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버리고 비운다는 것

김현거사 2011. 1. 19. 10:41

마음 비운다는 말이 있다. 욕심 버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이 이런 일들이지 싶다. 그건 대통령보다 하기 어렵다. 잘난 사람들은 대개 대통령이라면 한번 해보려고 별의 별짓 다하지만, 욕망의 절정을 추구하면 얼마나 위태로운지. 신문을 보면 알 수 있다. 멀쩡하던 사람도 대통령만 되면 욕먹는 사람이 된다. 서민들은 죽어라고 대통령 욕하면서 스트레스 푼다. 그 대통령 보다 하기 어려운 경지가 마음과 욕심 비우는 일이다.

 

 마음을 비우고,욕심을 버리자는데,도대채 마음이 무엇이고,욕심이 무엇인가.

한뙤기의 땅에서라도 농사 지어본 사람은 이걸 이해할 것이다. 한여름 잡초는 며칠만 가면 무성해진다. 뽑고 뽑아도 며칠 후면 다시 무성해진다. 밭의 잡초를 뽑아내고 풀을 베어본 사람은 '마음'이란 것도 이해하게 된다. 마음밭에 자라는 욕망도 잡초같은 것이다. 하루만 지나도 욕망은 무성해진다. 그건 선도 악도 아닌 것이다. 죽은 땅은 풀이 나지않고 죽은 사람은 욕망도 없다. 욕망은 비우고 버려야 하는 것인가. 결론은 하나다. 부지런히 잡초 뽑아내고, 풀 베어내고 마음을 옥토로 가꾸면 되는 것이다. 누구의 마음밭도 잡초 없는 밭은 없다. 게으른 자는 방치할 뿐이다. 참된 수행자는 부지런히 잡초 뽑고 잡초 베어내는 농사꾼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한번은 철학도 셋이 등산을 하면서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우리가 왕년에 칸트 헤겔 노자 장자 다 배우고 사회 나와서 살아보니 어떻던가? 사는데 좀 보탬이 되던가?' 였다.  셋 다 환갑 훨씬 지난 나이였다. 한 친구는 중학교 영어선생 은퇴했고, 한 친구는 증권신문사 회장 출신이고, 한 친구가 필자였다. 대충 세상살이 다 해본 처지였다. 그때 우리가 내린 결론은 '별로'였다. 별로란 성과가 좋았다는 답이 아니다. 효험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애매했다는 이야기다. 작심하고 그렇게 힘들게 배운 동서양 철학은 물론, 유교 불교 신학 모두 참고 정도 밖에 아니었다는 결론이었다. 안다는 것과 그리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철학 종교 답안지 A학점 받고 우리는 실제 F 학점 인생을 산 것이다. 모든 답은 문자 밖에 있는 것이다.

 

 '철학은 그렇다치고 그럼 이제 우리가 뭘 해야겠는가?노후에 할 일은 뭔가?'

'욕심을 버리는 일이 젤 중요한 것 같던데.'

'맞아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사는가.무소유란 말은 좀 그렇다치자.이젠 주변 정리하고 필요없는 걸 깔끔히 좀 버려야 해.'

 이런 이야기 끝에 우리는 한번 각자 집안에 있는 것 중에서 버릴 것을 하나씩 말해 보기로 했다. 헌 신발,헌 책,헌 옷,몇개의 가구까지는 순조롭게 나왔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꽉 막혀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바탕 웃고 말았다.

 

 한참 웃다가 불쑥 중용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돈도 적당히 명예도 적당히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그 둘에 얶매여 살았다는 이야기 였다. 자선과 보시라는 말도 나왔다. 겸손과 친절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중용 자선 보시 겸손 친절이라는 말을 생각해본다. 마음밭에 이런 걸 심고 가꾸자고 생각 해본다. 그러나 채점은 보이지않는 손이 할 것이다. 또다시 F학점 나올 것을 미리 걱정한다. 또다시 한바탕 웃고 말 일인가. 인생이 이래서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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