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에 관한 글

소나무 분재

김현거사 2011. 11. 1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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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11-17 (07:14:42)
수정일
2008-11-17 (12: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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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일기(2)

 

가을 일기(2)

올해 수확은 좋은 소나무 분재를 세 개 만든 것이다.
직장 초년시절에 조계종 포교사 스님 책상 위에 놓인 하얀 풍란과 분재에 반하여 나도 풍난과 분재를 시작했다.
분재는 해인사 일주문이나 오대산 월정사 근처 老巨樹들이 지닌 천년풍상을 작은 화분에서 실현해보는 취미이다.
느티나무 소사나무는 수피에 주름잡힌 년륜 오래된 것이 좋고,단풍은 홍색 선명한 내장산 단풍이 좋고,
매화는 조춘에 얼음같이 차그운 향기 풍기는 설중매가 좋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나무 중의 나무는 소나무다.삼척이나 강릉의 세월이 갈수록 용트림한
기백이 웅장해지는 赤松,백설 만건곤한 설악동의 푸른 노송 자태를 옛 선비들은 잘 아신 것 같다.
그래 소나무 ‘松’자는,나무 ‘木’ 변에 특별히 ‘公’字가 붙어있다.공작은 왕이나 왕자 다음 가는 귀족이 아닌가.
나무 중 으뜸 家門이 소나무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품있고 신령스런 소나무 분재가 그림의 떡인 데 있다.나는 그동안 소나무 분재를
한편 원망스럽고 부러운 눈으로만 구경해왔다.대개 몇십에서 몇백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올 봄에 한 친구와 양재동 꽃시장에 가서,농장 흙이 묻은 까만 프라스틱 막화분에 담긴 밑둥 3쎈치
쯤의 개당 2만원 하는 소나무 소재들을 만났다.

그 정도 굵기면 금방 작품이 되기에,얼씨구나 반갑구나 네가 웬일이냐,그 소나무들 속에 들어가 요모조모
하나하나 아래 위 점검하고,심각히 옆에 것들과 비교한 끝에 두 점 차에 싣고 돌아왔다.연모하던 여인을 모셔옴이
이와 같으랴.집 베란다 탁자에 올려놓고 상머슴 과부 보쌈 해온듯 연신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마주 앉아 아랫도리 ?도리 손으로 더듬으며 나무 이모저모를 살피고 가지 방향도 미리 정해보았다.
하나는 용트림한 밑둥치와 가지 모두가 좋고,하나는 둥치는 좋으나 가지는 빈약했다.

당장 작업에 들어가 전정가위로 불필요한 군더더기 몇 개 잘라내고 구리철사 감으니 첫번째 소재는 금방 태가 난다.
속리산 정이품소나무처럼 단아한 삼각형 수형이 잡힌다.이 정도면 횡재한 것이다.절로 어깨춤 나왔다.
그러나 둘째는 어려웠다.밤 1시 넘도록 홀로 등불 아래 이쪽 저쪽 철사걸이 해보며 방향 잡아보고 휘어보고
풀어보며 꿍꿍대다가 결론을 못맺았다.근 일주일 구상해봤으나 부자연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여하튼 며칠 후,첫째를 분재화분에 올렸더니,오호라 나무가 마치 금방 화장한 여인처럼 한 맵시 더 난다.
단연 걸작이다.2만원에 들고온 소재가 20만원 짜리 작품처럼 된 것이다.이 쾌감은 분재 해보신 분들만 안다.
즉각 화분가게 찾아가 기와로 구운 고풍스런 화분을 또하나 골라왔다.그리고 둘째를 올렸는데,이건 또
연달아 그 무슨 복인가.
싸구려 프라스틱 화분에서 나무를 뽑자,거북 등같이 주먹덩이로 뭉친 뿌리가 나온다.
살짝 노출시켜 심은 이렇게 뿌리가 멋진 분재는 업계에서 보물덩이로 친다.명품 반열에 들려면
뿌리부터 이렇게 古態가 나야 하는 법이다.둘째는 그동안 흙 속에 남에게 보인 적 없는 비장의 무엇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나무 팔자 참 묘했다.그래서 첫째 둘째 분재의 서열은 즉각 바뀌고 말았다.

퇴계선생의 이런 시가 있다.

