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환 선생님 전
지난 토요일 모임에서 만나뵈서 영광 입니다.
문학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이끄시는 모습 존경스러웠습니다.
저를 소개하는 의미에서 이미 잡지에 발표한 수필 3편과 미발표 수필 1편 보냅니다.
미발표 수필은 귀지에 실리는 영광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선에 대한 저술을 하신다니 너무나 좋은 분을 만나뵈어 기뻤습니다.
요즘은 서구인들이 선에 대한 관심이 많은듯 합니다.
해외 석학들의 선에 대한 이론들을 간략히 소개해주시면 더욱 좋을듯 합니다.
지하철 속의 아베마리아/수필문학 2014년 1월호 게재
노년이 되어 '지공도사' 되면서 나는 옆이나 앞 사람들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젊음 넘치는 여인, 양복차림 청년, 등산복 차림 사람, 흰머리 노인까지 찬찬히 살펴본다. 젊은 날에는 여인을 용모로 판단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인의 심성을 중요하게 여겨 눈빛을 본다. 양복 차림 청년들은 젊은 시절 나의 직장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등산복 차림은 산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던 날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산 후 목로주점의 막걸리를 생각하게 한다. 머리 하얀 노인들은 내 친구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병원 다녀온 이야기, 재산보다 건강이 제일이라는 이야길 자주 한다. 지하철 속에선 천진난만 천사같은 어린아이도, 세상에 찌든 험상궂은 얼굴도 볼 수 있다. 젊거나 늙었거나 여성이거나 남성이거나 악인 혹은 선인이거나 지하철에 모두 타고 있다.
그 북적거리는 인파 속 저멀리서 고요히 아베마리아가 들려왔다. 가만히 그쪽을 주시해보니, 한 손에 지팡이 짚고, 한 손에 동냥 바구니 든 걸인이 걸어온다. 그의 어깨에 멘 카셑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는 오십대 중반 장님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에서 적지않는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그의 감은 눈은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롭고, 몸가짐도 그랬다. 인파 속을 혼자 걸어오는 그 모습은 마치 수행자의 걸음걸이 같았다.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자의 겸허함을 지니고 있었다. 재물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을 포기한 평화가 그의 주변을 감돌고 있었다. 버릴려야 버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그런데 가난의 푸른 파도는 얼마나 그의 마음을 오래 동안 씻고 또 씻었을까. 그리고 마침내 그의 얼굴을 저처럼 평화롭게 만들었을까.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의 얼굴, 탁발하는 부처님 모습이 저랬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 모습은, 수행한다고 절이나 수도원으로 뛰어다닌다고 되어지는 얼굴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재물이나 명예 근처에 얼씬거리는 그런 얼굴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욕망의 사슬을 벗어난 자의 얼굴이었다. 그 모습은 지하철 속의 한 폭 성화같이 보였다.
그가 들려준 음악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베 마리아'는 원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기도문이다. ‘아베(Ave)’란 ‘경축하다’, ‘인사하며 맞아들이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다. 아베마리아는 성모님을 맞아서 기도하는 노래다. 누가복음 1장 28절과 1장 42절의 두 경축구절을 합한 것이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가서 말 했다고 한다.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그가 들려준 '아베마리아'는 슈벨트나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어떤 아베마리아였다. 그 성스런 음악을 성당이나 교회 아닌 도심의 인파 속에서 들려준 그는 누구였을까.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나는 참으로 평화롭고 성스러운 신의 은총을, 한 가난한 걸인의 모습에서 보았다.
나는 산수화를 좋아하여, 자주 이 책을 보면서, 산수화 이론과 수필 작법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그릴 때 대상이 있듯이 수필을 쓸 때도 대상이 있다.우선 화가는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가. 회화 육법(六法)부터 살펴보자. 1.氣韻生動(기운생동) 2.骨法用筆(골법용필) 3.應物象形(응물상형) 4.髓類賦綵(수류부채) 5.經營位置(경영위치) 6.傳模移寫(전모이사) 등이다. 이 여섯가지 법은 그대로 수필 이론으로 참고해도 무방할 것 같다.
