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풍경(風磬)

김현거사 2012. 2. 15. 18:03

 

 

      

       풍경(風磬)


풍경소리는 영혼 맑은 사람의 나직한 음성 같다. 구름 속 선인이 타는 거문고 소리 같고, 달밝은 밤 소 등을 탄 동자 피리 소리 같다. 천상의 소리처럼 청아하다. 귀 기울여 듣는 사람에게 선미(禪味)를 일깨워준다. 풍경소리는 가까운듯 하면서 멀다. 소리가 작아서 조용히 귀 귀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바람 불 때마다 인적없는 산속의 고요함을 생각케 한다. 속세의 먼지와 소음에 찌든 영혼을 맑게 해준다. 명상에 잠기게 한다. 여운에 무궁한 맛이 남아 말을 넘어선 말을 들려준다. 바람을 만나면 소리를 내고, 바람이 가면 침묵을 지킨다. 공(空)을 생각케 한다. 풍경은 유여열반(有餘涅槃)에 든 고승같다. 이승의 번뇌는 끊었지만, 아직 업보인 육신은 멸하지 못했다. 그러나  풍경은 육신 자체가 고요함에 들어 소리조차 고요하다.

 풍경은 선사시대 유적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티베트 발리 한국 일본 중국 등지의 사찰의 처마나 탑에 흔히 매달려 있다. 풍경의 형태는 대개 세 종류가 있다. 가장 원시적인 것은, 금속, 유리, 도자기, 조가비를 줄에 꿰어놓아 바람이 불 때 마다 소리 나게 만든 것이다. 두번째는 탑신에 수백 수천개의 작은 종을 매달아 놓은 것이다. 세번째는 현재 우리가 사찰 처마끝에서 볼 수 있는, 종 안에 추를 달아놓은 것이다. 19세기 이후에 서양에도 널리 전파되어 사용되었다고 한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소의 풍경 달아 . 갈고 으로 돌아 소의 에서 쇠풍경 소리. 절에 가면 종(鐘), 북(鼓), 운판(雲板) 목어(木魚)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물에서 나온 소리는 모두 사람이 내는 소리다. 풍경은 바람이 와서 고요히 소리를 내는 것이다. 풍경은 아마 세상의 모든 악기 중에 가장 원시적인 악기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악기 보다 깊고 고요한 소리를 낸다. 누가 맨 먼저 허공의 바람이 소리를 내게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우들 모임 때문에 인사동에 갔다가 풍경(風磬) 하나를 사왔다. 종의 크기는 작은 컵만 하지만, 구리로 만들어 듬직했다. 구리줄에 매단 붕어 모양도 앙징스러웠다. 몸체엔 무심한 선으로 비늘도 새겨져 있었다. 동그랗게 붕어 눈알도 새겨져 있었다. 꼬리 모습도 보기 좋았다. 바람이 불면 붕어가 이리저리 헤엄치면서 소리가 나도록 된 것이다.

나는 이 풍경을 서재 앞 매화나무에 매달아놓았다. 매화나무는 20년 전에 분재로 키우던 것이다. 땅 위로 나지막하게 굽어 용틀임 하고있다. 가지에  간혹 참새가 앉아 할일없이 노래하다 가곤 한다.

'수간 모옥을 벽계수 앏픠 두고 송죽 울울리에 풍월주인 되어셔라.'  정극인은 <상춘곡>에서 이렇게 읊었다. 도심 속이라 푸른 물 흐르는 벽계수는 없다. 그러나 뜰에 매화나무는 있다. 매화 가지에 작은 풍경 하나 달려 있다. 풍경은 세월이 가면 파란 녹이 슬 것이다. 그 속에서 고색창연한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봄이 오면 매화가 필 것이다. 매화꽃 속에서 은은한 소리가 울려올 것이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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