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망우리 산보기

홈컴잉데이

김현거사 2016. 10. 16. 22:50

홈컴잉데이

 

  꿈이란 것이 참 희한하다. 내가 학교 졸업한지 거의 50년 된다. 그런데, 어제 밤 꿈에 졸업후 30년만에 모인 홈컴잉데이 장소를 내가 헤매고 있었다.

 나는 보고싶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나에게 고시공부 하자고 은근히 권유하던 국문과 현구. 그는 나중에 일본서 박사를 받고 모교 교수가 되었다. 철학과 병화. 그는 나중에 국립관리공단 설악산 소장이 되어 속초서 나에게 산에서 채취한 산목련 뿌리를 선물한 적 있다. 사학과 애자. 그는 나와 같이 중국어를 배웠다. 재일교포로 성격이 사근사근하여 시험 날 아침이면 내 옆에 붙어앉아 중요한 예상문제를 묻곤 했다. 졸업 때 사귀던 남학생에게 배신 당하여 밤에 흐느끼며 나를 찾아온 적 있다. 불문과 숙이. 그는 연극을 하던 여학생으로 노모 정권 때 잠시 장관을 했다. 사학과 애경이. 그는 부천서 통학을 했고, 중국어를 같이 배웠는데, 나중에 교수가 되었다. 심리학과 예환이. 그는 졸업 후 나와 불교신문 기자를 같이 했다. 심리학과 윤숙이. 그는 목사 따님으로 예환이 소개로 결혼 전 몇번 나와 데이트 한 적 있다.

 그러나 한 과 4년 같이 다닌 아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나는 찾지도 않았다. 아마 결혼해서 근 40년 같이 한 집에 살다보니, 지긋지긋해서 꿈에 볼까 무서웠던지도 모르겠다. 국영철사. 국문과, 영문과, 철학과, 사학과 학생들은 같은 교양과목을 들었다. 국어 한문 영어 철학개론 심리학 같은 과목이다. 누가 공부를 잘 했던지도 기억나고, 어떤 여학생이 예뻤던지도 기억난다.

 어떤 친구는 당시 고집불통이었다. 성질 고약하고 까다로웠다. 그러나 나중에 유명한 석학이 되어 신문에 이름이 자주 나왔다. 그는 공부가 인생의 모든 것인 줄 착각한 모양이었다. 지식이란 살아가는 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안하무인의 고약한 성질이 표면화 되었다. 누구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도시락도 항시 빈약했다. 그러나 전공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 나중에 교수가 되었다. 마치 민들레 씨앗 같았다. 바람에 하염없이 날라가 어느 날 씨멘트 바닥에 황홀한 꽃을 피웠다. 한 친구는 국내굴지 재벌회사 사장이 되었다. 그는 처음 친구들한테 많은 선심을 쓰더니, 나중에는 엉뚱하게 나갔다. 잘난척 하기 시작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잊어버렸다. 돈이 모든 것인 줄 착각했다. 돈이 생기자,  모든 면에서 자기가 유능한 줄 알고 거들먹 거렸다.

 여학생도 많이 변했다. 가정 부유하고 인물 곱던 사람이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얼굴 못생겨서 남학생에게 제외되던 사람이, 출세 후 성형 했는지, 얼굴도 그럴듯 하고, 언어도 빈틈없었다. 이런 걸 쌍전벽해라 하는 모양이다. 이런 걸 인생이라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꿈에서 끝내 그 여학생은 찾지 못했다. 국문과 여학생이다. 얼굴 곱고 얌전하던 그는 종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정작 보고싶은 얼굴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안타까웠다. 그를 찾아 헤매다가 잠을 깨고 말았다. '꿈인데 좀 나타나지',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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