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창

부산 친구들

김현거사 2018. 11. 3. 07:56

 부산 친구들

 

 3일 아침 카톡에 서울 큰수웅이가 좋은 글 올렸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보물이다. 좋은 사람을 찾지말고 좋은 사람이 되주고, 좋은 조건을 찾지말고 내가 좋은 조건이 되는 사람이 되주자. 살만 하니 떠나는게 인생이니, 오늘도 주위 사람들을 한번 섬겨보자.'

 

 이번에 통도사 다녀오는 길에 부산 친구 셋 만났다. 온천장역에서 용암이가 금정산 산성마을로 안내했다. 산성마을 올라가는 길은 어찌나 꼬불꼬불한지 설악산 한계령 같다. 해발 800 산 위 공기 시원했다. 막걸리와 동래파전 시켜놓고 이야기 보따리 풀었는데, 고인이 된 강정웅이 이야기 나왔다. 이종규 장군은 강정웅이가 진주 강남학군이라고 자랑하는 川前을 봉래학교 분교라고 맨처음 말했다고 기억했다. 거사는 서울은 김정열이가 봉래 분교라는 말을 처음 썼다고 말했다. 서울이고 부산이고 봉래는 川前 천적이다. 

 우리는 정웅이가 전에 경부탁구시합 때 자기 여동생과 봉고차 한 대와 자가용을 부산역에 끌고 나와 서울 친구들 해운대로 나르고 식사 대접한 일 이야기 했다. 정웅이가 행사 끝나고 부산역에서 한 말 잊히지 않는다. '김교수! 내가 송도에 모텔 하나 가지고 있다. 언제라도 부인과 한번 오이라. 숙식은  책임지마.' 그러자 이 대목에서 부산 슈벨트 영환이가 정웅이 그때 상황을 알려준다. '정웅이가 사실은 어려웠다. 모텔도 본인 것이 아니었다. 어릴 때 정웅이는 아버지가 첩을 얻어 남매가 첩실 밑에서 학대받고 살다가 고아원에 갔다.' 이 말 듣고 나는 중고 시절 인물 훤칠하게 잘 생기고 말재주 좋아 사람 웃기던 정웅이 생각났다. 돈 많아 친구한테 밥 사는 건 쉬운 일이다. 어렵게 살면서 친구 대접한 그 마음이 더욱 빛난다.

 정웅이는 나중에 지병에 악화되어 병원을 전전했다. 그 때 간병 다닌 사람이 영환이다. 서울 병원에도 영환이가 데리고 왔다. 임종 전에 정웅이는 '우리 집사람이 좀 그러니 자네가 재산관리를 신경 써주게'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얼마나 믿었으면 그랬을까. 정이라면 부산에서 영환이다. 영환이는 섹스폰도 불지만 음악 좋아해 수만 곡을 자기 컴퓨터에 소장하고 있다. 말이 수만 곡이지 이 정도면 음악광이다. 그래 거사가 그를 '부산 슈벨트'라 부른다. 그가 나에게 선물한 모델명 B-898E라는 기계는 그걸로 클라식 팝송 수백곡 듣는다.

 

 

  조용암이는 무슨 화공약품 사업에 성공한 모양이다. 살기 넉넉한 모양이고, 눈치도 빠르고. 뱃장도 있다. 시킨 오리 백숙을 자꾸 종규 상호 서울 친구 잡시에 담아주는데, 오리 백숙도 맛 좋았지만 용암이 정이 더 흐믓했다.

 해운대 신사로 불리우는 이건영이는 고요하고 겸손한 미소가 일품이다. 거사가 절에 다니면서 도 높은 고승 더러 만났지만, 건영이 같은 명품 미소 드물었다. 아마 우리 933 친구 중에 가장 고요한 미소를 그가 가진 것 같다.

 누룩냄새 일품인 산성막걸리 쭈욱 한 잔 들이키고 좋은 친구들 만났으니 노래 한 곡조 없을소냐. 손에 손 잡고 온천장역에서 한 곡조 하고 노포동에서 10시 서울 발 심야버스에 올랐다. 등불만 졸고있는 캄캄한 창 밖을 보면서 노포동역까지 전송해준 용암이 얼굴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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