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하산기

김현거사 2011. 6. 16. 16:33

하산기


나의 사진 고르는 기준은 옛날에 비하면 백팔십도 다르다.옛날은 All or nothing 이었다.완전 아닌 것은 전부 노였다.


윤복희 미니스커트 유행하던 때가 몇년도던가?신문사 시절 사진기자와 명동 길바닥에 여성들 무릅 아래 위치에 신문지 깔고 앉아,하루 종일 아가씨 미니스커트를 위로 치켜찍었다.질겁하던 아가씨도 있었고,신문사서 찍으니 혹시 모델되나 해서 반색하고 말 걸던 아가씨도 있었다.좌우간 미니스커트 사진 한 컷 편집부 넘기기 위해 수십장 필름 아끼지 않고,타인 시선 오불관언(吾不關焉)이었다.


카메라회사 팜프렛 만들 때다.에이젼트에서 인물사진 담긴 앨범집 넘겨받아 수백명 흩어보고,그것도 차지않아 힐탑호텔 지하 나이트에 후보자 면접 차 몇날 며칠을 개근했다.거기는 그룹사 스폰서  떴다하면 미모라면 강남에서 자신 있는 꽃같은 모델들 좌악 몰려와 신경 세우는 곳이다.내 테이불에 앉을 찬스 얻을려고 모델 초보들 흘낏흘낏 수군수군 기웃기웃 야단났다.

합격자 뽑아 촬영 들어가면,메인 컷 하나 만들려고 2-3일 작업한다.아침에 커피 한잔하고 촬영 들어가면 촬영하고 쉬고 촬영하고 쉬고 점심 저녁 먹고 밤 10시 헤어진다.옷을 수십벌 바꿔 입혀보고,화장도 간섭한다.선전 상품이 카메라니,모델은 007 영화의 본드걸 이미지를 택했다.얼굴선이 가늘고 각이 있어야겠다.아이샤도는 푸른빛 기조가 좋겠다.상품인 카메라에 시선 오도록 유방의 융기 부분은 상품 곁에 바짝 붙여라.옷은 속이 살짝 비치는 엷은 것이 좋겠고,가슴 노출은 더 많아야겠다.목 부분과 옷의 대비가 야성적으로 보이도록 드디어 옷을 가위로 싹둑싹둑 짤라내고 촬영했다.

모델 몸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자세 고치고,모델이 기분 좋아서 표정 잘 나오도록,매 컷 촬영시마다 이쁘다 최고다 옆에서 입에 침 마르도록 칭찬한다.이때 그 이쁜 아가씨 반응은 어떤가?한번 뜨기만 하면 세상이 달라진다.고분고분 살랑살랑 춘향이 이도령 대하듯 애교떤다.같이 밥 먹으면 스폰서 수저까지 놓아준다.이렇게 막대한 모델료를 지불하고 단 몇 컷 사진 뽑았다.회고하면 그룹사 홍보 책임자 젊을 때 한번 해볼만한 쟙이다. 


다이야몬드 촬영은 어떤가?이리 보석단지에 '코리아다이몬드'라는 굴지의 회사가 있다.그 회사 다이야몬드를 007가방에 가득 넣고 충무로 촬영장에 가서,뻔쩍이는 보석의 노출 조정하느라 며칠씩 보내며 저녁마다 경호 불러 가방을 금고로 돌려보냈다가 익일 다시 가져와 찍고 법석 떨었다.그래서 나온 것이 다이야몬드 사진 단 한 컷이다.


스타킹 촬영하느라고 퇴계로 삼영다방 아가씨 모델 시켜준다고 섭외해서 며칠씩 데리고 가서 찍는데,하루 종일 서서 찍으면 피곤해서 다리 각선미가 죽는다.그러니 여자를 눕혀서 허공의 다리만  찍는다.아가씨는 매일 보온병 모닝커피 달걀 노른자 서비스하고 며칠 벌렁 드러누워 사진 찍었다.그런데 나중에 그녀에게 사진 보이니,며칠 휴가 내고 그 고생하며 촬영했는데,얼굴은 안나오고 다리만 나왔다고 삼일 굶은 씨에미 상 하고 나 잡아먹으려고 덤벼들었다.


좌우간 반도체공장 라인 사진 만들려고,홍보실 직원 네명이 매주 라인에 들어가 필름 한통씩 찍게해서 6개월만에 두어장 건졌다.그 사진 만들려고 일주에 팔십장,한달 320장,반년에 2천장 정도의 필름 소모한 것이다.아무리 잘 찍어도 사진 찍어오면 불합격시킨 실장을 밑에서는 저승사자처럼 무서워했다.


사진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제대로 된 사진 한 컷 얻으려면 심신이 파김치되도록 고달픈 후에야 가능하다.혼이 스며야 사진이지 무작정 셔터 눌렀다고 다 사진 아니다.


반평생 이렇게 지독히 까다롭게 살았다.나는 고고한 괴물이었다.알만한 광고회사 사람들은 A그룹 김실장하면 고개 절레절레 흔들었다.치열한 40대 땐,남들이 최상이라고 해도 나는 아니었다.두보(杜甫)가 '시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않으면 죽어도 그만 둘 수 없다'(語不警人 死不休)고 했듯이,나도 작품이 마음에 들지않으면 그만둘 수 없던 것이다.


그러다 은퇴한 이후는 180도 바뀌었다.환갑(還甲) 지난 것이다.나는 작정했다.이제는 평범하고 특징 없는 서민속에서 미를 발견하자.사진 보던 기준도 바꾸고 인생 보는 기준도 바꾸자.학식 돈 지위 없는 그런 인생도 사랑하자.죽으면 모두 공평하게 흙이 되질 않은가?

과거는 직업상 프로가 목표였지만,은퇴한 지금은 보통사람이 목표다.기준을 바꾸고,나는 이제 전철이나 버스 속 누추한 차림에서 미완성 아름다움 찾을줄 안다.

환갑 이후는 그동안 올랐던 산을 조용히 거꾸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목나무/그림  (0) 2011.06.16
나의 글 <소나무>에 대한 여류평론가의 글   (0) 2011.06.16
居士 四樂  (0) 2011.04.25
무엇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인가  (0) 2011.04.25
무호스님에게  (0) 2011.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