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소개한 중국사상 25편

책 한 권에 소개한 중국사상 25편

김현거사 2017. 3. 10. 16:18

표지

 

    책 한 권에 소개한

               중국사상 25편

 

시경

서경

공자  <논어>

맹자

노자 <도덕경>

장자 <남화경>

자사 <중용>

순자 <성악설>

현장삼장 <반야심경>

열자

묵자

한비자

포박자

굴원 <어부사>

도연명 <귀거래사>

육우 <다경>

혜능  <육조단경> 

무경칠서(武經七書) 제1편

<손자병법>. <오자병법>. <손빈병법>

무경칠서(武經七書) 제2편

<육도삼략> <사마법>

무경칠서(武經七書) 제3편

<율료자> <당태종이위공문대>

이태백

두보

왕유

백낙천 <비파행>

소동파 <적벽부> 

이립옹 <개자원화전>

도륭 <고반여사>

홍자성 <채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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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글

 

 책은 많지만 고전은 드물다동양 고전은 더 드물다사람들은 일리야드 오딧세이는 읽었다고 자랑하지만, 공자나 맹자, 퇴계나 율곡 제대로 읽은 사람 드물다.

 필자가 기업에서 근무할 때 이야기다북유럽 어떤 왕족과 만찬 테이불에서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이쪽 중역이 그쪽 귀부인이 테이불에 놓인 태극기의 빨강과 파랑의 의미를 묻자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는 걸 본 적 있다태극(太極)의 의미를 몰라, 위의 붉은 것은 북한, 아래 파란 것은 남한이라 설명했다그 후 필자는 그룹 사보에 공자 맹자, 퇴계 율곡 등 동양사상을 20여년간 칼럼으로 썼다.

 그러나 학문의 세계란 바다처럼 깊고 산처럼 높은 것이다. 논어 하나만 가지고도 일평생 연구해도 못하는게 학문의 세계다그걸 어떻게 원고지 몇 장 칼럼으로 다이제스트 할 수 있는가알기 쉽게 간략히 소개하겠다는 의도야 좋지만,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7세기 남경의 부호였던 이립옹(李笠翁)이라는 사람은 이전의 유명한 동양화 그림과 이론을 판각하여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이란 책을 만들었다. 그가 그 일을 진행하던 중 타계하자사위 심심우(沈心友)  이어받아 22년에 걸쳐 책을 완성했다이 책이 지금 중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동양화의 교본이다.

 필자는 은퇴하자 이립옹을 본받기로 결심하였다. '책 한권에 소개한 동양사상 50'이란 제목을 정하고한국과 중국 각 25편을 다이제스트한 단행본을 만들기로 하여, 한국사상 25편은 이미 출간했다.

 필자는 젊은 시절 저날리스트 였고대학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다일단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염두에 두고 원고를 정리하고, 시각적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을 많이 넣었다.

 현재 시중에는 우리 사상을 소개한 책이 드물다. 있다해도 학자들은 공자면 공자, 퇴계면 퇴계단 하나  전공만 연구하기 때문에 일반에겐 어렵다. 이런 실정이라 필자는 이 책을 내놓는다. 부디 이 책이 젊은 세대에게 동양사상을 간략히 맛보게 해줄 맛소금이 되길 기대한다

                                                                           광교산 아래서 김창현


약력  

1944년 생

진주고. 고려대 철학과 졸업

불교신문. 내외경제신문 기자

아남그룹 회장실 비서실장. 아남프라자 백화점 대표이사(속초)

동우대 겸임교수

'문학시대'에서 수필가로 등단

청다문학회 회장. 남강문학회 부회장


 

저서

재미있는 고전여행(김영사). 한 잎 조각배에 실은 것은(소소리). 작은 열쇄가 큰문을 연다(아남그룹 창업주 자서전). 나의 인생 여정(장재걸선생 자서전).

전자책; 나는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한국문학 방송). 내가 만난 대통령(한국문학방송). 책 한 권에 소개한 한국사상 25(한국문학방송). 어느 수필가가 쓴 전원교향곡(한국문학방송).


차례

 

시경

서경

공자  <논어>

맹자

노자 <도덕경>

장자 <남화경>

자사 <중용>

순자 <성악설>

현장삼장 <반야심경>

열자

묵자

한비자

포박자

굴원 <어부사>

도연명 <귀거래사>

육우 <다경>

혜능  <육조단경> 

무경칠서(武經七書) 제1편/ <손자병법>. <오자병법>. <손빈병법>

무경칠서(武經七書) 제2편/ <육도삼략> <사마법>

무경칠서(武經七書) 제3편/ <율료자> <당태종이위공문대>

이태백

두보

왕유

백낙천 <비파행>

소동파 <적벽부> 

이립옹 <개자원화전>

도륭 <고반여사>

홍자성 <채근담>

 

  시경(詩經)

 

시경(詩經)’은 말 그대로 ‘시의 경전(經典)’이다. 공자가 서주(西周) 때부터 춘추시대(BC 6세기)까지 전승된 3,000여 편 중 305편을 가려서 정리한 책이다.

 

 

 공자는 만년에 제자를 가르침에 육경(六經) 중에서 시를 첫머리로 삼았다. 시가 인간의 순수한 감정에서 우러난 것이므로, 그 만한 전범(典範)이 없다고 생각했다. 논어 <양화편>에서 '너희들은 왜 시경을 배우지 않느냐? 시경은 감흥을 일으켜 정서를 순화하고 사물을 바르게 관찰할 수 있게 하며, 많은 사람들과 사귀게 하고, 불의를 비판할 수 있게 하며, 집안에서는 부모를 섬기고, 나가서는 임금을 받들게 하고, , 짐승, ,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하느니라.'고 했다. 아들 백어(伯魚)에게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면서 시 공부를 권했다.

