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3

김현거사 2015. 12. 3. 08:15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3

 

 눈이 나리면 가끔 그가 생각난다. 경기도 양주 어느 공원묘원에 그가 묻힌 날도 싸락눈이 내렸다.

 마흔 전에 타계한 그는 속초의 한 콘도 소유주 였고, 강남에 룸싸롱 가진 청년실업가 였다. 조문객 별로 없던 쓸쓸한 장지에는, 네 대 승용차 타고온 여나믄 명 검정 정장 차림 조폭들이 휘날리는 눈을 맞으며, 하얀 노끈으로 관을 구덩이 속에 내리고, 그 위에 삽으로 흙을 덮었다. 

  처음 그를 만난 것은 비서실 여직원 때문이다. 그가 미스리를 맘에 두고 퇴근만 하면 따라다닌다는 말을 듣고, 내가 그를 불렀다. 여비서는 포천여고 나왔고, 부모는 농군이었다. 그래 신입사원 채용 때 2차 면접 보던 실력으로 내가 부모 대신 선을 봐준 것이다.

 그는 세무소 직원이었는데, 인물 잘 생기고 체격 좋았다. 취미 물어보니 바둑과 당구에 드물게 보는 고수였고, 언어는 신중하고 예리했다. 고졸이지만 세무에 밝아 장래성 있고, 무엇보다 그는 월수입이 많았다. 내가 알기로는 세무소 직원 치고 처자식 굶기는 일 없다. 그래 미스리에게 

'이제부터 그가 가자고 하면 어디던지 무조건 따라가라.'

고 해두었다. 

 결혼 후 그는 좋게 봐준 게 고맙다고 술자리에 초대했는데, 나는 술 센 친구 좋아한다. 그의 주량은 양주 한 병이었다. 맘에 든 것은 그 뿐 아니었다. 통기타 치며 부르던 노래도 일품이었다. '옥경이'가 유행하던 시절이다. 나는 노래 잘 하는 친구 좋아한다. 그래 숙제를 내보았다.

 '어이 자네, 언제 노회장님 댁에 가서 사모님과 회장님을 워커힐로 식사 초대해보게'

담력을 시험했더니, 며칠 후 노회장이 아주 만족한 얼굴로 그가 다녀갔다고 했다. 거실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하고는 워커힐 식사에 초대하길래, 가서 아주 즐거운 시간 보냈다는 것이다.

 그후 그는 다니던 세무소에 사표를 내고 내게 찰싹 달라붙었다. 

'여의도 63빌딍을 세운 김사장을 잘 압니다. 그를 초대해서 우리 건설회사 하나 차립시다'

이러고는 밤마다 나를 찾아왔다. 그는 밤마다 카페에 나를 초대해놓고, 건설회사 노래를 부르곤 양주 한 병씩 시켰다. 술 값은 모두 그의 부담이었다. 이렇게 석 달 쯤 흐른 뒤 이다. 몇 달 먹은 술 값이 천만원 넘어가자 나는 감탄했다. 꽤나 끈질긴 놈이구나. 돈 쓸 줄 아는 놈이구나 싶었다. 그는 비서실 일이 밤 9시에 끝나도 회사 옆 다방에 죽치고 앉아 나를 기다렸다. 그 점도 맘에 들었다. 이런 놈은 뭔가 큰 일 치를 놈이다.

 그래 노회장께 부동산을 말머리로 잡아 건설회사 설립 건을 건의했다.

'삼성이 수원에 대지 십만 평 규모의 공장을 세운 후, 인근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제품 팔아 번 돈은 전부 종업원 복지와 임금에 풀어도 땅 때문에 돈이 남아 돕니다. 우리도 건설회사 세워 부동산 취득할 명분 하나 얻어놓아야 합니다. 세무서는 건설회사 부동산은 업무용으로 보니까요.'

 이것이 나의 변이었다. 

 이렇게 회사는 만들어졌고, 초대 사장은 그가 추천한 여의도 63빌딩 김사장을 시켰다.

 며칠 후 그의 다급한 전화가 왔다.

'형님! 저더러 경리부장 하랍니다. 임원은 않된답니다.' 

'그래서?'

'임원 아니면 중역회의에 못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형님과 애써 만든 회사 말짱 도루묵 아닙니까? 건설사는 비자금 마련 창구인데, 제가 빠지고 누구 좋은 일 시킵니까?'

말이사 맞는 말이다.

'알았다.'

상황을 오너에게 보고하자, 건설 사장도 미리 이럴 줄 알고 노회장께 선수쳤다.

'회사에 대졸들 많은데, 이제 갓 삼십 넘은 고졸 이사 시키면 곤란합니다.'

 하더란다.

'아닙니다. 건설업은 제조업과 달라서 반드시 심복 하나 중역에 앉혀놓아야 합니다.'

이 말 한마듸로 그는 경리 이사가 되었다.

