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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갯길

김현거사 2021. 8. 24. 11:56

강원도 고갯길

속초에 5년간 강의 다닐 때 강원도 고갯길 많이 넘었다. 네 시간 강의하면 좀 피곤하다. 후배가 주인인 연호콘도에서 자고, 울산바위 밑 순두부 집에서 식사한 후, 안개 덮인 산천 구경하며 서울로 오곤 했다. 탄허 스님 계시던 오대산 월정사를 찾아 혼자 진고개와 선자령 대관령을 자주 넘곤 했다. 가을에 주문진 쪽에서 진고개로 가면 감나무 과수원에 곱게 달린 수많은 붉은 홍시가 마음을 적셔주곤 했다. 고개 정상 넘어서 월정사 쪽 길가 이름 모를 암반 계곡도 생각난다. 거기 기암 절경은 상상을 일으키곤 했다. 물가에 해당화와 붓꽃 가득히 심어놓고, 세상 버리고 거기서 한 평생 살고 싶었다. 불교신문에서 모셨던 송광사 법정스님이 강원도 토굴에 옮겨 살았다. 전원 작가가 꿈이었는데, 그때 진고개 살았으면 지금 은 어떤 모습일까. 스님이 흠모하던 데이비드 쏘로우(Henry David Thoreau)처럼 되었을까.

모두 25년 전 일이지만, 양양 쪽에서 운두령과 구룡령 넘으면 태백 정선이다. 비포장 구비구비 고갯길을 지루하도록 돌아간다. 운두령 송어횟집 생각난다. 거기 진주 농대 나온 분이 살았다. 고향 사람이라고 찬 돌판에 얹어 가져온 회와 귀한 약초술 전부 공짜였다. 산이 좋아 전국을 헤매다 땅값 거져인 이곳 물 좋은 곳에 넓게 자리 잡았는데, 지금은 땅값만 수십억 넘는다고 한다. 구룡령 양양 쪽에 탄산약수 나오는 곳이 있었다. 당시 거긴 아무도 살지 않았다. 땅을 매입하여 약수터 개발하는 공상도 했다.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양희은이 노래한 한계령은 우리나라 고갯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노송과 첩첩 바위산을 차로 돌아 내려오는 운치도 멋있고, 이른 봄 한계령 산벗꽃은 꼭 봐야 할 풍경이다. 그거 못 보면 한계령 다녀왔다고 말할 자격 없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산신령이 여기만 특별히 고운 비단 휘장을 덮어놓았다. 연한 옥색 꽃빛과 신록의 부드러운 녹색의 조화가 이미 세속의 것이 아니다. 피는 시기가 딱 일주일이라 의외로 못본 사람 많다. 한계령 너머 필례약수는 이화여대 출신 화가가 살았다. 그림 구경하곤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가을 양양 남대천에 연어가 올라오면, 한계령 입구에서 아줌마들이 좌판에다 감을 놓고 판다. 나는 거기 반드시 차를 세우고, 연어알 병조림과 감을 사서 삼성동 이웃에게 돌리곤 했다.

'3월의 미시령에는, 얼레지꽃은 피어나고, 바다가 보이던 언덕 밤 깊은 카페에서, 인생의 그 외로움 쓸쓸히 말하던 그대,영원히 잊지 못하네'.  내가 '미시령의 노래'를 시로 노래한 미시령은 지금은 고갯길이 폐쇄되고 턴넬이 뚫렸다. 그러나 당시 그  고개는 달빛 구경하려고 언덕 위 카폐를 자주 찾았다. 동우대 여교수와 얼레지꽃 구경하러 미시령 휴게소 들락거렸고, 영랑호 골프장과 알프스 스키장 골프 치러 다녔다. 금강산 제1봉 신선봉 화암사는 대웅전 현판 글씨가 진주 비봉루 은초 선생 글씨다. 그 화암사 골짝은 애기붓꽃 캐러다닌 곳이고, 인제 용대리는 코다리찜 먹으러 다닌 곳이다.

진부령에는 명태덕장 많고 코다리찜  유명하다. 고성에서 진부령 오르는 옛날 샛길이 있는데, 거기 도원리 골짜기는 봄이면 복숭아꽃 만발한다. 내가 그분한테 도연명 시를 배운 서울대 이병한 교수에게 도원리 풍경을 소개했더니, 도연명은 도화유수 묘연거(桃花流水 杳然去), 복숭아꽃 아닌가. 안달 하시면서 당장 같이 가보자던 일 생각난다. 진부령 계곡물엔 연어가 올라오고, 송지호에는 섬진강 재첩보다 알이 굵은 재첩이 난다. 화진포에는 김일성 별장이 있고, 고성군 성대리는 동류골 막국수가 유명하고,  거진읍 거진리 가면 반드시 털게와 문어 수육 맛봐야 한다. 아! 지금도 진부령 코다리찜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