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사와 오간 편지

동방문학 '바다 모래' 수필 공모

김현거사 2018. 1. 22. 08:58

 

 

  바다와 노인  


  지금부터 50 년 전 이야기다. 당시 남해 미조리는 등대 하나와 돌담 둘러친 집 몇채 있던 그런 한적한 어촌이었다. 지금처럼 다방과 여관이 있고, 넓직한 수협 공판장 앞 바다에 도미나 갈치 같은 활어, 전복 소라 실은 배들이 뜨있고, 관광객 태운 버스가 북새통을 이루는 그런 번잡한 곳이 아니다.

 그 당시 나는 친구가 자살하자 다니던 대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 부산 항만사령부 자동차 운전대대 운전병이 되어서는, 거기를 무슨 사하라 주둔 프랑스 외인부대처럼 생각하고, 카믜의 소설 주인공처럼 허무주의 냄새를 풍기다가 끝내 사고를 치지못하고 제대하자, 글 쓴다고 성경 한 권과 원고지를 챙겨들고 남해의 맨 끝 동네인 미조리로 갔던 것이다.

 

 거기서 한 노인을 만났다. 그는 낡아빠진 뗀마로 섬 주변 수심 얕은 곳을 다니며 갯바닥을 그물로 쓸면서 뭔가 잡고있었다. 할 일 없이 바닷가를 쏘다니던 나는 그가 무엇을 잡았나 궁금해서 곁에 가보았는데, 노인은 끝에 납 뭉치가 달린 그물코를 하나씩 옆으로 제치고 있었다. 그러자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거기서 생각보다 쏠쏠히 무엇이 많이 나온다. 펄떡펄떡 뛰는 숭어도 나오고, 돌문어와 게도 나온다.

 '뭐가 많이 잡혀요?'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그래 말을 걸면서 담배를 권하자, 노인은 필터 달린 '파고다' 담배는 아까운 모양이다. 윗 호주머니에 챙겨넣고 풍년초 잎담배를 신문지 조각에 말아 입에 문다. 그리고 물었다.

'어디서 오셨수?'

내가 고향이 진주라고 하자,

'진주 문산은 넘어지면 코 닿을 데지.'

 자기 고향은 문산이라며, 진주 문산 삼십리 길을 이리 표현했다. 볕에 그을은 노인의 손등은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았다. 주름진 얼굴과 목덜미에 하얀 백발이 빤짝였다. 타관 바닥을 혼자 떠돈 외로운 몰꼴이었다. 

 그날 나는 겨우 하늘을 가린 노인의 허름한 집에 따라갔다. 그리고 거기서 뜻밖에도 이 세상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멋진 해변 파티에 참석했다. 그는 바다에서 금방 건진 싱싱한 생물은 간혹 이웃이 원하면 팔기도 하지만, 대개 집에서 요리해 먹는다고 했다.

 먼저 해삼과 뿔소라부터 시작했다. 총총 썰어 입가심 하라고 권한 해삼은 딱딱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단했고, 함께 내놓은 달콤한 초장은 별미였다. 연탄불에 구운 소라는 쫄깃한 맛도 맛이지만, 귀한 것이 껍질 안에 고인 파란 국물이다. '그 파란 국물이 간에 좋아요,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이걸 마시면 숙취(宿醉)가 없어지는 보약이요' 자신은 맨날 먹는 것이라며 노인은 한 입도 먹지 않고 내게만 권했다. 노인은 대학생이 친구가 된 게 자랑스런 눈치였다.  다음 돌문어 요리에 들어갔다. 펄펄 끓는 물에 잠간 데치더니, 그 뜨거운 걸 손에 입김 호호 불어가며 도마 위에 놓고 뜸성듬성 칼질한다. '한번 먹어보시오!' 권하는데, 내사 세상에 그렇게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겁고 맛 있는 문어 요리가 있는 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다.   

 

 이렇게 되어 그 후 나는 허구한 날 노인과 어울렸다. 그 때마다 노인은 색다른 진미를 선보였고, 나는 막걸리를 사곤 했다. 장어는 기름지면서 느끼하지 않아 얼마던지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예리한 칼로 뼈만 남기고 능숙하게 살을 뜬 후, 물엿과 생강즙 섞어 만든 자신의 비법 양념장을 발라 굽는데, 지글지글 장어 구워지는 소리부터 좋았다. 게는 그냥 냄비에 쪘는데  익으면 껍질이 빨개진다. 노인은 등딱지 안에 붙은 누렇고 흰 장(醬)을 권했다. 그건 일찌기 임어당이 이리 표현한 물건이다. '게는 원래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수서생물로 수륙(水陸)의 진미(珍味)를 한몸에 지닌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황고백방(黃膏白肪)이라 한다.' 