기운이 생동하지 않는 글은 죽은 글이다. 대채로 문인은 대상을 글로 절실히 표현하고는 싶어하지만, 화가처럼 대상의 형태나 색채, 음영, 장면 묘사를 그림으로 선명하게 그려내놓지 못한다. 나무를 그냥 나무, 구름을 그냥 구름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호랑이를 그리면서 대충 고양이 하나 그려놓고 넘어가는 셈이다. 이런 글은 생동감이 없다. 반면 화가는 나무를 예로 들면, 언덕에 비스듬히 선 나무, 햇볕에 빤작빤작 잎이 빛나는 나무를 그린다. 나무의 그늘까지 그린다. 바위를 안고 돌아나간 뿌리까지 구체적으로 그린다. 구름도 마찬가지다. 각종 색깔과 미묘한 음영의 차이까지 노심초사해서 그린다. 그냥 구름만 그리지 않고, 산마루, 바다, 들판까지 그려서 분위기를 살린다. 자연을 아름답게 생동감있게 표현함이, 양자 모두의 당연한 의무이지만, 기운생동이란 이 말은 수필가가 반드시 유념해야할 말이다.
그 다음 골법 용필이란 것은 무엇인가. 작가에게 문체를 어떻게 구사해야하는가를 말해주는 것 같다. 헤밍웨이처럼 짧은 하드보일드 문체로 쓰느냐, 임어당처럼 해학과 유머를 풍부하게 구사하며 능걸맞게 쓰느냐, 소동파나 왕휘지처럼 풍류 가득하게 쓰느냐, 모파쌍의 스승 풀르베르처럼 정확성 위주로 쓰느냐, 그림을 어떤 터치를 할 것인가. 이것이 그림에서의 골법 용필법인 것 같다.동양화에서 골법은 단지 붓을 사용해 그려진 선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수필도 마찬가지다. 단어 하나하나가 단순히 그냥 거기 갖다놓여진 활자여서는 않된다. 응물상형은 형의 사실성을 말한다. 소조(蕭照)는 즐기어 기봉(奇峰) 괴석(怪石)을 그렸는데, 그것을 바라보면, 큰 파도가 솟아오르고, 구름이 모여들며, 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세가 있었다. 운림(雲林)의 산 그림은 필(筆)이 아니간 데에도 화(畵)가 있었고, 황공망(黃公望)의 산수화 용필은 직선 중에 굴절(屈折)이 있어서, 일필(一筆) 중에 억양 변화가 있었다. 오도현(吳道玄)이 물을 그리면, 밤새도록 물소리가 났다고 하는데, 이것은 다만 물을 그릴 뿐이 아니라, 능히 바람을 그렸기 때문이다. 문장을 읽으면 그림이 안전에 나타나야 하고, 물소리 바람소리가 들려와야 된다. 단어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을 품어야 한다. 평소 이런 심정으로 이렇게 부단히 노력해야 수필의 진수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수류부채는 색의 사실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글에도 색깔이 있다. 감성적인 글, 지적인 글, 건조한 글, 간결한 글, 화려한 글이 있다. 이런 글들은 각각 다른 색깔을 나타낸다. 작품의 내면적 감성과 정서와 분위기를 형성한다. 경영위치는 구도가 적절해야 함을 말한다. 전후좌우 배치, 시작과 끝맺음의 자연스런 귀결이 글의 맛과 품격을 높여줌은 말 할 것도 없다. 전모이사는 화가의 기능연습으로 또는 전통의 체험으로서 고대의 명화를 모사할 것을 장려한 규칙이다. 수필가도 명품을 많이 읽고, 느끼고, 습작을 많이 해봐야 함은 말해준다.
먼저 회화 육법(六法)에서 수필가가 배워야 할 점을 간추려 보았다.