 공자는 '300편을 한 마디로 사악함이 없다(思無邪)'고 했다. '즐겁되 음탕하지 않고 슬프되 상케 하지 않는다(樂而不淫, 哀而不傷)'고 했다..

 

 '시경'의 내용은 민간에서 모은 (), 정치에 관한 아(), 선왕의 덕을 칭송한 송() 있다신내림(降神), 주술(呪謠), 제가(祭歌), 충성, 효도, 연가 도 있다. '시경'에 실린 시들은 현학적이거나 어렵지 않다농익거나 짙지 아니하다.  

  몇개만 읽어보자. '시경'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베짱이

 

베짱이 떼 많기도 하네. 너의 자손 번창하리라.

베짱이 울음소리 시끄럽기도 하네. 너의 자손 번성하리라.

베짱이 울음소리 끝도 없네. 너의 자손 번성하리라.

 

*베짱이는 다산의 상징이며 약으로 쓰는 상서로운 곤충이다베짱이가 떼지어 날갯짓 하면서 날아오르는 모양을 묘사함으로써 자손의 번영을 축복한 시이며, 아마 결혼식 때 춤을 추면서 축가로 불렀을 것이다.

 

 칡덩쿨

 

 칡덩쿨은 골짜기에 뻗어 그 잎새 무성하다. 꾀꼬리 꾀꼴꾀꼴 저 숲 속에 날아앉아 그 울음 아름답네.

칡덩쿨은 골짜기에 뻗어 그 잎새 무성하다. 이걸 베고 쪄서 굵고 가는 베를 짜서 옷 지어입어 싫지 않구나.

어른께 말씀드려 근친 간다고 하거라. 막 입는 옷, 나들이 옷, 서둘러 빨래하자. 어느 건 빨고 안 빨 건가. 양친 뵈러 친정 가네.

 

까치집

 

까치가 지은 집에 비둘기가 들어가네.

우리 아씨 시집가네백 채 수레 마중하네.

까치가 지은 집에 비둘기가 가득하네.

우리 아씨 시집가네백 채 수레 따라가네.

 

*까치와 비둘기는 모두 상서로운 새다까치집에 비둘기를 맞이하는 정경을 빗대어 시집가는 딸이 남성의 집에 받아들여짐을 축복하는 시다.

 

누추한 집에서도

 

집이 누추하긴 해도 못 살 거야 없네. 졸졸대는 샘물에서도 가난은 즐길만 하네.

고기를 먹는 데에 꼭 황하의 잉어여야 하고, 아내를 얻는 데에 딱이 제나라 공주일 필요야 없네.

 

내게도 일찍이

 

내게도 일찍이 커다란 집에 살림 번성했었지. 지금은 먹기조차 어려우니, 계속되는 부귀는 없으련가.

내게도 일찍이 좋은 음식 많았었지. 지금은 배조차 채우기 어려우니, 계속되는 부귀는 없으련가.

 

복사나무

 

고운 복사나무 활짝 피었네. 이 집 처녀 시집가면 시집살이 잘도 할래.

고운 복사나무 잘도 익었네. 이 집 처녀 시집가면 시집살이 잘도 할래.

고운 복사나무 잎새도 싱그럽네. 이 집 처녀 시집가면 어진 아내 될터이니.

 

귀여운 여인

 

귀엽고 아름다운 그 여인, 성 모퉁이에서 날 기다리네.

날씨 흐려 눈에 안 띄어 머리 긁적이며 주저하네.

귀엽고 아름다운 그 여인, 내게 붉은 피리 주었네.

피리의 붉은 빛 곱기도 하나, 그녀가 더 곱네.

들판에서 그녀는 내게 삘기를 뽑아주었네.

삘기가 예쁜 것이 아니라, 고운 이가 주어서 예쁘다네.

 

 달빛이 갈대에

 

갈대에 달빛이 어우러지니, 이슬 맺히고 서리 내렸네.

사랑하는 그대는 물 저쪽에 산다네. 거슬러 올라가 만나자니 길은 멀고 험하고, 물결 따라 내려가보려니, 마치 물 한가운데 있는 것 같네.

갈대에 달빛이 어우러지니, 이슬 아직 마르지 않았네.

사랑하는 그대는 물가에 산다네. 거슬러 올라가 만나자니 길은 멀고 가쁘고,

마치 물 가운데 모래섬에 있는듯 하네.

 

떨어지는 매실

 

내던지는 매실 일곱 개, 날 찾는 사내들아, 어서 이 좋은 기회에.

내던지는 매실 세 개, 날 찾는 사내들아, 오늘 어서.
내던지는 매실 한 광주리, 날 찾는 사내들아, 지금 당장 어서

 

*매실은 임산부에게 좋은 약리작용 하는 열매이다. 그 매실을 마음에 둔 남자를 향해 던져 구혼하는 시다. 이것을 투과혼(投果婚, 열매를 던져 구혼하는 것)이라 한다. 진서(晋書) '반악전(潘岳傳)'에 미소년 반악(潘岳)이 외출하면 여자들이 둘러싸고 마차가 가득 찰 정도로 과일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웅치(雄雉, 장끼)

 

장끼가 날아오르네, 천천히 날갯짓하며 가네.
그리운 임이여! 내 마음에 괴로움만 남았구나.
장끼가 날아오르네, 오르락내리락 날갯짓 소리 들리네.
진짜 내 임이여! 이 괴로움 어이할까?
저 해와 달 바라보며 끝없는 이 생각
길은 멀다 하는데, 어찌 능히 오려나?
세상의 군자들아! 어찌 덕행을 모르느냐?
해하고 탐내지 않는데, 어찌 이보다 더 선하란 말이냐?