 노인은 바다에서 나온 재료라면 그것이 무엇이던 맛있게 만드는 요리의 달인이었다. 그를 도심의 하얀 모자를 쓰고 일하는 일식집 주방장과 비교할 수 없다. 노인은 장어라면 장어, 문어라면 문어, 게, 톳나물 등의 특유한 천연 미각을 완벽히 낼 줄 알았다. 그가 만든 요리에선 바다 냄새가 나고, 갯뻘 냄새가 나고, 감칠맛이 살아있었다. 시커멓고 쭈국쭈굴한 노인의 손은 바닷가에서 수십년 살아온 고목의 가지였다. 나무가 그런 것처럼 노인의 손도 바다의 일부였다. 그의 솜씨는 배워서 내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의 숨겨진 오묘한 맛을 간직한 자연 그 자신의 일부였다. 

 그 당시 해변 파티에 초대되던 나는 이런 노인의 요리를 혼자 맛보았다. 아마 세상 어느 호사가도 그때 나처럼 호강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인은 바다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었다. 몇 월 무슨 고기가 알배기고 기름지고 맛 있는지 소상히 알았다. 장어와 게는 어떻게 잡는지, 조개와 고동은 어디에 많은지, 포인트와 물 때를 자기 손바닥 보듯 훤히 알았다. 나는 노인을 따라다니며 그런 걸 배웠다.

 장어는 이렇게 잡는다. 해그름 등대 밑 석축이 포인트다. 먼저 거기 석축에 붙은 석화를 돌로 지찢어 꺼낸다. 그걸 바늘에 끼어 몽당 낚싯대 봉돌 무게 감지하며 바다밑 진흙 바닥에 놓았다 당겼다 하면 툭하고 손에 어신이 온다. 이것이 장어다. 장어는 당기면 몸통으로 물 속을 휘젓고 버티는 힘이 강해서 손맛 여간 짜릿한게 아니다. 간혹 바위 틈에 들어가 버티면 낚시줄이 툭! 끊어진다. 장어는 바늘을 뺄 때도 다른 물고기와 다르다. 몸의 미끌미끌한 점액질 때문에 손에서 미끄러지기 일수다. 호박잎을 서너장 깔고 바늘을 빼야 한다.

 게는 이렇게 잡는다. 게걸음이란 말이 있지만, 낫 들고 갯가에 나가면 게가 느릴 것 같아도 좌우 옆으로 갈지자로 내뺄 때 번개 같다. 가만히 닥아가 불시에 등짝을 찍어 잡아야 한다. 손으로 잡으면 집게에 물린다. 문어는 조개를 잡아먹고 산다. 사람 머리통 같은 대가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뻘밭을 돌아다니다가 인기척을 느끼면 재빨리 굴에 숨는다. 이때 굴에 든 놈을 맨손으로 꺼내려 하면 않된다. 굴 안에서 손을 잡고는 흡판으로 버티는 힘이 여간 센 게 아니다. 잘못하면 낭패 당한다. 기다리면 머릴 내밀고 밖에 나온다. 두리번두리번 사주경계를 하는데, 이때 낫으로 머리를 획 낚아채면 쉽다.

 노인은 소라나 전복이 어디 있는지 위치를 잘 안다. 소라 전복은 해초를 뜯어먹고 사는데, 송정 바닷가 바위돌 밑에 많다. 조개는 모래밭에 산다. 등대 우측에 해풍에 잘 자란 풀밭이 있고, 호수 같은 만(灣)이 있다. 거기 파도 밀려오는 모래밭에 조개가 산다. 가리비고동은 집단 서식하여 한번 찾았다하면 몇 가마씩 나온다. 송남 모래밭에 많다. 파도 잔잔한 날 가슴 팍에 차오르는 물에 들어가 발바닥으로 더듬어 찾는다.

 노인은 이 모든 걸 잘 알지만 한번도 필요 이상 잡은 적 없다. 그 날 필요한 것만 가져왔다. 노인에게 바다는 거대한 창고, 거대한 냉장고 같았다.

 

 교인들은 주일이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기도문을 왼다. 식탁에 앉아 이 구절을 외고 손으로 가슴에 성호를 긋고 식사를 한다. 그러나 노인은 그런 건 할 줄 몰랐다. 내가 보기엔 노인은 바다에 의지하고 감사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깊은 것 같았다. 노인에게 바다는 절대적 신앙의 대상 같았다. 노인은 단순하고 겸허했다. 그런 노인의 모습에서 나는 신(神)에 가장 근접된 성스러운 모습을 발견했다.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을 읽은 적 있다. 거기 불굴의 의지를 가진 바다의 노인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1966년 남해 미조리에서 또다른 어떤 노인의 성스러운 모습을 만났다.

 

김창현 수필가

 

약력 ;진주고. 고려대 졸. 불교신문. 내외경제신문 기자.

아남그룹 회장실 비서실장. 동우대 겸임교수.

<문학시대> 수필로 등단. 청다문학회 회장. 남강문학회 부회장.

 

주소 ;용인시 수지구 수지로 113번길 15 .엘지A 207동 302호

 전화; 010-2323-3523

계좌번호; 하나은행 441-910250-29407 김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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