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에 서면
전에는 강이란 물고기 잡고 멱 감고 노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제 강변에 서면, 나는 강물의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안개 속에서, 별빛 아래서, 나는 강의 다정한 속삭임을 들으면서 강이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임을 깨닫는다. 강도 나처럼 절벽에 비스듬히 선 노송을 사랑했고, 바위를 사랑했고, 빈 나룻배를 사랑했다. 강도 나처럼 이끼 낀 성벽을 좋아했고. 다리의 외로운 가로등을 좋아했고, 기적을 울리며 떠나는 기차를 좋아했다. 강도 나처럼 구비구비 굽은 길 헤쳐오며, 때로 탄식하고, 때로 울부짖고, 때로 환희의 노래를 불렀다. 강도 나처럼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 돌아갈 수 없고. 한번 이별한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을 알고있다.
강과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닮은 존재인지 모른다. 나 자신이 작은 강인지도 모른다. 강에 수많은 별이 비치다 사라지듯, 내마음 속에도 얼마나 그리운 별들이 비치다 사라졌던가. 강이 흘러온 시간과 여정을 탄식하듯, 나 역시 얼마나 흘러온 시간과 여정을 탄식했던가. 우리는 마음이란 계절 따라 얼었다 녹았다 하는 변덕쟁이란 걸 알았고, 세월은 쏜살같이 달아나는 심술쟁이란 걸 깨달았다. 우리는 남풍에 실려온 봄처럼 목적지 없이 떠난 에뜨랑제였고, 밤하늘 유성의 궤적으로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지는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강의 그 쓸쓸한 미소를 좋아한다. 나에게서도 강은 아마 그런 미소를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쓸쓸한 자의 미소를 서로 교환한다. 강은 싸파이어처럼 푸르고, 여신의 눈동자처럼 신비한 눈동자를 갖고있다. 나는 강의 그 눈물 같이 푸른 눈동자 앞에서, 젊은 날 뭉게구름 같던 꿈과 사랑했던 소녀를 회상한다. 그때 강은 참회를 들어주는 신부님이다. 내가 강 앞에서 명상에 잠기면, 그때 강은 명상을 지도하는 스님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는 고향에 가도 아는 사람 드물다. 머리는 백발이고, 몸에 지병도 있다. 이제 나는 고향에 가도 나그네다. 그 나그네에게 누군가 또다른 나그네가 노래를 불러준다. 강도 나처럼 원초적인 나그네였다. 그 노래는 요람에서 아기 잠재우는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고요하다. 고향 밤거리를 울리고 사라진 누군가의 옛노래 같기도 하다. 그래 나는 이제 고향에 가도 쓸쓸하지 않다. 거기 참회를 들어줄 신부님, 명상을 지도할 스님, 자장가를 들려줄 어머니의 강, 남강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문학 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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