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중

전두환 대통령을 애도하며

김현거사 2021. 11. 23. 22:33

전두환 대통령을 애도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이 2021년 11월 23일 오전 8시 40분쯤 연희동 자택에서 쓰러져 향년 90세로 사망했다. 이 날은 33년 전인 1988년 오늘, 전두환 대통령이 연희동 자택에서 자신의 집권 시 과오를 인정하고, 부인 이순자 씨와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은둔 생활을 시작한 그날이다. 그러나 양식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분의 경제 활성화 치적은 과오를 능가했다고 평가한다. 전대통령의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전통의 유언이 무엇이냐고 묻자, 2017년 발간한 회고록의 한 부분이 전대통령의 유언이라고 설명한다. '북녘땅이 바라다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있으면서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 싶다'는 유언이다. 신라의 문무왕이 왜구를 물러치기 위해서 용이 되어 동해의 수중능에 잠든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이날 전통의 사망소식은 두 방향에서 동시에 나왔다. 보수 언론과 좌익 언론에서다. 좌익 언론은 고인의 명칭을 前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빼고 전두환 씨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러나 보수 언론 팬 앤 마이크나 원로 언론인 조갑제 씨는 전 대통령의 치적을 높게 평가한다. 우선 전통은 사람을 쓸 줄 알았다. 그는 국무총리에 남덕우, 비서실장에 하바드 출신 김경원을 썼고, 경제 수석은 김재익, 외무에는 노신영을 썼다. 이런 우수한 인재를 모아놓고, 그는 육사 시절 미국에서 배운 민주적 토론과정을 거친 의사결정을 했다. 그 결과 그는 박정희 대통령 경제개발 때 생긴 외채를 말끔히 해결하여 당시 뉴욕타임스가 전통의 치적을 보도한 적 있다. 2차 오일쇼크가 와서 한때 경제적 위기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당시 전통은 일본에게 100억 달라를 요구하여 결국 40억 달러를 받아냈다. 일본은 처음엔 펄쩍 뛰고 반대했다. 그러나 전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에게 '대한민국이 공산주의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활을 하니, 일본은 한국에게 100억 달라를 보내 도와야 한다'라고 이야기했고 레이건이 적극 동조했기 때문이다. 전통은 그 후 7년 동안 나라를 통치하면서 1985년 당시 3년 연속 100억 달라 무역 흑자를 만들어 그동안 110년간 무역 적자이던 우리나라를 무역 흑자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무역 흑자국으로 돈이 생기자 최저임금제를 만들고, 의료보험제를 실시했다. 한강의 모래와 골재를 팔아 한강 종합개발을 실시했고, 올림픽을 유치했고, 반도체에 240억을 투입하여 전자산업을 육성했고, 오명 장관을 시켜 전자교환기(TDX) 기초를 닦았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반도체 강국이 되었고, 미국보다 앞선 정보 통신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상의 내용은 내가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였기 때문에 대채로 알던 사항이다. 내가 처음 전통을 대면한 건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신당동 자택에서다. 당시 전통은 파란 공군 잠바를 입고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보안사령관으로 박통 시해 사건 수사의 책임자 였다. 당시 재벌들은 모두 눈치만 보고 있는데, 웬 노인이 와서 향을 올리고 돌아가자, 전통은 '저 사람 누구야?' 측근에게 물어보고 맘에 새겨두었다. 그 후 전통은 우리 회장이 청와대로 올린 건의안은 본인 스타일 그대로 시원하게 해결해줬다. 청와대로 보낸 그 편지는 주로 내가 썼다. 과거 박 대통령에 얽힌 이야기를 서두에 썼다. 박대통령은 반도체가 국가 방위 산업과 우주 산업에 직결된다 해서 A산업을 많이 도와주었다. A산업은 박통 서거 후 전 중역진을 대동하여 매년 동작동 국립묘지에 참배했고, 회사 인근에 있던 근혜 양에게도 명절이면 찾아보곤 했다는 이야기도 썼다. 전경환 씨와도 가깝게 지냈다. 그 분 친구 채 모씨를 우리 회사 감사로 영입했다. 채감사 소개로 전경환 씨와 술자리도 한 적 있고, 일본 마쓰씨다 고노스게 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안내를 맡았던 우리 회사가 옹의 스케줄을 잠시 돌려 김포 새마을 본부 전경환 씨 사무실에 들리게도 해주었다. 당시 전통이 신뢰한 오명 장관은 반도체 회사인 A산업과 가깝던 사이였다. 아웅산에서 돌아가신 김재익 비서관은 내가 명절이면 선물 들고 그 집을 방문하던 분이다. 전통 형제는 다른 건 몰라도 남자답고 인간성이 순수했다. 전경환 씨는 유도를 배운 사람으로 우리 회장이 방문하면 꼭 3층에서 1층까지 내려와 차 문을 열어주면서 전송하곤 했다. 그래 나는 진심으로 전통 형제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존경했다. 후에 그 분이 하야하여 백담사에 계실 때 속초에 강의하러 가는 길에 방문한 적도 있다. 

그러나 같은 나라 사람이지만 좌파들은 매우 비판적이다. 그들은 전두환 대통령을 전두환 씨라고 호칭하고 악의적인 표현을 쓴다. '전두환 씨는 지난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이때 2,205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추징금도 함께 확정받았는데, 전 씨가 내 재산은 29만 원 밖에 없다며 버텨왔다.' 청와대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에 대해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없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유감을 표한다'라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 명의가 아닌 청와대 차원의 입장 발표였다. 여기서 역사의 진실의 밝히란 말은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긍정하고 피해자 유족에게 사과하란 말이다. 그 말에 전 대통령 청와대 시절 비서관이던 민정기 비서관은 '사실이냐, 아니냐 묻고 거기에 대해서 사죄하라고 해야지 무조건 사죄하라고 하면 그게 질문이 됩니까?'라고 반문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전두환 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1시간 여 만에 현충원 안장 불가 입장을 밝혔다. 전 씨가 내란죄로 실형을 선고받아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전통은 내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수사 책임자로서 대통령 시해한 김재규와 그에 공조한 정승화 육국 대장을 수사본부로 강제 연행한 것 뿐이다. 사람은 관 뚜껑 덮고나서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당분간 현실은 시끄럽기만 할 뿐, 올바른 역사적 평가는 한참 후가 될 것 같다.   

 

 



'제작 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살던 고향은  (0) 2021.12.01
누가 먼저일까요  (0) 2021.11.28
일본 열도가 가라앉는다.  (0) 2021.10.15
열한 번째 책을 내고나서  (0) 2021.09.28
머리글  (0) 2021.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