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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수' (Waterloo Bridge)

김현거사 2021. 12. 25. 17:11

'애수' (Waterloo Bridge)
 

머빈 르로이(Mervyn LeRoy)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 '애수'(Waterloo Bridge)는 1940년 작품으로, 6.25 당시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개봉되었을 때 수많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울린 영화이다. 내용은 1차 대전 중 스코틀랜드의 젊은 귀족 장교와 한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슬픈 사랑을 다루고 있다. 전시 상황이 우리와 비슷했고 음악도 상해 임시정부가 애국가로 차용했던 낯익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라 동병상련의 정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워털루 다리에서 세워주게!' 영화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1939년 9월 3일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날, 프랑스 전선으로 향하던 로이 크로닌 대령(로버트 태일러 분)은 안개 자욱한 런던 워털루 다리에 차를 세우고, 난간에 기대 선채 조그마한 마스코트를 만지작 거리며 옛일을 회상한다. 대령은 군인다운 단정한 매무새에 기품이 넘쳤으나, 어딘가 쓸쓸한 표정이다. 48살까지 독신을 지켜온 그의 귓전엔 '당신만을 사랑해요.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예요' 25년 전에 속삭이던 마이러(비비안 리 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1차 대전 한창이던 1914년. 프랑스 전선에서 런던에 휴가 나온 영국군 대위 로이는 전선 복귀 전날 워털루 다리를 산책하다가 갑자기 울리는 공습경보에 놀라 대피한다. 그 혼란한 틈에 일단의 여성 중 한 명이 열린 핸드백 내용물이 쏟아져 쩔쩔맨다. 그녀의 이름은 마이러 레스터, 올림픽 극장에서 공연 중인 올가 키로봐 발레단 일원이다. 로이는 그를 도와주고 혼잡한 대피소 안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공습이 해제되어 밖으로 나오자, 마이러는 오늘 밤 공연이 있음을 알려주고, 로이는 발레 구경은 좋은 추억이 될 테지만 밤에 집안 대령과 약속이 있다고 말한다. 헤어질 때 마이러는 '이 마스코트가 당신에게 행운을 갖다 줄지 모르잖아요?' 로이에게 작은 마스코트를 주고 사라진다.

그런데 그날 밤무대 위에서 발레를 하던 마이러는 객석에 있는 로이의 얼굴을 발견한다. 마이러는 '어마나 집안 대령과 약속이 있다더니 여길 왔네' 설레는 마음 금치 못해 옆에서 춤추던 키티에게 속삭인다. 공연 후에 로이는 저녁을 함께 하자는 쪽지를 키티 편에 보내고, 엄격한 무용단 단장 올가는 키티에게 그 쪽지를 사람들 앞에서 읽게 하고, 만날 수 없다는 거절 편지를 쓰라고 명령한다. 거절 편지를 받고 돌아서던 로이에게 마이러의 친구 키티가 나타나 약속 장소와 시간을 알려달라고 한다. 약속 장소는 캔들 클럽(Candle Club)이다. 로이는 내일이면 전선으로 떠날 사람이다. 다시 만날 기약 없는 두 사람은 거기서 새벽까지 춤을 추고, 이윽고 사회자가 '오늘의 마지막 곡 작별의 왈츠가 시작된다'라고 알린다. 그 곡이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다. 곡이 연주되면서 촛불이 하나씩 꺼지고, 이윽고 마지막 촛불이 꺼지자 두 연인은 입술을 포갠다. '편지하면 답장 주겠소?' 로이는 묻고 '네' 마이러는 대답한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마이러는 창가에 서서 '오늘은 배 타기 안 좋은 날씨네' 로이를 생각하는데, 프랑스 전선으로 떠난 줄 알았던 로이가 밖에 서성거리고 있다. '탈영했나 봐?' 마이러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신없이 뛰쳐나가 빗속에서 로이를 껴안고 키스한다.

