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문우회

과일 향 나는 작가/ 김지연

김현거사 2019. 6. 7. 09:28
 

 과일 향 나는 작가/ 김지연 
 한 10년 전 쯤 전에 남강문학회 초대 회장 정재필 시인이 해운대 모임에서 즉흥시 한 수 읊은 적 있다.
 봄날은 간다.
꽃샘추위 잦아든 해운대 동백섬동백꽃 흐드러져봄날은 간다.
눈매 고왔던 갈래머리 문학소녀가어느 자리에선가 성주풀이 멋들어지게꺽어재끼던 당찬 소녀가 
어느새 반백 머리 할머니 되어소설집 원 없이 펴낸 곱게 늙은 여류작가가 되어반세기 만에 나타나 주름진 손 덥석 잡는데속절없이 봄날은 흐르고
낮과 밤의 키 똑 같아지는춘분 절기가 감격스러운지해운대 바닷물도 뒤척이며꺼이꺼이 목이 메는 봄밤
8부 능선을 넘는 숨찬 나이에도아직은 설렘과 떨림이 남아서일까술잔은 넘치고아아 봄날은 간다.
                           (2012년 3월)
 그 시에 나온 성주풀이 멋들어지게 꺽어제치던 문학소녀 만나러 가는 날 하필이면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한국여성문인회 회장 역임한 그 분은 젊어 한 때 강신재, 정연희와 함께 문단의 미녀 3총사로 불리던 분이다. 여류문인협회는 모윤숙 시인, 박화성 소설가, 최정희 소설가가 중심이던 시절, 그 희소성 때문에 청와대에서 초대하고, 각 일간지들은 여류문인 전국주부백일장 행사 소개하고, 기업체에서 지원을 할 정도로 인기 있었다.
 그래 우선 김치국부터 마셔보았다. 만나기로 한 대한극장 옆골목을 미리 정찰하여 막걸리 잔 나누기 좋은 집 위치부터 탐색해놓았다. 운 좋으면 콧대 높은 이 분과 단독 데이트로 텁텁한 막걸리 잔 나눌 기회가 올지 누가 아는가. 그러고 대한극장 1층 로비에서 10년 전에 문인협회 일본 문학기행에서 본 적 있어 구면인 김지연 선배를 만났다. 
 
