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 본 파리(The last time I saw Paris. 1954)
고등학생 때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남의 집 벽에 붙은 영화포스타를 수집하곤 했다. 그걸 책가방에 넣고 다니며 친구들한테 자랑하곤 했다. 그때 인기있던 건 게리 쿠퍼, 카크 다그라스, 오디 머피 같은 총잽이 사진이었지만, 마리린 몬로나 에리자베스 태일러 사진도 소중했다. 나는 당시 몬로가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입었던 청바지 즐겨 입었고, 시골 소도시 길가에 내놓은 우리집 평상에서 몬로가 기타를 치며 쎅시한 입술로 노래 부르던 '돌아오지 않는 강' 기타 연주를 하곤 했다.
70 넘어 방에만 콕 박힌 '방콕'은 좋을게 없다싶어, 간혹 전철 타고 종3에 가서 흘러간 영화를 보고온다. 대개 5-60년 전 것이라 영화가 곰팡내 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과 평범한 이야기 나누는 일보다, 한 시대 풍미한 명감독 명배우 만나는 일이 더 보람있다.
'The last time I saw Paris'(내가 마지막 본 빠리)'는 우선 제목만 봐도 뭔가 낭만적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제목이다. 영화던 소설이던 타이틀이 좋아야 우선 반은 성공한다.
여배우 에리자베스 태일러는, 영화야 어쨌던간에 그 얼굴만 감상하고 와도 본전 뽑는다. 그동안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몸이다. 50년 서울 살면서 한양의 미인이란 미인은 물론, 새침데기 깍쟁이까지 대충 다 만났지만, 에리자베스 태일러는 말 그대로 군계일학 이다.
리즈는 가슴의 융기와 늘씬한 종아리도 일품이지만, 가장 신비한 부분은 눈섶이다. 몸이 천량이면 눈이 9백냥이다. 리즈의 눈동자는 자세히 보면 초록 에메랄드 같다. 멜라닌 색소의 침착에 의한 보라빛과 초록색이 섞인 것이다. 눈빛이 실크로드의 월아천(月牙泉)처럼 신비롭다. 그 신비로운 월아천 위를 덮은 것이 그 쎅시한 눈섶이다. 그런 눈섶은 레오날드 다빈치 같은 천재도 그려내지 못한 눈섶이다. 동서고금 수많은 천재들의 미인도 아무리 살펴보아라. 그런 눈섶은 없다. 인류가 생긴 이래 수천수만 여인들이 틈만 나면 거울을 보고 열심히 눈섶을 그렸다. 지금도 전철 타면 젊은 아가씨가 중인환시 속에 콤팩트 꺼내놓고 얼굴에다 뭔가 그린다. 그러나 누구도 리즈처럼 눈섶 그림에 성공한 사람 없다. 리즈의 눈섶은 미간(眉間)에서 진하게 시작되어, 끝에서 가늘게 휘감아돌면서 얼굴 전체 인상을 요염하게 만든다. 쎅스어필 하다. 그런 눈섶, 그런 눈으로 남자 눈동자를 한번 쳐다봐라. 보통 남자는 고압 전류에 감전된듯 홀라당 기절하고 만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 붉히고 정신을 잃는다. 그런데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런 눈을 컴컴한 극장에서 60분 이상 부담 없이 요리저리 마음대로 뜯어보면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관객이다.
각설하고 영화 이야기로 가보자. 첫장면은 마빈 르로이가 감독한 '애수'란 영화와 비슷하다. '애수'에서 워터루부릿지에 군복 차림의 로버트 태일러가 나타나 죽은 여인을 회상하듯, 이 영화도 빠리의 한 카페에 옛날 거기 단골이던 한 남자(반 존슨)가 나타나 위스키 잔을 앞에 놓고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난 아내를 회상한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면, 2차 대전 끝나고 환호의 물결에 덮힌 빠리의 상제리제가 나온다. 모르는 남녀가 서로 껴안고 키스 세례 퍼붓는다. 그 와중에 종군기자 월스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난다. 헬렌은 그에게 키스를 퍼붓고, 둘은 다시 종전축하 파티에서 만나 결국 결혼에 이른다.
웰스는 낮에는 통신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은 쓴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계속 외면당하자 좌절한다. 반면 헬렌은 파티와 향락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헬렌은 새 연인을 사귄다. 그런 어느 날 웰스가 만취하여 집에 돌아와 계단에 쓰러져 잠들 때, 헬렌이 비를 맞고 돌아와 문을 열라고 했으나 열어주지 않자, 헬렌은 남편이 자기를 내쫒은 것으로 오해한다. 헬렌은 찬 비를 맞으며 언니집으로 가다가 폐렴에 걸리고, 다음날 폐렴으로 급사하고 만다. 몇 년 후 웰스는 미국으로 돌아가 작가로서 성공하여 빠리로 찾아온다. 헬렌을 만나던 단골 카페에 와서 옛 일을 회상한다.
영화는 물질만능 미국인 이미지를, 애수와 낭만 가득한 미국인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다. 스토리는 대략 이렇게 정리되어 있고, 뒷부분에 사족이 하나 달려있다. 헬렌에게는 언니가 있다. 웰스는 언니집에 맡겨둔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갈려고 하나, 언니가 반대한다. 비오는 날 동생을 내쫒아 폐렴으로 죽게 만든 것이 겉으로 내세운 이유지만, 실은 그도 처녀 적에 웰스를 사랑했던 것이다. 못이룬 연정이 복수심으로 바뀐 것이다. 마침 그의 남편이 모든 걸 눈치채고 아내를 설득하여, 웰스는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The last time I saw Paris. 1954)
고등학생 때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남의 집 벽에 붙은 영화포스타를 수집하곤 했다. 그걸 책가방에 넣고 다니며 친구들한테 자랑하곤 했다. 그때 인기있던 건 게리 쿠퍼, 카크 다그라스, 오디 머피 같은 총잽이 사진이었지만, 마리린 몬로나 에리자베스 태일러 사진도 소중했다. 나는 당시 몬로가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입었던 청바지 즐겨 입었고, 시골 소도시 길가에 내놓은 우리집 평상에서 몬로가 기타를 치며 쎅시한 입술로 노래 부르던 '돌아오지 않는 강' 기타 연주를 하곤 했다.