 

 

지뢰 때문에 로이의 귀대가 48시간 연기된 것이다. 로이는 당장 결혼식을 올리자며 마이러에게 청혼하고 마이러는 승낙한다. 두 사람은 집안 어른인 왕실 소속 랜들셔 연대 연대장 대령한테 가서 승낙을 얻자, 식을 올리려고 성당을 찾아간다. 그러나 신부님은 지금은 규정 시간인 3시가 넘어 결혼식을 할 수 없으니 다음 날 11시에 오라고 한다. 마이러는 반지와 모자와 구두를 사고 돌아와 극단 동료들에게 소식을 알린다. 그런데 동료들 축하인사를 받는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갑자기 로이의 일정이 변경된 것이다. 25분 뒤에 워털루역에서 열차로 떠난다는 연락이다. 마이러는 허겁지겁 역으로 달려가지만, 로이가 탄 기차는 사람들 속으로 사라진다. 로이를 배웅하고 돌아온 마이라는 공연을 무단이탈했다는 이유로 단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고, 이에 반발하던 키티도 해고된다. 두 사람은 방을 얻고 새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만 전시 중이라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 수중의 돈이 떨어지자 키티는 스코틀랜드 귀족인 로이에게 사정을 말하라고 하고 마이러는 걱정할 거라며 반대한다. 그런 어느 날 휴가 나온 병사 편에 로이의 편지가 도착한다. 꽃다발과 함께 보낸 편지에는 어머니가 마이러를 만나러 런던에 갈 거라는 내용이다. 마이러는 기대를 갖고 그 장소에 나갔지만 거기서 사건이 터진다. 오시는 분이 늦어진다며 종업원이 건네준 신문 전사자 명단에서 '로이 크로닌' 이름을 발견하고 기절한 것이다. 충격에서 깨어난 걸 모르는 로이 어머니는 마이러에게 '우린 좋은 친구가 되겠지? 로이한테 그렇게 말해도 되겠지?' 그렇게 말한다. 그러다가 자기 말에 건성건성 정신없이 대답하는 마이라에 실망하여 '다음에 만나자꾸나' 하고 돌아간다.

집에 돌아온 마이러는 병을 얻어 들어 눕는다. 그리고 희복이 된 마이러는 그동안 키티가 자기 약값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팔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마이러도 자포자기하여 키티처럼 밤의 여인이 된다. '산책이나 가실까요?' 워틀루 다리를 서성거리다가 낯선 남자 따라간다. 그런 어느 날, 그날도 마이러는 짙은 화장을 하고 워털루 역에 나갔다가 수많은 군인들 속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를 발견한다. 로이였다. 로이는 마이러를 보자 달려와, '어떻게 알고 마중 나왔느냐'라고 신기해한다. 전쟁 중 부상을 입었으나 인식표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전사자로 잘못 발표된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마이러에게 '이젠 내가 도와줄게. 앞으로는 행복의 눈물 말고 다시는 눈물 흘리는 일 없을 거야' 하고 말하면서 당장 스코틀랜드에 가서 어머니를 뵙자고 말한다. 마이러는 로이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러 간 사이에 자신의 옷차림을 살펴보며 짙은 립스틱을 지운 후, 로이에게 '당신과 함께 갈 수 없다'라고 말한다. 로이는 '혹시 내가 죽은 줄 알고 다른 남자가 생겼는가?' 묻고, 아니라고 하자 당신을 영국 최고의 귀부인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비싼 드레스를 뭉텅뭉텅 사준다. 마이러가 옷을 싸들고 돌아오자, 키티는 '상점을 털었나?' 하고 놀랜다. 키티는 마이러가 로이와의 결혼 이야길 하자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이내 마음을 돌려, '감정이란 건 규칙이 없는 거야. 그 정도로 사랑한다면 용서될 수 있을 거야' 하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마이러는 로이를 따라 스코틀랜드로 가고, 대저택에서는 두 사람을 환영하는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 집안의 가장 웃어른인 로이 삼촌은 가문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마이러를 반겨준다. 댄스를 청하여 춤을 추면서 로이와 자신이 소속된 연대의 휘장을 보여주며, '네가 이 휘장이 부끄럽지 않게 할 멋진 배필이 되어다오' 하고 부탁한다. 그 말을 듣고 마음 깊은 곳에서 자괴심을 느낀 마이러는 그날 밤 로이 어머니를 찾아간다. '저는 떠나야 해요. 저는 배고팠고, 가난했고, 로이는 죽은 줄 알았어요. 짐작하시는 대로가 사실이에요. 로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으니 아무 말도 말아주세요' 마이러는 그렇게 간청한다. 로이 어머니는 '자기가 1년 전 처음 마이러와 만났을 때 로이가 전사자 명단에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다음 날에야 전사자 명단을 보았고, 그걸 알았으면 왜 마이러가 허둥대었는지 이해했을 거라면서, 그래서 후에 마이러의 소식을 수소문했지만 발레단이 이미 영국을 떠난 뒤라 찾을 길이 없었다'라고 사과한다. 방으로 돌아오던 마이러가 잠시 로이를 만나자, 로이는 행운의 마스코트를 꺼내 '이거 알지? 이젠 이거 당신이 갖고 있어' 마스코트를 마이러에게 주고, 마이러는 피곤하다며 자리를 떠난다. 밤에 마이러는 저택을 빠져나가고, 이튿날 로이는 마이러의 편지를 읽게 된다. '지금까지 당신이 준 사랑에 감사해요. 당신은 제게 너무나 소중하지만 우리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더 쓸 수가 없네요. 안녕 내 소중한 사랑'.

