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예정 글

목단꽃

김현거사 2012. 8. 5. 14:40

 

      모란꽃                                                                                                      

                                                                                                                       김창현

      

 모란꽃 피는 5월이다. 얇은 세모시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것이 모란 꽃잎이다. 한지 주름 방금 다림질한 것 같은 것이 모란 꽃잎 이다.  금분(金粉)에 용뇌향 사향을 섞은 듯 형언하기 어려운 향기를 풍기는 것이 모란 꽃술이다.

 이 모란이 비 개인 아침 푸른 잎새 너울너울 손짓하며 나를 정원으로 불러낸다. 아마 자신의  화려한 꽃빛과 고귀한 향기 배관하라는 모양이다. 

 그래 맑은 바람 청정한 아침에 모란 앞에 서면, 과연 머리 위에 봉황과 용을 새긴 봉잠(鳳簪) 용잠(龍簪)을 꽃고, 금실에 곡옥(曲玉)을 단 사슴뿔 모양의 관(冠)을 쓰고, 시녀에게 일산(日傘) 받치게 하고 있는 모습이 계림(鷄林)의 여왕 모습 같다.

 

 흔히 모란을 화왕(花王)이라 부른다. 그래서 모란이 뜰에 나타나면, 모든 기화요초는 황실의 고귀한 품위 앞에 몸을 움츠리고 빛을 잃고 만다.  평소 기품있는 푸른 빛을 자랑하던 붓꽃이 제일 먼저 스스로 신하 자처하여 시녀인양 머리 조아리고 목단 발치에 엎드리고, 연분홍 소녀의 볼 같이 부드러운 복사꽃도 둘러리 되어 뒤로 한발짝 물러선다. 그 속에 농염한 자줏빛 속살을 비치어 사람들 주목을 받던 자목련도 얼굴을 붉히고 뜰 한 켠에 숨어버리고, 개나리 진달래 같은 속가(俗家) 미인들은 모란이 오기 전에 진작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모란의 빛과 자태만 아름다운게 아니라 향기도 특별하다.

 평소 난초가 맑음을 자랑하고, 오동이 격조를 자랑하고, 장미가 화려함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누가 순서 정해준 것도 아닌데, 달빛을 사향으로 버무린듯한 모란의 고귀한 향 앞에선 풀이 죽어 뒤로 물러서고 만다. 오직 이슬에  젖은 모란꽃 향내만 뜰을 적시고 사람의 오관을 적신다. 그 향은 사람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중풍이나 혈관계 질환을 고치는 사향처럼, 귀부인이 몸에 지닐 최상급 향이다. 감히 난초나 오동이나 장미의 향기와 비교할 수 없다.  

 

 당태종이 후사가 없는 선덕여왕을 비웃기 위해 꽃에 나비가 없는 목단꽃 그림과 목단씨 세 되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란에 향기가 없다는 이야기는 모란을 한번도 키워보지 못한 사람들 소리다. 모란은 일부 대형 품종을 제외하면 대부분 짙은 향내를 풍겨준다. 근거 없는 야사(野史)이지 싶다. 

 

 알다시피 당태종은 무경칠서(武經七書) 중 하나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라는 병법서를 저술한 사람이다. 병법서 첫머리에서 고구려 연개소문을 칠 방도를 싣고 있다. 그런 전략가가 원교근공지책(遠交近攻之策)이란 병법의 기초를 모를리 없다. 이세민은 패망한 수나라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또 동북아의 패권을 잡기 위해서, 등극하자말자 고구려 정벌을 획책했다. 그런 그가 진평왕의 딸로 16년간 여왕으로 재위하였고, 그의 첫째 동생 천명공주가 김춘추의 어머니인 선덕여왕을 비웃었다는 이야기는 사리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협공이 필요한 우방의 여왕이라서 선덕여왕에게, '모란처럼 아름다운 계림(鷄林)의 여왕이시여 이 모란을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라는 우호적인 서신을 첨부했을지 모른다.

