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망우리 산보기

우리를 부럽게 하는 것들

김현거사 2016. 10. 17. 08:09

우리를 부럽게 하는 것들

 

 구슬치기 잘하는 아이는 우리를 부럽게 한다. 주머니 통통하도록 '다마' 넣고다니는 아이는 우리를 부럽게 한다. 우리가 세상에 와서 처음 만난 것은 어머니 젖꼭지고, 그 다음 만난 것이 동네 개구쟁이다. 자치기 잘 하는 친구는 우리를 부럽게 한다. 딱지 많은 친구는 우리를 부럽게 한다. 싸움질 하여 상대편 코피 나게 한 친구는 우리를 부럽게 한다.

 사춘기 되어 이성에 눈을 뜬 뒤 먼저 여학생 사귄 친구는 우리를 부럽게 한다. 우리 동네에 하 모, 추 모란 아이가 있었다. 그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얼굴 반반한 여학생을 싹쓸이 하였다.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얼굴 붉히고 말 못하던 나는 이 기생 오래비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고3이 되어 대학 입시가 코 앞에 오면, 공부 잘 하는 친구는 우리를 부럽게 한다. 이 때 구슬치기, 쌈질, 연애질 잘 한 것은 오히려 문제가 된다. 쌈질 잘 한 놈은 불량패, 연애질 잘 한 놈은 요주의 인물이 된다. 

 

 명문대 들어간 친구는 우리를 부럽게 한다. 방학이 되어 그가 고향 다방에 명문대 뺒지라도 달고 나타나면 우리는 기 죽는다. 대기업 들어간 친구는 우리를 부럽게 한다. 월급 높다는 소문이 우릴 부럽게 하고, 그가 장가갈 때 찾아간 예식장에서 화려한 출발 하는 걸 보면 우리는 부럽다.

 

 스므 살에서 설흔 사이 우리 청춘은 이렇게 흘러간다. '대학'과 '직장'이 인간의 평가 기준이었다. 그러나 낮이 기울면 밤이 온다. 주역이 옳다. 세상사 모든 것은 변하고 인생도 변한다.

 

 세월이 더 가면, 사업가 친구는 우리를 부럽게 한다. 그들의 학창 성적은 중간이요, 직장 캐리어는 시원찮다. 그러나 팽개치고 나와서 그들이 하나 둘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50 넘으면 그들이 에쿠스 차를 몰고 나타나고, 거액의 기부금 내고 동창회 회장 자리 차지한다. 강남 요지의 넓은 아파트 산다는 소문으로 우릴 기죽이게 한다. 음지가 양지 된 것이다.

 

 학교 우등생 사회 열등생이란 말 있다. 명문대 출신은 이때부터 뒤로 밀린다. 중역은 되었지만 월급쟁이요, 그나마 직장생활 30년 쯤에 은퇴한다. 이때 문제가 불거진다. 그들은 호탕한 기질도 뱃장도 없다. 세상 눈치 빠른 것도, 대인관계 능숙한 것도 아니다. 선생님 보기에 그냥 착한 학생이었을 뿐이다. 선비 기질로 도둑질도 못했다. 도둑질 못했으니 아파트 달랑 한 채 뿐이다. 퇴직금 몇 푼 챙긴채 사회 나온 주제에 자존심만 높은 그것이 문제다.

 

 이 때 쯤 새 친구가 등장한다. 그들 출현은 우리를 부럽게 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 공부 대신 다른 쪽에서 성공한 친구들이다. 그들은 화가로, 음악가로, 체육인으로, 시인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유명세로 우리를 부럽게 한다. 학창시절 별로 알려지지도 않던 그들이 유명인 된 것이다.

 교직에 있던 친구도 우리를 부럽게 한다. 탄탄한 연금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초년에는 대기업 중역 친구 앞에 설설 기던 그들이 노후엔 빛을 본다.

 자식 사위 잘 둔 친구도 우리를 부럽게 한다. 의사, 판사, 교수 된 자식들이 노후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인생 참 공평하다. 쥐구멍에 볕 든 것이다.

 

 이제 70 쯤 되어 깨달아 보니, 인생은 돌고도는 수레바퀴 였다. 티벹의 마니보륜(輪藏臺) 같은 것 이다. 영원한 윤회이지 승자도 패자도 없다.

 구슬치기, 쌈질, 연애질, 공부, 직장, 사업, 자식, 모두가 돌고도는 수레바퀴 였다. 그 모든 부러운 대상은 우리가 철 없이 가지고 놀던 작난감에 불과했다. 

 

 우리가 기 쓰고 아득바득 달라들던 돈도 그렇다. 우리는 가난에 한이 맺혀 죽자사자 달라붙어, 돈을 모았으나 그건 위험한 물건이다. 돈 있고 인색하면 욕 먹기 쉽다. 돈 있다고 잘난체 하면, '운 좋아 돈 좀 모았지, 제가 어디 잘 나서 모았나?'하고  비난 받는다.

 거기다가 성경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쓰여있다.

   

 천도(天道)는 공평하여 치우침이 없다. 구름이 지나가면 해가 나고, 비 온 후엔 날이 갠다. 우리를 부럽게 하던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 무의미한 것이다. 헛개비 였다.

 

  그래 나는 과거 나를 부럽게 하던 것들을 오래 오래 생각해보았다.

 모든 것이 때가 있었고, 시효가 있었다. 돈도 명예도 우리가 어릴 때 한없이 부러워 한 딱지나 구슬 같은 것이었다. 갖고 논 장난감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해가 지면 장난감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어른이 아이보다 못해서 될 것인가. 작난감 버려야 한다. 

 이제 저승 갈 일만 남아, 허리 구부러지고 눈도 가물가물하다. 귀도 잘 안들린다. 시들은 몸은 낙엽처럼 밟힌다. 고장난 시계처럼 섰다가다 되풀이 하다 마지막엔 촛불처럼 꺼질 것이다. 

 

 백 년도 못 갈 인생, 이제 우리가 소중히 간직할 것은  무엇일까? 

 건강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겸손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재주 있되 겸손하고, 돈 있되 겸손하고, 건강하되 겸손해야 한다. '겸손' 두 글자는 붙이고 살아야 한다.

 노자(老子)께서 말씀하셨다. '살얼음 위를 걸어가듯 조심조심 살펴야 한다'고. 

 겸손하고 겸손하고 조심하고 조심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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