로이는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마이러 친구 키티를 찾아갔으나, 키티는 '여긴 안 왔어요. 어떤 사실이던 받아들일 수 있나요? 나한테 묻지 마세요. 함께 찾아봐요' 할 뿐이다. 두 사람은 여기저기 찾아 헤매다가 결국 키티가 '이제 한 군데 남았어요' 하고 워털루 다리로 안내한다. 그 시간, 마이러는 로이와 처음 만났던 안개 짙은 워털루 다리 위에서 수 없이 달려가는 군용 트럭 대열로 닦아간다.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결심한 마이러의 눈빛이 잠시 보이다가 곧이어 귀를 찢는 급브레이크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들 발치엔 상아 마스코트가 뒹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손으로 그 마스코트를 어루만지며 깊은 회상에 잠기던 로이 대령이 찦차를 타고 워털루 다리를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머빈 르로이(Mervyn LeRoy) 감독은 이 영화 '애수' (Waterloo Bridge 1940년) 말고도 일차 대전 배경인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 1942년)란 또 다른 멜로 작품이 있고, 1941년 '애정은 강물처럼', 1949년 '작은 아씨들', 1951년 '쿼바디스' 같은 작품을 남겼다. 비비안 리(Vivien Leigh)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애수'로 전 세계 영화팬을 사로잡았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 역으로 극찬을 받았다. 아마추어 배우였던 어머니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연극에 출연했고, 왕립 극예술 아카데미에도 입학했다. 당시 두 사람 모두 기혼자였던 로렌스 올리비에와 결혼했고, 1967년 폐결핵으로 쉰넷의 나이에 사망했다. 로버트 테일러 (Robert Taylor)는 타이론 파워, 게리 쿠퍼, 록 허드슨 등 할리우드의  미남 배우 계보 중 특히 빛나는 존재이다. ‘춘희' (1936)', '애수'(1940)', ‘마음의 행로'(1942)', '쿼바디스'(1951)’, '흑기사'( 1952)' ‘형제는 용감하였다'(1953), 등 작품이 있다. 1969년 향년 58세로 폐암으로 사망했을 때, 장례식에서 절친한 친구였고 후일 미국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이 조사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