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망우리 산보기

장미뿌리 파이프 /문학바탕

김현거사 2014. 2. 27. 07:46

 

           장미뿌리 파이프 

                                               

  미인박명이랄까. 아끼던 백장미가 이유도 모르게 죽어버렸다. 봄철마다 창 밖에서 하얀 향기를 풍기던 미인이 떠났다. 나는 싱싱한 장미꽃 꽂힌 식탁에 앉으면 늘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러시아의 가수 알라푸카체프의 '백만송이 장미'는 아니지만, 아침마다 이렇게 싱싱한 장미꽃을 선물하는 남편이 세상에 어디 있소?'  식탁 위 크리스탈 잔에는 매일 아침 한송이 싱싱한 장미가 꽂혀있었다. 창밖에서는 항시 은은한 장미향이 은은히 날라왔다. 흑장미나 백장미 한송이 앞에서 마시는 차는 더욱 향기롭고, 빵과 우유 한 잔의 조촐한 식사는 더욱 격조 있다. 앞마당 뒷마당 장미꽃 구경하라고 사람들 부르는 일도 장미 키우는 사람의 멋이다.

 

 어쨌던 장미를 키우는 일은 우아한 일이다. 그 취미를 살리느라 봄마다 장미 파는 곳이라면 일산, 상일동, 양재동, 종로5가 막론하고 화원 순례의 고생은 즐겨 감수했다. 덕분에 이브닝가운같이 하얀 백장미, 노랑과 빨강 레이스를 단 피스장미, 양장 여인처럼 단아한 아이보리장미, 검붉은 루즈빛 흑장미, 고귀한 주황장미, 핑크레이디 연상되는 핑크장미, 텍사스 기병대 트럼펫 생각나는 노랑장미가 내 뜰에 화려하게 핀다. 

 간혹 가위로 장미 다루다가 손가락을 찔리기도 한다. 그땐 릴케를 생각했다. 그는 론강(江) 근처 고성(古城)에서 장미 키우며 시작(詩作)에 몰두하다가, 알다시피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 그의 비석에는 미리 작성한 유언장 내용대로 장미를 읊은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하여튼 죽은 장미를 어떻게 하겠는가. 모든 만남은 반드시 헤어짐이 있는 법. 나는 애석한 마음으로 삽으로 장미를 캐내고, 그 자리에 옥잠화를 심었다. 역시 장미는 속성이 미인과 비슷하다. 가시가 있고, 다루기 힘들다. 그런데 나는 땅 속에서 예기치못한 보물을 만났다. 나는 기자 시절 파이프에 '하루방' 잎담배를 담아 연기를 뿜으며 편집국 안을 돌아댕겼다. 옛날 명동에는 라이타와 파이프 파는 노점들이 많았다. 신사는 파이프를 입에 물어야 멋 있다고 생각하던 때다. 그 당시 명품 라이타는 지포라이타, 명품 파이프는 장미 파이프 였다. 장미파이프는 얼마나 세련된 신사용 고급 액서세리 였던가. 나는 명동 인파 속을  오가며 그 노점 앞에 멈춰 몇번이나 장미파이프를 손가락으로 만지락거렸던가. 매끄러운  감촉을 느껴보고, 입에 문 감촉을 느껴보고, 노점상에게 그 가격을 묻곤 했던가. 그러다 어느 날 한숨을 쉬며, 족보를 알 수 없는 싸구려 파이프 하나를 호주머니 사정에 맞춰서 골라왔다. 그것은 어느 항구의 목로주점 마도로스가 쓰던 파이프인지, 동두천의 어느 미군이 쓰던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장미뿌리 파이프 만들 절호의 기회가 내게 온 것이다. 가슴이 갑자기 쿵당쿵당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만약 중국의 석학 임어당 선생이 나처럼 어느 날 자기 정원에서 멋진 장미 뿌리를 발견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틀림없이 그도 기겁하도록 놀라 반겼을 것이다. 헤밍웨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헤밍웨이의 남자다운 멋은 순전히 그의 수염과 파이프에서 오지 않던가. 보들레르 역시 마찬가지다. 꽁초 오상순 선생도 마찬가지다. 모든 동서양의 존경할만한 작가들은 당연히 담배를 피웠고, 장미뿌리 파이프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 장미뿌리를 땅속에서 발견한 순간, 나는 섬에서 보물을 발견한 해적 같았다. 완전히 흥분하고 말았다. 죽은 장미나무는 실망과 동시에 내게 선물을 준 것이다. 영원히 이루지못한 꿈을 가능토록 해준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흙을 털어내고, 묻혀있던  뿌리의 모습을 살펴보는 행복한 시간을 오래 가졌다. 통통한 둥치는 오래된 향로처럼 생겼고, 잔뿌리는 문어 다리처럼 길게 이리저리 얽혀 있었다. 충분히 기괴하였다. 피부가 발가스름한 것도 맘에 착 들었다. 도대채 뿌리 어느 구석에 그처럼 순결한 흰빛과 미묘한 향기를 감추고 있었더란 말이냐. 흑장미나 피스장미 아이보리장미 뿌리는 색깔 따라 향이 다른가. 뿌리는 오랜 시간 땅 속에서 시심을 기르다가 끝내 고운 꽃을 피우는 점에선 시인의 생리와 비슷하구나. 나는 장미에게 말을 걸며, 벼라별 상상을 다하면서, 굵다란 구리철사로 장미뿌리 구석구석 흙을 하나하나 털어내었다. 땅속에 묻힌 유물을 조심스레 파내는 고고학자인들 나처럼 신비한 체험을 경험했을 것인가.