 

 어쨌던 나는 전에 소주 항주 여행에서 모란 그림을 구해온 적 있다.  주렴계는 '애련설(愛蓮說)’에서 ‘당나라 이씨 왕조는 사람들이 심히 목단을 사랑하였다(自李唐來 世人甚愛牧丹 )’고 하였다. 당나라 때는 너도 나도  목단재배가 성행했던 것이다. 당 현종은 양귀비와 오븟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궁성 바깥에 침향정이란 별궁을 지어놓고, 틈만 나면 이곳으로 와 기거하면서 모란꽃을 감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이런 목단의 화려한 자태와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가끔 서라벌의 한 미인을 생각한다. 계림(鷄林)의 선덕여왕이다. 

 

그는 얼마나 고왔을까. 양귀비 같았을까.  서시 같았을까.이런 최상급 향기를 맡으며 나는 가끔 주변을 압도하는 목단의 자태와 향기 때문일 것이다. 옛부터 사람들은 그를 화왕(花王)이라 불렀다.   화가들은 즐겨 부귀목단도(富貴牧丹圖) 그렸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대개 필선이 운치있고, 구도와 색채가 완벽한 그림은 값이 고가라, 나같은 백면 서생이 얻어 감상하기에는 언감생심이라는 점이다. 대개 사람이 모두 감탄할 좋은 그림은 먼 곳에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면 다행인 것은 생물인 목단 묘목은 구하기 쉬운 점이다.

 그래 나는 살아있는 목단을 침실 앞에 서너 그루 심어놓고 5월을 보낸다. 이 목단 군식(群植)이 눈 앞에 생동감 있는 봉오리 모습, 활짝 꽃잎을 펼친 화려한 모습, 애처러운 낙화의 모습까지 생생히 보여준다. 그 뿐인가. 진동하는 향기가 바람 타고 침실로 마음대로 넘나든다. 새벽에 창을 열고 침실에 들어오는 진동하는 향기를 맡노라면, 백면서생은 그림 보다 실물을 선택한 안목에 스스로 만족해 할 수 있다.

 

  나는 목단의 화려한 자태와 그윽한 향기 맡으며, 가끔 서라벌의 한 미인을 생각한다. 계림(鷄林)의 선덕여왕이다. 그는 얼마나 고왔을까. 양귀비 같았을까.  서시 같았을까.

 이 아름다운 여왕에게 당태종은 목단꽃 그림과 목단씨 세 되를 보냈다. 주렴계가 '애련설(愛蓮說)’에서 ‘당나라 이씨 왕조는 사람들이 심히 목단을 사랑하였다(自李唐來 世人甚愛牧丹 )’고 썼으니, 당나라는 목단재배가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목단을 신라 여왕에게 선물한 것이다.

   

여하간 5월이 오면 나는 목단을 마주 한다. 화랑이 된다. 화랑처럼 목단꽃 여왕에게 사모와 충성, 두 마음을 바친다. 여왕은 햇빛에 빤짝빤짝 빛나는 수많은 곡옥을 단 사슴뿔 모양의 금관을 썼을 것이다. 무지개빛 허리띠를 치렁치렁 늘어뜨렸을 것이다. 옷자락이 목단 꽃잎처럼 얇은 한지 주름을 금방 다림질한듯 고왔을 것이다. 몸에선 매화향 용뇌향 사향을 섞은 것 같은 향내가 났을 것이다. 나는 여왕의 눈빛과 걸음걸이까지 생각해본다. 그가 젊은 화랑에게 던지는 향기로운 목소리, 신비로운 미소까지 상상해본다. 나는 뜰의 목단 앞에 서면, 천년 전 사람이 된다. 아름다운 여왕 앞에 무릅 끓고 배례하는 신라의 화랑이 된다.그  앞에 날더러 무릅 꿇고 배례하라는 모양이다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이란 유명한 한약에 이 모란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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