 
 문단에서 피천덕 선생 수제자가 진주고 출신 정목일이고, 월탄 박종화 선생이 딸처럼 아낀 제자는 진주여고 출신 김여정 시인이고, 김동리 선생 수제자는 진주여고 출신 김지연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김지연이라는 필명은 동리 선생이 직접 지어주신 것이다. 본명은 김명자다. 김선배는 원래 스승이 작명해주신 그 이름이 탐탁치 않았는데, ‘지연’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는, 스승이 댁에 새배를 갈 때마다 부인 손소희 소설가 들으라고 ’지연아 네 아들만 둘이지?' 일부러 묻기도 하고, 선생께서 ‘자연과 인생’ 수필집을 내고 사인을 해서 주실 때, 거기 김지연이라는 필명을 쓴 다음 낙관 찍어주신 이후부터 라고 한다. 김선배는 월탄문학상, 류주현 문학상, 손소희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중 손소희 문학상은 김동리 손소희 부부의 장남으로 지난 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변호인으로 대한문에서 영웅 대접 받던 김평우 변호사가 지원한 것이다. 관록있는 여류답게 그 분은 악수 나누자 곧장 극장 옆골목으로 나가자고 했고, 거사가 미리 봐둔 집 선택하자, '막걸리도 한 잔?' 고향 누님처럼 따뜻하게 물어준다. 이렇게 첫단추 잘 꿔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김선배도 그렇지만 거사도 달변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먼저 이쪽 포문 열었다. '제가 10년 남강문학회 부회장 하면서 한가지 잘한 일은, 진주가 자랑으로 삼아야 할 원로 시인 김정희, 정혜옥, 김여정 세 분 면모를 글로 남긴 것 입니다. 이건 누군가 후배가 해야할 일입니다. 내가 뒤늦게 수필가란 것이 되어보니, 문인들이 전부 자기 중심적이고, 선배는 뒷전 입디다.'  '그런데 2013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사람이 남강문학회 진주 모임 숙소인 시조문학관에서 별빛 총총한 새벽 6시에 김정희 선배님을 뵌 적 있는데, 누가 문학관에 불을 켜고 둘러보고 있나 싶어 올라오신 거지요. 마침 이영도의 <탑>이란 시 앞에 오자, '너는 저 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나지막한 음성으시를 읊어주시는데, 아시다시피 시가 얼마나 함축적 입니까. 그걸 남 다 자는 이른 새벽에 미인이 조용히 읊어주니 더 좋았습니다. 마침 거기 이영도 시인 사진이 있길래 제가 김선배님께 이리 말씀 드렸지요. 아름다운 시로 감동을 남긴 여류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도 감동 입니다. 김정희 선배님도 미인이신데, 전시된 사진이 없군요. 가령 제가 크리스티나 로젯티의 시를 좋아하는데, 막상 그 분 문학관에 가서 사진이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참고 해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멋진 사진을 문학관에 비치하셔야 합니다.' '이런 대화를 한 적 있습니다. 오늘 김지연 선배님 만났으니, 사진 몇 장 찍겠습니다.' 이렇게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김지연 소설가의 작품세계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진주 초전동 과수원집 따님 감성으로 쓴 '산'에 관한 것, 의학신문 취재부장 경험을 토대로 쓴 '의학 소설'이 그것이다. 전자는 18세 때 심장병과 폐결핵으로 지리산 산사에서 정양생활 할 때 체험이 보태진 <산울음>, <산배암>, 중국 흑룡강성에서 번역되어 팔렸던 <산가시내>가 있고, 우리 문단에서 유일한 의학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후자는 <흑색병동>, <히포크라테스 연가> 등이 있다. 주로 산에 대한 수필을 쓰고 지리산에 자주 다닌 거사가 선배님의 산에 대한 소설에 흥미를 보이자, 거사의 지리산 방문기도 몇 편 읽었고, 현재 지리산에 농막 하나 지어놓고 자주 가신다고 한다.  이날 김선배님 작품 <소설 논개> 이야기가 나와, 촉석루 밑 의암 옆 비각 안에 있는 논개에 대한 한시를 번역하신 정태수 전 문교부 차관님과 전화 연결해드려 훗날만나자는 약속 해놓기도 했다. 

홀로 가파른 그 바위 우뚝 선 그 여인(獨峭其巖 特立其女)

저 여인, 이 바위 아니면 어디서 죽을 곳을 얻으며(女非斯巖 焉得死所)

저 바위, 이 여인 아니면 어찌 의롭단 말 들으리(巖非斯女 烏得義聲)

한 줄기 강물 높은 바위, 만고에 꽃다우리라(一江高巖 萬古芳貞)


 일찌기 내가 '진주 여인은 대채로 인근 산야에서 자라는 야채나 과일 비슷하다. 부드럽기는 신안동 토란처럼 부드럽고, 시원하기는 도동 수박처럼 시원하다. 달콤하기는 비봉산 산딸기 같고, 연하기는 습천못 무화과 같다. 새콤하기 촉석루 석류처럼 새콤달콤하고, 피부는 비온 후 대밭 죽순처럼 하얗고 보들보들하다.'고 표현한 적 있다. 전원도시에서 자란 진주 여인 몸에선 과일 향이 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이날 나는 과일 향 나는 그런 분과 고향 냄새 가득한 이야기 나누다 왔다.

김지연 소설가 약력

진주여고.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1967년 「매일신문」신춘문예 당선.  1968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

작품집  『산가시내』 『산울음』 『산 배암』 『야생의 숲 』『촌남자』『고리』『아버지의 장기』 『산막의 영물』 『배추뿌리』 『산죽』등 30여권이 있고 역사소설  『논개』가 있다.

한국소설문학상 , 월탄문학상, 류주현 문학상 수상하였다.

의사신문, 경남일보 문화부 차장, 방송심의위원회,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경원대 겸임교수. 한국문예학술 저작권 협회 부이사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역임. 은평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