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전자책·내가 만난 대통령

내가 만난 노조위원장

김현거사 2016. 9. 9. 07:09

 

 

 내가 만난 노조위원장

 

 노조의 의미는 무엇인가? 노조는 있어야 하는가? 없어야 하는가? 울산의 귀족화된 생산직 노조원 연봉은 1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의 대학교수 보수보다 많다. 그러면서 그들은 무리한 파업을 하고, 노동 조건이 더 열악한 자기들 협력업체의 고충은 외면하고 있다. 사실 정말 근로조건이 인간 이하 대접 받는 곳은 그런 중소업체들이다.

 얼마 전 조계사에 피신했던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는  전교조와 53개 단체를 이끌고, '이석기 석방하라, 국정원 해체하라, 박근혜 정권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 쳐들어가자’면서 세종대로에서 경찰 버스를 밧줄로 끌어당겨 무너뜨린 후, 각목과 쇠파이프 휘둘러 경찰관 113명을 다치게 하고, 경찰 버스 50여대 파손을 주도했다.

 

 이를 계기로 옛날 일을 되돌아 본다.

 40년 전에도 노조가 있었다. 1970 년대는 전국섬유노조, 마산수출자유지역, 80년은 구로공단 남화전자, 81년은 청계피복노조가 유명하다. 그 뒤 반도상사, 콘트롤데이타, 해태제과, 동국제강, 삼화방직, 대한모방, 서통, 대성모방, 대동화학, 영창악기, 경동산업, 일신제강, 태양제강, 원진레이온, 부산파이프, 원풍모방, 동일방직, 서통, 영창악기, 인천제철, 대우중공업, 대우조선, 대우자동차, 부산파이프, 울산의 현대 노조가 유명했다. 

 

 내가 있던 회사도 노조가 있었다. 그들도 쇠파이프와 각목 유행했고,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아침 이슬' 합창했고, 현장 점거로 생산을 지연시켜 경영진의 애를 태웠다. 그 때도 노조가 벌리는 굿판에 외부 불순 세력이 꽹가리패를 데리고 찾아와 이념교육을 시키곤 했다.

 

 노조가 날 잡아 파업 선언하면 우선 사장 눈빛이 달라진다. 평소는 재벌 아들에다 박사니 세상 부러울 것 무엇이 있겠는가. 잘난체 하던 오만한 그 눈에 어두운 그늘이 덮히고, 평소 하인처럼 대하던 사원 대하는 태도가 금방 공손함으로 바뀐다. 

 중역회의에 참석하는 중역들은 비 맞은 닭처럼 꼴이 말이 아니다. 전에 가졌던 권위를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전전긍긍 날개 접고 모여든다. 당시 인사부 책임자는 키 크고 허리 구부정한 황상무고, 부장은 명문대 출신 키다리 김 모다. 그들이 갑자기 봉평 장똘뱅이 허생원이 된다. 노조 대책회의 장소의 주인이 되고 중역들은 모두들 그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인사부는 중역이고 부장이고 노조위원장 이야기만 나오면 머리를 흔들고 진저리를 치면서 욕부터 해대기 시작한다.

 '노조위원장 박 모는 뺄갱이같은 놈이다. 누구도 다룰 수 없는 인물이다. 모택동 전법으로 밀어부치면 물러서고, 돌아서면 치고들어온다. 외모는 가날프고 유순해 보이지만, 부드러운 고무줄 같다. 어떤 회유도 설득도 않되고, 인간적 호소도 소용없다. 이게 박의 무서운 점이다. 강성노조원은 직속상관이 있지만, 통하지 않는 괴물들이고, 이 세상 누구도 회유하거나 다룰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인물들 이다.'

 이게 노조위원장에 대한 그들 인사부 보고의 전부다. 사실 이런 부풀린 인신공격은 인사부 책임 회피용 면피성 발언이다. 수 천 명 생산직을 거느린 현장 중역들도 대개 그들 의견에 동조하는데, 그것은 그들도 노조를 회유할 간접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회의는 매번 자정 넘기고 결론이 없었다.

 

 회장은 출근시 회사 정문 앞에 펄럭거리는 '악덕 기업 물러가라'는 그 프랭카드가 가장 기분 나빴다. 띵똥! 정문에서 도착 신호를 보내면 여비서가 1층 엘레베이타 앞에 내려가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절하고 모셔오는 분이 회장이다. 그는 사내에서 제왕이었다. 그 자신이 생각해도 그 자신은 국가를 위해서 첨단기술을 이 땅에 뿌리 내린 애국자다. 그런데 이 놈의 노조는 걸핏하면 자신을 악덕 기업으로 모는 것이다. 자신의 긍지를 쓰레기통에 쳐박힌 회장은 간혹 노조 대책회의에 들어가곤 했다. 거기서 자신의 제국 안에 역적 도배가 창궐하여 자신과 회사에 대해서 자기들 맘대로 욕설을 퍼붓는 씁쓰레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회장 따라 그 회의에 배석하던 나는 노조의 본질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뫼비우스의 띠' 같은 노조 관련 책들을 골라서 읽곤 했다.

