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 천리 길 1

고향의 강

김현거사 2018. 4. 5. 10:55

 고향의 강

 

 지금도 나는 남상규가 부른 <고향의 강>이란 노래를 좋아한다. 가사가 시처럼 잘 다듬어진 것은 아니지만 정작 가슴을 때린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지금도 흘러가는 가슴 속의 강. 아 아 어느듯 세월의 강도 흘러, 진달래 곱게 피던 봄날에 이 손을 잡던 그 사람' 나는 이 노래 들을 때마다  남강을 생각한다.

 서장대 건너편에 '당미' 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에 불던 봄바람과 만발한 벚꽃 아래 거닐던 처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메기통' 가는 길에 늙은 감나무 있었다. 늦가을 서리맞은 새빨간 홍시는 너무나 고왔다. 아이들은 홍시 따려고 돌 던지고 작대기 흔들었다. 그 아래 '메기통'에서 벌거숭이 아이들 수경 쓰고 물속으로 따이빙하여 바위 틈에서 수염이 길다란 메기 잡았다. 빤스만 걸친채 <쎈>의 아란랏드나 <형제는 용감하였다>의 스츄어트그랜져 폼 잡았다. 가설무대 말광대 탭댄스 흉내도 냈고, 나무가지로 딸따냥마냥 칼싸움도 했다. 좀 더 큰 아이는 <애수>에 나오던 비비안리, <가스등>에 나오던 잉그릿드버그만을 사모했다. 가수들 노래도 불렀다. 최무룡의 <꿈은 사라지고>, 현인의 <신라의 북소리>,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등이 주곡목이다. 

 당미언덕에서 첫사랑이 눈 떴다. 나는 언제가부터 절벽에 핀 나리꽃 보며 가만히 한숨짓는 젊은 베르테르가 되었다. 강 건너에 사범학교가 있었다. 기차 시간 늦은 여학생들이 하얀 종아리를 걷고 얕은 곳으로 건너오곤 했다. 종달새 울던 봄에 나는 거기서 그리움의 버들피리 불고, 버들잎 노랗게 뜨흐르던 그림 같은 가을강에서 편지를 썼다. 그러다 대학 입학한 그 해 친구가 자살하자, 뼛조각 몇개 그 언덕 소나무 갈피에 끼워놓고 부산 항만사 운전병이 되었다. 그때가 아득한 50년 전 일이다.

 강 따라 '당미' 언덕 아래로 가면 촉석루가 나온다. 수박향 나던 은어 몰려오던 촉석루 밑에 하얀 백로떼처럼 앉아 빨래하는 여인 모습이 진주 낮풍경이요,  뜨거나 안개 낀 밤 서장대에서 이봉조의 '밤 안개'남인수 '추억의 소야곡' 들려오던 것이 진주 밤풍경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진주 시인 이형기가 <낙화>란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낙화야 평거 복숭아꽃 낙화가 더 아름답고, 배꽃은 도동 배꽃 낙화가 더 아름답지 않던가. 지금은 개천예술제로 이름 바뀌었지만 1949년 시인 설창수가 국내 최초로 예술제 만들 때 이름은 영남예술제다. 그 밤 진주 남여학생들이 촉석루 밑에서 띄운 유등은 낙화처럼 흐르는 별처럼 아름다웠다. <디비리 모티> 돌아 아득히 흘러갔다. 

 강은 바람의 무대인지 모른다. 봄철 도동 들판은 복숭아꽃 살구꽃 물에 뜬 도원경이고, 여름철 칠암동 대밭은 피서하는 아줌마 철썩철썩 물장구 치는 소리 웃음소리 들리는 비밀의 숲이었다. 네온불 깜박이는 남강카바레에 탱고 흐르면 창가에 비치는 춤추는 청춘들 모습 꿈결이었다. 그 남강의 장마철은 격렬하다. 도도한 흙탕물에 상류에서 소와 돼지가 떠내려왔고, 시민들은 철교에 올라가 물구경 했다. 그러나 태풍 지나가면 지리산에서 흘러온 남강물은 너무 맑고 달콤했으며, 어항 덮은 베에 구멍 뚫어 된장 미끼로 잡던 모래문지와 보리피리는 너무나 이뻤다.

 나는 칠암동 강변 크로바 뜯어와 눈이 루비같이 붉고 털이 부드럽고 하얀 토끼를 키웠다. 방학 숙제 탱크 만든다고 정촌 가는 고개 밑에서 진흙 캐다가 물에 빠져 용왕님 전에 갈뻔 하기도했다. 강 건너 도동에서 수박과 참외 서리 해오기도 했다. 신안동에서 대 베어 뗏목 타고 구포 가서 팔아 돈 만들 계획을 세운 적 있다. 지금도 마시면 달콤하던 남강 물맛 기억난다.

 그 남강에 가을 오면 소싸움 벌어진다. 막걸리 동이채 들이킨 경상도 전라도 싸움소들이 커다란 눈 부릅뜨고 발로 모래 걷어차며, 뿔로 상대 머리를 찌르고 감고 치며 자웅을 다투었다. 사람들은 큰소리로 자기 동네소 응원했고, 승리한 소는 징과 쾡가리 치는 속을 보무도 당당히 행진했다. 겨울 오면 남강 둑은 연싸움장 된다. 연줄은 민어 부레 아교로 사금파리 시퍼렇게 날을 세웠다. 사각방패연이 윙윙 소리내며 바람 타고 좌우 아래위로 어지럽게 달리다가 줄이 엉키면 주인이 사정없이 줄을 푼다. 그러다가 탁! 어느 한쪽 줄 끊긴다. 허공에 끊긴 연 하나 하늘하늘 떨어진다. 아이들은  연줄 한발이라도 더 줏으려고 백사장 질주했고, 대숲의 갈가마귀 떼는 하늘 높이 날며 회오리바람 일으켰다. 나는 아침마다 다리를 건너 등교할 때 쨍쨍 얼음 깨지는 소릴 들었다. 선학산 위에서 솟던 황금빛 아침해를 보았다. 일요일의 남강은 대형 스케이트장이 된다. 댓가지 스케이트 타는 아이들이 개미떼처럼 얼음판에서 놀았다.

 이 남강의 밤은 호국사 종소리에 깊어갔고, 변영로가 노래한 '강남콩 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보다 더 붉은 그 마음' 가진 논개의 거룩한 분노가 흘렀다. 남강은 진주대첩을 이룬 승리의 강이요, 김시민 목사와 7만 관민이 순국한 충절의 강이다. 

 그 남강이 내 혈관의 피가 되었다. 나는 지리산에서 흘러온 남강물처럼 따뜻하고 유정한 남자로 성장했고, 충절을 아는 남자로 성장했다. '돌아가리라. 언젠가 돌아가리라. 가서 대밭 옆에 작은 초막 하나 지으리라' 항상 다짐한다. 항상 갈가마귀처럼 마음은 남강변을 헤맨다. 해마다 봄이 오면  '당미' 언덕 벚꽃이 눈에 보이고, 버들피리 소리가 귀에 들린다. 아!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 남강이 사모치게 그립다.  (2018년 6월12일 경남진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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