 

*장끼는 남자를 상징한다장끼가 날아가는 모습을 노래하여 남자가 여자로부터 떠남을 상징한다다시 맺어지고 싶어 하는 여자의 희망한에 사무쳐 자신을 위로하는 버림받은 여인의 심정을 그렸다.

 

다북쑥(蓼蕭제례에 참석한 손님을 의미)

 

저 큰 다북쑥, 이슬 촉촉하네.
임을 만나 보니, 내 마음 후련하네.
잔치 벌여 웃고 이야기 하니, 좋은 말만 들리고 마음 편안하네.
저 큰 다북쑥, 이슬 듬뿍 젖었네.
임을 만나 보니, 가없는 영광이네.
그 덕 그르치지 않으니, 오래오래 살리라.
저 큰 다북쑥, 이슬 함빡 젖었네.
임을 만나 보니, 즐겁고 편안하네.
그 형에 그 아우라, 착한 덕 오래 즐거우리.

 

*쑥과 이슬은 신성한 주술적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쑥에 이슬 맺혔다는 표현으로 제례에 참석한 손님을 축복하는 시다손님은 이 노래에 답가를 불렀다.

 

추우(騶虞사냥터의 신)

 

저 무성한 갈대밭에서 화살 하나에 암퇘지 다섯 마리라니
! 진짜 추우(騶虞, 천자의 사냥터를 돌보는 신)로다.
저 무성한 쑥밭에서 화살 하나에 새끼 돼지 다섯 마리라니
! 진짜 추우로다.

 

*사냥을 시작하기 전에 사냥꾼이 멧돼지를 활로 쏘아 사냥터 신에게 바치고 사냥 잘되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주술적 의례의 시이다.

 

 문왕(文王)


문왕의 영혼은 위에 계시고, ! 하늘에서 빛나네.
주는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천명은 늘 새로웠네.
주가 밝지 않은가, 천명이 늘 때에 맞으니,
문왕이 오르내려 천제의 곁에 계셨네.

 

*문왕을 제사 지낼 때 제전가(祭典歌). 모두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명을 받은 문왕의 영혼이 주나라에 강림하는 부분부터 시작, 자손의 번영과 신하의 충성, 은나라의 복속, 신하들의 활약을 노래하고, 문왕의 덕에 따라 만방을 아울러야 한다고 가르치는 서사시다. 집단의 결속을 강화할 목적으로, 문왕으로 분장한 춤꾼이 이야기에 맞춰 춤을 추던 극시(劇詩)이기도 했다.

 

우거진 저것은

 

우거진 저것은 쑥인가 했더니 다북쑥이로다. 슬프도다, 우리 부모님 날 낳으시고 고생하셨다.

우거진 저것은 쑥인가 했더니 제비쑥이로다. 슬프도다, 우리 부모님 날 나으시고 여위셨다.

병의 술이 떨어짐은 술통의 수치로다. 궁하고 외로운 살림살이 죽음만 같지 못한지 오래도다.

아버님 없이 누굴 믿으며, 어머님 없이 누굴 의지하리. 나가면 걱정이요, 들어오면 몸 둘 곳 없도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이 날 기르셨다. 쓰다듬어 가르치고, 키우고 가꾸시고,

나며 들며 안아주시니, 그 은덕 갚으려해도 저 하늘이 아득하도다.

남산은 험악하고 높기도 하고, 바람은 모질게 휘몰아치도다.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건만, 나만 어이 이 신센가?

남산은 험악하고 높기도 하고, 바람은 모질게 휘몰아치도다.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건만, 나만 홀로 봉양을 다하지 못했도다.

 

*어버이를 생각하는 시인데, 주세붕과 정철의 시조가 시경과 유사하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부모 곧 아니시면 내 몸이 없으렷다이 덕()을 갚으려 하니 하늘 끝이 없습니다.(주세붕)

 

서경(書經)


(), (), (), () 행적을 담은 서경(書經) BC 60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성왕(聖王) 명군(名君) 현신(賢臣)이 남긴 어록이자 선언집이다. 오경(五經)에 속하며, 중국 정치의 규범이 되는 책이다. () (() () (), (), () 때 군왕의 언행과 사적을 기록되어있다.

공자가 '서경' 정리했다는 설이 있다.

옛날에는 ()라 불리웠고 왕조(王朝)의 이름을 위에 얹어 우서(虞書) 하서(夏書) 등으로 부른다.

 '서경'은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 때 자취 감추었다가, ()나라 복승(伏勝)이 은밀히 벽 속에 감추고, 난을 피해 흘러다니다가 평화를 되찾은 뒤 돌아와서 벽속에서 얻은  28(혹은 29) 금문상서(今文尙書)라 부른다. 그 후 후한 무제(武帝) 때 노()나라의 공왕(恭王)이 집을 넓히려고 공자의 구택(舊宅)을 부술 때 벽 속에서 나온 고서를 '고문상서(古文尙書)'라 한다.

 

우요전(虞堯典)

 

 옛날 요임금에 대하여 상고해 보건데, 지극한 공을 세우셨으니, 공정하시고 밝으시며, 문채 나시고 생각 깊으시며 온유하고공순하시며 능히 사양하시어빛을 온 세계에 펴시니하늘과 땅에 이르시니라.

