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망우리 산보기

나무를 태우면서

김현거사 2014. 2. 27. 07:49

 

           

  나무를 태우면서

 

                                                                         

 겨울이면 벽난로에 나무를 태운다. 창 밖에 눈이 하얗게 쌓인 밤, 혼자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는 일은 운치 있다. 혀를 날름거리며 타오르는 뜨거운 불꽃은 뭔가 사람을 빨아드리는 강열한 자력을 가졌다. 그래서 불을 대상으로한 고대 종교가 탄생했는지 모른다.

 

 

 

  나는 불을 숭배한 배화교(拜火敎) 어떤 종교인지는 잘 모른다. 막연히 유대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에 영향을 미친, '종교의 조상'격인 원시종교라는 것만 안다. 

 청동화로에 불을 피우고 그 앞에서 의식을 진행한 배화교도와, 배화교 창시자 <조로아스터>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를 독일어로 <짜라투스트라>라고 부르며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어쨌던 나는 한밤에 뜨거운 불 앞에 앉아 불꽃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기길 좋아하고, 나무가 타는 모습과 소리를 즐긴다.

 

 나는 가을이 되면 매화, 장미, 감나무, 자두, 앵두, 목련, 철쭉 등을 전지해서 묶어두었다가 한겨울에 태운다. 나무를 태우면서 사람도 그 비슷하다는 묘한 심정을 가져보기도 한다.

 

 나무마다 타는 모습과 소리가 다르다. 

 가장 화끈한 소리를 내며 타는 나무는 회양목이다. 회양목은 목도장 재료로 쓰는 단단한 나무인데, 불이 붙으면 그 속에서 따발총 쏘는듯한 소리가 난다. 잎과 줄기에 무슨 성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타타타타! 콩알처럼 타는 시원한 소리를 들으면 일단 마음이 통쾌하다.

 

 싸르륵 싸르륵 탁탁! 하는 소릴 내고 윙윙하는 뜨거운 열기와 불똥을 밖으로 튕기면서 타는 것은 백송이다. 가장 불길 왕성하고 화력이 강한 것이 백송이다. 소나무 계통이라 송진이 많아 그런 것 같다.

 백송은 원래 중국 사람들이 정원에 아무리 나무가 많아도 백송이 없으면 쳐주지를 않던 알아주던 나무다. 조계사 뜰의 백송이 병들자 천년기념물이라고 매스컴에서 난리를 피웠을 때. 어렵게 구해다 정원에 심었는데, 20년이 되자 나무가 크게 자라 전지를 했던 것이다.

 

 감나무나 자두나무는 타는 모습이 듬직해서 좋다.  

 먹감나무는 최고품 장롱의 재목이다. 늦가을 가지에 매달린 홍시는 얼마나 아름답던가. 감나무는 생전의 이미지답게 불길 속에 들어가도 최후가 듬직하고 묵직하다.

 자두나무 역시 그렇다. 그 나무를 보면 새빨간 자두를 한 알 입에 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어린 소녀가 눈 앞에 떠오른다. 

  두 나무는 한번 불이 붙으면 오래 간다. 그 덕택에 거기 고구마나 감자를 묻어둘 수 있다. 창밖에 눈이 쌓인 겨울 밤 겉이 탄 뜨껀뜨껀한 고구마나 군밤을 맛 볼 수 있다. 벽난로가 있어 행복하단 생각을 할 수 있다.

 

 향기 좋은 것은 향나무다. 향나무는 몸에 향수를 바른 여인같다. 일단 타면 그윽한 냄새를 풍긴다. 불 붙어 타들어가는 기세는 정열적인 여인 같다. 마른 섶에 불 붙인 것 같다. 화르르 화르르 빨간 불꽃이 숨가쁘게 타들어가서 사르르 사르르 재로 변한다. 향기롭고 정열적인 여인의 최후가 아마 이럴 것이다.

 

 이와 대조되는 허망한 나무도 많다.

 매화는 생전에 얼마나 꽃이 곱고 향기롭던가. 매화는 시인묵객에게 가장 사랑을 받던 나무다. 그러나 화목(火木)으로는 낙제점 이다. 가시만 사납고 화력도 불길도 신통찮다. 

 

 끝이 더 허망한 것은 장미다. 장미는 그 줄기가 속 빈 강정같다. 종이 나부랭이처럼 훨훨 타버린다. 미인박명이라지만 죽어서 재가 될 때도 허망하다. 생전에 화려한 자태와 농염한 향기를 풍기던 사람을 생각케 한다. 아름답지만 끝까지 가시로 사람을 찌른 고약한 성질을 생각케 한다.

 

 앵두 역시 마찬가지다. 비온 뒤 떨어진 앵두꽃은 차마 애초로워 볼 수 없을 정도요, 열매는 홍보석같이 얼마나 아름답던가. 그러나 꽃과 열매만 곱지, 앵두는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한번 불길 만나자 시시하게 끝난다.

 

 누가 목련을 나무에 핀 연꽃이라 했는가. 누가 철쭉을 만산첩첩 비단옷 입히는 산중 미인이라 했는가. 화려한 모습 뒤에 허망함이 도사리고 있다. 꽃이 아름답다고 재도 아름다운 건 아니다. 

 

 아마 인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벽제 화장터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면 인간도 마찬가지다. 장미같던 여인도, 매화같던 선비도 마찬가지다. 생전과 임종 때 모습 다르다. 허망하다면 허망하다.

 누가 살아생전 당당한 모습을 뽑내는가. 병든 것도, 썩은 것도, 곧은 것도, 굽은 것도, 높은 것도 낮은 것도 불속에서는 모두 동일하다. 곰팡내 나는 헌 신문지도 마찬가지였다. 생전의 응어리 풀고나면, 모두 재와 연기였을 뿐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가치를 매기던, 이 세상 모든 건 허상이었다.

 

 그래 간혹 나는 벽난로 앞에서 <불이 만물의 근원이다>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를 생각해본다. 그의 정확한 뜻은 잘 모르지만, 결국 세상의 돈과 명예는 결국 한 줌 재로 귀착된다. 학식이나 지조도 결국 한 줌 재 였다. 성품 용모같은 모든 가치도 한 줌 재 였다. 모두가 허상이었다. 모두가 집착이었다. 그 모두가 우리 곁을  잠시 지나간 바람이었다.   

   

(2012년 정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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