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아내란 존재는 무엇일까?

김현거사 2022. 5. 4. 20:32
아내란 존재는 무엇일까?

마침 맨해튼에서 의사로 있는 친구 메일에 여동생 이야기가 있길래 이런 답신을 보냈다. 그는 세 번 결혼에 실패한 친구다. 서울의대 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처음엔 상당한 재력가의 딸과 결혼했다. 같이 미국에 갈 때 그는 서울대에 남는 의사들보다 두 배나 많은 월급을 받았다. 그렇게 편안하게 살다가 몇 년 후 아내와 이혼했다. 두 번째는 미국 여자와 살았고, 세 번째는 한국 여자를 동행해서 조선호텔에서 나도 만났는데, 그와도 지금 헤어졌다고 들었다. 미국은 한번 이혼하면 자기 수입의 반을 처에게 지불해야 한다. 그래 이쪽 사정도 한번 털어놓아 보았다.

아내란 존재는 무엇일까? 80이면 終年에 가까우니 개년을 정리해놓아야 한다. 4월 26일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 일주일간 병간호를 마치고 아내와 집에 돌아왔다. 팔십 앞둔 노인이 병실에서 새우잠 자면서 환자 수발하는 일 힘들었다. 이젠 집에 왔으니 혈당 관리와 운동 관리를 내가 맡아서 돌봐야 한다. 어제 오후는 마트에 가서 두릅과 미나리를 사서 끓는 물에 데쳐놓고, 게도 한 마리 삶아 놓았다. 사과와 토마토 등 과일도 챙겨놓았다. 뇌경색은 후유증이 남는 병이라 관리 잘 해야한다.
아침에 TV에서 가리왕산에 10만 평의 땅을 사서 아내를 위한 기념 정원을 만든 사람이 있길래 같이 보자고 했더니, '당신은?' 화살을 내게 던진다. 그런 돈 없는 당신은 무능하단 뜻이다. 그러면서 과거 나의 죄목을 천천히 읊으면서 일깨워준다. 내 경우 아내는 영원한 비평가고 항상 싸우면서 살아온 존재였다. 어렵게 간병하고 집에 오자마자 이래서 몹씨 섭섭했지만, 한참 후 깨달았다. 그건 좋은 일이었다. 아내의 병을 혼자만 일방적으로 가슴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정을 떼어내는 점도 있어야 마음이 덜 아파진다. 
나는 산을 사진 못했다. 대신 70이 넘자 몸이 약한 아내는 큰 병을 두개나 넘었다. 폐암도 큰 병이고 뇌경색도 큰 병이다. 힘들어도 아내 간병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경상도 사람 사고방식이다. 안하던 일도 시작했다. 나는 마침 수필을 쓰는 작가다. 아내에 대한 글도 쓰고, 초상화도 그린다. 그 마음은 가리왕산에 10만 평 정원을 만든 사람과 같은 것이다.
아내
는 캠퍼스 시절 김지미를 닮은 미인이라, 나는 언감생심 생심도 내지 않았는데 졸업 후 우연히 연결되어 결혼했다. 
아내는 명동에서 태어나 덕수초등과 이화 여중고를 나와 고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작가들의 출발지인 <학원>에 시도 많이 실었고, 표지 모델도 했다. 대학교에서 발간한 잡지에도 관여했다. 나는 그를 68년에 처음 만났을 때 그와의 인연은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74년에 결혼했고, 나는 그를 이문동, 수유리, 창동같은 변두리만 데리고 다녔다. 아내는 평생 가진 것 없고, 성격 과격한 경상도 남자에게 시달렸을 것이다. 나로서는 간혹 마음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을 만났더라면 오순도순 좋았을 걸 하고 후회도 했다. 그러나 인생은 물릴 수 있는게 아니다.
아내
는 나와 학번이 같은 연극인 손숙씨 신세와 비슷했다. 나는 구박덩어리 였고, 박봉의 기자는 죄 없는 죄수였다. 그래 기업체 중역이 된 이후 20년간 사람 못할 일 했다. 흔히 재벌 비서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그만치 초인적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걸 뚝심으로 견디고 전라도 사람들만 근무하는 기업체 비서실장 자리를 차지한 것은 오로지 처자식 위한 집념이었다. 그 이후 나는 강남의 요지 봉은사 옆 고급 빌라촌에 20년 살았고, 말년에 대학교수 5년 했고, 수필집도 10권 냈다. 돈 명예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아내는 아직도 습관적으로 나를 죄인으로 규탄한다. 그러나 나는 죄가 없다. 나는 미식축구 선수였지만, 역도부 뽀빠이 이상룡처럼 열심히 당당히 살았다.
아마 조물주가 씨익 웃었을 것이다. 가장 팔팔한 경상도 녀석과 서울에서도 중앙에서 곱게 자란 아내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그러나 실험은 성공했다. 둘은 찌지고 볶고 싸우다가 결국 폭풍노도의 바다는 조용해졌다. 비 그친 아침 해변 물결은 더욱 푸르고, 모래는 더욱 빤짝인다. 이제 나는 조물주가 바란대로 산다. 뇌경색 후유증 아내 간병하면서 그를 모델로 수필을 쓰거나 
초상화를 그리면서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