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고 글

내가 만난 절세미인/월간문학

김현거사 2017. 7. 26. 15:42

 

 

 

  내가 만난 절세미인

                                                                                         수필가 김창현

 

 '새파란 수평선 흰구름 흐르는, 오늘도 즐거워라 조개잡이 가는 처녀들.' '진주조개 잡이' 노래 들으면 나는 50년 전 일이 생각난다.

 나는 철학과 학생으로 데칼트, 칸트, 쇼펜하우엘 같은 걸 배우고 있었다. 한 친구가 자살하자, 자원입대하여 항만사령부 자동차대대 운전병이 되었다. 까뮈의 소설 <이방인> 주인공 '뭐르소'처럼 인생이 부조리 하다며 서면 하이에리어 미군부대 근처 사창가를 헤매다가 제대하자 달랑 성경 한 권과 원고지만 챙겨가지고 달아난 곳이 남해 미조리란 곳이다. 거기서 얼마 후 더 외진 곳 찾아간 곳이 욕지도다.

 

 발 밑까지 파도가 밀려오던 곳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다. 풍덩풍덩 벌거둥이 아이들이 운동장 축대에서 물에 다이빙하는 모습이 볼만했다. 내가 하숙한 집 삼십대 초반 아주머니는 욕지도에선 보기 드믄 미인이었다. 남편은 원양어선 선원이었다. 여인이 허구헌날 욕지서 초도(草島) 혹은 풀이섬이라 부르는 섬이 경치 좋다며 가보자고 노랠 부르는 바람에 하루는 둘이 뗀마를 타고 거길 갔다.

 

 그리고 그날 나는 큰 낭패를 당했다. 파도 무서운 걸 처음 알았다. 배가 '자부랑깨'라 부르던 포구를 벗어나자 거기서 부터는 항구 안에 있던 그런 시시한 파도가 아니었다. 산처럼 높은 파도가 가랑잎 같은 배를 맘대로 흔들었다. 배가 파도 위에 올라가면 산 꼭대기에 올라간 것 같고, 밑에 내려가면 천길 낭떠러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대학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제법 동대문운동장 시합에도 나간 적 있다. 그러나 배가 롤링을 시작하자 멀미를 하면서 손으로 뱃전을 꽉 움켜잡은채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그러나 섬 여인은 달랐다. '여기가 섬과 섬 사이라 조류가 세다'고 나를 안심시키며, 그 연약해서 믿기도 어려운 손목으로 용케도 노를 저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풀이섬이다. 섬의 첫인상을 잊을 수 없다. 

 둥그런 만(灣)은 자갈로 덮혀 있었다. 자르르 자르르 소리 내면서 파도에 씻기는 자갈이 보석같았다. 유리처럼 투명한 물은 밑이 훤히 보였다. '수정같은 맑은 물(Christal water)'이란 표현을 전엔 그냥 문학적 수식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 그런 바다가 거기 있었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와 물 밑 멍게와 해삼이 또렷이 보였다.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빈 배 하나 파도에 몸을 맡긴채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은 부드럽고 공기는 신선했다. 떨어진 동백꽃 낙화는 땅에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듯 했다. 화가가 거친 텃치로 화판에  물감을 잔뜩 칠해놓은 것 같다. 아마 고갱이 보았던 타이티 풍경이 이랬을 것이다. 

 집은 서너 채 밖에 없었다. 담도 없었다. 뭉게구름 아래 팽나무 동백나무 숲길 올라가니 아줌마네 집이 꼭대기에 있다. 

 

  장독대 근처에 매여있던 소가 사람 기척에 고개를 들자, 딸랑! 고요한 방울소리가 정적을 깬다. 싱싱한 호박줄기는 소리없이 지붕 위로 뻗어가고 있다.

'있나?'

 언니가 다정히 부르자 토벽에 달린 여닫이 문이 열렸다. 동생이 나왔다. 

 동생은 언니보다 더 미인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늘씬한 몸매, 가늘고 짙은 눈섶이, '고독'이란 영화에 나온 엘리자베스 태일러 같다. 천부적인 남국 미녀였다. 삼단같은 머리결이 너무 탐스럽다.

 산에서 나무하고, 바다에서 뗀마 저어 그런가. 자맥질 하고 미역 뜯어 그런가. 처녀는 완전히 사슴 이다. 늘씬한 몸매가 그렇고, 순한 눈망울이 그랬다. 