 수많은 노동자 희생 위에 자본가의 부가 쌓인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은 유사 이래 쌓여온 인류의 숙제다. 노동자는 잉여가치를 수탈하는 자본가에 대해서 피해의식이 많다. 피해의식은 증오와 투쟁을 야기시킨다. 감정이 축적되면 노동자는 회사를 파멸시키려는 악의로 발전한다. 노동운동은 뒤에서 운동권 인사가 조종하고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임금인상을 합의하기는 어렵다. 애초의 합의 숫자가 필요없고, 서로의 증오와 피해의식의 발산이 주가 된다. 서로 동상이몽을 꿈꾸는 것이다.

 대채로 이런 이야기였다. 그래 나는 직접 노조위원장을 만나서 그가 하는 이야길 듣고 싶었다. 노사가 동상이몽이라지만, 서로의 고충은 얼마던지 토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여사원들에게 인끼있던 육사 출신 총무부장에게 오더를 내렸다.

'다른 조건 없이 인간적으로 소주나 한 잔 하고 싶어서 그런데 비밀로 박위원장을 불암산 뒤 송어횟집으로 데리고 올 수 있겠소?'

'아마 어려울 겁니다.'

 총무부장은 이렇게 대답하더니 얼마 후 박의 동의를 얻어왔다. 양자간 노조에 대한 공식 이야기는 하지말고 그냥 얼굴만 보자는 내 제의가 통했던 것이다. 회장을 보좌하는 비서실장과 노동자 전체 이익을 대표하는 노조위원장이 중간 사람들 배제한채 직접 만난다는데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미스터 박! 오늘 우리는 그냥 직장 선후배로 만나는 거요. 서로 머리도 식힐 겸 한 잔 하러 온 것으로 생각합시다. 비싼 송어회 놓고, 쓸데없는 소린 맙시다.'

'그러지요'

 박은 이렇게 대답했고, 배석한 옆의 총무부장은 토를 달았다.

'실장님은 기자 출신으로 회장님 자서전 쓰러오신 분이요. 회사 눈치 보는 그런 사람 아니요. 회사에서 유일하게 회장님께 직언할 수 있는 분이니, 서로 기탄없이 이야기 해 보시오.‘

 이렇게 말머리 풀자 처음은 내가 몇가지 한가한 이야기를 물었다. 

 어느 대학 나왔느냐? 학비는 집에서 보내주었느냐, 직접 벌어서 다녔냐? 회사 입사년도는 몇 년 되었느냐 하는 그런 것이다.

 몇가지 이야기 오간 후,

‘자 한잔씩 마시자구, 이야기 해보니 박위원장은 나보다 고생한 것 같진 않구려. 나는 대학시절부터 고생이 심했소. 가정교사 하면서 자취방에서 티켓으로 밥은 매식했고, 차비가 없어 명절에 고향집 못가고 빈집을 지켜주는 신세였소. 버스도 몇 정거장은 걸어다녔소.’

그 후에 그가 현재 어떤 집에 사느냐고 물어보았다.

 '팔천 만원 전세집에 삽니다'

 '그럼 당신은 나보단 인생을 쉽게 살았구만. 사회초년생 대리가 빛 1억 안고 2억하는 아파트에 사는 비서실장인 나와 실제로 가진 돈이 비슷하니.

 나는 가정교사로 대학 나오고, 일부러 집에서 한 푼 보조금 받지않고 조계종 회의실에서 공짜 결혼식 올리고, 부조금 들어온 돈으로 서울에서 가장 값이 싼 방을 구하려고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소, 처음에 수유리에 살다가 주인의 횡포로 쫒겨나서, 창동 이문동을 전전했는데 해마다 전셋방 값이 오르면 쫒겨서 이사를 가곤 했소, 그뒤에 하도 내 신세가 서글퍼서 이를 악물고 이문동 언덕 골목 막바지 18평 짜리 집을 죽기살기로 마련했소. 그런데 그 백 이십 만 원 짜리 집을 살려고, 전세금 삼십 만원을 가지고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은행돈 사원금고돈  90만원 대출 받은 인생이 얼마나 고달픈지 아시오? 그때 내가 받은 월급 그로스가 3만원이었소. 출퇴근은 버스 토큰 달랑 두개, 배달 도시락으로 끼니 때우던 시절, 명색이 신문기자라는 사람이 아침에 모닝커피도 먹을 수 없어 옆의 선배가 간혹 사주곤 했소. 담배값 줄이려고, 하루방 한 통 사서 그걸 파이프에 조금씩 채우면, 아침에 한모금 빨고 껐다가, 점심 먹고 한모금, 퇴근 전에 한모금 빨고 퇴근했어요.

