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사와 오간 편지

한글문학/ 청탁 원고/카사불랑카

김현거사 2019. 12. 12. 21:55

 <카사블랑카>

 

이제 와 이 나이에 해외여행은 벅차지만, 카사블랑카엔 꼭 한번 가보고 싶다. 거기 '릭의 카페(Rick's cafe)'에 가서 위스키 한 잔 시켜놓고 '키스는 키스일 뿐, 한숨은 한숨일 뿐, 시간이 흐르면요, 근본적 마음만 남게 되죠' 잉그릿 버그만이 그랬던 것처럼 '세월이 흐르면(As Time goes by)’이란 곡을 한 번 음미해보고 싶다.

 

'하얀 집'이란 뜻을 가진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북부 해안 도시다. 1940년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가 나치 수중에 떨어지자, 피난민은 파리나 마르세이유에서 바로 리스본으로 갈 수 없었는데, 카사블랑카는 피난민들이 지중해 건너 오란, 거기서 열차나 자동차로 프랑스령 카사불랑카에 가서  리스본 가는 비행기를 타는 우회 루트였다. 당시 카사불랑카는 프랑스령이고, 실제로는 독일 지배하에 있었다. 거리에는 레지스탕스와 게슈타포의 대립이 심했고, 경찰은 행인을 마구잡아 검문했고 도망자는 사살했다.

그 카사블랑카에 독일군 특사 2명이 살해당했다는 급보가 전해지고, 스트라사 독일 소령이 비행기로 날아오고, 프랑스 경찰국장 리노는 스트라사에게 '오늘 밤 용의자가 릭의 카페에 나타날 것'이라는 정보를 알려준다. 릭의 카페는 술과 도박, 통행허가증 밀매로 유명한 곳이다. 카페 주인 릭(험프리 보가트 역)은, 겉은 차급고 냉소적이지만, 속은 따뜻한 미국 사업가다. 거기에 통행증 밀매꾼 우가티가 나타나, '믿을 사람은 자네 뿐' 이라며 드골 장군이 서명한 통행증을 릭에게 임시로 맡기고, 릭은 그걸 홀의 피아노에 감춘다. 르노는 릭에게 '오늘 밤 여기서 독일군 특사 살해한 범인을 검거할 예정이고, 레지스탕스 지도자 빅터 라즐로가 통행증을 사기 위해 나타날 것임을 알려준다. 릭과 리노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다. 리노는 이 카페에서 출국비자 밀매가 자주 이뤄짐을 알면서 영업허가 내줬고, 릭은 그에게 공짜 술 대접과, 룰렛에서 돈 딸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우가티는 체포되고, 빅터 마즐로와 일자(잉그릿 버그만 역)가 등장한다. 레지스탕스 요원은 마즐로에게 십자 반지를 보여주며 접선한다. 르노는 우아한 자태의 일자에게 '카사불랑카 최고 미인이 오신걸 환영한다'며 호의를 보이고, 스타라사 소령은 두 사람을 내일 10시에 경찰서로 오라고 지시한다. 

이때 일자는 홀에서 샘을 발견한다. 샘은 파리 시절 릭의 카페에서 일하던 사람이다. 일자가 샘을 불러 릭의 안부를 묻자, 샘은 '파란 앵무새'에서 일하는 여자 만나러 갔을 거'라 대답하고, 일자가 '옛 노래 한번 들려줘요' 부탁하자, '그 노래는 기억이 녹슬어 까먹었다'고 대답한다. 일자가 콧노래로 '세월이 흐르면'을 부르면서 'Play it, Sam. Play 'As Time Goes By(샘! 세월이 흐르면을 연주해줘요)' 부탁하자, 샘은 흑인 특유의 허스키로 피아노 반주로 노래한다. 'You must remember this(이것을 기억해줘요).  A kiss is still a kiss(키스는 키스일 뿐)A sigh is still just a sigh(한숨은 한숨일 뿐)The fundamental things apply. As time goes by.(시간이 흐르면요, 근본적 마음만 남게 되죠).' 그때 '그 곡 연주하지 말랬잖아!' 하면서 릭이 나타나고 릭과 일자의 눈이 마주친다. 둘의 눈빛에 놀라는 르노와 라즐로에게 릭은 두 사람이 전에 파리에서 알던 사이임을 밝힌다.