<11 >
'기운이 생동하여 천품(天稟)에서 나오고, 그 교묘한 것을 다른 사람이 배울 수 없는 것을 신품(神品)이라고 하고, 필세(筆勢)와 묵색(墨色)이 탁월하며 채색하는 법이 알맞음을 얻어 여운이 있는 것을 묘품(妙品)이라고 하고, 그림이 그 물형(物形)과 같고, 법식에 틀리지 않음을 능품(能品)이라고 한다. 이 삼계급의 구별은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 어디에도 잘 들어 맞을 것이다.
붓을 회롱한다고 다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쓴다고 모두 신품이나 묘품이나 능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높은 경지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패문재서화보'에는 산수화가(山水畵家)가 그림을 그릴 때 피해야 할 12가지가 있다.<회종(繪宗)12기(忌)>.
구도가 몹시 혼잡한 것을 꺼리고<포치박새( 布置迫塞 )>, 먼데도 가까운 데도 한 모양으로 구별이 없음을 꺼리고<원근불분( 遠近不分 )>, 산과 산에 연속되는 기맥이 없이 산산히 떨어짐을 꺼리고<산무기맥( 山無氣脈 )>, 물에 수원과 하류와의 구별이 없음을 꺼리고<수무원류( 水無源流 )>, 경치에 평탄한 데와 험조(險阻) 한 데의 구별이 없을을 꺼리고<경무이험( 境無夷險 )>, 도로에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곳이 없는 것을 끼리고(숲에 가리운 낭떠러지를 보이게도 하여, 단속(斷續)의 정취가 있는 것을 좋게 여긴다는 것), <노무출입( 路無出入 )>, 돌이 입체적이지 못하고 한 면만 보이고 있는 것을 꺼리고<석지일면( 石止一面 )>, 수목이 사방으로 나아간 가지가 없음을 꺼리고<수소사지( 樹少四枝 )>, 인물은 고사 일인(逸人)을 생각하게 하고 천격이 됨을 꺼리고<인물구루( 人物 傴僂)>, 누각은 규구(規矩)가 바르지 않을을 꺼리고<누각착잡( 樓閣錯雜 )>, 햇무리 달무리같은 훈(暈)의 농담(濃淡)이 잘 맞지 않음을 꺼리고<농담실의(濃淡失宜)>, 점태(點苔) 와 채색이 법식에 맞지 않음을 꺼린다<점염무법( 點染無法 )>고 하였다.
(*이 글은 원(元)나라 요자연(饒自然)의 설이라는 판본도 있다.)
이 기피 사항들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화법상의 법칙이다. 이것을 깨고, 또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그린 화가도 얼마든지 있었다. 대체로 특출한 천재 화가는 처음에 배운 화법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인 화법(畵法 )을 스스로 만들었다.
어쨌던 그림과 마찬가지로 수필도 꺼려야 할 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구도가 혼잡하거나, 글의 연속성과 맥이 산산이 떨어져 있거나, 글이 입체적이지 못하여 너무 평이 하거나, 소재가 천격이고 고아한 맛이 없거나, 기량이 떨어진 문장은 당연히 꺼리는 대상이 될 것이다. 소식(蘇軾, 1036~1101)은 왕유(王維)의 시와 그림을 보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라고 평하였다. 마음 속에 시가 있은 연후에라야 이런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작가 마음 속에 먼저 시가 없다면, 아무리 문장을 다듬어본들 무엇 하겠는가. 헛수고일 것이다. 서예가인 지영(智永) 스님은 글씨를 배우는데, 붓의 털이 닳아 못쓰게 된 것이 열 독이 넘었다고 한다. 이것을 땅에 묻고 이름하여 퇴필총(退筆塚)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붓 하나를 털이 닳아 못쓰게 되려면 수천번 수만번 사용했을 것이다. 그 붓을 담은 독이 열 독을 넘었다니, 지영 스님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알 수 있다. 글 쓰는 사람이 옷깃을 가다듬고 마음 속으로 새겨두어야 할 전례다.
