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 천리길

아파트에서 생긴 일/2016년 1월

김현거사 2018. 4. 4. 17:14

아파트에서 생긴 일

 

  옛날 육십은 노인인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내 경험으론 흰 머리 덮힌 칠십도 마음은 청춘이다. 나는 지금도 한 잔 하면 '러브미텐더'와 '추억의 소야곡' 부른다. 

 매주 화요일은 우리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일 이다. 거기서 나는 이런 경험을 했다. 은퇴 후 남자들은 대개 설거지, 방 청소, 쓰레기 수거 같은 일을 한다. 돈 못 버는 처지에 그나마 가정에 봉사할 일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그 날 나는 아파트 공터 쓰레기 수거함에 갔다가 그를 만났다. 그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여인인 모양인데, 그가 이희영 선생이 아닌가?

 아름다운 여인은 늙어서도 아름답다. 살이 좀 찌고 눈가에 주름도 잡혔으나, 눈빛은 더 깊고, 피부는 더 곱다. 은발의 스카프는 더 세련되고, 작은 몸집은 더 귀엽다. 갑자기 가슴이 두방망이치기 시작했다. 비디오 필름이 오십 년 전으로 가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남해 상주 해수욕장에서 그를 만났다. 내 친구 중에 진주서 기타학원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사범학교 교습 나온 여선생들과 같이 남해로 놀러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방학 중에 그 참 반가운 소리였다. 젊은 때사 아침에 하늘에 뜨가는 흰구름만 봐도 맘 설레던 때다.

 이쪽저쪽 연락해서 우리는 기타학원 친구와 사관생도 하나, 고대생 둘, 다섯이 나갔다. 그 쪽도 다섯이 나왔다. 우리는 전부 학생이고, 그들은 전부 선생이다. 겨우 총각 티 벗을까말까 할 때라, 여선생과의 데이트라 맘 설레었다. 

 버스 터미날에 그들이 나왔을 때, 처음엔 좀 실망했다. 젊은 때는 학벌이나 재산 보다 얼굴 먼저 보지 않던가? 얼굴도 옷차림도 평범했다. 어떤 아가씨는 평범 이하 이기도 했다. 그땐 요즘처럼 교직 연금이 위세 떨던 때가 아니다. 그들과 비교할 때, 대학생인 우리 저울 추가 좀 무겁다 싶었다.  

 좌우지간 이렇게 노량에 가서 배 타고 남해로 건너갔는데, 바다는 소금냄새 풍기고 있었다. 갯바람은 싱그럽게 뱃전을 때렸다. 그때 한 아가씨가 눈을 끌었다. 그는 미모도 아니고 날씬한 몸매도 아니었다. 통실통실 어딘가 귀엽고,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눈빛이 지적 이었다. 말을 걸자 상냥하게 대꾸했다.

 청춘이란 다 그런 것. 말이 오가자 금방 친해졌다. 번개불에 콩 굽는 식 이다. 배가 남해 닿기 전에 이희영과 나는 이미 통하고 있었다.

 상주 해수욕장은 뒤에 금산이 높이 솟아있고, 송림 울창한 백사장 옆으로 좌청룡 우백호 섬이 바다를 둘러싸고 있다. 물은 호수처럼 잔잔한데, 앞에 작은 섬이 아담하게 놓여있다.

 우리는 거기서 탁구도 치고, 백사장에서 조개도 잡았다. 저녁 먹고나선 한 사람씩 짝 지어 헤어졌다.

 날 어둡자, 바다 위엔 달이 떴다. 희영이와 나는 파도 밀려오는 모래톱에 나란히 앉았다. 은파란 게 있다. 푸른 파도는 하얀 은파를 끝없이 우리 앞으로 밀어왔다. 물 밀듯 밀려오는 건 파도만 아니었다. 가슴 속 어떤 감정도 파도같이 밀려왔다.

 나는 닐세다카의 'You Mean Everything To Me'란 노랠 불렀다.

You are the answer to my lonely prayer.(당신은 내 외로운 기도에 대한 대답입니다)
You are an angel from above. ( 당신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입니다.)
I was so lonely till you came to me With the wonder of your love. (
당신이 놀라운 사랑으로 제게 오기 전까지는 나는 무척 외로웠습니다.)