천년토록 늙지 않는 바위 위 소나무,솟구쳐 오른 용의 기세로다.
깍아지른 절벽서 자라나 하늘을 건드리고 봉우리를 눌렀지.
화려함이 본성을 해치길 바라지 않거늘,어찌 예쁘장한 도리화가 따르랴.
깊숙한 뿌리에 신령함 간직한채,추운 겨울 끝끝내 견디어 내네.
                                                             
귀한 소나무분재 두 점을 얻은 그 기쁨을 어떤 말로 표현하랴!수십년 양재동과 종로5가 꽃시장 다녔어도
이런 좋은 소나무 나오긴 처음이었다.마음이 근질근질하고 하도 즐거워서 며칠 뒤 혼자서 다시 한번
양재동엘 가지않을 수 없었다.
가보니 팔다 남은 시들한 것들만 남아있었다.그러나 간 김이었다.에따 모르겠다 둥치 굵은 것만 장점이고,
몸통을 비정상으로 너무 낮게 심하게 잘라버린데다 누가 봐도 불균형으로 보일만치 곁가지만 멋대로 키워,
필경 사람들이 거떨떠보지도 않아 남았으리라 짐작되는 한 점을 긴가민가 하면서 골라왔다.

그런데 못난 자식이 나중에 효자노릇 한다는 말 있다.집에 와서 가지 몇 개를  쳐내니,갑자기 퇴계 선생이
시에서 표현한 ‘깍아지른 절벽 위 천년 불로송’같은 소나무가 눈 앞에 떠억 버티고 서질 않는가.
형세 더 절박하고 용같은 기세로 사정없이 옆으로 뻗은 가지 더 신령스럽다.마치 설악산 공릉능선
암릉에서 절벽을 내려다보고 선 노송 같다.겹경사 난 것이다.이럴 수가 없었다.

꼴찌는 이래서 즉각 서열 첫째가 되었다.사람도 이런 경우 있으니,분재에서 인생사도 확인한 셈이었다.
여름은 세그루 소나무 통해서 나무나 사람이나 신세가 항상 변하고 바뀐다는 교훈을 남기고 갔다.
가을이 오자,나는 양재동 동행했던 친구를 불러 둘째를 선물했다.내킨 김에 그동안 아끼며 키운 석부작
홍단풍과 전에 키우던 소품 소나무는 다른 친구에게 각각 선물했다.
마음 참 후련하다.올해 농사 이만하면 잘 된 것이다. (08년 11월)

명상음악 '수룡음'
2008.11.17(08:16:22) 수정 삭제
김창현의 분재 취미를 보면서 한국의 자연미와 산수미를 떠올린다.
삶의 흥, 맛, 맛, 미를 이만큼 알고 누리는 이가 흔치 않을 것이다.
문학으로 구현되니 나같은 무지한 사람도 탄복하면서 즐거워할 수 있어 고맙다.

2008.11.17(10:23:52) 수정 삭제
"올해 농사 이만하면 잘 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ㅎㅎㅎㅎ

준재야 !
미국 뉴욕에 있는
브루클린식물원에 있는 ‘일본정원’이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구나.
특히 분재가...
http://photo-media.daum-img.net/200805/22/newsis/20080522085310.006.0.jpg

승구야 !
준재가 자네 아이디어  참 좋고
실현가능하다고 하니 실천에 옮겨보세 ㅎㅎㅎㅎ
그것 참 좋은 생각이야.
933 충분히 재능을 가지고있다.

2008.11.17(10:42:53) 수정 삭제
영숙이선생이 내가 쓴 글보다 더 좋은 분재 사진을 보여주네.고맙다.

2008.11.17(21:02:06) 수정 삭제
At Brooklyn Botanical Garden, they have good collection of Bonsai.
Some of them they got as presents from Japanese Government.
That's my favorite place to visit and it's nearby my office.

2008.11.18(07:42:28) 수정 삭제
소나무의 분재기술을 거사가 잘 한다니,과연 띵호,띵호!!
933우리님들의 숨은 갖가지 예술분야와 기술들을 총 집합하여
모교 강당을 빌어 전시회를 하면어떨까~??
회화과 문학, 국악모든영역에 걸쳐 `천에술제 간`이나,
모교 교장(진중, 진고)님과 총동창회에 협조를 얻어
졸업생 두를 망라하도 좋은 우리의 기상과 후배,재학생모두에게
뜻깊고 귀한 행사가 될것 같은데`````!!

2008.11.18(08:11:45) 수정 삭제
Why not, Seung-gu ya. It's wonderful idea.
933 has Enough Talent.
I can judge by reading articles on 933.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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