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수필을 쓰면서

김현거사 2011. 11. 13. 14:31

 

 

 수필을 쓰면서

 

 직장 은퇴한 후에도 할 일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글 쓰며 조용히 인생을 관조해보는 자체가 좋다. 탐석을 가서 돌을  줍듯, 매일 아침마다 머리 속 생각을 요리저리 앞 뒤로 굴리는 행위 자체가 정신건강에 좋을상 싶다.  

 

 수필가 되면 또 좋은 점 있다. 첫째는 버스 타고가는 시간 유용하게 활용하는 점이다. 여유있게  창밖의 가로수 구경하면서, 오르고  내리는 여인들 구경하면서, 메모하면서, 명상에 잠길 수 있어 좋다. 글 쓴다고 불편하게 책상에 앉아 골머리 썩힐 이유 없다. 둘째는 어디서 누굴 기다릴 때 좋다. 시간  가기 기다리는 지루함 없어 좋다. 불펜 꺼내고 무릅에 메모지만 탁 펼치면 끝이다. 생각이 멋지게 전개되고 정리될 때는, 오히려 만날 사람이 좀 늦게 왔으면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가서 친구가 나타난다.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 속에 나쁜 일도 있다. 쓴 수필을 인터넷싸이트에 옮길 때다.

 문학 싸이트가 좀 문제다. 소위 글 쓴다는 사람들이 글 읽지 않는다. 자신도 글을 써봤으니 글 쓰는 일 어려운 줄 뻔히 알지 않는가. 누군가는 '미인의 이마 위 사마귀는 용서할 수 있어도 서정시에 잘못놓인 단어는 용서할 수 없다'는 참 그럴듯한 말을 했다. 그런데 모두 한결같이 수도승 이다. 묵언이다. 격려나 감회의 글은 씨를 할려도 찾아보기 힘든다. 참고로 인터넷 매너를 학점으로 나눠보면, 'A 학점은 항상 모든 글에 칭찬 리풀을 단다. B학점은 맘에 드는 글에만 리풀 단다. C는 리풀을 달되 맨날 딴소리만 한다. D는 눈팅만 하고 간다. F는 뭔가 못마땅해서 까시 놓고 간다.'다.

 문인들이 모두 D학점 짜리 이하일까. 성인이 아닌지라 비록 속은 용열할지라도 문우로서 다정히 손잡고, 서로를 격려하고 아끼는 도량이 아쉽다. 히트 수가 적으니 눈팅족도 적다는 의미다. 이렇게 작품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딴 데 가선 어떻게 하는가. 문인 행세는 한다. 

 

 문단의 소위 원로라는 분들도 더러 곱지 못하다. 우리 사회서 그들처럼 고리타분한 존재 없다. 국회의사당 나가는 분들 같다. 겸손한 체 겉으로 티 내면서 속으로는 어떤가. 대개 고래심줄 이다. 목심 뻗뻗하다. 하늘 아래 제잘난척 한다. 남 잘못엔 쪽집게다. 겸손을 모른다. 쓴웃음 나온다. 글 쓰는 일은 기도와 비슷하다. 내면의 생각을 정화해서 쓰는 것이 글이다. 참선 비슷하다. 작가는 오랜 명상과 참선을 통한 순수하고 맑은 얼굴이어야 한다. 아니라면 어떤 얼굴이어야 하는가.

대가란 사람마다 잡지를 내고, 등단을 시키고, 상을 준다. 일반 독자가 없으니, 대개 신출내기 문인들 상대로 책장사 하는 것이다. 여기 모여든 촛짜들은, 선생님 선생님 따르면서, 연고 따지고, 파를 만들고, 아부를 하고, 상을 받는다. 부끄러움이 뭔지 모른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등산인 싸이트와 의사들 싸이트다. 등산인들은 대개 순수하다. 청산백운이 거기 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제 분야에서는 전문가지만 문장은 서툴다. 그러나 진솔한 댓글과 답글이 본문보다  많다. 더 재미있다. 고교동창 싸이트도 마찬가지다. 

 

  은퇴한 후 늦깍이 수필가 되자, 처음엔 잡지에 글을 좀 싣고 싶었다. 상도 하나 쯤 받고 싶었다. 그러나 슬슬 포기했다. 몇군데 글을 실어보았지만, 한강에 배 지나간 자국이었다. 누가  읽어나 주던가. 한국의 문예지란 어차피 서점에서 팔리지 않는 물건이다. 진지하게 글 안 쓰고 행사만 벌이기 좋아한 문인들 덕택이다. 독자 무시한 벌이다. 저 혼자 유식해 뭔가 알아먹지 못할 글 쓴 문인 덕택이다. 진정한 작가란 무엇인가. 글 써서 생계비 정도는 버는 사람이다. 용돈 쯤은 벌어야 작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문인들은 뭣인가. 받는게 아니라 내고  글 쓰는 사람들은. 둘러리다. 나는 전에 기자였었다. 그때는 글 쓰고 월급 받았다. 진정한 쓸 기(記)에 놈 자(者) 였었다. 그 일이 예술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둘러리는 아니었다.

 

 다행스런 것은 앞으로 책은 전자책 시대로 갈 것이다. 제마음대로 필자와 독자가 오가는 인터넷 시대로 갈 것이다. 지금처럼 관록 판치고, 연고 판치는, 내용 빈약한 책의 시대는 사라질 것이다. 독자가 참여하고 평가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내용 신통찮으면, 그가 아무리 문단 경력 있어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구렁이 제 몸 추스리듯 해도 차그운 서릿발에 얼어죽는 공평한 시대가 올 것이다. 그 생각하면 맘이 편해진다. 연고 없는 늦깍이가 남 동네서 이런 소릴해서 될지 모르겠다. 너혼자 인터넷이나 열심히 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지 않던가. 사람 사는 동네에, 꼬끼요! 새벽에 수탁도 좀 울어야 마땅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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