그 뒤 처자식 배 골리지 않으려고 회장 자서전 써준다는 핑계로 여길 왔지만, 중역이 뭣인줄 아시오? 뭘 모르는 사람들이 겉만 보고 대기업 중역이면 대단한 줄 압니다. 출퇴근을 포니 승용차로 운전수가 시켜주니 근사해 보이긴 하지만, 실은 비서실장이란 상머슴 중에 상머슴이요. 너무나 고달픈 직업이요. 회장 출근 전인 아침 8시에 출근해서 퇴근은 회장이 들어간 밤 9시 퇴근이요. 토요일은 아예 없고, 일요일은 한달에 두 번 나와요. 우리 회장이 어떤 사람인줄 아시오? 겸상을 하면 막내딸도 긴장해서 설사를 한다는 그런 사람이요. 그 지독한 분 옆에서 자포자기하여 무너지지 않고 20년을 내리 살았소.

그 세월 보내고, 이제 너덜너덜한 비서실장이란 감투 하나 얻어. 고진감래거니 하고 살고있어요.

그런데 이야기 들어보니 당신은 지금 나보다 훨신 나아요. 당신이 나보단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당신은 모를거요. 

 내가 지금 서초동 2억짜리 아파트에 살고있소. 그런데 빛 1억 뺀 나머지 1억을 모으려고 몇 년 걸렸는지 아시오? 월 백 만원 저금하면 1년에 천2백만원, 10년이면 1억 2천만원 모입니다. 계산상 10년 걸리는데, 현실적으로 매달 백만원 저축 가능한 사람이 이 나라에 누가 있겠소? 10년 이상 독사처럼 독을 품고 살아도 어려운 일이요.'

박은 듣기만 했다. 

'그런데 나는 현재 2억짜리 집에 살고있소. 그럼 내가 도둑질을 했소? 사기를 쳤오? 나는 월급 봉투 내역도 자세히 읽어보지 않는 사람이요. 돈보다는 사회 정의에 관심이 많던 기자였소, 그런 사람이 도둑질을 했겠소?

 다 교통비 담배값 아끼고 그야말로 피땀 흘려 절약한 결과요. 그리 살면서 대출금 갚아나가다가 부동산 값 올라서 이제 한시름 놓았지만, 기득권이라고 겉만 보고 몰아부치는 중산층 대부분이 그렇게 악착같이 산 사람이요. 그게 배울 점이지 비난 받을 점이요?

그러니 우리끼리 분배가 어떠니, 소외가 어떠니 하는 그런 시시한 이야긴 하지맙시다. 노조하면서 자기들은 물 건너간 이야기라고 포기하지 맙시다'

 

 이런 이야기 오가자 박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안도감이 솟은 것이다. 상대가 자기보다 더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공손한 손길로 잔이 건너 온다. 내친김에 노동문제 핵심도 건드려 보았다.  

'미스터 박! 아담스미스의 '국부론' 읽어보셨소? 나는 대학 때 칼 맑스의 '자본론'도 읽었소.  임금과 자본,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 소외된 노동에 대한 구절에 크게 공감한 적 있소. 자본주의식 자유경쟁보다 공산주의식 평등을 꿈꾸어보기도 했소. 그만치 나는 가난했소. 당시 그런 책들은 누구도 못보게 하던 금서요. 당국의 눈치 보며 그걸 보는 삐딱한 사람의 심정을 알겠소?'

'저는 그런 책 모릅니다.'

박은 간단히 대답했다.

'노동운동 골자는 분배의 잘못과 소외된 노동에 있다고 믿소, 분배 이야기 나왔으니 서로 한번 노사 문제 본질도 생각해봅시다.

 사실 내가 오너 측근 아니오? 오너? 그 사람들 문제점 많아요. 자본의 속성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노동착취로 기업 이익을 편취하는 모리배요. 그들은 회사 돈 빼돌려 비자금 만들고, 회계장부 조작하여 사회에 해를 끼칩니다. 출근도 하지않는 마누라나 딸도 회사 이사니 감사니 해서 월급을 빼갑니다. 그 회사는 자기 돈만으로 만든 것 입니까? 주식회사는 자기들 이외의 소액 주주들도 다 오너 입니다. 그걸 해마다 주주총회 때 총회꾼 자기들 편으로 매수하여 손들게 하여 엉터리 결산하고 때워 넘기는거요.

