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창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김현거사 2018. 9. 1. 11:19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가을 하늘 북쪽으로 날아가는 철새들 모습이 보인다. 이번에 진주에서 병상에 있는 친구 만나고 왔다. 1년째 의식불명이다. 밤 9시 병실에 간병하는 여인만 있다. 얼굴이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문박사 나 김**이네. 널 보러 서울서 내려왔어' 여윈 손을 잡고 말을 걸어보았다. '아까 낮에는 잠간 눈을 떴습니다. 더 불러보세요.' 간병인이 그러길래 '문박사 나야나. 김**이.' 몇번 반복하니 비록 시선은 나에게 보내지 못했지만 눈을 허공으로 뜬다. 의식은 있다. '문박사 자네와 나 둘다 불교 좋아했어. 자네는 불교 관련 책자도 나에게 선물했고, 함양에 있는 자네 암자에서 하루 밤 자고오자는 말도 했어. 생노병사가 여여한 것이고 희노애락이 역시 그런 것 아니었나. 오랜 병고에 얼굴이 평화로워 보여 생각과 행동이 같은 것 같아 보기좋네.  

 자네는 자식도 법조인 만들었고, 진주서 병원장 하면서 베풀기를 좋아했어. 성공한 인생이었어. 서울 친구 왔다고 삼천포서 회를 공수해와서 진양호 레이크사이드 호텔서 진주 친구 10여명까지 초청한 자리를 만들어준 적 있고, 부산 울산 대구 친구 지리산 합동 등반시 덕산에서 백여만원 잔치 뒷바라지도 했어. 내가 도라지담배 좋아한다고 담배 품절된 1년 후 나에게 몇갑 선물하던 정도 잊히지 않네. 문교부 정차관님과 진주 지나갈 때 자네가 벤츠 몰고와 인사드리고 식사 대접하고 간 일도 그렇고. 어쨌던 성공한 인생 살았으니 더 바랄게 무언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가세.'

 그때 옆에서 간병인이 말했다.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요.' 유심히 얼굴을 보았으나 침침한 내 눈에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의식이 있어 내 말은 들었을 것이다.

 진주목사 강홍열과 육거리 곰탕집에서 소주 하고 헤어진후 이튿날 아침 혼자 남강변 걷노라니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이별의 노래가 어딘가서 들린다. (2018. 9. 1)

 

 

'고교동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일 서대문포럼 사당동 모임  (0) 2018.10.17
서대문포럼 이천 나들이  (0) 2018.09.19
이종규 장군 걸어온 발자취  (0) 2017.10.10
고교동창  (0) 2015.06.13
비원  (0) 2014.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