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예정 글

봄비 내리면

김현거사 2012. 8. 5. 15:16

봄비 내리면(2)

 

 봄비는 동토를 해갈해주고 초목에 윤끼를 입히는 비다. 봄비가 땅을 적시는 것을 보면 마음까지 씻어지는 느낌이다. 나무의 목마름을 해갈해주는 빗소리는 듣기조차 반갑다.비는 만물에 생기를 주는 보약이다.

  비가 오면 딸기잎에 맺힌 이슬이 은구슬인양 빤짝인다.그 맑음이 보석보다 영롱하다. 딸기꽃도 새삼 그처럼  희고 순결할 수 없다. 비에 젖은 딸기 잎에 맺힌 보석같이 영롱한 은구슬을 보느라면 우리가 금은방에 서 저런 싱그러운 구슬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인다.봄비는 평범한 초목을 감동의 대상으로 만드는 연출자다.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하는 작가다.저 하얀 꽃 지고나면 먹음직한 붉은 딸기가 열릴 것이다.손녀가 앙징스런 귀여운 손으로 딸기를 따려고 아장아장 그 옆으로 걸어갈 것이다.아직 어려서 말도 서툰 손녀가 딸기를 가리키며 웃거나 까르르 기성을 내지를 것이다.그건 분명 기쁨의 표시일 것이다.할아버지를 돌아보며 미소도 보낼 것이다. 그런 행동을 상상만 해도 즐급다.  

 비 맞은 이끼빛도 정말 근사하다.젖은 이끼는 비로드보다 곱다.그 위에 점점이 떨어진 앵두나 벚꽃의 낙화는 부드럽고 애처롭다.깔끔한 수채화를 그린듯 하다. 녹색 이끼 위에 떨어진 낙화는 기모노에 수놓인 꽃그림 같다. 이끼가 잘 자라는 땅을 나는 남몰래 그리워 해왔다.공기 맑은 곳 이끼가 싱싱하다.이끼 잘 자라는 땅은, 같은 꽃도 꽃빛이 더 선명하다.그래서 나는 항상 도심보다 산을 그리워 해왔다.내 평생의 원은 꽃빛이 가장 잘 살아나는 땅에서 원없이 화초를 깨끗이 가꿔보는 것이다.내심으로 가장 부러워 하는 사람은 물소리 맑은 청정 산속에서 기화요초 가꾸며 사는 사람이다.

 비 맞으며 올라오는 옥잠화 새촉도 기쁨이다. 잎이 주름치마처럼 접힌채 어린이 손바닥만하게 접혀 올라오는 것이 옥잠화다.그 위로 스치는 산들바람은 더없이 싱그럽다. 바람 타고 들려오는 새소리는 천상의 음악이다.새들은 인생의 환희를 노래하거나,아니면 신의 은총을 일깨워주는듯 하다.유심히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천지가 은총과 축복에 쌓였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성스러움까지 느껴진다. 감사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봄비는 땅의 새싹도 싱싱하게 키우지만 나무도 마찬가지다.단비 맞은 싱그러운 가지들도 너무나 아름답다. 연분홍 벚꽃과 연록색 느티나무 부드러운 잎새가 얽혀서 만드는 하모니는 차라리 하나의 완벽한 예술이다.어떤 화가가 그런 섬세한 두 색의 조화를 그처럼 절묘하게 표현해낼 수 있겠는가. 나는 보이지않는 곳에서 말없이 완벽한 색의 배합을 보여주는 신의 손길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겸손해진다.어떤 유화에서도 맛보지못한 강렬한 예술적 감흥을 느낀다. 신을 찬미하고픈 성스러운 마음까지 느낀다.

 봄비가 오고,꽃이 피고, 신록이 우거지고,새가 울고, 미풍이 불고,하늘이 청자빛으로 맑아지면, 지상이 천국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마음은 잠시 천사처럼 착해진다.누구에게 향기로운 장미꽃 한송이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 될 때도 있다. 신이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서로 질투하고 괴로워하고 고민하라고 보낸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겸허와 감사와 사랑의 낙원에 보낸 것이 확실하다.그래서 가끔 봄비 속에서 화초를 돌보면서 가능한한 오래 뜰에 머문다.봄비는 신의 전령사일지 모른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 천국의 문 앞까지 데려다놓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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