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중

진서를 생각하며

김현거사 2020. 5. 18. 09:38
 

▲ 중국 명나라 화가 장로(1464~1538)가 그린 노자기우도(老子騎牛圖) 입니다.


  모처럼 좋은 골동품 그림 대하니 진서 생각난다. TV진품명품 도자기 감정 이상문이 진서 고교 동창이다. 인사동 가서 이상문에게 점심 대접 받고, 경매장에 가서 진서는 45만원 주고 백자 단지 두개 샀다. 

거금 내고 잔을 살 적에는 진서가 백자의 멋을 안다는 이야기다. 

 

 

 인사동 나들이

 진서하고 약속한 시간이 일러 잠시 조계사 들러, 부처님 큰 어른 뵙고 경내를 휘익 둘러보니,
법당 옆 백송은 그대로고, 뜰에는 합장한 보살님들 오가고, 연등 매달린 나무 밑에 어떤 분은
부처님처럼 경건히 결가부좌하여 앉아 참선한다. 사바의 아품을 기도로 씻은 보살님들이
선녀처럼 이쁘다. 경내 서점에 들러 책 한권 샀다. 김달진 옹 해설의 <寒山詩>라는 책이다.
‘깊은 산 바위 그윽한 곳에 사는 곳을 정했나니,사람은 오지 않고 흰구름 자욱하여 새들만
날아다닌다. 여기 깃들인지 무릇 몇 핸고, 공허하디 공허한 부귀공명 아귀다툼은 정히
무익한 것이로다.’
시가 처음부터 맘에 든다. 당나라 때 천태산 깊은 굴에 살았던 寒山스님 시다.

좀 있다 경택이와 진서를 절 앞에서 만났다.
‘어이 진서야 조계사 들러 잠시 한 분 인사나 하고 갈래?’
‘누군데?’
‘비로자나불이라고.’
‘비로자나불이 누군데?’
경택이가 묻는다.
‘내가 조계종 총무원 강당에서 비로자나불(法身) 부처님 앞에 결혼식 올렸으니 그 분이 내
주례님 아이가?’
‘그냥 가자. 내가 인사동 멋있는 집 안다.’
둘이 진서 따라 음식점 가보니 일요일이라 문 닫았다.
‘어이 상문아! 어디고?’
해쌓더니 진서가 TV진품명품 도자기 분야 이상문 전문위원 불러낸다.
진서 동창인 이위원 단골서 점심 먹고, 도자기 경매장 들렀다.
우리가 맨날천날 고려청자 이조백자가 어떻고 해싸봐야 말짱 헛일이다.
경매장에 가서 자기의 내력을 듣고 값 매기는 현장을 봐야 감이 온다.
그 후에 언제 집에 청자나 백자 하나 경매에서 사서 놔둬야 그기 제대로 가치있다.
경매에 나온 사람들 보니, 점잖게 생긴 부자집 부부도 있고, 전문 장사꾼도 있다.
물품을 보니 5만원 짜리부터 천만원 자리까지 있다.
이위원이 감정가라 여기 나온 도자기는 전부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우선 구경부터 하였다. 가장 비싼 것이 <청철재백자금강산연적>이다.
높이 10센티 쯤 되는 철화와 청화백자가 어울린 금강산 모형 연적 하나가 천백만원이다.
금강산처럼 생긴 작은 연적 위에 정자가 하나 새겨져 있다.
대원군이 운현궁에서 쓰던 목단 무뉘 단지는 2백5십만원. 
이름하여 <청화백자운현궁명목단문호>다.
진서는 조선시대 백자 단지 두개 40만원에 나온 것을 45만원에 콜하여 낙찰되었다.
하얀 백자 단지가 은은하고 앞으로 쉽게 나오지 않는 물건이고 값이 오를 것이라니,
돈 놓고 돈 먹기, 그 참 돈 벌기 쉽다.
거사는 <광구병>이라하여 주둥이가 넓적한 고려 때 술병 5만원에 나온 것을 7만원으로 콜했으나,
장사꾼이지싶은 사람이 10만원 불러 가져가버렸다.
한 700년 전 고려 때 문인이 술 담았던 그 술병은, 술을 사랑하는 거사가 낙찰받아와서
귀한 술 담아놓고, 조태현이 박홍식이 정중식이 같은 애주가들과 한번 어울려야 하는데,
겁도 없는 장사꾼이 새치기 해버렸다.
경매 구경하고 우래옥 가서 냉면에 쐬주 한잔 걸치고 전철로 돌아오니,
그걸 11만원이라도 불러 샀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팍 든다.
5월달 경매에는 가서 좋은 골동품 술병 꼭 하나 사야지. 어허 아깝다. ggg.(08년 4월)