70 넘어 방에만 콕 박힌 '방콕'은 좋을게 없다싶어, 간혹 전철 타고 종3에 가서 흘러간 영화를 보고온다. 대개 5-60년 전 것이라 영화가 곰팡내 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과 평범한 이야기 나누는 일보다, 한 시대 풍미한 명감독 명배우 만나는 일이 더 보람있다.
'The last time I saw Paris'(내가 마지막 본 빠리)'는 우선 제목만 봐도 뭔가 낭만적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제목이다. 영화던 소설이던 타이틀이 좋아야 우선 반은 성공한다.
여배우 에리자베스 태일러는, 영화야 어쨌던간에 그 얼굴만 감상하고 와도 본전 뽑는다. 그동안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몸이다. 50년 서울 살면서 한양의 미인이란 미인은 물론, 새침데기 깍쟁이까지 대충 다 만났지만, 에리자베스 태일러는 말 그대로 군계일학 이다.
리즈는 가슴의 융기와 늘씬한 종아리도 일품이지만, 가장 신비한 부분은 눈섶이다. 몸이 천량이면 눈이 9백냥이다. 리즈의 눈동자는 자세히 보면 초록 에메랄드 같다. 멜라닌 색소의 침착에 의한 보라빛과 초록색이 섞인 것이다. 눈빛이 실크로드의 월아천(月牙泉)처럼 신비롭다. 그 신비로운 월아천 위를 덮은 것이 그 쎅시한 눈섶이다. 그런 눈섶은 레오날드 다빈치 같은 천재도 그려내지 못한 눈섶이다. 동서고금 수많은 천재들의 미인도 아무리 살펴보아라. 그런 눈섶은 없다. 인류가 생긴 이래 수천수만 여인들이 틈만 나면 거울을 보고 열심히 눈섶을 그렸다. 지금도 전철 타면 젊은 아가씨가 중인환시 속에 콤팩트 꺼내놓고 얼굴에다 뭔가 그린다. 그러나 누구도 리즈처럼 눈섶 그림에 성공한 사람 없다. 리즈의 눈섶은 미간(眉間)에서 진하게 시작되어, 끝에서 가늘게 휘감아돌면서 얼굴 전체 인상을 요염하게 만든다. 쎅스어필 하다. 그런 눈섶, 그런 눈으로 남자 눈동자를 한번 쳐다봐라. 보통 남자는 고압 전류에 감전된듯 홀라당 기절하고 만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 붉히고 정신을 잃는다. 그런데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런 눈을 컴컴한 극장에서 60분 이상 부담 없이 요리저리 마음대로 뜯어보면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관객이다.
각설하고 영화 이야기로 가보자. 첫장면은 마빈 르로이가 감독한 '애수'란 영화와 비슷하다. '애수'에서 워터루부릿지에 군복 차림의 로버트 태일러가 나타나 죽은 여인을 회상하듯, 이 영화도 빠리의 한 카페에 옛날 거기 단골이던 한 남자(반 존슨)가 나타나 위스키 잔을 앞에 놓고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난 아내를 회상한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면, 2차 대전 끝나고 환호의 물결에 덮힌 빠리의 상제리제가 나온다. 모르는 남녀가 서로 껴안고 키스 세례 퍼붓는다. 그 와중에 종군기자 월스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난다. 헬렌은 그에게 키스를 퍼붓고, 둘은 다시 종전축하 파티에서 만나 결국 결혼에 이른다.
웰스는 낮에는 통신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은 쓴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계속 외면당하자 좌절한다. 반면 헬렌은 파티와 향락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헬렌은 새 연인을 사귄다. 그런 어느 날 웰스가 만취하여 집에 돌아와 계단에 쓰러져 잠들 때, 헬렌이 비를 맞고 돌아와 문을 열라고 했으나 열어주지 않자, 헬렌은 남편이 자기를 내쫒은 것으로 오해한다. 헬렌은 찬 비를 맞으며 언니집으로 가다가 폐렴에 걸리고, 다음날 폐렴으로 급사하고 만다. 몇 년 후 웰스는 미국으로 돌아가 작가로서 성공하여 빠리로 찾아온다. 헬렌을 만나던 단골 카페에 와서 옛 일을 회상한다.
영화는 물질만능 미국인 이미지를, 애수와 낭만 가득한 미국인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다. 스토리는 대략 이렇게 정리되어 있고, 뒷부분에 사족이 하나 달려있다. 헬렌에게는 언니가 있다. 웰스는 언니집에 맡겨둔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갈려고 하나, 언니가 반대한다. 비오는 날 동생을 내쫒아 폐렴으로 죽게 만든 것이 겉으로 내세운 이유지만, 실은 그도 처녀 적에 웰스를 사랑했던 것이다. 못이룬 연정이 복수심으로 바뀐 것이다. 마침 그의 남편이 모든 걸 눈치채고 아내를 설득하여, 웰스는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김창현 1944년
<내가 마지막 본 빠리>
경기도 용인시 수지로 113번길 15.207동 302호.
우편번호 16849
전화 010-2323-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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