江流

船橫官渡隨緣在 鷗占煙波得意浮

景物有餘佳況少 詩情寥落晉康州

 

전쟁에도 아름다운 곳 그대로 남아

세상 어지러워도 백척 다락을 다시 지었네

산들은 멀리 봉우리가 솟아있고

에나 지금 남강 물 넘쳐 흐르네

배들은 나루터에 비스듬이 메어 있고

아지랑이 속에 흰 갈매기 날려고 하는고나

경치 좋아 좋은 일 어찌 없으랴

시정이야 진주가 제일이리라

 

 

강대수(姜大遂)(1591-1658)

 

호는 한사(寒沙) 1591년 합천에서 출생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 문인 22세 문과급제. 성균관정자(成均館正字)가 되었다가 영창대군 일로 회양에 귀양살이를 하였다. 35세 충청도 암행어사 제수를 제수 받고 성균관사성겸경연시독관(成均館司成謙經筵侍督官)을 역임 하였다. 51세 진주목사 55세 덕천서원 원장을 지냈다.

 

 

10.登 矗石樓 有感

 

하진(河溍)(1597-1658)

 

滿目兵塵暗九區 一聲長笛獨憑樓

孤城返照紅將斂 近市靑嵐翠欲浮

富貴百年雲北去 廢興千古水東流

當時冠蓋今蕭索 誰道人才半在州

 

전쟁의 어둠이 온 나라에 가득하고

홀로 누에 기대어 피리 분다네

외진 성채에 저녁 놀 자자지고

저자거리 아지랑이 걷치어 가네

부귀 백년이야 구름이고

오랜 세월 흥폐에도 물은 동으로 흐르네

당시의 명관들은 어데 있는 고

누가 나라 인재 반이 진주라 했는가.

 

하진(河溍) (1597-1658)

 

본관은 진주 자는 진백(溍伯) 호는 태계(台溪)이다. 대사헌 결(潔)의 후손 1624 진사가 되고 1633 문과에 급제하였다. 병자호란당시 의병장으로 추대됨. 이후에 정언(正言) 헌납(獻納) 지평(持平) 벼슬을 역임 하다. 하동 옥종 종천서원(宗川書院)에 배향되었다. 태계집(台溪集)이 있다. 명석면 관지리에 유허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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