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버들과 소나무

김현거사 2011. 1. 19. 10:11

그 집 마당에 한 그루 운치있는 나무가 없다면 아무리 고대광실을 자랑하는 집이라도 나는 흥미가 없다. 한 폭의 좋은 그림이 걸리지않으면 나는 그 집 실내 인테리어와 가구가 아무리 화려해도 탐탁찮게 생각한다. 세상이 공평한 것은 돈많은 부자는 간혹 무식하다는 점이며, 가난한 자 중에 의외로 유식한 분도 많다는 점이다. 나는 빌딍을 소유하기 보담 전원에 아담하고 작은 초옥을 소유하고 싶다. 그리고 초옥 옆에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한 나무 두어 그루를 심어보고 싶다.

 

  60년대 고려대 교정 한 켠에 키가 하늘에 닿는 높은 버드나무가 있었다. 그 밑에 서점과 식당이 있고, 벤치가 있었다. 그 벤치는 주머니 속에 학생증과 버스표만 달랑 들어있던 한 가난한 철학도 전용석이었다. 나는 세검정 어느 육군대령 집 고등학생과 그 동생인 중학생을 가르키던 입주 가정교사였다. 그 당시 나는, 그가 특별히 세련되거나 별로 이쁘지 않더라도, 교정의 그 흔한 여학생 어느 누구 하고라도 캠퍼스 안에서 한번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거닐고 싶었다. 남들은 교정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앞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때로는 종로 음악실로 진출하여 만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어땠던가. 텅빈 호주머니로 그 벤치에 앉아 혼자 도시락을 까먹은 후, 백양을 피우며, 부러운 눈초리로 내가 앉아있던 벤치 앞으로 여학생과 어깨 나란히 하고 식당을 들낙거리는 서울 남학생을 흘금흘금 훔쳐볼 일 밖에 없었다. 

 즐겨읽던 책은 칼맑스의 <자본론>이다. 그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을 금지하던 禁書다. 그걸 청계천 고서점에서 애써 구해와서 읽던 마음은 무엇일까. 그 책은 개인의 私有를 부인하고, 자본주의를 부인하던 책이었다.

 또 하나 책은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란 책이다. 그 책엔 내가 항상 찾아가서 청승맞게 그 밑에 앉아있던 버드나무의 장점이 적혀있었다. 버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감성적인 나무였다. 바람에 불리인 버들가지는 무희의 긴 소매를 닮았다. 아름다운 부인의 허리를 柳腰라고 한다. 버들은 가날픈 부인의 섬세한 허리처럼 나긋나긋하다. 곱고 매끄러운 수피는 여인의 피부같다. 버들은 정말 여성같았다. 알고보니 버들은 가장 사랑할만한 나무였다. 봄엔 신록의 싱싱함, 여름엔 그늘의 시원함, 가을엔 낙엽의 낭만을 보여주었다. 나는 때로 다정히 버들의 둥치를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며, 햇볕에 빤작이는 창공의 아름다운 잎을 오래오래 보곤 하였다. 버들을 여자 친구처럼 사랑한 것이다. 지금도 나는 청춘시절의 가난과 고독을 다둑여준 버들을 그래서 나무 중에서 가장 사랑한다. 나는 초당 앞 개울가에 반드시 버들을 하나 심고 싶다.

 

 초당의 北窓 뒤에는 운치있는 소나무를 하나 심고 싶다. 소나무는 퇴계선생이 읊은 石上千年 不老松이었으면 한다. 줄기는 古態 가 가득하고 바위 위에 반쯤 허리를 굽힌 노송이었으면 한다. 그 뒤로 푸른 안개 덮힌 청산이 멀리 보였으면 싶다.

 나는 신문기자를 하다가 모 그룹 창업주 비서실에서 20년을 근무했었다. 대통령과 은행장에게 가는 편지를 써주고, 창업주 자서전을 쓰고, 언론과 접촉하는 일이 주업무였다. 정재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살펴볼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인간이란 참으로 다양하고 세상이란 참으로 이해관계와 권모술수 얽힌 복마전이란 걸 경험했다.앞에서는 아부하고 뒤에서는 오히려 욕하고, 이권을 위해서 안면 몰수하고 철면피하게 접촉해오는 숱한 군상을 보았다. 그들은 탐욕의 늑대였다. 늑대들에겐 의리와 절개란 쓰레기 하치장에 버려진 헌신짝 이었다. 가치관이 전도되고 악이 선을 앞섰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세한삼우(歲寒三友)로 꼽히는 소나무의 기상을 사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눈 서리에 굴하지 않는 늘 푸른 절개를 그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전에 내가 인식한 소나무는 송진 때문에 재목으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것 정도였다. 막연히 천덕꾸러기고, 망국의 나무라고 알고 있었다. 소나무에 대한 관심은 그 밑에 수북히 쌓이던 갈비 정도였다. 대갈고리로 걷어와 소죽 가마 불쏘시개로 쓸 때 확하고 일어나던 그 좋은 화력 정도였다.

 한번은 오대산 월정사 적멸보궁을 가는데 내 앞에 젊은 신혼부부가 걸어가고 있었다. 산길은 웅장한 침엽수 숲이었다. 젊은 새댁이 '소나무가 너무너무 커서 정말 대단하네요.' 감탄한듯 그 남편에게 동의를 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어디 소나무고? 내가 보기엔 잣나무건만은.' 남편이 단호하게 고쳐주는 소리도 들었다. 나는 그 소리듣고 속으로 치미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건 전나무 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대개 우리는 이처럼 소나무에 대해 무지하다.

 소나무가 조경수로 제대로 인정받고 서울에 처음 등장한 것은 강남의 한전 본사 앞 화단일 것이다. 그 뒤 테헤란로 인터콘티넌탈 호텔 앞 화단에 소나무 군식이 등장했고, 그 뒤에 코엑스 도로변 화단에 한그루 수백만원을 홋가하는 잘생긴 소나무가 등장했다. 가난한 서생 주제에 언감생심이라 하겠으나, 나는 이런 명품 소나무 하나만은 꼭 내 초당 뒤에 심고 싶다. 수시로 솔에 시선을 보내고 살며, 맑은 바람소리를 들으며, 탈속을 배우고 싶다. 도리행화가 한 철의 아릿다움을 뽑내지만, 옹이가 박히고 허리가 구부러진채 눈 속에서도 푸른 솔의 품성을 배우고 싶다.

 

 세상에 知音을 얻기란 어려운 일이라 한다. 버들과 소나무 둘만 있어도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매화도 사랑하고 난초도 좋아한다. 무릉도원의 대명사 복숭아나무도 참 좋은 나무이다. 광화문 앞 은행나무 낙엽도 얼마나 은은한가. 그러나 나는 가장 먼저 버들과 솔, 둘부터 내 초당 앞 뒤에 심고 싶다. 소나무는 제갈양의 사당 앞에 무성한 잣나무처럼 항상 나에게 절개를 일러줄 것이다. 버들은 나의 젊은 시절 고독과 낭만을 항상 회상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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