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풍경과 글

통도사 극락암

김현거사 2017. 1. 13. 11:58

 

 1박 2일 통도사 템풀 스테이

올해 극락암 단풍은 어떻게 물들었을까.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11시 30분 심야버스 타고 부산 노포동에 내리니 새벽 4시다. 터미날 옆에 해장국집 쯤은 있겠거니 했는데 없다. 인적 없는 거리 새벽 가로등만 싫컷 돌아보고, 터미날 건물로 돌아와 24시간 편의점에서 컵라면 국물로 해장한 후 6시 통도사행 버스 탔다. 신평이란 사하촌(寺下村)에서 택시 타고 극락암 올라가니 용틀임한 아름들이 소나무 숲 인상 깊고 안개 신비롭다. 

극락암은 왜 극락암인가. 苦를 여의고 樂을 얻는다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이 중생의 염원이다. 물소리 고요하고 바람소리 맑은 곳이 극락암이다. 여기 오면 극락에 든다고 작명하여 중생에게 느긋이 극락을 설명한 곳이 극락암이다. 나는 이곳이 청와대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청와대는 화택지옥(火宅地獄) 소굴(巢窟) 일뿐이다.  극락암에 가면 우선 뒤로 세 겹 병풍을 봐야 한다. 첫째 대나무 숲, 둘째 솔숲, 셋째 독수리가 날개를 편 형용을 한 영취산 연봉을 봐야 한다. 이런 청풍, 녹수 세 겹 병풍 두른 운치 청와대엔 없다. 일찍이 서산대사께서 금강산 향로봉에서, 萬國都城如蟻垤(만국의 도성은 개미집 같고) 千家豪傑若醯鷄(천하의 호걸들은 초파리떼 같다) 一窓明月淸虛枕(창가의 맑고 그윽한 달빛 베고 누우니) 無限松風韻不齊(끝 없는 솔바람 소리 운치가 고르지 않다) 하셨다. 대사가 지금 계시면 청와대는 개미집, 대통령은 초파리라 했을 것이다.

나는 거기서 샘물 한 바가지 퍼 마시고 아침 햇볕 막 비치기 시작하는 솔밭 위 달을 바라보았다. 빛바랜 아침 달 보면서 나도 저 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찍이 불교신문 기자가 된 건 잘한 일이다. 기자 계속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불교방송 사장 되었을까. 아니면 동국대 교수 되었을까, 머리 깍고 진주 호국사 주지 되었을까.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스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인생 일장 춘몽이다. 빛 바랜 아침 달 보면서 굳이 티끌세상으로 나와서 기업체 임원, 겸임교수, 수필가 정도로 끝난, 이룬 것 없는 세월이 후회스럽다.  

그다음 경봉선사 기거하셨던 삼소굴 찾아갔다. 거기는 왜 삼소굴인가. 송(宋) 나라 진성유(陳聖兪)가 쓴 여산기(廬山記)에 동진(東晉)의 고승 혜원 법사(慧遠法師)는 여산(廬山)에 살면서 속세와 금을 그을 생각으로 누가 찾아와도 호계(虎溪)의 다리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 정토종의 개조(開祖)인 혜원 법사는 儒家를 대표하는 도연명(陶淵明)과 道家를 대표하는 육수정(陸修靜)이 찾아오자, 두 사람을 배웅하면서 이야기에 도취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호계의 다리 밖으로 나갔다. 그래 세 사람이 다리 밖에서 한번 호쾌하게 웃었고, 이 이야기는 훗날 호계 삼소도(虎溪三笑圖)란 제목으로 여러 화가들이 그렸다.

이날 나와 동행한 한 사람은 판소리의 여왕 안숙선 씨 남편이고, 한 사람은 한 때 국방차관보로 대한민국 장군 인사를 책임졌던 사람이다. 삼소굴(三笑窟)에 경봉스님이 계셨다면 호계삼소(虎溪三笑) 고사는 아니지만, 전직 불교신문 기자도 왔겠다 차 한잔 대접하셨을 것이다. 두 사람이 극락암 풍경이 맘에 드는지 연신 카메라 셔터 눌리는 걸 보면서 나는 전에 그렇게 크고 아름다워서 날 감탄시키던 스님 처소 앞 천리향 나무가 어떤 연유인지 보이지 않아 맘 허전했다. 대신 영취산 봉우리가 비친다는 극락 연지, 그 연지 위에 세운 아취형 돌다리, 가을이 절정인 늙은 감나무 고목에 맺힌 붉은 홍시가 아름다워 맘 달래준다.

