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自畵像)
그는 평생 수천권 책을 읽었지만 심오한 사상을 가진 학자도 아니고, 글 쓰고 그림 그리기
좋아했지만 시인도 화가도 아니었다. 산사(山寺)의 독경(讀經) 소리를 좋아했지만 스님도
아니고,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했지만 꽃을 사랑하듯 했다.
그는 학자나 화가나 스님이 되려고 애초에 애태우거나 목표한 적도 없고 이룬 적도 없다.
유위(有爲)로 무위(無爲)를 덮으려하지 않았다.
지천명(知天命) 넘자, 오두미(五斗米)에 절요(折腰)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직장에서
나와 자유롭게 살았으며, 동기들 바둑 모임에 일주일에 한번만 나가서 즐기고 돌아올뿐,
도연명(陶淵明)처럼 청탁(淸濁)이 분명해 다른 사람과 함부로 어울리지 않았다.
명리(名利)는 뜬구름처럼 허망하다 했다. 권문세가(權門勢家)와 가까우려는 시속(時俗)
을 비웃고, 경조사(慶弔事)에 그들을 초대하지도 않고 그들이 초대해도 가지 않았다.
재물은 청빈(淸貧)을 멋으로 여겼다.
더 이상 구하지 않고, 무소유를 추구하였다. 지식을 앎도 덧없다 했다.
불립문자(不立文字)에 관심을 가졌으며, 시시한 세상사는 알 것 없다하여 신문은
별로 보지 않았다.
그의 피안(彼岸)은 청송백운간(靑松白雲間 )이었다. 산수(山水)가 경전(經典)보다 의미 깊다며
산에 들어가 계류(溪流)에 발 담그고 흰구름 구경하기를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였다. 시비(是非)
없는 자연을 인간세(人間世)로 옮겨, 빈천(貧賤)도 부처와 보살로 보려하였다.
집에 있을 때는 법(法)을 밖에서 구하려하지않아, 면벽(面壁) 스님처럼 외출을 삼가고 혼자 온종일
향 피우고 옛책 뒤적거리고, 분재(盆裁) 다도(茶道)를 즐기며 아무 일을 않고 시간 보내면서
싫증내지 않았으므로 아내의 크고작은 잔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계곡에 바위 있으면,물소리
나는 법이라'하였다.
그는 자신이 정말로 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름을 알았다. 그는 사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름을 알았다. 선악(善惡)이 없음을 알았고 모든 것이 변함을 알았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관이 시행착오임을 알았다.
스스로 재주 없음을 인정하여, 평생 이름없는 삼류 신문기자와 회사대표와 대학교수로 만족하다가
말년에 아리수 상류 토평(土平)으로 찾아가 숨었으니,그는 누구인가? 호(號)가 청광(淸狂)이니,
그 뜻은 '미치되 맑게 미쳤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