능히 큰 덕을 밝히시어구족을 친하게 하시니 구족이 이미 친목하게 되었고백성을 고르게 밝히시니 백성이 소명(昭明)하였고만방을 화하게 고르게 하시니모든 백성들이 착해져서 이에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

요임금

 

 

순전(舜典)

 

 요임금이 제후의 우두머리를 불러, '사악(四岳), 내 이 자리에 오른 지 벌써 7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너는 내 명령에 따라 천하를 잘 다스려 주었다. 이제부터 나를 대신하여 이 자리에 오르도록 하라.'고 하자, '이렇게 부덕한 몸으로는 제위를 욕되게 할 따름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재야에 숨은 현자를 추천하라.'고 하자, 순을 천거했다.
 '순은 맹인의 자식으로, 아버지는 고집이 세고 불순한 사람이며, 어머니는 간사하고, 동생 상()은 교만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동생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잘 이끌어 화목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요임금은 자신의 두 딸을 순에게 주고, 백관의 통솔과 귀빈 접대, 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관장하게 했더니 백관이 그를 잘 따르고, 귀한 손님이 그에게 감복하고, 비와 바람이 때를 잘 맞추어 오곡이 풍성해졌다.
 그래 요임금이 순을 불러 말했다.

'순아, 내가 너의 말과 행동을 지켜본 지 어언 3년이 되었다. 이제부터 나를 대신해 제위에 오르도록 하라.'
순은 스스로 부덕하다 하며 사양하려 했으나, 결국 요임금의 뜻에 따라 정월에 길일을 잡아 제위에 올랐다.

 

고요모(皐陶謨)

 

 옛날 고요(皐陶)를 상고하면 그가 이르기를,

'진실로 그 덕을 밟으면꾀하는 일이 밝으며 도움이 조화될 것이다.'

하였다. 이에 우() 말하기를,

'그렇습니다어찌하면 될까요?' 

고요가 말하기를 '아름다워라삼가 그의 몸을 닦고 생각을 오래하면 집안이 화목하게 질서가 잡히며백성들은 밝아지고 가까운 데로부터 먼 곳까지 잘 다스릴 수 있는 길이 여기 있읍니다.' 이에 우()  말에 절하며 '그렇습니다.'하였다.

 

익직(益稷)

 

 순임금께서 이르시되, '오시게, () 그대 역시 좋은 말씀을 해 보시게.' 우가 절하여 가로되, '임금님 제가 무슨 말씀을 아뢰오리까저는 날마다 부지런히 일할 생각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였다

고요가 물었다. '어찌 한다는 것이오?' 우가 대답하기를, '홍수가 하늘에 닿을 듯 물이 산을 삼키고 언덕을 잠기게 하여 아랫 백성들은 어둠에 빠지어 내가 네 가지 탈 것(四載)을 타고 산을 따라 나무를 깎고, ()과 더불어 신선한 음식을 내어주고, 아홉개 냇물을 터서 사해에 이르게 하고, 밭도랑과 시내를 깊게 하고, 기장 씨를 뿌리며멀리 떨어진 냇물에서 곤궁할 때 먹는 음식과 생것 먹는 법을 일러주고힘써 없는 것과 있는 것을 서로 바꾸게 하여쌓여 있는 물건들을 날마다 팔게 했습니다그래서 여러 백성들이 쌀밥을 먹게 되어 온 나라가 잘 다스려 졌습니다.'

이에 고요가 말하되, '그렇습니다그대의 좋은 말을 스승으로 삼겠습니다.' 하였다.

 

우공(禹貢)

 

 ()는 땅을 다스리시고 산에 이르면 나무를 베어 젖히고 높은 산과 큰 강을 안정시켰다. 기주(冀州호구산(壺口山)에서 시작하여 양()과 기() 지방을 다스렸고태원(太原) 땅을 닦고는 악양(岳陽남쪽 기슭에 이르렀으며, 담회(覃懷땅의 일을 마치고 장수(漳水) 가로지르는 곳까지 이르렀다.

그곳 흙은 희고도 부드러웠고, 부세() 일등 이등이 섞이었으며, 밭은 오직 중간 정도였다.

항수(恒水)와 위수(衛水)가 이미 잘 다스려지자대륙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동북쪽 오랑캐들은 갖옷을 바쳐왔는데그들은 갈석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로 들어왔다.

바다와 태산 사이가 청주 지방인데 지방 유수(濰水)와 치수(淄水) 물길을 인도하였다그곳 흙은 희고 걸고바닷가는 넓은 개펄이 있다. 그곳 밭은 상하가 있고부세는 중등 정도였다공물은 소금과 칡베였는데해물도 간혹 섞여 있었다

 태산 골짜기에서는 명주실 모시 납 소나무 괴상하게 생긴 돌이 났다. 내산(萊山오랑캐들이 가축을 치게 하니 그들의 공물에는 누에 고치실이 담기어 왔다.

 

탕서(湯誓)

 

 백성들아, 이리 와서 내 말을 잘 듣거라. 내가 무작정 난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라 왕의 죄가 너무 커 하늘이 내게 처벌을 명령한 것이다. 너희들 가운데는, 우리 임금은 우리를 돌보지 않고 어찌하여 전쟁을 일으키려 하느냐고 말하는 자도 있음을 안다. 그러나 나는 상제(上帝)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이렇게 군사를 일으켜 정벌에 나선 것이다. 하나라 왕은 백성의 힘을 마르게 하고,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 반드시 하나라를 칠 것이다. 나를 도와 천벌이 올바르게 내리도록 하라. 공을 세우면 반드시 후한 상을 내릴 것이니, 나를 믿고 따르라. 나의 서약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다.

 

*성탕(成湯)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한 사람인 탕왕(湯王)’을 말한다. 이윤의 도움으로 ()나라를 세웠다. 탕왕이 명조(鳴條) 들판에서 하()나라의 왕인 걸()과 싸울 때 병사들에게 한 서약이 '탕서(湯誓)'.

 *()는 주나라 무왕(武王) '태서(泰誓)' '목서(牧誓)'와 진()나라 목공이 정()나라를 공략할 때의 '진서(秦誓)'가 있다.