그런 면에서 그들은 고래에 해당되고 당신들 노조는 피래미요. 그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선 반드시 당신들 노조가 있어야 해요. 이게 노조의 필요성이고, 노조의 긍정적 측면이요.

 그러나 오너라고 다 나쁜 건 아니요. 아담스미스가 '보이지않는 손'을 말하지 않았소? 자본가가 있어야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거요. 자본가의 끈질긴 욕심이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요. 말하자면 그들은 이 사회에 없어선 안되는 필요악이요.‘

 

 ‘자 송어회 한 점 더 들고 잔도 쭈욱 간빠이 합시다. 노조란 무엇이요? 대한민국 헌법은 노동3권 명시하여 보장하고 있지요? 헌법 제33조 제1항에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지요? 이게 할 일 없는 사람들이 괜히 만든 법입니까? 아니예요. 천만에 아니예요. 노조는 자본의 횡포와 합법적으로 맞서 싸울 회사 내의 최후의 보루요.

 미스터 박! 당신이 위원장이니 투쟁은 당신 임무요. 그러나 쥐꼬리 같은 봉급 갖고 평생 일해도 내 집 마련은 물 건너갔다는 그런 진부한 이야긴 하지마소.

 일본이 왜 노조가 춘투(春鬪)라 해서 봄에만 노동운동 하는지 아시오? 순수한 임금투쟁이기에 그런 거요. 영국 대처수상이 왜 union boss(노조지도자)가 파업 하려면 노조원 전체 비밀투표에 의한 동의 얻어야 되도록 법을 고쳤는지 아시오? 노조지도자가 순수한 노조 활동 이외의 일로 나라 일을 망치기 때문이오.

 요는 올바른 노조는 꼭 필요하단 그런 이야기요. 그래 나는 박 위원장을 절대 편협하게 보지않소. 당신은 젊고 유능하고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요.

 나는 전직 '사회의 목탁'한 사람이요. 회장 시키는대로만 하는 허수아비가 아니요. 내가 오너 곁에 있으니, 당신이 노조라고 진급에 불이익 받지 않도록 보장하겠소. 대신 당신은 파행적 노조 활동은 않는다는 약속만 해주소.'

이 대목에서 그가 말했다.

'실장님 말씀대로라면 저도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오케이!.'

 이렇게 악수 한번으로 노사간의 길을 열었다. 대화가 통한 것이다. 이제 건전한 노조활동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조금만 상대를 배려하면 길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러고보니 우린 동지였다. 가져온 돈 충분하겠다, 그날 우리는 신나게 마시고 헤어졌다.

 

 얼마 후 회사에 대규모 쟁의가 벌어졌을 때다. 금속노조 상부에서 지시한 거대 쟁의였다. 나로서야 뿌려놓은 씨가 있어 느긋이 지켜만 보면 되었다. 초조할 일 없었다.

 인사부는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며 시위 현장 돌아다녔고, 비상대책 회의에 와서 박 위원장 욕 퍼붓기에만 바빴다.

 이런  쟁의가 일주일 갔을 때다. 박과 연락해보니 그 날이 쟁의 끝나는 날이다. 회장은 그 날도 귀가를 미룬채 밤 11시 넘도록 집무실에서 요란한 꽹가리 소리, 구호 소리, 회사 마당에 쌓고 불태우는 회사 집기들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내가 회장 옆으로 닥아갔다.

'회장님! 오늘 밤 12시에 쟁의 끝납니다. 끝나면 바로 전화 올릴 터이니 걱정말고 댁에 돌아가 편히 쉬십시오.'

 회장은 그 말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 밤 정확히 12시에 쟁의가 끝났다고 댁으로 전화를 드렸다. 

'자넨 그 정보를 어디서 얻었어?'

노회장이 그렇게 묻길래,

'정보의 출처를 공개하면 다음 정보가 끊어집니다.'

 

 이렇게 대답한 다음 날 이다. 사장 이하 인사부, 생산라인 중역들이 모두 회의실에 모여 저마다 밝은 얼굴로 지난 밤 무용담을 터놓기 시작했다. 이러쿵 저러쿵 자신들 공로를 부풀리고 있었다.

'에이! 쓸모없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김실장은 밖으로 나와!'

 이때 노회장이 이렇게 큰소리를 지르더니, 문을 쾅 닫고 회의실 밖으로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