산수화 화법과 수필 작법/ 수필문학 2013년 5월호 게재
산수화 이론을 보면, 산을 그린다고 눈에 보인대로 다 그린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산에는 삼원(三遠)이 있다. 밑에서 꼭대기를 쳐다보는 것을 고원(高遠)이라 하고, 앞에서 산의 뒤쪽을 미루어 보는 것을 심원(深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을 평원(平遠)이라 한다. 고원의 기세는 돌올(突兀)하게 솟아 청명한 것을 폭포를 그려놓아 표현하고, 심원의 뜻은 산 밖의 산들이 중첩한 것인데 구름을 그려 넣어 표현하고, 평원의 운치는 표묘(縹緲)한 데 있어 역시 안개나 구름을 그린다.'
산을 바라보는 안목을 말해주고 있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눈에 보인대로 그린다고 그림이 아니며, 쓴다고 다 글이 아니다. 그림도 글도 먼저 사물을 바라보는 깊은 안목이 있은 연후에 가능함을 느끼게 한다.
'고인(古人)은 좋은 산이 있어도 좋은 로(路)가 없다고 하였다. 길은 산이 좋게 되느냐 나쁘게 되느냐의 분계를 짓는 중요한 것이다. 산길은 그윽한 은자가 산에 숨어 살고 있음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길은 구불구불 굽이굽이 숨었다가 보였다가 해야한다, 톱니처럼 삐쭉비쭉 해서도 안되고, 꼿꼿이 죽은 뱀처럼 그려서도 안된다. 구름은 산천에 비단 수를 입히고, 청청한 산은 더욱 한가롭게 하는 것인데, 산에 문득 백운이 가로질러 걸리어서, 층을 이루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흥을 더욱 솟구치게 한다. 그래서 산은 운산(雲山), 물을 운수(雲水)라 부르는 것이다.'
산길을 그림에 은자가 숨어 살고 있음을 암시하는 산길, 살짝 제멋대로 곁가지 나가는 산길의 자유분방함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고, 구름을 그림에 산에 비단 옷 입히는 구름, 산을 더욱 청정하게 하는 구름의 한가함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런 산길과 구름의 태(態)를 얻어와야 비로서 산수화에 격조가 묻어나오는 것이다.
'산을 봄에 있어서 주산(主山)은 높이 솟아야 좋고, 구불구불 연락되어야 좋고, 훤하게 트이어 널찍해야 좋고, 옹골차게 두툼해야 좋고, 세(勢)가 우람한 기상이 있어야 좋다. 위에는 덮은 데가 있고, 아래는 그것을 받드는 데가 있으며, 앞에는 손잡아 주는 데가 있으며, 뒤에는 의지되는 데가 있어, 산의 혈맥이 통하여야 한다.'
산 그리는 방법이 마치 수필 다듬는 과정같다. 구성면에서 본다면 글이나 그림 모두 공동 운명체인지 모른다. 무턱대고 그린 그림은 앞뒤가 혼잡하여 오직 답답할 뿐이다. 주제가 무엇이고, 연결이 무엇인지가 뚜렷해야 한다. 글맛의 변화도 논해주고 있다. 때에 따라서 은은한 시적 분위기도 있어야겠고, 올골차고 두툼하고, 우람한 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글귀는 때론 중첩으로 서로 덮어주고, 때론 아래서 받들어주고, 앞에서 손잡아 주고, 뒤에서 의지해주어 혈맥이 통해야 한다.
마힐(摩詰)은 '산을 그리는 법에는, 먼저 기상(氣象)을 살피고, 청탁(淸濁)을 분변하고, 주빈(主賓)의 조읍(朝揖)을 정하고, 군봉(群峰)의 위의(威儀)를 차리는데, 많으면 난(亂)하고, 적으면 엉성(慢)하다' 하였다.
마힐(摩詰)의 설은 수필가에게 좋은 참고가 되지만, 특히 마지막 구절, "많으면 난(亂)하고, 적으면 엉성(慢)하다'는 대목이 백미이다. 이처럼 산수화에는 법이 있음을 귀히 여긴다. 그러나 때로는 법이 없음을 귀히 여기기도 하여, 궁극에는 유법(有法)의 극치에서, 다시 무법(無法)으로 돌아간다.