  

 주변에 동백꽃 지천으로 피었겠다, 귓가에 동백꽃 하나 꽂으면 동백나무 춘(椿), 계집 희(姬), ‘춘희’ 아닌가. '듀마휴이스'의 소설 여주인공 '춘희'가 저랬겠다 싶었다.

 '태양이 쓰다듬어주는 향기로운 나라에서, 나 알았었나니, 남모를 매력 지닌 식민지 태생의 한 부인을’에서 시작되어, ‘마담, 그대 만일 영광의 쎄느강이나, 푸른 르와르강가로 가신다면, 고풍의 성을 아름다이 함직도 한 미녀’로 끝나는 보들레르의 시가 있다. '식민지 태생의 한 부인에게'란 그 시 주인공이 저랬겠다 싶었다.

 

 언니 동생은 미리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를 본 처녀 얼굴이 복숭아꽃처럼 물든다.

‘아부지는?'

언니가 묻자,

'밀감나무 심으러 산에 갔다.'

동생이 대답했고,

'아부지 보고 오께.' 

언니는 이 말 남기고 산에 올라가서 종일 오지 않았다.

흘레 부칠 종마 암말 옆에 데려온 셈이다. 노랠 부르며 풀이섬 가자고 한 이유 알만했다.

 

  빈집에서 두 사람은 할 말이 없었다. 총각은 마당에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만 보고, 처녀는 저만치 말 못하는 누룽이 황소만 보고 있었다.

  처녀가 여물통에 볏짚을 넣어주니, 소가 코뚜레 위로 혀를 내밀어 손을 햟는다. 

 '소가 몇 살 짜리요?'

 말을 걸자, 

 '... ... ...'

 처녀는 늦가을 감나무 가지 끝에 달린 서리 맞은 홍시가 된다.

 

 수줍음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계산된 교태와 수줍음의 차이는 인공미와 자연미의 차이만큼 크다. 나는 동백꽃같은 그에게 동박새처럼 힘차게 날개 퍼덕이며 날아가고 싶었다. 

 

 그러고 얼마나 있었던지 모르겠다. 마루 끝에 앉았던 처녀가 부얶 아궁이 불을 붙인 모양이다. 청솔가지 태운 맵싸한 연기가 마당 굴뚝에서 나지막하게 피어오른다.

 달거락거리는 소리 나더니 개다리 밥상에 뭘 얹어 내온다. 돌나물 한 접시, 간장 한 종지, 고구마  담긴 소쿠리 하나가 전부다. 당시 욕지도는 고구마가 주식이던 때다. 이것이 내가 태어나서 받아본 한 처녀가 오로지 나를 위해서 차려준 첫 밥상이다.

   

 청마루에 날개 달린 사자 그려진 비사표(飛獅標) 통성냥이 있었다. 고구마 먹고 담배 입에 무니, 처녀가 찰랑찰랑 냉수 담긴 대접 갖다준다. 내외하느라고 툇마루 끝에 멀찍이 앉는다. 

 감나무 푸른 잎은 싱싱하게 하늘 가렸다. 섬돌 옆에 핀 꽃 아름답다.

'저 꽃 이름을 뭐라 캅니까?'

그 말에 애꿎은 처녀 귓볼만 붉어진다.  

사실 그 꽃 이름은 유도화(柳桃花)다. 잎은 버들같고 꽃은 복숭아꽃 같아 그리 부른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핀 꽃이 유난히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칭찬해 주는 사람 없고, 사랑해주는 사람 아무도 없던, 위즈워스가 노래한 더브의 샘가 루시도 그랬을 것이다. 

 

 언니는 둘이 수작 해보라고 그 자리를 피해준 것이다.

 '같이 식사하지 그랬어요?'

 그 말 한마디에 처녀가 후다닥 뒤뜰로 달아난다. 빈 집에서 처녀 총각 한 상에 앉았다면 일은 났을 것이다. 말만 들어도 부끄러운 모양이다. 내친 김에 뒤뜰로 따라가자 이번에는 화다닥 앞뜰로 달아난다. 영판 사슴이다. 숨 가쁜 건 매미인 모양이다. 맴맴! 인적 없는 뜰에 숲매미만 요란히 울어제낀다. 

