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김정희 노시인을 뵙고 와서
이번에 집안 일로 진주 간 김에 시조문학관 素心 김정희 노시인을 뵙고 왔다. 시인은 진주 세비리 고개 2만 여평 땅에 사재를 들여 한옥으로 시조문학관을 지어놓고 관장으로 계신 분이다. 나는 항상 素心 선배님을 통영의 고 이영도 시인과 비교하곤 한다. 두 분 다 재주와 미모가 뛰어난 才子佳人이고, 素心은 진주의 자랑이다. 그분 사진은 훗날 진주 문단 역사를 위해 몇 장 확보해놓을 필요가 있다. 전화로 그런 취지 말씀드리자, 뜻은 고맙지만 사진은 사양하신다. 그래 내가 이번에 내려간 김에 상경하면서 대구 정혜옥 선배님도 찾아뵐까 한다니, 그쪽은 연락 된다면서 진주로 올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보시겠단다. 오시면 고스톱 용어로 一打二皮다.
진주는 문단에 족적 뚜렷한 세 분 원로시인이 있다. 서울의 김여정, 대구의 정혜옥, 진주의 김정희 시인이다. 서울 김여정 시인은 인연이 닿아 몇 번 만나 뵙고 사진을 남강 문학회 사이트에 올려놓았다. 차를 없애기 전에는 아내와 세 사람이 옥천 냉면 음미하고, 청평 가평 돌아오던 길에 영화 <백만송이 장미> 찍은 카페에서 차도 마셨다. 이제 진주 대구 두 분 사진 얻으면 후배로서 의무 다한다. 김여정 선배님은 진주성 아래 핀 은난초 꽃 같은 분, 정혜옥 선배님은 보들레르가 <가을의 쏘넷>이란 시에서 언급한 하얀 말거리트꽃, 김정희 선배님은 남강가에 맑은 향기 풍기는 素心蘭 같은 분이다. 팔십 넘기신 세 분 시인이 진주의 자랑이다.
남부터미널서 탄 버스가 생초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들어서니, 경호강과 지리산 山川은 依舊하다. 望八의 내 눈엔 가을산이 더 아름답다. 마침 집안 동생 김창선이 시조창 명인이다. 詩調와 唱의 만남도 좋겠다 싶어 동행했는데, 대구 정선배님은 못오시고, 카토릭 대학에서 보건학 전공한 손녀 정고은 박사가 할머니 모시고 나왔다. 교수되기 전 2년 진주에서 실무경험을 쌓는 중이란다. 네 사람이 칠암동 대밭 옆에서 식사한 후 세비리 시조문학관에 갔는데, 첫눈에 들어오는 건 <詩境樓> 현판 글씨다. 멋스러운 추사체 감상하다가, 문득 추사도 김정희요, 소심도 김정희, 두 분이 동명이인이구나 깨달았다.
실내에 들어가니, 김소월 육필 편지, 노산 이은상 시집, 김상옥 친필, 이호우 이영도 시집 등 소중한 자료 많다.
또 다른 방엔 남강 문학회 작가들 코너가 있다.
시조문학관 옆에 작은 미술관이 있다. 작고한 따님 김희혜 미술관이다. 김화백은 홍익대 미술대학원 나온
재원으로, 수차례 국전 입상 경력과 단체전 개인전 가진 바 있다.
문학관 관리하는 학예사가 한 분 있긴 했다. 그러나 뜰이 넓고 허전해서 진주시에서 운영비가 나오나 물어보니,
다른 부동산 건도 있고해서 세금만 3천만 원가량 나온단다.
일찍이 파성 설창수 시인이 진주에 와서 개천예술제를 시작한 바람에 사람들은 진주를 예향이라 부른다.
시조문학관을 연 김정희 시인도 마산여고 출신이니, 두 분 다 타향 분이다. 정작 진주 사람들은 뭘 하는가.