'송(宋)나라 종병(宗炳)이라는 사람은 늙고 병들면 명산을 두루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노년에 누워서 보기 위하여 유람했던 곳을 모두 그림으로 그려 방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은일고사들이 이런 경우가 많았다. 도연명의 은거를 꿈꾸는 사람은 귀거래도(歸去來圖)를 걸어놓았고, 왕유 같은 별서(別墅)를 꾸미고 살고싶은 사람은 망천도(輞川圖)를 걸어놓았으며, 왕휘지처럼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워 시를 짓고 싶으면, 난정(蘭亭)을 그린 그림을 구해와서 완상하였다. 조선 초기 채수(蔡壽)라는 사람은 집에 돌로 만든 인공 석가산(石假山)을 만들었는데, 산은 높이가 5척이고 둘레가 7척이며 폭포는 2척 남짓이고 나무는 4~5촌이었다. 사람 키만 한 높이의 석가산에 조그만 나무를 심었고, 특히 대통을 이용해 물길을 땅속으로 끌어와서 갑자기 연못 한가운데 있는 석가산 꼭대기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게 하였다.'
이렇게 사람이 산수를 완상하는 데도 나름대로 보이지않는 법식이 있었다. 이런 법식과 안묵이 없이 수필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수필가가 철학자가 되어 인생을 관조할 수 있거나, 시인이 되어 시어(詩語)로 인생의 희노애락을 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필가가 필력이 약하여 주변 일상을 보고서나 일기장처럼 써놓는 일은 피해야 한다. 기험(奇險)과 신기(神氣)가 없어 답답하고, 고졸한 아취가 부족하여 취할 바가 못된다.
산중의 은자(隱者)는 반드시 그 마루와 안방을 들어가 본 뒤에 그 유정한적(幽靜閒寂)한 취(趣)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문에 들어가는 길에서 벌써 바라만 보아도, 도덕 높은 사람의 집임을 알게 되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흠모(欽慕)의 느낌을 일으킬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수필도 첫 일필(一筆)에서 벌써, 필외(筆外)의 뜻(意)이 나타나, 첫구절을 읽으면 먼저 인물의 맑기가 학(鶴)과 같은 사람이 보여야 한다.
도연명이 '밝은 달 아래 호미 메고 돌아오거나',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면서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는' 모습, 마힐(摩詰)이 '우연히 이웃 동네의 수척한 노인네를 만나 담소하다가 돌아갈 줄을 모르는' 모습, 이태백이 '두사람이 술을 대작하매, 산꽃이 피어나는' 운치, 두보가 ' 맑은 날 창 아래서 들에 숨은 고사(高士)의 시편(詩篇)을 점 찍어 가면서 읽는', 그런 모습이 보여야 한다. 개자원 화보를 보면 고사들의 이런 모습을 논하고 있다. 명아주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여 샘물 소리를 듣는 모습, 천기 화창한 날에 피리 불거나, 거문고 타는 모습, 독좌(獨坐)하여 산밭에 핀 복숭아꽃을 보거나, 비 젖은 갈대 사립문에 핀 찔레꽃을 바라보는 모습, 달 밝은 물가 누각에 찾아가 시원한 바람을 쐬며 차를 다리는 모습, 나귀를 타고가며 시를 구상하는 모습, 갈대 우거진 곳에서 혼자 노를 젖는 모습, 비 개인 들판에 선 무지개를 바라보는 모습, 물 맑은 산골짜기에서 혼자 발을 씻는 모습이다. 이것이 동양 선비들이 수백년 추구해온 자연관이자 인생관 이다. 철학이자 격조이다.
요즘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곤 하나, 상기한 자연관, 인생관, 격조의 맥을 잇지못하고 망각되어 사라지고 있음은 슬픈 일이다. 수필가들이 그냥 시정(市井)의 기(氣)만 잔뜩 느끼게하는 글, 어디 해외 여행 다녀왔다는 천박한 자랑 글, 일상사를 지루하게 쓴 글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고 민망스럽다. 이리도 소재가 빈약하고, 격조가 없고, 운치를 모르고, 쓸 것에 궁핍한가 싶다.