 

10시 통금 전 릭은 일자 부부를 택시로 보낸 후, 불 꺼진 카페에서 그 곡을 샘에게 부탁하고, 술잔을 따르며 파리 시절을 회상한다. 센강에서 유람선 타던 모습,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던 일자, 나치 침공 호외가 시가지에 뿌려지고 독일군 포소리가 들리던 때 둘이 마르세이유행 열차를 탈려고 역에서 5시에 만나자고 했던 일, 빗속에서 레인코트 차림으로 일자를 기다리던 일, 샘이 호텔에서 가져온 일자의 편지. '리쳐드! 당신과 같이 갈 수도, 다시 만날 수도 없어요. 이유는 묻지 말고 내 사랑만 믿어줘요, 신의 은총을 빌며.' 빗물에 흐려진 편지를 차창 밑으로 던지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스쳐간다.

이때 불 꺼진 카페 안에 일자가 나타난다. 일자는 오슬로에서 올라온 한 시골 소녀가 라즐로를 만난 경위를 설명하려 하고, 릭은 '그런 스토리는 소설의 시작이지.' 일자를 비꼰다. 

이튿 날 아침 10시. 경찰서에 나타난 일자와 라즐로에게 스타라사 소령은 레지스탕스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면 리스본으로 보내주겠다고 회유하고, 라즐로는 거절한다. '파란 앵무새' 주인 페라리는 릭에게 통행증을 팔라고 부탁하고, 릭은 거절한다. 일자 부부를 보자 릭은 일자에게 어제 밤 일을 사과하고, 일자는 '이대로 헤어져 파리 시절 추억만 간직하고 싶다'고 한다. 페라리는 라즐로에게 '자기에겐 통행증이 한 장 밖에 없고, 우가티의 통행증은 그가 체포된 릭의 카페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해준다. 

'파란 앵무새'에서 릭이 자기 카페로 돌아오자, 젊은 불가리아 여성이 찾아온다. 그는 미국행 출국 비자 살 돈을 마련할려고 남편이 룰렛을 하다가  몽땅 잃었는데, 경찰국장 르노가 도와주겠다고 했다고 말하고, 르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묻는다. '당신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게 죄가 되느냐' 묻는다. 그러자 릭은 룰렛 테이불에 가서 청년이 22번에 걸도록 해 돈을 따게 하고, 환전하고 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지시한다.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닉을 포옹하고, 경찰국장 르노는 '연애 좀 하려는데 해방은 왜 놓나?' 릭에게 투덜댄다.

한편 릭은 라즐로에게 '당신에겐 100만 300만 프랑이라도팔지 않는다'고 말하고, 왜 그러냐고 묻자, 일자에게 물어보라 한다. 독일 군인들은 홀에서 군가를 합창하며 소란을 피우고, 라즐로는 시민들과 마르세이유 군단이 불렀다가 나중에 프랑스 국가가 된 '라 마르세이유'를 합창하고 프랑스 만세를 부른다. 장내를 압도당한 스타라사 소령은 분위기가 불순하다며 카페 문을 닫게하고, 르노는 불법 도박 혐의로 임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다.

그날 밤, 레지스탕스 요원을 만나러 나가며 라즐로는 일자에게 '릭이 왜 나에겐 통행증을 팔지않는가 물었더니, 당신에게 물어보라고 하더라'고 알려주고, 라즐로가 나가자 일자는 릭을 찾아간다. 릭이 영업정지 중 직원 봉급은 계속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방에 올라가자, 거기 일자가 기다리고 있다. 일자는 릭에게 통행증을 부탁하나 릭은 거절한다. '난 설득하려고 할 만큼 다 했어요. 통행증 내놓아요' 일자는 릭에게 총을 겨눈다. '어차피 일을 쉽게 해 드리지. 그 편이 나도 좋아' 릭은 총 앞에 닥아선다. '한 여자에게 상처 받았다고 당신은 온 세상에 복수를 하는군요, 당신이 라즐로를 돕지 않으면 그는 죽어요.' 일자가 절규하자, '그게 뭐 어때서? 나도 여기서 죽을 텐데, 죽기엔 여기가 괜찮은 장소 아닐까?' 릭은 차급게 대답한다. 일자가 절망하여 창가에서 흐느끼자, 릭이 닥아가 어깨를 안아준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가 라즐로가 프라하 수용소에서 탈출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때고, 그리고 당신과 마르세이유로 가기 위해 역에서 만나기로 했던 그 날 라즐로가 살아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일자는 눈물을 흘리며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당신 곁에 있겠어요. 라즐로를 도와줘요.' 두 사람은 뜨겁게 포옹하고, 일자는 '우리 두 사람의 미래는 당신이 생각해서 결정해달라'고 릭에게 부탁한다.

