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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여류시인

김현거사 2021. 8. 8. 16:59
 내가 만난 여류시인 
 
 나는 진주의 원로 여류 시인 세 분을 만났다. 첫째 분은 진주에 시조문학관을 연 김정희 시인, 둘째 분은 대구의 정혜옥 시인, 세번째 분은 서울의 김여정 시인이다. 김여정 시인은 연꽃 피면 양수리 '세미원'에서 만나곤 한다. 이른바 연꽃데이트다. 성품이 활달해서 동행한 아내에게 詩도 일깨워주고, 문단 비사도 들려준다.
 
후소(後笑) 김여정은 60년대 신석정 시인 추천으로 등단한 한국 대표 여류이다. 필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조카인 대구 김혜숙 수필가 덕분이다. 그가 <김여정문학관>이란 싸이트를 소개하길래 내가 거길 들락거리다가, <김현거사 응접실>이란 방을 하나 얻었다. 그 후 선배님 8순 기념 시전집을 받게 되었는데, 그 시전집이란 것이 아무나 내는 책 아니다. 1968년부터 2012년까지 열 몇 권 시집을 모은 1천5백 페이지 되는 방대한 책이다. 1993년에 그 이전 시집 망라한 시전집 발간 한 후 두번째로 낸 것이다.  
 
화보에 저자와 함께 포즈를 취한 박종화, 김남조. 김소운, 전숙희, 조경희, 신석초, 박목월, 구상, 조병화, 모윤숙, 이영도, 김후란, 허영자, 추영수, 유안진 등 문단의 별이란 별은 다 보인다. 송지영, 김구영 선생이 보낸 휘호도 있다. 나는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작정을 하고 다 읽고, <은난초꽃>이란 시는 읽고 맘에 들어, 시인을 진주성 섬돌 밑에 핀 은난초꽃으로 느껴진다고 글로 표현해서 보낸 적 있다.
 
<은난초꽃>

이렇게 청초하고 수줍은 여인이 있었나

저녁 어스럼 조심조심 밟아 내려오는
운악산 산자락
울울한 나무 그늘에 없는듯 조용히
해맑은 미소 머금고 있는 은난초꽃
수줍디 수줍은 생면부지의 젊은 여인이
나도 몰래
내 마음을 빼앗아가고 말았네
  
김여정 시인은 젊은 시절 신문기자 출신이다. 지성적인 외모와 시재로 한양의 시인묵객 가슴 설레게 하고, 월탄 박종화 선생이 따님처럼 아껴준 분이다. 그럼 나는 이 분을 무슨 재주로 해마다 모시고 연꽃 데이트를 했는가. 
언젠가 문인협회서 김여정 문학특강을 연 적 있었다. 거기 참석해보니, 시인은 서두를 남강 모래밭 소싸움부터 시작했다. 심훈의 상록수에 감명 받아 진주에 야학 '한빛학원' 세웠던 일, 이경순 설창수 이명길 시인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고향 자랑을 더 할려고 그러셨던 모양이다. 갑자기 엉뚱하게 강연에 참석한 내 이름을 거론하시면서, 김 모의 수필이 하도 좋아서 자기가 배울 정도라고 하셨다. 그 자리에 왔던 문인협회 이사장 등 작가들이 깜짝 놀랬다.
나는 원래 언론인 기업인 출신이다. 문단 원로라고 먼저 수구리고 인사한 적 없다. 강연 끝나자 그들이 먼저 내 손을 잡았다.
이런 고마울 데가 어디 있나. 그래 선배님이 비행기 태워준 답례로, '단풍이 절정일 때 제가 선배님을 북한강 드라이브 코스로 모시겠습니다.' 하고 데이트 신청한 것이다. 북한강 단풍이 가장 아름다울 때, 일평생 시를 쓴 한 아름다운 여류시인을 모신다는 것은 사실 장단이 맞다.
첫 데이트는 성공적이었다. 유명산 단풍은 아름다웠고, 비취빛 가을 강물은 아름다웠다. 아내와 김선배님, 두 여인을 태우고 그날 나는 옥천 냉면을 음미하고, 청평 가평 거쳐 남이섬을 돌아왔다. '백만송이 장미'란 영화를 찍은 카페에서 차도 마셨다. 
박종화, 신석초, 박목월, 구상, 조병화 시인의 일화를 싫컳 들었다.
두번째 데이트는 세미원 연꽃밭에서 했다. 원래 비오는 여름은 텃밭에서 방아 뜯어와 고추전 부쳐먹는 것도 좋지만, 미인과 연꽃 구경하는 건 더 좋다. 양수리 세미원(洗美苑 )이란 곳은 북한강 남한강 두 강이 만나는 곳이다. 거기 백련 홍련 구경하고, 초계탕 먹은 후 바다같이 넓은 팔당호 보이는 찻집에서 아내와 함께 문단 이야기 들었다. 이영도 시인과 청마의 부적절한 관계, 서영은과 또 한 분 그리고 김동리 선생의 삼각관계도 들었고, 김상옥, 신봉승. 황순원 이야기. 젊은 시절 박경리 선생 이야기도 들었다.
다음 해는 남강문학회 후배 구자운박사 데리고 가 넷이서 사진도 찍고 많은 이야기 들었다. 원로 시인이 매번 시간을 내주신 것은 아마 내가 고향 후배라는 오직 그 하나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전에 통영 박경리 선생 묘소에 가 본 적 있지만, 진주여고 출신인 박경리 씨 묘소는 묘소를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마치 왕릉같이 꾸며놓았다. 그때 부러운 생각 금할 수 없어서, 나는 팔순에 접어든 내 고향 원로 여류 3인을 글로 엮어놓은다.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