소재를 찾으려면 조금이라도 짬을 내어 고금의 문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글 중의 보배를 추려놓은 고문진보(古文眞寶)란 책을 보면, 애국충정 표본이라할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가 있고, 고고한 절개를 읊은 굴원의 어부사(漁父辭)가 있고, 천하미인 양귀비를 읊은 백락천의 장한가(長恨歌 )가 있고, 선비를 논한 도연명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이 있고, 천하를 통일한 한고조의 대풍가(大風歌)가 있고, 학문을 권하는 진종(眞宗)황제의 권학문(勸學問)이 있다. 대개 이들 사(辭), 부(賦), 설(說), 론(論), 서(書), 표(表), 서(序), 기(記), 잠(箴), 명(銘), 문(文), 송(頌), 전(傳), 비(碑), 변(辯), 가(歌), 행(行), 곡(曲) 등은 전부가 수필인 것이다. 수필의 소재는 무궁무궁한 것이다. 이를 모르고, 현재 이름 있는 시인 소설가들은 물론, 수필가 자신들까지 합세해서 수필을 좁게 옭아맨다. 기껒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플라톤의 <대화편>, 몽테뉴의 <수상록(隨想錄)>, 루소, 찰스램, 프란시스 베이컨이 수필의 원조인양 치켜세운다. 이제현의 <역옹패설>은 설(說)이 아니고, 연암의 <열하일기>는 기(記) 아니던가. 역시 홍매(洪邁)의 <용재수필(容齋隋筆)> 은 수필이 아니던가. 시와 함께 가장 오래된 족보를 가진 수필을, 문학 장르 중에서 가장 늦게 탄생한 막둥이인양, 함부러 치부하는 현세태를 보면, 고소를 금할 수 없다.
나애심과 송민도 /미발표 원고
요즘 우리나라 젊은 가수들이 한류니 뭐니 하면서, 세계를 누빈다. 노년인 나로서는 젊은이들의 노래가 어느 수준인지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나 <K-POP>이니, <소녀시대>니, <비>니 하는 가수들이 중국을 위시한 동남아 베트남 태국 일본에선 인기 스타인 모양이다. 프랑스 영국 등 구라파, 미국과 브라질같은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그들이 파리나 런던 뉴욕 공항에 나타나면 금발의 백인 청춘들이 꺅꺅 기성을 지르며 아우성치는 뉴스가 나온다. 40여년 전 클립리쳐드 내한공연 때 생각난다. 그때 우리도 지금은 할머니가 된 동방예의지국의 여대생들이 챙피한 줄 모르고 팬티나 브라지어까지 벗어 던지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최근엔 싸이가 <강남스타일>이란 풀래시 한방으로 세계적인 홈런을 쳤다. 요즘엔 흉내 귀신인 일본에선 짝퉁 한류까지 생겼다고 한다. 음악 때문에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얼마나 올라갔는지는 불언가지(不言可知)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런 놀라운 끼를 숨기고 있었을까. 이쯤에서 우리 가요사 족보를 한번 뒤적거려볼 필요가 있다. 세계가 우리의 끼에 놀라는데, 우리만 서산 마애불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프랑스에 샹숑이 있고, 이태리에 칸쇼네가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 탱고가 있고, 우리나라엔 트롯트가 있다. 미국엔 휘트니휴스턴이 있고, 프랑스엔 이베트지로가 있다. 우리나라엔 나애심 송민도가 있다. 한류는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닐 터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젓가락 장단 두들기며 양은 주전자를 기울려 막걸리 따르며 부르던, 옛노래를 만날 수 있다. 이것이 한류의 원류이다.
나는 고향이 진주라서 '가요계의 황제' 남인수 노래를 좋아한다. 그의 <애수의 소야곡> <추억의 소야곡>이 내 노래방 십팔번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