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 천리길

내가 만난 여류시인/3

김현거사 2020. 1. 1. 10:30

 내가 만난 여류시인/3 

 

 내가 만난 세번째 여류시인은 서울의 김여정 시인이다. 필자가 후소(後笑) 김여정 시인과 처음 인연을 맺게된 것은 대구 김혜숙 수필가 덕분이다. 김여정 시인의 조카인 그가 남강문학회에 <김여정문학관>이란 싸이트를 소개하길래 내가 들락거리다가, <김현거사 응접실>이란 방을 하나 얻었다. 한국 대표 여류 문학관에다 방을 얻은 김에 자주 작품을 실었는데, 그 후 선배님 8순 기념 시전집을 받게 되었다. 그 시전집이란 것이 아무나 내는 책 아니다. 1968년부터 2012년까지 열 몇 권 시집을 모은 1천5백 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책이다. 1993년에 첫번 시전집 발간 한 후 두번째로 낸 시전집이다. 


 저서 


1969년 처녀시집 『和音』 출판.
1973년 제2시집 『바다에 내린 햇살』 출판
1976년 시선집 『레몬의 바다』 출판.
1977년 수필집 『고독이 불탈 때』 출판. 시해설집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출판
1978년 제3시집 『겨울새』 출판.
1982년 제4시집 『파도는 갈기를 날리며』 출판.
1983년 제5시집 『어린 神에게』 출판. 모친 사망
1985년 시해설집 『별을 쳐다보며』 출판.
1986년 제6시집 『날으는 잠』 출판.
1988년 신앙시집 『그대 꿈꾸는 동안』 수
필집 『너와 나와의 약속을 위하여』오늘은 언제나 미완성』 출판
1989년 제7시집 『해연사』 출판
1990년 5인(홍윤숙.천경자.박완서.이해인.김여정) 공동수필집 『사랑은 고통받는 기쁨이더라』 출판
1991년 제8시집 『사과들이 사는 집』 발간(문학아카데미).

1993년 김여정시전집 발간

1995년 제9시집 『봉인 이후』발간(문학아카데미)
2002년 제10시집 『내 안의 꽃길』발간(문학아카데미)
2006년 제11시집 『초록 묵시록』발간(문학아카데미)
2008년 제 12시집 『눈부셔라, 달빛』 발간(미네르바시선)


2012년 김여정 두번째 시전집 발간 


 화보에는 저자와 함께 포즈를 취한 박종화, 김남조. 김소운, 전숙희, 조경희, 신석초, 박목월, 구상, 조병화, 모윤숙, 이영도, 김후란, 허영자, 추영수, 유안진 등 문단의 별이란 별은 다 보였다. 송지영, 김구영 선생이 보낸 휘호도 있었다. 어쨌던 1천5백 페이지 전집은 다 읽기 힘든 것이지만, 나는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작심을 하고 다 읽었다. <은난초꽃>이란 시를 읽고 맘에 들어, 시인이 진주성 섬돌 밑에 핀 은난초꽃으로 느껴진다는 글을 보낸 적 있다.

 

 이렇게 청초하고 수줍은 여인이 있었나

저녁 어스럼 조심조심 밟아 내려오는

운악산 산자락

울울한 나무 그늘에 없는듯 조용히

해맑은 미소 머금고 있는 은난초꽃

수줍디 수줍은 생면부지의 젊은 여인이

나도 몰래

내 마음을 빼앗아가고 말았네


그런데 그 후 우연한 일로 젊은 시절 신문기자를 한 지성적인 외모와 또 시재로 한양 시인묵객 가슴 설레게한 이 분과 매년 양수리에 연꽃 필 때 데이트 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월탄 박종화 선생이 집에 초청하면 밥상 겸상을 할 정도로 따님처럼 아껴준 분이 이 분이다. 그런데 나는 무슨 재주로 해마다 데이트 했는가.

  

   

 언젠가 문인협회서 김여정 문학특강에 참석했더니 시인은 서두를 남강 모래밭 소싸움부터 시작했다. 심훈의 상록수에 감명 받아 진주에 야학 '한빛학원' 세웠던 일, 진주 시인 이경순 설창수 이명길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고향 자랑을 더 할려고 그러셨던 모양이다. 갑자기 방향을 돌려 엉뚱하게 그 자리에 앉아있는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김 모의 수필이 하도 좋아서 자기가 배울 정도라고 하셨다. 그 자리에 왔던 문인협회 이사장 등 작가들이 깜짝 놀랬을 것이다.

 나는 원래 언론인 출신이다. 문단 원로라고 먼저 수구리고 인사한 적 없다. 강연 끝나자 그들이 먼저 몰려와서 내 손을 잡았다. 이런 고마울 데가 어디있나. 그래 비행기 태워준 답례로 강의 끝나자, '단풍이 절정일 때 제가 선배님을 북한강 드라이브 코스로 모시겠습니다.' 데이트 신청한 것이다. 사실 북한강 단풍이 가장 아름다울 때, 평생 시를 쓴 아름다운 원로시인을 모신다는 건 그 농염한 궁합이 딱 맞아떨어지는 일 아니겠는가.

 

 그런데 첫 데이트는 계획대로 성공적이었다. 유명산 단풍은 아름다웠고, 북한강 비취빛 가을 강물은 아름다웠다. 아내와 김선배님, 두 여인 태우고 그날 나는 옥천 냉면 음미하고, 청평 가평 거쳐 남이섬 돌아왔다. <백만송이 장미> 영화 찍은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선배님은 성품이 활달해서 동행한 아내에게 시 작법도 일깨워주고, 문단 비사도 들려주었다. 박종화, 신석초, 박목월, 구상, 조병화 시인의 일화도 싫컳 들었다. 

  다음 해 데이트는 양수리 연꽃밭에서 했다. 원래 비오는 여름은 텃밭에서 방아 뜯어와 고추전 부쳐먹는 것도 좋지만, 미인과 연꽃 구경하는 건 더 좋다. 양수리에 세미원(洗美苑)이란 곳이 있다. 북한강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다. 거기서 백련 홍련 구경하고, 초계탕 먹은 후 바다같이 넓은 팔당호 보이는 찻집에서 아내와 문단 이야기 들었다. 이영도 시인과 청마의 부적절한 관계, 서영은과 또 한 분 그리고 김동리 선생의 삼각관계도 들었고, 김상옥, 신봉승. 황순원의 히든 스토리. 젊은 시절 박경리 선생 이야기도 들었다.  

 다음 해도 남강문학회 후배 구자운박사 데리고 가 넷이서 사진도 찍고 많은 이야기 들었는데, 노시인이 매번 시간을 내주신 것은 아마 내가 고향 후배라는 오직 그 하나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