 

  나는  설악산에 가면, 기묘한 나무 뿌리나 죽은 소나무 옹이로 만든 목각 파는 기념품 가게 앞을 서성거리기 좋아한다. 그것들은  오랜 세월 풍우에 씻겨진 신비로운 모습을 하고있다. 나는 거기 있던 오래된 대추나무 달마상과 벽조목 염주와 도장을 지금도 기억한다. 알다시피 벼락 맞아 죽은 대추나무가 벽조목이다. 그걸로 만든 염주는, 스님들이 가장 아끼는 것이다. 우주의 기를 지녀 사업 발복의 효험을 준다는 벽조목 도장은 호사가들이 애끼는 물건이다. 지리산 청학동 묵계마을에도 목조각을 하는 분이 있다. 그는 자칭 산에 미쳤다는 기인이다. 계곡물에 떠내려온 갖가지 형태의 나무조각을 주워와서, 기묘한 나무의 모습 그대로 수백개의 모양이 다른 찻숟갈을 깍아 벽에 진열해놓고 있다. 그 찻숟갈들은 지리산 골짝골짝의 물소리 바람소리를 담고있다. 나무의 결이 그대로 살아있고, 지리산이 그대로 느껴져 온다. 아마 찻숟갈로는 최상의 작품이 아닐까하고 나는 생각한다.

 

  마침 집에 조각도가 있다. 나는 전에 황토로 여인상을 조각해본 적 있다. 장미뿌리를 깨끗이 씻어 그늘에 말려두었다가 작업에 들어갔다. 나의 서재에는 인사동서 사온 상형분자가 새겨진 청동향로와 에밀레종을 축소 범종이 있다. 청옥으로 만든 문진과 홍옥으로 만든 달마상이 있다. 칼날에 검푸른 녹이 쓴 옛날 보검과 대나무 몸통에 비단띠를 두른 단소가 있다. 파이프가 완성되면 나는 그걸 서가의 그들 옆에 놓아둘 작정이었다. 백장미나무는 멋진 장미뿌리 파이프가 변할 것이고, 나는 이제 그 파이프로 흰 연기를 품으면서, 향기로운 수필을 구상할 것이다. 작업은 이렇게 행복 속에 시작됐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항상 예측이 어렵다. 결론은 딴 데로 간다. 일은 갈수록 꼬이기만 한다. 나는 온갖 창의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조각에 임한 끝에, 이 세상 아무나 설악산과 지리산 목조각 예술가처럼 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그들의 소재 다루는 안목과 재치가 천재였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호랑이 대신 고양이를 그린 초등학생 이었다. 아마추어가 손을 댈수록 소재는 점점 자연미가 사라지고, 드디어 쓸모없는 나무토막이 되고 말았다. 후회막급이었다. 진작 이걸 함께 차를 마셨던 지리산 그 양반에게 보냈어야 했다. 이렇게 나의 백장미 파이프의 꿈은 안타깝게 사라지고 말았다. (문학바탕 2011년 8월호)

'전자책·망우리 산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홈컴잉데이  (0) 2016.10.16
다산초당 다녀와서  (0) 2015.03.03
망우리 산보기(상) /문학시대  (0) 2014.02.27
망우리 산보기(하편)   (0) 2014.02.27
나무를 태우면서  (0) 201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