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자책· 수필

가을이 오는 소리

김현거사 2012. 11. 29. 08:32

가을이 오는 소리

 

'가을 입니다.'

 분재 물 주러 나가니, 주먹덩이만한 대봉시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건다. 감의 끝 부분은 잘 익은 투명한 선홍색이고, 그 아래 도톰한 부분은 주황색이니 아직은 떫겠다. 감나무는 가을이 온 걸 서둘러 알리려, 어제 밤 내 뜰에 툭! 하나 던진 모양이다. 좀 있으면 만산홍엽 단풍들 것이다. 그 이전에 먼저 선수쳤다. 어쨌던 시각적으로 가을을 느끼게 한다. 하얀 접시에 담은 주홍빛이 곱다. 가을과의 첫 조우를 거실에 가져다놓았다. 뒷마당 커다란 감나무도 가지 휘도록 감을 달아, 앞 마당 뒷마당이 과수원이다.

 

국화 물 주며 가을 향기 맡는다. 상인들이 키운 국화는 이미 만개했는데, 마당의 국화는 몽오리 상태다.그러나 마당에서 키운 놈의 향을  당하랴. 물뿌리로 물 주며 쌉싸롬한 국화 향을 맡는다. 늦여름 장미 몇송이 피어있다. 지면서 더 고운 장미는 여인같다. 아련히 지난 여름을 추억케 한다. 국화는 반대로 닥아올 가을을 예고한다. 장미와 국화는 가고 오는 계절의 프랫홈에 둘이 나란히 서있다. 자세는 서로 다르다. 하나는 손 흔들고 쓸쓸히 떠나고, 하나는 손 흔들고 싱싱하게 닥아온다. 연분홍 앵두,노란 원추리꽃 지고, 하얀 구절초가 피었다. 한여름에 스쳐간 사람, 가을에 올 사람을 꽃처럼 그려본다. 모든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하는 것. 모든 온 것은 갈 것이다.

 

추석 앞 둔 달이 밝다. 휘황한 달빛 뜰에 앉아 차를 마신다. 달은 소나무 가지 위로 홀로 지나간다. 차는 구절초 차. 가을이 시가 되어 구절초 향을 휘젖는다. 차가운 달빛은 찻잔에 비치고, 하얀 꽃잎은 찻물에 젖어있다. 은하수 별빛은 백자 위로 쏟아진다.

 

적막한 뜰 푸른 이끼 아래 귀뚜라미 소리 들린다. 시각적 가을이 단풍이면, 후각적 가을은 국향이고, 청각적 가을은 귀뚜라미 울음이다. 고요와 적막 버무려 저렇게 슬피운다.

오는 사람 드물고 찾을 사람 드물다. 우는 것이 가을 귀두라미 뿐이랴. 코스모스 향 그윽한 먼 산골에 숨었을까. 호숫가 외딴 집에 그가 살고있을까. 가을 바람 따라 정처없이 그를 찾아 떠나고 싶어진다. 가을이 오는 소리는 바이올린 현처럼 감미로우면서도 애잔하다.

 

 
초영 09.10.01. 17:25
(손계숙) 참으로 멋진 수필 ! ... 대박입니다 ^^ <가을오는소리> 한 자락은 마음에 담고 , 또 한 자락은 현에 올려 가을이 전부 저물도록 ... 저도 오래오래 감상할까 합니다. 감미롭고 주옥같아 선배님의 수필방에, 이태백도 잠깐 ^^ ㅎㅎㅎ ... 하여, 이 가을 꽃향기가 예까지 진동하고. 선배님 명 수필에 休하며 다녀갑니다. 명절 잘 보내시어용 ^^
 
 
천성산 09.10.01. 16:43
이 가을에 내 잘 오르는 천성산 2봉을 다녀서 덕계방면으로 내려오면 거기 유난히 구절초가 많이 피어 발걸음을 붙듭니다. 그 구절초 김현거사에게 한 다발 안겨 볼까..... 꽃다발 안는건 싫지 않은 기분이 되겠지요
 
 
봉화 09.10.01. 17:46
거사님의 가을은 대단히 멋들어지군요 감미롭고 애잔한 가을이 오는소리 바이얼린 소리에 가슴은 녹고 아련한 그모습들 눈시울은 뜨겁고 꽃향기에 취하니 여기가 선경인지 ...거사님의 가을 선물 감사합니다 한가위 잘 보내세요 봉화
 
 
허나시스 09.10.02. 10:09
시각,청각, 후각을 동원한 가을수필 참 멋집니다
 
 
이영성 09.10.02. 10:21
기을이 시가되어 구절초 향을 휘젓는다. 라는 귀절이 내맘에 와닿는다. 늘 건강하게 감상에 감기걸리지 않게.
 
 
양동근 09.10.03. 13:19
가을이 오면 먼 길을 떠나고 싶어진다. 나그네 하룻밤에 귀뚜라미 섬돌에서 들리는 시각을 지금은 알 수 없으니.....
 
 
탁구짱 09.10.06. 07:43
거사야 ! 가기는 어딜 혼자 갈라카노... 내하고 같이 놀면 좋은데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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