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흘러간 명화들

김현거사 2020. 3. 8. 07:52


 흘러간 명화들

 

  요즘 전철 타면 늙은이 티가 나서 젊은 사람이 좌석 양보해주는 일이 많지만, 한때 우리에게도 청춘 이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영화 제목 대면 즉각 주연 이름 나왔고, 주연 이름 대면 제목이 튀어나왔다. 찰리차프린 하면 '모던 타임스',  카트리느드뉘브 하면 '셀브르의 우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하면 '부베의 연인' '가방을 든 여인'이 나왔다. 

 

인'찰리체프린의 명언   

 

 오도리햅번이 아들에게 들려준 글 

 

  잉그릿드버그만 하면 '카사불랑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제니퍼존스 하면 '모정', 스잔헤이워드 하면 '나는 살고 싶다'. 폴뉴먼 하면 '영광의 탈출', 아란드롱 하면 '태양은 가득히', 엘리자베스태일러 하면 '클레오파트라' '자이언트'가 나온다. 오도리햅번 하면 '로마의 휴일' 이고, 나탈리우드 하면 '초원의 빛', 그레이스켈리 하면 '상류사회', 마리린몬로 하면 '돌아오지 않는 강' '나이아가라'가 튀어나온다. 그레고리펙 하면 '백경', 마론브란드 하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대부'가 나오고, 제임스딘 하면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 나온다. 스티브맥퀸 하면 '빠삐옹' '황야의 7인', 율브린너 하면 '왕과  나', 쑌코넬리 하면 '007 두번 죽지 않는다'가 나온다.   

  반대로 영화제목 대면 주연 이름 역시 칠년대한 비 오듯 쏟아진다. '닥터지바고' 하면 오마샤리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하면 클라크케이불, '자이안트' 하면  제임스딘, '노인과 바다' 하면 안소니퀸, '셀브르의 우산' 하면 까뜨린느 드뇌브, '테스' 하면 나타샤킨스키가 나온다. 

 

 당시 청춘들은 영화음악도 박사였다. 마리린 몬로가 부르던 '돌아오지 않는 강' 주제가 기억나시는지. There is a river, called the river of no return(돌아오지 않는 강이라 불리우는 강이 있지요). Love is traveler on the river of no return(사랑은 돌아오지않는 강 위의 나그네였네). Sometimes it's peaceful and sometimes wild and free(강은 때로 평화롭지만 때로는 사나운 폭풍우가 불기도 하지요)'. 이 노래는 몬로의 요염한 자태도 자태거니와 가사 자체가 그대로 완벽한 한 편의 시다.

 

        



 아란랏드가 주연한 '세인'의 주제곡 'The Call of faraway hills' 역시 시정이 물씬 넘쳤다. 그가 악질 목장주 라이카를 쌍권총 속사로 물리치고 황야로 말머리 돌려 떠날 때, '쎄인!가지 말아요' 외치는 소년과 이때 감미롭게 깔리던 음악, 'Shadows fall on the prairie, Day is done and the sun is slowly fading out of sight.(프레이리에 어둠이 덮히면 날은 저물고 해는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진다) 가사는 마약처럼 우릴 녹여버렸다. 

 또 멕시코 영토였던 알라모 요새를 지키던 죤웨인이 이끌던 민병대 200명이 13일간 처절한 수비 끝에 인디안에게 전멸되기 전날 밤, 알라모 요새에 울려퍼지던 'The green leaves of summer' 장중한 코러스도 내용을 알면 울지 않을 남자 없다. 

A time to be reapin, a time to be sowin. The green leaves of summer are callin' me home. Twas so good to be young then, In the season of plenty, When the catfish were jumpin' as high as the sky.(수하던 그 시절, 씨를 뿌리던 그 시절. 여름날의 푸른 잎새들은 나를 고향으로 부르고 있네. 젊었던 그 시절 풍성한 계절은 참으로 좋았지. 메기가 하늘높이 뛰어오르곤 했던 그 시절이.)

 시 청년들은 이런 시정 넘치는 노랠 부르며 바지도 청바지 즐겨 입었고, 다른 학교 학생과 패싸움을 붙어도, 언제 어디서 몇시에 만나 결투 할 것인가를 황야의 총잽이 방식대로 했다. 이 밖에도 페기리의 'Johnny Guiter'나 비스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 앤디월리암스'의 'Moon river' 같은 곡도 많이 즐겼다.


 영화를 통해서 불후의 명작도 많이 섭렵했다. 섹스피어의 <햄릿>, 톨스토이의 <부활>, <안나 카레니나>, 빅톨 유고의 <레미제라불(Les Miserables)>, <노틀담의 꼽추(Notre Dame de Paris)>,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노인과 바다>, 펄벅의 <대지 (The Good Earth)>, 듀마 휴이스의 <춘희(椿姬)>, 에밀리 부론테의 <폭풍의 언덕> 같은 명작을 영화를 통해서 알았다. 

 우리는 당시 돈이 없어 종로 3가나 퇴계로 개봉관은 못갔고, 주로 동대문 청계극장, 을지로 계림극장, 답십리, 청량리, 청파동 2본 동시 상영하는 싸구려 극장 다녔다. 버스비 아까워 걸어다녔고, 밥은 굶어가며 다녔다. 그러나 지금 동대문극장은 없어지고, 청계극장은 신발도매상가 되고, 계림극장은 굳모닝시티 상가로 변했다.

 근래 어느 여류시인이 영화수필 쓰신다면 새로 나오는 영화에 관심을 두는게 어떠냐고 물어보길래 관심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30년이 내 청춘 시절이다. 그때 영화만 쓸 생각이다. 요즘 영화는 요즘 사람이 쓰면 되지 않겠는가.

(지구문학 2020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