 

 이윤(伊尹)

 

 태갑 원년 십이월 을축날에 이윤(伊尹)이 선왕(先王)에게 제사지냈는데거기 고관과 제후들이 있었고, 백관(百官)들은 자기 일을 거두고 이윤의 말을 들었다이윤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 하나라를 다스리던 첫 임금님은 널리 어진 사람을 구하셔서 당신 후손을 돕도록 하셨소, 덕에 힘쓰셔서 하늘의 재앙이 없었으며, 산천(山川)의 귀신들도 또한 편안하지 않음이 없었소새와 짐승과 물고기와 자라들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마음 편했습니다.

 또한 관청의 형벌을 제정하시고벼슬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감히 궁전에서 춤을 추고방에서 취하여 노래하는 이가 있다면. 이를 무풍(巫風)이라 부르는 것이요감히 재물과 여색을 추구하고, 항상 놀이와 사냥을 하는 이가 있다면, 이를 음풍(淫風)이라 부르는 것이요감히 성현의 말씀을 업신여기며 충직을 거스리어 늙거나 덕망있는 이를 멀리하고 완악한 어린 것들을 가까이 함이 있다면, 이를 난풍(亂風)이라 합니다

 이 세 가지 바람과 열 가지 허물은 벼슬 하는 이가 몸에 한 가지만 지니고 있어도그 집안이 반드시 망할 것이며나라 임금이 이 중 한 가지만 몸에 지니고 있어도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니신하들을 바로잡아 주는 이가 없다면, 그 형벌은 묵형(墨刑)이 될 것입니다.'

 

미자(微子)

 

  미자(微子) 가로되, '부사(父師=箕子), 소사(少師=比干), 은나라는 세상을 다스리어 조금도 바로잡지  못했으니, 우리 할아버지인 성탕(成湯)께서 이루신 것이 위에 베풀어져 계시거늘, 우리는 술에 빠져 주정을 일삼음으로서 아랫대에 와서 그분들의 덕을 어지럽히고 망쳐 놓았습니다

 은나라는 소인이나 대인이나 할 것 없이 다 초적(草賊)과 도둑질과 반란과 소란을 좋아하여, 경사(卿士, 벼슬아치와 선비)는 법도가 아닌 것을 본받고, 상하가 용납하고 숨겨주어 허물과 죄가 있는 자들을 잡지않고 있어서, 소민(小民, 낮은 백성) 들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강자가 약자를 업신여기고 적대하여 원수가 되나니, 이제 은나라가 망함이 마치 큰물을 건넘에 나루터와 물가가 없는 것과 같으니마침내 망하게 될 날이 지금에 이르렀는가?

 

*미자계(微子啓) 제을(帝乙)의 장자이고, 주왕(紂王)의 형이다. 은나라를 창건한 성탕(成湯) 임금이 이루어 놓은 나라를 주왕이 망친 것을 뼈에 사무치게 통탄한 글 이다

 

홍범구주(洪範九疇)

 

 십삼년째 되는 해에 주나라 무왕(武王) 기자(箕子)를 찾아갔다. '아아, 기자여. 하늘이 백성을 안정시켜 그 거처를 도와 합하게 하셨는데, 나는 그 떳떳한 윤리가 펼쳐지는 바를 알지 못하노라.' 이에 기자가 말하길.' 제가 듣자하니옛날에 곤()이 홍수를 막아 오행(五行)의 배열을 어지럽히니 하느님은 크게 노하시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주시지 아니 하시어 이치와 윤리가 무너진 것인데, 곤이 귀양가서 죽거늘 우() 임금이 일어나시어, 하늘이 우에게 홍범구주를 주시니 떳떳한 이치가 차례로 행해진 바입니다.

 

*()은 황제 헌원(軒轅)의 아들 소호김천씨(少昊金天氏)가 신농씨의 딸과 결혼하여 그 딸이 낳은 후손이다. 헌원은 웅족이고, ()은 목방(木方) 동이(東夷)계 양족(羊族)이며, 곤은 황제의 외손이다.

 

 

 

 

 

 

 

 

 

 

 

 

 

염제 신농씨. 황제 헌원씨

 

 요임금이 곤에게 치수를 맡긴지 9년이 지나 성과가 없자 곤은 북쪽으로 쫒겨가 거기서 검은 물고기(玄魚)되었는데, 수염을 날리며 비늘을 떨며 파도를 가르는 곤을 본 자는 '하수(河水)'의 정령이라고 했다.(북시베리아 지방의 물과 관련 있는 뛰어난 인물임을 나타낸다. 곤이 단군계라는 설도 있다. 헌원은 웅족이다. 단군신화에 웅녀가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상기된다).

 축융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3년 동안 시체가 썩지않아 배를 가르니, 거기서 규룡이 틔어나왔는데, 이 규룡이 우() 임금이다. 우 임금은 동이족 후손인 것이다.

 *신라인은 소호김천씨(少昊金天氏) 후예라고 한다. 신라 6촌장들이 진나라에서 망명해 온 사람, 진지망인(秦之亡人)’이라는 삼국지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의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도 '신라사람들은 자칭 소호김천씨(少昊金天氏)의 후손이라고 하여 김으로 성을 삼았고, 김유신의 비문에도 '헌원(軒轅: 황제)의 후예요 소호(少昊)의 직계'라는 구절이 있다.

 

소호김천씨

()가 이에 이어 일어나니하늘은 우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 내리시어 일정한 윤리가 베풀어졌습니다.

 

*하늘이 우()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 내렸다는 대목이 중요하다. 우임금이 동이족이기 때문이다. 홍범구주는 하늘이 동이족에게 내린 천지 대법(大法)이다.

