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 천리길

스승의 날에 걸려온 전화/2011

김현거사 2018. 4. 4. 21:51

 

 스승의 날에 걸려온 전화


 몇년 전 '스승의 날' 아침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나야 교편 잡은 적 없으니, 제자가 없다. 전화하신 분은 팔순 넘기신 아버님 제자였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 평생 마음 깊이 흠모하던 선생님은 뵈올 수 없어, 대신 아드님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정태수 총장님은 서두를 이렇게 꺼냈다. 순간 '세상에 이런 일이!'란 방송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팔순 넘긴 노인이 스승의 날이라고 스승의 아들에게 전화한 것이 바로 '세상에 이런 일이!'가 아닌가.

 '오늘 스승의 날에 선생님의 은혜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진주사범에서 국사를 그렇게 재미있게 강의 학생들이 심취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게 계기가 되어 나는 사범 졸업하고 대학에서 법학을 배우면서도 국사에 특히 취미를 가져 독학했고, 그 취미가 나를 고등고시 국사 점수가 좋아 합격하도록 해준 겁니다. 두번째는 선생님이 교육감으로 계실 때, 나를 부산으로 보내주신 은혜 입니다. 나는 사범 다닐 때 선생님을 누구보다 존경했어요. 그래 교육감 은사님을 찾아가 '선생님 이 정태수가 문산 같은 시골에 있어서 되겠습니까? 부산으로 보내주십시오.' 당돌히 어리냥처럼 말씀 드렸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정말 날 부산으로 발령하셨고, 나는 거기서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평양사범 출신 동료 교사 따라 고등고시의 큰 뜻을 품게 된 것입니다. 셋째는 내가 시조시인으로 <우주의 역사>를 소재로 시집을 발간케 해주신 은혜입니다. 선생님의 역사에 대한 지도가 나의 사고방식을 우리 역사에서 세계 역사로, 세계의 역사에서 우주의 역사로 발전시킨 것 입니다. 결국 그것이 우주를 소재로 한 내 시집이 나온 계기 입니다.'

 정총장님은 서울교육대 총장, 문교부 차관 역임한 교육자다웠다. 나는 총장님을 출향 문인 모임인 남강문학회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남강문학회에서 만난 정태수, 그 분이 생전에 아버님이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시던 진주사범 제자 중 한 분이란 걸 안다. 아버님은 정희채 정태수 두 분을 이야기 하셨다. 사법고시 출제위원으로 문교부 차관을 지낸 정희채 씨는 그림에 소질이 있어 고성에서 평교사 재직시 아버님 사진을 연필화로 그려 액자에 넣어 보내온 적 있다. 정태수 씨는 문교부 차관 때 진주 출신을 보살펴준 속칭 '문교부 진주 마피아'의 대부였다. LG 회장 구자경씨도 제자지만, 아버님은 구회장 이야긴 별로 하신 적 없다. 선친 구인회씨가 초창기 부산에서 <럭키> 를 만들 때 아버님을 이사로 초청한 적 있다. 구태희 씨는 명절에 세배를 올 정도로 세교가 있는 사이다. 그러나 진주 시장에서 포목장수로 시작한 구씨 집안이 양반이라는 말만 하셨지, 구자경 씨 이야긴 없었다. 아마 재벌 회장 보다 문교부 교육자 제자들이 더 소중하셨던지 모른다.   

마침 정총장님이 내가 살고있는 수지 근처 기흥에 살고계시어 한번은 내가 식사 대접 하겠다고  전화 드린 적 있다. 가까운 미금역 어느 음식점에서 만났는데, 식사 끝내고 계산하러 가니 총장님이 미리 계산을 해놓았다. '제가 모신 자리인데, 선생님이 이러시면...' 그러자, '오늘 식사는 내가 존경하던 선생님 자제분을 대접한 것입니다. 아무 말 마세요'그러셨다. 그래 암 말 못하고 왔지만, 그 말씀이 인상 깊었다. 

 그후부터 총장님을 자주 뵈었다. 우리 내외가 총장님 부부와 제자분이 교장 은퇴해 계신 욕지도에서 하루밤 보내며 바다낚시 즐기고, 쌍계사 벚꽃 구경하고 오기도 하였다. 칠순 넘은 제자가 노스승께 도다리와 우럭 낚으라고 낚시 미끼 달아주는 모습 보고, 과연 사도(師道)가 아름다운 것이구나 느꼈다. 

 철마다 총장님을 팔당, 남한산성, 분당에 모시고 식사를 하기도 했다.  


 사진 가운데가 정총장님, 좌측 필자, 우측 김한석 전 진주 부시장


 몇년 전 총장님이 집필하고 계신 자서전 이야기가 나와, 내가 가지고 있던 자서전 몇 권을 빌려드렸다. 나는 아남그룹 창업주와 동대문 시장 상인 자서전을 쓴 적 있다. 김성수, 장기영, 김정렴 등 참고서적으로 열 몇 권 자서전을 갖고 있다. 

작년 추석엔 음성 햇사래 복숭아 한 상자를 보내드렸는데, 년말을 넘기시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셨다. 상가에서 사모님을 뵙고, 내가 총장님 원고 교정을 봐드린 일도 있고하니, 원하시면 제가 미결된 자서전을 출판해드리고 싶습니다.

(202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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