 

 박목월의 시를 속으로 외워보았다.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흙담 안팍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슴, 구름처럼 살아라한다. 바람처럼 살아라한다.'

 

  아주 여기서 이 처녀와 들찔레처럼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희랍 절벽 위 수도원에 사는 수도승을 본 적 있다. 그렇게 살 수 있다 싶었다. 대학이 뭐가 중요한가. 그는 도시 어느 처녀도 비교될 수 없을만치 아름답다. 절세미인이다. 만약 그 날 그 손목을 잡았으면...충분히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아버지와 언니는 점심을 굶고 해거름에사 내려왔다.

'면에서 밀감나무 거저 심으라고 묘목 보내줘서...'

 변명 비슷한 말을 노인이 했고,

'제주도는 밀감나무 키우모 자식 대학공부 시킨다 않캅디꺼? 우리도 3년 후 수확합니더.'

언니는 누구 들으라는지 해설을 한다.

당시 관에서 밀감 재배 권장하던 때다.

 

 이렇게 풀이섬을 다녀왔다.

 뗀마 타고 바다로 나올 때 광경을 잊지못하겠다. 어둠 머금은 진홍빛 물결과 산 위에 걸려있던 금빛 구름이 성화(聖畵) 같았다. 먼 등불 하나 별처럼 깜빡이기 시작했다. 처녀네 아주까리 장명등일 것이다. 그가 나에게 손짓하는듯 싶었다.

 

 장만영의 시가 생각났다.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조수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았다. 달은 과일보다 향기롭다. 동해 바다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곱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넝쿨 아래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우리가 탄 배는 피아노 은반같은 바다를 노 저어 갔다. 은파는 왈츠를 추면서 끝없이 따라왔다. 

 

 당시 욕지도에선 눈 딲고 찾아도 대학생 사위 구할 수 없었다. 거기 군 제대한 스물 세살 청년이, 서울서 대학 다닌 청년이, 성경과 원고지 들고 제발로 나타난 것이다. 풀이섬 그 아버지와 언니는 아닌 말로 애간장이 탔을 것이다. 

 

 그때 그 처녀와 맺어졌다면... 지금 나는 오렌지 향기 바람에 날리는 섬 주인일 것이다. 떨어진 동백꽃은 해마다 해변에 붉은 카펫을 펼칠 것이다. 낙원의 연인은 손 잡고 그 위를 거닐 것이다. 노인이 심은 밀감나무 누구 것이랴. 바다의 우럭과 감성돔 누구 것이랴. 소라와 해삼 누구 것이랴.

 그때 만약 마음만 먹었더라면... 나는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처녀와 평생 낙원에 살 수 있었다. 시집같은 건 필요 없다. 섬 자체가 시다. 보석도 필요 없다. 우리는 진주조개 키우며 살았을 것이다.

  

  아! 그러나 사람은 항상 엉뚱한 길로 빠지곤 한다. 나는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Tabula rasa(백지)같은 순진무구한 처녀를 외면하고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솔로몬의 영화보다 더 귀한 황야의 백합을 외면하고 50년 전에 서울로 올라와서는,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름 없는 초라한 봉급생활자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약력

 '문학시대' 수필로 등단(2007년)

 

저서

한 잎 조각배에 실은 것은(소소리)

재미있는 고전여행(김영사)

나는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한국문학방송)

  

사진 첨부  

원고청탁서

김창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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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녕하십니까. 선생님의 건필을 빕니다.

2)『월간문학』2017년 11/12월호에 선생님의 옥고를 싣고자 아래와 같이 청탁합니다.

*장 르 : 수필(미발표 신작)

*분 량 : 15매 이내(원고지 기준 - 원고 양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내 용 : 자유

*마 감 : 2017년 9월 10일

*약 력 : 등단년도, 등단지와 대표저서(수필집 제목), 문학상수상경력 (대표 2개)이 있으시면 원고 끝에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기 타 : 원고료 지급에 필요한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 계좌번호(예금주)도 기재를 부탁드리며 사진(jpg파일)과 함께 첨부파일로 부탁드립니다.

*참고사항 : 1)한자(漢字)나 외래어는 ( ) 속에 넣어 주십시오.

2)작품은 「 」로, 저서는 『 』를 사용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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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8일

이사장 문 효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