우임금

 

홍범구주의 첫째는 오행(五行)이요,

 

 *오행: ((((()를 지칭한다. 물은 물체를 적시고 아래로 흘러 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불은 물체를 태우고 위로 올라 가는 성질이 있으며, 나무는 구부러지고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고, 쇠는 조작에 의해 자유롭게 변형하는 성질이 있으며, 흙은 곡식을 길러 거두게 하는 성질이 있다.

물체를 적시고 아래로 흘러가는 성질은 짠맛을, 물체를 태우고 위로 올라 가는 성질은 쓴맛을, 구부러지고 곧게 자라는 성질은 신맛을, 조작에 의해 자유롭게 변하는 성질은 매운맛을, 곡식을 길러 거두게 하는 성질은 단맛을 내게 한다.

 

 둘째는 5(五事)를 공경히 행하는 것이요,

 

 *오사: 외모, ,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것을 지칭한다. 외모는 공손해야 하고, 말은 조리가 있어야 하며, 보는 것은 밝아야 하고, 듣는 것은 분명해야 하며, 생각하는 것은 지혜로워야 한다. 공손함은 엄숙을, 조리가 있음은 이치를, 밝음은 지혜를, 분명함은 꾀를, 지혜는 성인을 만드는 것이다.

 

셋째는 팔정(八政)을 힘써 행하는 것이요,

 

 * 팔정: 양식, 재정, 제사, 땅 관리교육, 범죄, 손님 대접, 군대를 말한다.

 

넷째는 오기(五紀)를 조화있게 쓰는 것이요,

 *오기: ((((역법(曆法)의 계산을 지칭한다.

 

다섯째는 황극(皇極) 세워 쓰는 것이요,

 

 *황극: 임금의 법도로서 임금이 정치의 법을 세우는 것이다. 오복을 백성들에게 베풀어주면, 백성들도 왕의 법을 따를 것이다. 백성들이 법도를 위배했더라도 커다란 허물이 없을 때에는 왕은 이들을 용납해야 한다.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을 학대하지 말고 고매한 인격자를 존경해야 한다. 재능이 있는 사람을 격려해 주면 나라는 발전할 것이다. 왕의 법도는  상제(上帝)의 교훈이기도 하다. 천자는 백성의 부모가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다.

 

여섯째는 삼덕(三德)으로 다스리어 쓰는 것이요,

 

 *삼덕: 정직 강극(剛克) 유극(柔克)을 말한다. 평화스럽고 안락할 때에는 정직을 중시하고, 강하고 굴복하지 않을 때에는 강극을 중시하며, 화합할 때에는 유극을 중시해야 한다. 침잠할 때에는 강()함으로써 극복하고, 높고 밝음에는 유()함으로써 극복하는 것이다.

 

일곱째는 계의(稽疑)를 밝히어 쓰는 것이요,

 

  *계의: 점치는 사람을 임명하고 그들에게 점을 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점을 치는 사람들은 비 갬 안개 맑음, 흐린 뒤 맑음, 정괘(貞卦) 회괘(悔卦)에 관한 예보를 한다. 이 일곱가지 예보는 복점(卜占)에 의한 것이 다섯 가지, 서점(筮占)에 의한 것이 두 가지로서, 이러한 점은 변화하는 현상으로 미루어 아는 것이다.

 왕에게 큰 의문이 생기면 자신의 마음에 물어 보고, 귀족이나 관리에게 물어 보며, 백성들에게 물어 보고, 복서인(卜筮人)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왕이 좋다고 생각하고, 복서의 점이 좋다고 하고, 귀족이나 관리가 좋다고 하고, 백성들까지 좋다고 한다면, 바로 이러한 상황을 대동(大同)이라고 한다.

 

여덟째는 서징(庶徵)을 생각하며 쓰는 것이요,

 

*서징: 비 맑음 따뜻함 추움 바람 및 계절의 변화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다섯가지 날씨의 변화가 알맞게 조화를 이루면 모든 초목은 무성할 것이다. 다섯가지 날씨의 변화 가운데 어느 한가지 현상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도 흉하고, 어느 한가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흉한 것이다.


 아홉째는 오복(五福)을 길르고, 육극(六極)을 피하는 것이다.

 

*오복은 장수() 부귀() 건강(康寧) 선행(攸好德) 인생 계획(考終命)

육극은 횡사 요절 병 걱정 가난 약함을 지칭한다. 흉단절(凶短折=흉은 재난을 만나 죽는 것, 단은 60세 이전에 죽는 것, 절은 30세 이전에 죽는 것.)

 

 

논어(論語)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동양철학 강의하시던 김충열 교수님이 '이립(而立)에는 노장(老莊)에 심취했으나 불혹(不惑) 넘어서자, 논어에 끌리게 되더라.'고 한 말씀을 필자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노장철학의 핵심이 무위(無爲)라면 공맹철학 핵심은 현실이다. 사람은 현실을 떠나 살 수 없다.

<논어>는 기원 전 450 년 경에 공자와 제자들이 나눈 대화를 다음 세대 제자들이 편찬한 책이다. <논어> <불경> <성경>처럼 근 2천 년 간 경전으로 읽히었다. 동양사람이 <논어> 모른다면, 서구 사람이 바이불 모른다는 이야기와 같다.

 

 공자는 BC 551 년 노()나라 추읍(鄒邑) 태생으로, 이름은 구(), 자는 중니(仲尼)아버지 숙량흘(叔粱紇)이 공자의 머리 모양이 펑퍼짐한 언덕같이 생겼다고 구()라 이름 지었다부친이 일찍 돌아가 공자는 창고지기, 가축 기르기 등 잡일을 하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나이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十有五而志于學)고 회고했듯이, 일찌기 학문에 심취하여 6(六藝=禮 樂 射 御 書 數)에 능통하고, 고전과 역사와 시()에 밝아, 삼십부터 가르침을 생활수단으로 삼았다.

