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한계령 雪樂園에 살았던 어느 부부 화가 이야기

김현거사 2022. 4. 17. 02:27

이 이야기는 한계령 雪樂園에 살았던 어느 부부 화가의 이야기이다. 며칠 전 나는 유튜브를 통해서 강원도 부동산 광고를 보다가 한계령 필례약수 근처 부동산 매물을 보고 동우대학 장 교수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그랬더니 즉시 장 교수 전화가 왔는데, 장 교수나 나 두 사람 다 필례약수 근처  雪樂園이란 곳을 너무나 잘 알던 터이다.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지만, 두 사람만 나눌 수 있는 설낙원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설낙원은 대한민국 고개 중에 가장 아름다운 한계령 근처에 있는데다, 설낙원에서 살던 부부 화가는 장 교수와 나의 친구였다. 나는 간혹 대포항에서 꽁치를 사 가지고 찾아갔고, 장 교수는 겨울이면 눈이 사람 키 보다 많이 쌓이는 곳의 가스를 충전해주곤 했다. 우리 두 사람은 산을 동경하는 자연주의자였고, 장 교수는 동양화 나는 유화를 배우고 있었다. 그래 찾아가면 주로 그림과 산에 사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그 당시 모 그룹 계열사 대표를 은퇴한 후 겸임교수로 일주일에 한 번 속초에 가서 강의를 했다. 네 시간 강의하고 강의 끝나면 매번 코스를 바꾸어 강원도 구경하고 오곤 했다. 당시 속초에서 서울 오는 고갯길은 네 개가 있었다. 첫째는 고성에서 진부령 황태 덕장을 넘어 인제로 오는 코스이며, 두 번째는 속초에서 바로 미시령 넘어 인제로 오는 코스이다. 세 번째는 양양에서 한계령 넘어 인제로 오는 코스이며, 네 번째는 양양에서 갈전을 거쳐 구룡령 넘어  홍천군 내면 상남면 거쳐 오는 코스다. 그중 44번 국도를 타는 한계령 코스가 가장 아름다운데, 그 한계령 코스도 둘이 있다. 하나는 한계령 정상을 넘어 인제 쪽으로 가는 코스이고, 두 번째는 정상 못 미쳐서 왼쪽으로 꺾어 필례약수와 현리를 거쳐 서울 오는 코스이다. 

어느 단풍이 곱던 가을 나는 한계령 필례약수 코스로 갔다가 그동안 그 코스를 다녔지만 못 보던 간판을 하나 발견했다. 雪樂園이란 간판이다. 첫 느낌에 자기들은 눈 쌓인 북구라파 어느 낙원을 꿈꾸는진 몰라도 낙원을 雪樂園이라 불러 어색했다. 차가운 雪 자가 든 것은 失樂園을 연상케 했다. 작명이 잘못되어 낙원을 잃어버릴 것처럼 생각되었다. 당시 나는 가을이면 양양 시장에 들러 한 통에 만원 하는 연어알 병조림을 사거나 한계령 발치 노점 아주머니들이 파는 홍시를 사 오곤 했다. 홍시에선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고, 연어알은 서울 이웃에게 좋은 선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 어떤 사람들인가 싶어 그날 찾아가서 연어알을 선물하고 인사를 나눈 후 그 후론 친해져서 자주 드나들었다. 여자보다 10년 이상 년상인 남자는 삶의 방편이 전무한 부잣집 도련님이고, 여자는 미모에다 대학원 출신이라 두 사람이 같이 그림을 그린다는 공통점은 있었으나,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교수 겸임 기간이 끝나자 오랫동안 한계령에 간 적 없다. 그러다 이번에 장 교수한테서 충격적인 이야길 들었다. 雪樂園이 樂園으로 변한 이야기였다. 나이 많던 남편은 병사했고, 외롭게 남은 부인은 우울증으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그 후 집에 불이 나면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장 교수는 자기가 선물 받은 부인의 그림 한 장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갑자기 양희은의 <한계령>이란  노래가 생각났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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