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소리
'가을 입니다.'
분재 물 주러 나가니, 주먹덩이만한 대봉시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건다. 감의 끝 부분은 잘 익은 투명한 선홍색이고, 그 아래 도톰한 부분은 주황색이니 아직은 떫겠다. 감나무는 가을이 온 걸 서둘러 알리려, 어제 밤 내 뜰에 툭! 하나 던진 모양이다. 좀 있으면 만산홍엽 단풍들 것이다. 그 이전에 먼저 선수쳤다. 어쨌던 시각적으로 가을을 느끼게 한다. 하얀 접시에 담은 주홍빛이 곱다. 가을과의 첫 조우를 거실에 가져다놓았다. 뒷마당 커다란 감나무도 가지 휘도록 감을 달아, 앞 마당 뒷마당이 과수원이다.
국화 물 주며 가을 향기 맡는다. 상인들이 키운 국화는 이미 만개했는데, 마당의 국화는 몽오리 상태다.그러나 마당에서 키운 놈의 향을 당하랴. 물뿌리로 물 주며 쌉싸롬한 국화 향을 맡는다. 늦여름 장미 몇송이 피어있다. 지면서 더 고운 장미는 여인같다. 아련히 지난 여름을 추억케 한다. 국화는 반대로 닥아올 가을을 예고한다. 장미와 국화는 가고 오는 계절의 프랫홈에 둘이 나란히 서있다. 자세는 서로 다르다. 하나는 손 흔들고 쓸쓸히 떠나고, 하나는 손 흔들고 싱싱하게 닥아온다. 연분홍 앵두,노란 원추리꽃 지고, 하얀 구절초가 피었다. 한여름에 스쳐간 사람, 가을에 올 사람을 꽃처럼 그려본다. 모든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하는 것. 모든 온 것은 갈 것이다.
추석 앞 둔 달이 밝다. 휘황한 달빛 뜰에 앉아 차를 마신다. 달은 소나무 가지 위로 홀로 지나간다. 차는 구절초 차. 가을이 시가 되어 구절초 향을 휘젖는다. 차가운 달빛은 찻잔에 비치고, 하얀 꽃잎은 찻물에 젖어있다. 은하수 별빛은 백자 위로 쏟아진다.
적막한 뜰 푸른 이끼 아래 귀뚜라미 소리 들린다. 시각적 가을이 단풍이면, 후각적 가을은 국향이고, 청각적 가을은 귀뚜라미 울음이다. 고요와 적막 버무려 저렇게 슬피운다.
오는 사람 드물고 찾을 사람 드물다. 우는 것이 가을 귀두라미 뿐이랴. 코스모스 향 그윽한 먼 산골에 숨었을까. 호숫가 외딴 집에 그가 살고있을까. 가을 바람 따라 정처없이 그를 찾아 떠나고 싶어진다. 가을이 오는 소리는 바이올린 현처럼 감미로우면서도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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