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 천리 길 1

진주 미인

김현거사 2018. 4. 12. 11:50

 

 

 

 

 

  진주 미


 추석에 지리산 사는 친구가 단성감을 보내와 모처럼 맛 본 적 있다. 먹감, 돌감, 따바리감이라 부르는 단성감은 악양 대봉시처럼 크진 않지만, 그대신 과육이 쫀득쫀득 차지고, 결로 찢어지는 묘미가 있었다. 타향에서 조선 천지 감이란 감은 다 먹어봤던 터라 단성감이 천하명품이구나 싶었다. 하기사 고향 어느 것이 감탄의 대상 아닌 것 있으랴. 밝은 달, 맑은 공기도 감탄 대상이고,인은 말할 것 없다.

 년전에 서울 친구 셋이 진주 갔더니, 병원 하는 친구는 삼천포서 회를 주문하고, 호텔 하는 친구는 양주와 중국술 무한리필 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원래 진주는 남인수, 이재호, 손목인, 이봉조 등 가요계 거목을 배출한 트롯트 본고장이다. 진양호 둘러보고 손에 손 잡고 노래방 갔는데, 거기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호텔 회장이 초청한 미인들 때문이다. 타향에 오래 살아서 그럴 것이다. 고색창연한 성곽 모퉁이 꽃을 본 느낌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감회가 솟았다.

 나는 중국 서안에서 천하절색 양귀비 동상 본 적 있고, 대통령 친동생과 그 분 단골 룸싸롱에 가 본 적 있다. 그러나 그 모두 진주 미인과 비교되지 않는다. 오신 분 한 분 한 분이 진주성 섬돌 옆 복숭아꽃 같고, 누각 아래 핀 매화 같다. 수줍고 기품 있다. 피부는 비온 뒤 칠암동 대밭에 솟은 죽순처럼 보들보들하고, 얼굴은 바람에 날리는 너우니 봄버들처럼 청초하다. 말을 걸어보니, 언사가 사근사근 하기 도동 수박 같고, 부드럽기 신안동 토란 같고, 연하기 습천못 무화과 같다. 어떤 분은 달콤하기 비봉산 산딸기 같고, 어떤 분은 새콤하기 판문동 풋자두 같다.

 일찍이 백거이가 심양강에서 비파 타는 여인을 만나 '비파행(琵琶行)'이란 명문장을 남겼거니와 그는 '여인은 달빛 아래 비파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눈섶을 내리깔고 손을 맡겨 비파를 퉁기니, 소리는 곡조를 이루기 전에 정이 먼저 흐르더라' 했다. 진주 여인은 어쨌던가. 초생달 같은 아미(蛾眉)는 호수 같은 눈동자 위를 지나가고, 목단처럼 붉은 입술은 석류 속 같은 투명한 치아를 가렸다. 노랠 청하자 처음엔 수줍은듯 얼굴 붉히며 머뭇거려 사람 애간장을 태우더니, 단순호치(丹脣皓齒) 열자, 청아하기 청곡사 물소리 같고, 그윽하기 의곡사 종소리 같다. 향기로운 목단꽃이 봄바람에 흔들리듯 하고, 애처러운 초생달이 가을 하늘 지나가듯 한다. 혹은 청아하고, 혹은 그윽하고, 혹은 향기롭고, 혹은 애처럽다. 

 거기서 결정적으로 사람 마음 흔들어놓은 건 그 분들 마음씨다. 정이 쫀득쫀득 차지고 결로 찢어지는 단성감 같다. 수줍지만 따뜻하고, 순수하고 격조 높다. 소싯적에 손톱에 봉선화 꽃물 들이고, 산과 들에서 쑥 캐고, 남강에서 빨래하며 자란 분들이라 그런가.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가 남강 은어처럼 부드럽고, 뒤벼리 풍개처럼 향기롭다. 옛부터 '북 평양 남 진주'란 말 있지만, 과연 진주 미인이 이처럼 아름답더란 말이냐. 오신 분 전부 매력 덩어리요 천년기념물이다. 도대채 천상의 어느 선녀들이 이처럼 곱고, 풍류를 알고, 마음씨 착하던가. 

  천년 전 백거이는 심양강 비파 타는 여인의 슬픈 가락에 푸른 옷소매가 훔뻑 젖도록 울었다고 한다. 그날 나는 너무나 고맙고 감격스러워, 래된 진주 옛 가요 한 곡을 불러드렸다.

'삼천리 방방 곡곡 아니 간 곳 없다마는, 비봉산 품에 안겨 남강이 꿈을 꾸는, 내고향 진주만은 진정 못해라.'


'진주라 천리 길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향 가는 길  (0) 2018.04.14
진주 음식  (0) 2018.04.12
진주 팔경(晉州 八景)  (0) 2018.04.12
육거리의 추억/경남진주신문 2018년 4월3일  (0) 2018.04.12
배건너의 추억/경남진주신문. 2018. 3월  (0) 2018.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