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도 문교장님
봄바다의 큼직한 도다리 낚아 도다리쑥국 끓일까.참도미 잡아 도미 대가리 양념구이 해먹을까.향남동 <통영맛집> 멍게비빔밥은 얼마나 향긋할까.
이런 생각하며 서울서 7시간 승용차 몰고 통영으로 갔다.삼덕항에서 욕지도행 카페리 타니,섬 여기저기 산벚꽃 활짝 피고,초록 바다에 하얀 갈매기 나른다.
찾아간 문교장님 댁은 마당에 차 한대 겨우 주차할 수 있다.가파른 절벽 위 비둘기집 같다.진입 도로는 대밭과 만리향 팔손이나무 노나무 짙푸른 아열대 상록림 속을 통과하였다.차 한대 겨우 지날 아슬아슬한 길가엔 하얀 산딸기꽃 만발하였다.대숲엔 비단같은 산벚꽃이 바람에 날리고,손바닥만한 노란 유채밭엔 복숭아나무가 한그루 빠알간 꽃 흐드러지게 피웠다.오동처럼 큰 무화과나무가 솟은 절벽 아래 물 속이 환히 비치는 푸른 파도가 밀려와 암벽을 때린다.밤 되자 초생달 외로운 바다에 별처럼 등불 밝힌 배 물결에 흔들리고,처얼썩 파도소리는 가슴 후벼판다.새벽의 내초도 외초도 두 섬 전경은 한 폭 산수화같이 곱다.
욕지도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은퇴하여 풍광 좋은 곳에 초막 엮어 여생을 보내는 문교장님은 동행한 정총장님 제자이며 내 家兄의 진주고 동기이다.생전 낚싯대란 것을 손에 잡아본 일 없는 세 숙녀와 두 남자 손에 낚시대 쥐어주고 새우와 청갯지렁이 미끼 알뜰이 달아준다.가두리 양식장 근처 수심은 한 20미터 쯤 되는 모양이다.우럭이나 도다리 잡아올리는 손맛은 어떨까.도시분들은 평생 잊지못할 체험일 터이다.낚시란 기다림의 미학이 아니던가.‘앞 포구에 안개 걷히고 뒷 산에 해가 비친다.배 띄워라 배 띄워라 썰물은 거의 빠지고 밀물이 밀려온다.찌그덕 찌그덕 어기여차 강촌 온갖 꽃이 먼 빛으로 보니 더욱 좋다.’어부사시사도 읊어보고,밀려오는 파도에 흔들리며 숨 가다듬고 명상도 해보았다.
‘안선배님은 도다리한테 끌려 들어가겠소.한손으로 뱃전을 단디 잡으시지요’
‘아니 갈매기가 채 가버릴라,갈매기가 옆에 날아오면 뱃전에 납작 엎디려서 조심하소.’가날픈 여시인 놀려가며 무료한 시간 죽이는데,고기도 촌사람은 안다.문교장님은 600그람 정도의 도다리를 올렸으나 우리에겐 어신도 없다.고기가 애초 왕초보하고는 상대 않는 모양이다.
‘고기잡이가 이렇게 힘드니 앞으로 생선 드실 때마다 어부들의 노고를 알고나 묵읍시다.’
총장님 훈시가 나오고.
‘왔는갑다!’
첫 마수거리는 사모님.
‘뭔가 땡기는 데?’
두번째는 우리집 안사람.
‘걸렸다!’
세번째는 나.
첫째는 미역취,둘째는 노래미,세째는 우럭이다.그러나 아까운 것은 복어처럼 가시가 날카로운 미역취는 너무 작아 바다로 돌려보냈고,우럭도 동문.
‘저 고기는 아직도 안죽고 와 저리 푸덕거리노?’
요렇게 남이 낚은 노래미에 시비 거신 분.그리고 옆사람이 ‘뭔가 또 당긴다.’고 기대 걸면,‘아닐 거예요.’급히 바람을 빼던 분.그래놓고 핸드폰 울리자,‘언니가 지금 욕지도서 도다리 큰 거 잡았다.소문 좀 내어도라.’ 좌중으로 하여금 폭소를 금치못하게 하신 그 숙녀분이 누구신가?모 대학총장님 사모님이다.낚시하러 오면 숙녀도 이렇게 되시나보다.지구를 낚아서 낚시줄만 잃은 안시인은 그렇다치고,그런 손맛 근처도 구경 못하신 가장 불쌍한 분은 총장님이다.
배 위에 초장과 회칼도 있었지만 선상 파티는 생략되고,집으로 돌아와 교장선생님은 회를 뜨고 부인들은 생선을 구웠다.그리고 섬 구경하며 사진 찍으며 섬에서 이틀 자고,7시간 상경길에 오른 것이 이번 욕지도 여행이다.모르는 사람은 이런 낚시여행은 실패작이라 할 것이다.그러나 맑은 공기와 풍경 속 오가며 웃느라고 뱃속의 바람 몽땅 쏟은 여행,그리고 7순 제자와 노스승 간에 오간 사제간의 따뜻한 대화만으로도 이런 여행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떠나올 때 욕지도서 가장 통통한 도다리가 자동차 트렁크 아이스박스에 가득 채워졌다.교장선생님이 노스승 방문 전 3일간 잡은 어획물을 몽땅 실어준 것이다.파도소리 들리는 고독한 섬,뚝뚝 붉은 꽃 지는 동백이 지금도 눈에 떠오른다.(09년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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