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거사전

김현거사 2014. 8. 31. 08:42

 

   居士傳

 

 

거사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절에 다니는 남자라는 뜻으로 스스로 거사라는 명칭을 호로 대신했다. 학식이나 명예나 부귀영화를 부러워하지 않았고, 세상의 이해득실은 되도록 멀리 하였다.

 사람을 산속의 바위나 나무처럼 다 좋게 생각했고, 사소한 것이라도 문득 장점을 발견하면, 칭찬해주기를 머뭇거리지 않았다.

 즐겨 글을 읽었지만, 깊이 파고들려고 하지 않았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문득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곤 했다.

 성품이 술을 즐기었으나, 가난하여 항상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친구가 이같은 사정을 알고,혹시  술자리를 벌여놓고 초대하면, 흔쾌히 나아가서 마시되, 대접하는 사람에게 예를 다하긴 하지만 비루하지 않았다. 대개 취할 때까지 마시고, 취하면 시를 읊거나 노래를 불렀고, 매인 데 없이 자유분방하고 천성이 단순하였다.

거사는 집에 있을 때 스스로 산속에 사는 나무꾼, 혹은 암자에 사는 스님처럼  처신했다. 오래된 구멍난 옷을 즐겨 꿰매어 입었고, 검소함을 오히려 덕목으로 여겼고, 사람이 옆에 없어도 태연하였다. 숲과 구름과 달빛을 친구 삼았고, 텃밭에서 기른 한 소쿠리 채소와 약수터에서 떠온 한 표주박 물로 만족하였다. 간혹 칼로 나무에 시를 새기거나, 문장을 지어 친구에게 보여주고 그로서 낙을 삼았다. 

 진나라 도연명은 전에 五柳先生傳을 지어 스스로 뜻을 밝힌 바 있다. 어찌 안빈낙도가 세월이 흐른다고 쇠퇴하겠는가. 선생의 뜻을 흠모하여, 천오백년 뒤 거사는 居士傳을 지어 다시 그 뜻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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