 그 후 또 그의 전화가 왔다.

'형님! 아파트 입주권이 뭔지 모르지요?'

'그게 뭔데?'

'조합주택 입주권 하나가 프레미엄이 천만원 이상 갑니다.' 

조합주택 입주권은 시행사가 조합원에게 활당한다. 나머지는 일반 분양하는데, 시공사인 건설사에도 지분이 넘어온다.

'그러면 내가 집 없는 거 알지? '

이렇게 쉽게 강남에 아파트 한 채 마련했다.

 건설사 재미있는 곳이다. 빌딍 짓자고 시내 땅 가진 지주 찾아온다. 큼직하게 20층 올릴려면 공사비만 백 억  넘는다. 그러면 담당 중역이 건물 분양성 따져야 하고, 지주 자본력 따져야 한다. 한참 이러면 담당에게 네고가 들어온다. 비밀로 오피스텔 몇 개 명의 변경 해주겠다는 것이다.

 업무용 땅을 매입할 때도 그렇다. 땅값이 백 억 단위 넘으면 복비만도 억을 넘는다. 부동산이 담당에게 복비 일부 주겠다고 네고한다.

 이런 복마전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후에 무슨 일 때문인진 모르지만, 사장이 미스터김을 사무실에서 구타해서 김이 병원에 입원했다. 쉬쉬 하였지만, 비서실에 이 일 알려지자, 사장이 직접 약 사들고 병실 찾아가, 약 발라주고 안마까지 해주고 사과했다. 이후 미스터김은 회사 내 무소불능의 존재였다.

 '형님! 지금 즉시 택시 타고 천호동 모 가요주점 나오시오. 한번 모실랍니다'

 밤 10시에 그가 전화를 했다. 가보니 무대에 한창 가수들 노래 부르고 있는데, 2층 별실 앞에 가자, 여기저기 서서 웅성거리던 검정 정장 조폭들이 일제히 90도 허리 꺽고 인사한다.  

'큰형님은 저기 상석에 앉으시오.'

그가 나를 안내하고, 내가 좌정하여 담배를 입에 물자,

'불 여기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무릅 끓고 두 손 공손히 라이터 불 켜 올린다. 조폭들 돈줄은 건설사다. '한바'라고 불리는 현장 식당 운영도 그렇고, 현장 경비 일도 그들 몫이다. 11시 넘자 가수를 아예 별실로 불러 노래 시킨다. 자정 넘어 차를 내주는데 운전수도 조폭이요 그 옆에 떡 버티고 앉은 보디가드도 험상궂다. 그들은 교통법규란 걸 모르는 모양이다. 신호등 무시하고, 새벽 길 시속 150킬로 논스톱으로 달려, 천호동서 서초동 단번에 모셔준다.

'고맙소.'

 만원짜리 두장 건네주자, 황급히 거절한다. 이런 충성은 불알 단 사내 치고 한번 쯤 받아볼만한 것이다.

 미스터김은 그후 속초 백화점 사장으로 갔다가, 휘문고 동기인 전남방직 창업주 몇번짼가 아들과 독자적으로 콘도를 세웠다. 초기는 자금 사정이 어려워 절에 들어가서 두어달 기도하고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회원권이 팔리자 상황은 급변했다. 그는 청년사업가가 된 것이다. 차도 외제로 바꾸었다. 누가 보아도 사십 초반에 그 정도면 대성공이었다.

 간혹 속초 내려가면 그가 룸싸롱에 초대했는데, 조폭은 전국 족보가 있는 모양이다. 서울 누구와 형님 아우라니 그쪽도 알아모신다. 왕초가 옆에 배석한 승용차 지나가면, 길에 백미터 간격으로 늘어선 검은 양복들이 절도있게 절 하는 모습 재미 있었다. 

 간혹 그의 콘도에 서울서 온 요염한 여인도 보였다. 논현동에 새로 매입한 룸싸롱 마담이다.

 '형님은 콘도서 제일 좋은 방 하나 줄테니, 은퇴 후 거기서 글이나 쓰시오.' 

 여기까지가 김사장 성공가도다. 의리와 집념으로 악착같이 이룬 성공이다. 만나고자 하는 사람 많아 한없이 바빴던  모양이다. 밤마다 술과 사업 이야기로 지샌 모양이다. 체격 좋고 힘 좀 쓰니 조폭 거느리는 게 맘에 들고, 가무음주 좋아하여 룸싸롱 하나 갖고싶던 게 탈이었다. 결국  밤마다 마신 양주와 일상의 과로로 어느 날 간 경화로 타계한 것이다.

 초겨울 눈이 나리면, 그가 묻힌 공원묘원 장면들 생각난다. 인생이란 일장춘몽 아니던가? 생전의 그의 정열과 그의 요절은 무슨 관계일까? 싸락눈 맞으며 내 곁에 서있던 미망인 모습 아련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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