진서 댓글: 2008.04.07(11:32:06)   
북한에서 온 물건인데 거사때문에 아까운 도자기 하나 노쳤다. 다음번에는 꼭- 사 도.
귀가길에 경택이 친구하고 청담동 당구장에서 둘이 막짱 떳는데, 3전 전패로 6월까지 형님으로
모시게 되였다. 경택이 형님 앞으로 잘 봐 주소!


 지금 진서는 몇개월째 병상을 헤매고 있다. 20년 전에 거사가 수필로 등단할 때 종로 복떡방에 가서 

축하떡 청담동 족구장에 사가지고 온 게 기억난다. 거사가 써준 문집 서문 소개한다.


 

三笑선생 문집 서(2008.09.07. 07:36) 

친구의 문집 발간에 즈음하여

 

公은 이름이 진서, 號는 三笑선생이며, 성은 朴氏이다. 公의 본관은 반남이요, 충장공파이다.
三神山 중의 하나인 지리산(方丈山) 자락 山紫水明한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에서  태어났다.

일찌기 덕망이 높은 할아버지 ‘은’字 ‘양’字께서 당대에 천석꾼을 이루시어,
부친 ‘승’字 ‘록’字 어른을 서울로 유학 보내셨으니, 부친은 휘문고를 졸업하고,
일본 중앙대 법학부를 마치고, 학병으로 관동군에 배속되었으나. 민족의식으로 탈출하여
김구선생의 독립군에 합류하셨다.
해방이 되자 독립군 소령으로 귀국하여 김구선생의 측근에서 보필하다가
약관 26세에 경위로 임관하셨고, 6,25 때는 함안 군북 전투에서 死生을 넘나드는 부상을 당하시고,
2003년 향년 83세로 卒하시니, 국립현충원 경찰간부 묘역에 묻히셨다.

어머니 백씨는 사천 축동 가문이니, 진주 일신여고를 졸업하시어, 젊은 시절에는
산청군 부녀회장으로 여성 복지에 공헌하시고 도지사 표창과 대통령 포장을 받으셨다.

公의 從兄 태서는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일컳는 삼성의 비서실장과 그룹 사장을 역임하시고
전주제지 부회장을 하셨으며, 친동생 항서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고 현재
경남 시민구단 감독으로 있다.

예부터 가문을 보면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하였거니와 公 역시 삼성병원 강북제일병원
행정부원장으로 계시다가 布衣로 돌아와 기업을 일으켰으니, 公을 잘 아는 사람들은 公이
사리에 밝고 성품이 활달하고 성품이 봄바람처럼 온화하여 항상 주변에 모였다.

이번에 공이 후손을 위하여, 집안 대대 이야기와 남몰래 다듬어온 자신의 詩文과 글을 모아
문집을 발간하니, 참으로 사람이 흰구름처럼 사라지는 浮生이면서 모두가 자신의 삶을
정리해놓지도 못함에 비해, 公은 홀로 생각의 깊이가 남달라 문집을 남기어 고매한 자취를 남기니,
참으로 百代의 過客으로 하여금 뜻있는 일로 칭송하고 존경할만하다 하겠다.

나는 진작부터 公이 성격이 겸손하고 온후하며 먼저 베풀기를 즐기고,
항상 부귀 빈천을 떠나서 사람의 인품을 흠모하는 時流를 넘어선 분이었으나,
公의 인품을 대롱 구멍으로 표범 무뉘 하나를 본 것처럼 백분의 일도
다 헤아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얻기 어려운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던차, 본 문집 발간에 즈음하여,
(항상 따뜻한 웃음으로 대해주는 公을 ‘三笑’라 號를 정해주며)
기쁜 마음에, 僭妄됨을 헤아리지 못하고 몇자 적는 바이다.

                                        2006년 중추 金炫거사 合掌

 


'제작 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년 일자리  (0) 2021.07.24
인연들  (0) 2021.07.18
성복동(星福洞) 하천 풍경  (0) 2020.03.28
매화는 봄이라고 가지마다 꽃 피는데  (0) 2020.03.25
백세시대 노인의 빈곤  (0) 2020.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