진주시는 시 자체에서 문학관 운영한다는 사명감으로 운영비나 세금 문제에 관심 가져야 한다.
통영을 한번 살펴보자. 통영은 진주여고 출신 박경리 소설가 무덤을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왕릉처럼 크게 만들어 놓았다.
김춘수 유품전시관은 봉평동에 있고, 미륵산에 충청도 출신 정지용 시인 문장비가 서있다. 타도 사람 문장비가 선 까닭은
그가 청마 유치환 만나러 통영에 자주 갔기 때문이다. 충열사 옆에는 백석 시비가 있으니, 백석이 이화여고 다닌 통영 박경련에게 반해 통영까지 천리길 세 번 발걸음 한 때문이다. 통영은 이런 시비까지 세웠다. 그뿐이랴. 통영 중앙동은 완전 예술의 거리다. 우체국 옆에 빨간 우체통과 나란히 청마 유치환의 흉상과 '향수' 시비가 있다. 이곳을 유치환이 여류시인 이영도와 지인들에게 5천여통 편지를 보낸 곳이라고,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하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옆에 '초정 김상옥 거리'란 표석도 있다. '이 길은 통영이 낳은 시조시인 김상옥 선생의 생가(항남동 64번지)가 있는 곳입니다. 이 거리를 특색 있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항남 1번가'와 '초정 거리'를 함께 쓰기로 하였습니다'라고 새겨놓았다. 이 일대에 유치환의 동상과 '행복'과 '향수' 시비, 김상옥 '사향' 시비, 박경리 '사마천' 시비, 김상옥 시조 '봉선화' 동판 벽면, 김상옥 생가 터 표지, 김춘수 '꽃' 육필 시비가 몰려있다.
대구는 아예 시티투어 버스로 관광객을 대구의 몽마르트라 불리는 '청라언덕'으로 안내한다. '청라언덕' 이름은 원래 서양 기독교 선교사들이 담에 푸른 담쟁이를 많이 심어 그리 붙여졌다. 그 언덕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친구를 생각하는 이 思友 노래는 박태준이 계성고 다닐 때 등하교 길에서 짝사랑한 언덕 아래 신명고 여학생 이야기를 경남의 한 고교에 같이 근무하던 동료 이은상에게 말하여 그가 노랫말 쓰고, 박태준이 곡을 썼다'라고 적혀있다. 대구문화원은 매주 토.일요일 10명 이상 신청하면, '대구문학 로드'라 해서, 8명의 전문해설사가 1920년 이후 출판인쇄소, 예술인이 모이던 다방, 옛 거리, 이상화, 이육사, 현진건 등 문인의 생가 및 고택을 해설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런데 진주는 어떠한가. 진주는 1949년 설창수 시인이 우리나라 지방 예술제 효시 영남예술제(현 개천예술제)를 개최하여 제주도, 마산, 삼천포 등지의 문학 청년이 운집하여 많은 문인을 배출했건만 지금은 예향의 흔적이 희미해지고 있다.
변영로의 '논개' 시비, 설창수의 '의랑 논개' 시비는 촉석루 옆에 있다는데 잘 보이지 않고, 파성의 흉상은 배건너 망경동에 있다. 최계략과 이형기 시비는 신안동 녹지공원에 있고, 박경리 문학비는 진주여고에, 남인수 노래비는 진양호에 있다.
이렇게 흩어버렸으니 누가 진주에 가서 예향의 냄새라도 맡아보겠는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앞으로 진주시에서 언제 누가 예술에 대한 무슨 정책을 내놓을지 백년하청 식으로 답답하다. 그래 내가 차라리 自費로
여기 시조문학관 뜰에 진주 여류시인들이 詩碑를 세우면 어떨까 하고 관장님에게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김여정 정혜옥 김정희 세 분과 김지연 허윤정 시인을 염두에 두고 한 질문이다. 그러자 학처럼 여윈 노시인은 말없이 허공을 주시하시며 입가에 고요한 미소만 떠올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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