오후 1시에 사무실에 가서 절에서 주는 옷 갈아입고 문화해설사 설명 들으며 경내 돌았는데, 마침 부처님이 우릴 배려해주셨다. 울산서 온 보살 한 사람을 우리 팀에 넣어준다. 세존께서는 눈치 빠른 우리 행동 보면서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우리는 경내 투어 끝나자 대번에 보살님을 찻집에 모셔가서 이야기 나누었다. 원래 속가 보살들은 절에 오면 눈빛이 기도 모드로 바뀌어 아름답다. 그래 인상이 미국 여자처럼 생겼다느니, 쌍꺼풀진 눈웃음이 이쁘다느니 칭찬을 퍼붓자, 그 보살 귀엽다. 자기는 원래 다리가 긴 편이고 그림 그린다는 둥 전혀 내숭 떨지 않는다. 솔직해서 더 귀엽다.  

저녂예불은 6시에 시작되었다. 33번 범종 소리와 법고로 시작된다. 부처님이 보내주신 선녀와 같이 목탁소리 들으며 절하는 재미는 경험을 절에 가본 사람만 알 것이다. 至心歸命禮 三界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삼계의 중생들을 인도하여 가르치는 스승이며, 온갖 생명들의 자비이신 부모이시며, 우리들의 참다운 근본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옵니다). 그  후에 문수사리 보살, 보현 보살, 관세음 보살, 지장 보살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칠정례(七頂禮) 올린 후, 반야심경 외우며 맘을 비우니, 제행은 무상(諸行無常)이고, 제법은 무아(諸法無我)이다. 이후 울산 보살은 우리와 행동을 통일했다. 예불과 공양 끝나고, '밤엔 공기가 차가우니옷 따뜻하게 입고 냇가로 나오세요'라고 하자, 울산 보살은 커피 넉 잔 들고 나온다. 제법무아(諸法無我)라 절에선 나라는 실체가 없다. 네 사람이 벤치에 다정히 앉아 최박사 대금 선율을 감상하니, 그 소리는 청산에 학이 날아가듯 별이 총총한 밤하늘로 사라진다.

이튿날 새벽 4시 기상하여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범종소리 듣지 못하여 아침 예불은 놓치고 대신 산책을 했다. 향냄새 그윽한 법당에서의 예불도 좋지만, 솔향기 가득한 산책도 해볼 만한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도 법문이다. 귀 밝은 사람은 거기서 법문 듣는다. 그런데 그날 아침 공양을 끝내자, '숲길을 산책하면 어떨까요?' 보살이 우릴 만나자 이런 예쁜 제안 한다. 삼국유사 보면, '김현 감호 조(金現感虎條)에 김현이라는 총각과 어떤 처녀가 서라벌 흥륜사(興輪寺)에서 탑돌이 하다가 눈이 맞아 숲에서 사랑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필명을 김현 거사로 쓴다. 혹시 울산 보살이 1천4백 년 전 탑돌이 하다가 만난 그 처녀가 아닐까 싶어 숲길 산책하다가 시험 삼아 들국화 몇 송이 꺾어 귀에 걸어주었는데, 신통하게도 가만히 있다.

긴가민가 싶어 질문도 해보았다. '혹시 연세가 70 쯤 되십니까?' 그러자 쉽게 미끼 물어준다. '아니에요 60 초반입니다'. 우리는 울산 보살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 생로병사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가련한 것은 안다. 이렇게 잠시 흰구름이 청산에 스치듯 템풀 스테이 도반 인연 맺었다. 아름다운 인연 아닌가. 그분은  하루 더 있어야 한다고 해서 우리는 아침 10시 산문 앞에서 합창하고 헤어졌다.

 

 

'절 풍경과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령 수도사  (0) 2018.10.25
왕유/사슴울타리  (0) 2012.02.13
다시 듣고싶은 법문  (0) 2012.01.26
경봉스님/반야심경 해설  (0) 2012.01.22
의상대사 법성게  (0) 201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