이때 레지스탕스 요원 만나러 갔던 라즐로가 경찰에 쫓겨 릭의 카페로 숨어들고, 그를 본 릭은 일자를 뒷문으로 호텔로 보낸 후 라즐로의 상처를 치료해준다. 라즐로는 릭에게 일자의 탈출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닉은 두 사람이 서로 상대편 탈출을 부탁하는 걸 보자, 모종의 결심을 한다.

경찰이 나타나 라즐로를 검거하자, 릭은 경찰국장 르노에게 제안한다. '오늘 밤 통행증으로 일자와 여길 떠나겠으니, 당신이 날 좀 도와주게. 일단 라즐로는 풀어주었다가 비행기 출발 30분 전에 내 카페에 두 사람이 나타나면 체포하게. 거기서 나는 일자와 떠나는 거지' 하고 말한다. '카사블랑카에서 양심 없는 사람은 나 빼고는 자네밖에 없는데, 자네가 떠나면 그리울 거야.' 르노는 수락한다. 

릭이 '파란 앵무새'에서 가게를 팔고 돌아오자, 카페에 일자와 라즐리가 나타난다. 숨어있던 르노가 그들을 체포하려 할 때, 이 영화는 예기치못한 극적 반전을 보여준다. 릭이 르노에게 총을 겨누며, '자네를 쏘긴 싫지만, 거기서 한 발짝만 움직이면 쏠 거네. 공항에 전화해서 리스본행 통행증 가진 두 사람 통과시키라고 지시하게!' 명령한다. 르노는 '심장은 소중한 것이니, 일단 시키는대로 해야겠지' 빈정대면서 닉의 명령을 따른다. 
영화 마지막 장면이 멋지다. 비행기 이륙 시간 10분 전. 네 사람이 승용차로 공항에 내리자, 릭은 통행증에 일자와 라즐로 부부 이름을 기재토록 지시한다. '왜 내 이름을 거기에?' 일자가 묻자, '당신 부탁대로 내가 우리 두 사람 장래를 생각해봤어. 결론은 당신이 여기 남으면 우리 두 사람은 십중팔구 수용소에 갈 거고, 둘 다 평생 후회할 거야. 당신은 라즐로와 함께 떠나! 자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릭은 설명하고, '싫어!' 일자는 외친다. 이때 비행기 프로펠라 돌아가는 모습과 남자를 바라보던 잉그릿 버그만의 눈물 젖은 그 눈동자가 아마 이 영화를 명화로 만들었을 것이다. '신의 가호를!'  떠나는 사람은 남은 자에게 작별인사를 던지고, 이때 세월이 흐르면(As Time Goes By)' 곡은 흐른다. 두 사람이 걸어가는 젖은 활주로 끝 저멀리 희미한 비행기 등불이 애상적이다. 

한편 슈트라사 소령이 짚차로 달려와 비행기 이륙을 취소시키려고 전화기에 닥아가자, '물러 서!' 릭이 명령하고 거역하자 총구가 불을 뿜는다. 소령이 쓰러진 속에 두 사람을 태운 비행기는 활주로를 이륙한다. 조금 뒤 경찰이 나타나자 르노는 딴전을 피우며 '용의자를 빨리 검거하라'고 지시한다. 경찰들이 딴곳으로 달려가자, 곁에 있던 포도주병을 꺼내보더니 그게 독일산이자, 쓰레기통에 던진 후 발로 차버린다. 닉에게 '원한다면 프랑스 인민 수비대가 있는 지역으로 보내 줄 수 있다'고  제안한다.

 

흑백 영화 시절, ‘카사블랑카’는 1942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세 개 수상한 작품이다. 2007년 미국 영화연구소 선정 100대 영화에 꼽히기도 했다. 이 영화는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이 캐스팅 될 뻔했다가 험프리 보가트가 그 역을 맡았다. 그만치 씨나리오 중에 명대사가 많고, 릭과 일자의 이별 장면이 감동적이다. 트렌치 코트와 깊숙히 눌러쓴 모자가 인상적인 험프리 보가트는 이 영화로 남자 이별의 모범 답안이 되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이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식의 김소월 이별에 익숙하던 필자에게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은 쇼크였다. 42년 뒤인 1984년 버티 허긴스가 카사불랑카란 곡을 만들었고, 그 번안곡은 우리나라 가수 최헌이 불러 히트했다.

김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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