오십 초에 노나라 장관으로 발탁재판관 최고위직인 대사구(大司寇)가 되었다. 그러나 왕의 측근들과 어울리지 못하여 몊 년 뒤 제자들을 이끌고 노나라를 떠나(), (), (), ()를 다니며 유세했다생활고에 시달리며 정처없이 떠돌던 그를 사람들은 상갓집 개라고 비난했다

  67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를 가르치며 저술에 몰두했고향년 73세로 생을 마쳤다

 

오도자가 그린 공자 초상

  논어

 

 논어 첫구절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멀리서 찾아와 주니 즐겁지 아니한가(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으니,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殘 不亦君子乎)' 이다.

그 다음 중요한 구절들을 살펴보자.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고(三十而立), 마흔에 인생관이 확립되어 마음에 혼란이 없었고(四十而不惑), 쉰이 되어 천명을 알게 되었고(五十而知天命), 예순 되어 어떤 말을 들어도 이치를 깨달아 귀가 순했고(六十而耳順), 일흔 되어 마음대로 행동 하여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학문에 관한 글

 

'아침에 도를 들으면(朝聞道), 저녁에 죽어도 좋으니라(夕死可矣).'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두우며(), 생각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롭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不恥下問)'

'옛 것을 되새겨 새 것을 터득하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知之爲知之),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不知爲不知)이 참으로 아는 것(是知也)' 이다.

 

사람에 관한 글

 

 초나라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의 됨됨이를 묻자 자로가 대답을 못했다. 이에 공자께서 이 같이 대답해야지 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될 만한 사람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焉), 그 착한 점을 골라서 따르고, 나쁜 점은 고쳤다(擇其善者而從 其不善者而改之).'

'후생은 두려워 할만하다(後生 可畏). 후에 오는 사람이 지금 사람과 같지않음을 알아야한다.(焉知來者之不如今也). 그러나 사십 오십에도 이름이 들려오지 않으면(四十五十而無聞焉), 그는 무서울 것이 없다(斯亦不足畏也已).'

'나면서 저절로 아는 사람이 상이고(生而知之者 上也), 배워서 아는 사람이 다음이요(學而知之者 次也), 막힘이 있으면서 애써 배우는 자는 또 그 다음이다(困而學之 又其次也). 그러나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사람은 하이다(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唯上知與下愚 不移).'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멀리 하면 원망한다(近之則不孫 遠之則怨).'

 

 ()에 관한 글

 

 중궁(仲弓)이 인을 묻자.'자기 하고싶지 않은 일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하셨다. 자장(子張)이 인을 묻자, '공손, 관대, 신용, 민첩, 은혜니라. 공손하면 모욕을 당하지 않고, 관대하면 사람의 지지를 받고, 신용이 있으면 남이 일을 맡기며, 맡은 일을 빨리 처리하면 공적을 세우게 되고, 은혜를 베풀면 사람들이 자연이 협력한다.' 하셨다번지(樊遲)가 인을 묻자, '사람 사랑하는 것이다(愛人)' 했고, 앎에 대해서 묻자, '사람 알아보는 것(知人).' 이라했다사마우(司馬牛)가 인을 묻자, '인은 그 사람의 말 이다(仁者 其言也).' 라고 하셨다.

 안연(顔淵)이 인()에 대해서 묻자, '자기를 극복하여 예로 돌아감이 인이다(克己復禮 爲仁), 하루 자기를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一日克其復禮 天下 歸仁焉).' 하셨다. 안연이 '그 조목을 더 알고 싶습니다.' 하자,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非禮勿視),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非禮勿廳), 예가 아니면 말 하지 말며(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非禮勿動).' 하셨다.

'유창하게 말 잘하고, 얼굴빛 그럴듯하게 남을 대하는 사람에게는 인()이 드물다.'

*공자 사상은 한마디로 인이다. 그러나 제자 따라 이렇게 다르게 표현했다.

 

 군자(君子)에 관한 글

 

 자공(子貢)이 군자에 대하여 묻자, '먼저 하고자 하는 일을 행한 후에 말을 하는 사람이 군자다(先行其言 以後從之).'라 하셨다. '마을 사람들이 다 그를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하였더니, '옳지 않다. 마을의 착한 자가 좋아하고, 악한 자가 미워함만 같지 못하다.' 하셨다.

 자공이 '가난하되 아부하지 않고, 부귀하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묻자, '괜찮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하고도 도를 즐기고, 부귀하면서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하셨다.

'군자는 남의 좋은 점을 권장하여 이루게 하고, 남의 악한 일은 선도하여 못하게 하지만(成人之美 不成人之惡), 소인은 이와 반대다(小人反是)'.

 '군자는 남과 화합하되 뇌동하지 않으며(和而不同), 소인은 뇌동하되 화합하지 않는다(同而不和).'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

'군자는 말은 느리되, 실행은 빠르다.'

'군자는 태연하나 교만하지 않고(泰而不驕), 소인은 교만하나 태연하지 못하느니라(驕而不泰).'
'군자는 날마다 위로 나아가며(上達), 소인은 날마다 아래로 내려간다(下達).'

'군자는 곤궁을 견딜 수 있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마구 행동한다.'
'군자는 책임 소재를 자신에서 구하나,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군자는 섬기기 쉬우나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니, 바른 길로 받들지 않으면 기뻐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섬기기는 어렵고 기쁘게 하기는 쉬우니, 비록 바른 길을 꾀하지 않더라도 기뻐하기 때문이다.'

'군자는 사람 쓸 때 그릇과 능력을 가려 일을 맡기고, 소인은 사람 부릴 때 완전한 자격을 요구한다.'