 희영이는 김하정의 '호반에서 만난 사람'을 불렀다. 희영이의 노래는 어떤 편이던가. 부드러운 바이브렛이 꼭 김하정 같았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고운 감정이 실려있었다. 파도 때문이던가? 은파 때문이던가? 나는 희영이 노래에 반해버렸다.

 나는 첫사랑 이야기를 꺼냈다. 마음에 상처 입고 군에 입대한 것, 한동안 섬을 방황한 이야기를 했다. 욕지도서 만난 '풀이섬' 아가씨도 이야기 했다. 세 가구 사는 작은 섬 빈 배에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던 은파, 울창한 동백숲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 이야기를 했다. 이런 청춘 고백은 사실 작심해야 나온다.

 희영이도 자기 집 이야길 했다. 집이 거제도라는 것, 승마를 즐기던 아버지, 꼼장어를 즐기던 어머니 이야길 했다. 무화과 열린 낮은 울타리 너머 지심도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했다.

 둘은 완전히 코드가 일치했다. 나는 그에게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읽어봤느냐고 물었다. 그는 읽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 책 여주인공 같았다. '아샤'처럼 예민하고 정열적이었다. 

  한 여성과 백사장에서 단둘이 밤을 보낸 것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이다. 이튿날 희영이는 보트 옆에서 사진을 찍을 때 내 신발을 신고 찍었다.

 방학 끝나 서울 올라올 때다. 당시 기차는 서울까지 12 시간 걸렸는데, 그 12 시간 내내 눈 앞에 희영이 얼굴만 보였다. 귀에는 사근사근한 희영이 목소리만 울렸다. 나는 학교 도서관에 앉아 멍하니 창 밖만 보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편지를 썼다. 그러면 즉시 답장이 왔다. 나는 학교 우체함 근처를 하루에도 몇 번 서성거렸다. 강의실, 도서관, 집, 어디서던 그를 생각했다. 정신을 천리 밖에 놓고 있었다. 

 우리는 결혼 적령기였다. 나는 제대한 복학생이다. 추석에 내려가 희영이를 만났다. 둘은 나락이 익어가는 신안동 강변을 거닐었다. 버들잎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희영이는 결혼 허락 받으려다가 실패한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군의관인 이웃 청년을 점 찍고 있었다. 꼭 그렇게 고집하면 모녀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한다.

'우리가 우연히 만나고 헤어질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둘 중 하나를 소중히 선택하기 바랍니다.'

 나는 희영이에게 이리 말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답장을 기다리다가 어느 날 소포를 받았다. 그 속에 그동안 내가 보낸 편지를 묶은 편지 뭉치와 간단한 메모 한 장이 달랑 들어있었다.

'낮선 도시 아스팔트 위에 외로히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습니다. 현이 보낸 편지 모두 동봉 합니다. 희영이와의 만남은 남해의 추억으로 접어주세요. 안녕!'

 세월이란 무심한 것이다. 결국 나는 같은 과 여학생과 결혼해서 반 백년 살면서, 총각 때 추억은 책상 위 먼지처럼 말끔히 쓸어버렸다.

 그런 희영이를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서 만난 것이다. 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늙어서 연인이 있다는 건 축복이라는 말이 요즘 인터넷에 돈다. 불륜이라는 단어도 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이니 이건 너무 편하질 않은가?  엘레베타 보턴만 눌르면 서로 오갈 수 있다. 운명적으로 누가 이렇게 만나게 배려한 것일까? 감사에 앞서 먼저 확인이 필요했다.

 나는 그 여인에게 물었다.

'혹시 고향이 거제도 입니까?'

 도시 사람들은 대개 타인에 대해 냉담하다. 그런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미소 뛴 얼굴로 돌아본다. 남편이 의사였고 본인도 오래 교편 잡았을 것이다. 그래 여유있는 얼굴일 것이다. 아니지, 자식 다 키워 보내고 지금은 홀로 살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어쨌던 희영이가 틀림없다. 아! 희영이 일까?

 그러나 떨리는 기대는 말 한마디로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저는 고향이 서울입니다.'

 나는 은발 스카프가 사라진 우리 아파트 현관만 오래 동안 응시하였다. 어디서 50 년 전 희영이 노래가 가날피 들려왔다. 

 

파란 물이 잔잔한 호숫가의 어느날
사랑이 싹트면서 꿈이 시작되던 날
처음 만난 그 순간 불타오른 사랑은
슬픔과 괴로움을 나에게 안겨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