'덕 있는 사람은 반드시 들을만한 말을 하지만, 말이 들을만 하다고 다 덕 있는 사람이 아니다인자한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기 있다고 다 인자한 사람은 아니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 있으면서 남루한 옷을 입는 것과 보잘것없이 먹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면, 그 사람과 서로 이야기 할 가치가 없다.'

 

 자로(子路)가 묻기를, '삼군(三軍)을 거느리신다면 누구와 더불어 하시겠습니까?' 공자 가로되, '맨주먹으로 범에게 달려들고, 맨발로 황해를 건느다가 죽는다해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과는 더불어 하지 않으리라. 일에 임하여 반드시 두려워하고 삼가며, 미리 계획을 세워 성공하는 신중한 사람과 더불어 해보겠다.' 하셨다.

 

'어질구나 회(),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 국으로 누추한 곳에 살면서 즐거워하니, 어질구나 회여.'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 어렵고(貧而無怨難),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富而無驕易).'

 

'나물밥에 물 마시고 팔베개 하고 누웠어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의롭지 못한 부귀는 나에게는 뜬구름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

'날씨가 추워져야 비로소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게 된다.'

 

*공자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셨지만,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不怨天 不尤人).' 하셨다.

 

'군자가 경계해야 할 세가지가 있다 청년은 혈기가 안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여색을 경계하고, 장년은 혈기 왕성하므로 싸움을 경계해야 하며, 노년은 혈기 쇠잔하므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군자에게는 아홉 가지 생각하는 것이 있다. 볼 때는 명백히 보기를 생각하고, 듣는 것은 총명하게 듣기를 생각하며, 용모는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태도는 공손하기를 생각하고, 말은 성실하게 하기를 생각하고, 일에는 신중하기를 생각해야 하고, 의심가는 것에는 묻기를 생각하고, 화가 날 때는 어려운 일을 당할 것을 생각하고, 이익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한다.' 

증자는 '나는 매일 나 자신을 세번 반성한다(日三省吾身). 남을 위해서 일을 하는데 정성을 다하였는가? 벗들과 사귀는데 신의를 다하였는가? 전수 받은 가르침을 반복하여 익혔는가.? 하였다.

 

'군자는 남에게 은혜 베풀되 낭비하지 않고(惠而不費), 힘든 일 시키되 원망 사지않고(勞而不怨), 욕심 있되 탐욕 내지 않으며(欲而不貪),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으며(泰而不驕), 위엄 있되 사납지 않다(威而不猛).'
'군자는 상대편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교만없이 평등히 대한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을 잔학이라 하고, 미리 경계 하지 않고 결과부터 따지는 것을 포악이라 하며, 명령을 소홀히 하고 시일을 재촉하는 것을 괴롭힘이라 하고, 마땅히 나누어 주어야 할 출납에 인색한 것을 유사(有司= 단체 일을 맡은 사람. 여기서는 비난의 뜻으로 ) 한다.'

 

 정치에 관한 글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식량을 풍족히 하며 군비를 충족하게 하면 백성이 믿는다(足食 足兵 民 信之矣). 백성이 믿지 않으면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民無信不立).' 하셨다.
 () 경공(景公)이 정치에 대하여 묻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 하셨다.

 

*이를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이라 한다.

 

 자장(子張)이 정치를 묻자, '항상 마음을 국정에 두어서 게을치 말며(居之無倦), 정사를 행할 때는 충실하여라(行之以忠).' 하셨다

 자로(子路)가 정치를 묻자, '자신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실천이 되고자신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 하셨다.

 자하가 읍장이 되어 정치에 대하여 묻자, '일을 빨리 하려고 하지 말며, 작은 이익을 돌아보지 말아라. 빨리 하려 하면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돌아보면 큰 일 이루지 못한다.' 하셨다.

 노나라 세력가로 배다른 형을 죽이고 대부(大夫)가 된 계강자(季康子)가 물었다. '백성이 공경하고 충성하며, 선행에 힘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공자는 '백성을 엄하고 정중하게 대하면 백성이 공경할 것이요, 부모에게 효성하고 백성에게 자애로우면 충성할 것이요, 착한 사람을 등용하여 그렇지 못한 자에게 교훈이 되게 하면, 백성은 선행에 힘쓸 것 입니다.' 하셨다.

 정치에 대해 묻자, '정치는 곧 정()이니 그대가 솔선하여 바르게 행하면 누가 감히 바르게 행하지 않겠는가?(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하셨다.
계강자가 '무도(無道)한 자들을 사형으로 다스려서 백성으로 하여금 겁을 먹게하여 유덕(有德)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이 어떠리요?' 하자, '그대는 정치에서 어찌 살인을 일삼으려 하오? 그대가 선을 추구하면 백성은 저절로 착해질 것이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君子之德 風), 소인의 덕은 풀과 같습니다(小人之德 草).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머리를 숙입니다(草尙之風 必偃).' 하셨다.

 정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임금이 신하 거느리고, 신하가 임금 섬기는 도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자, '임금은 예로써 신하를 부릴 것이며, 신하는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겨야 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노나라 애공이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복종을 하겠소?' 물으니, '곧고 올바른 사람을 등용해서 곧지 않는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마음까지 복종 하지만부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정직한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시경> 3백 수를 외우면서도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지 못하고, 딴 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능히 홀로 외교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시를 많이 외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벼슬자리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의 자격을 근심하며,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만한 일을 하고자 노력하라.'

 

 벗에 관한 글

 

 자공(子貢) 벗에 대하여 묻자, '충고하여 이끌어 주되 말을 듣지 않으면 중지하여 (不可則止), 자신까지 욕됨이 없게 할 것이다(無自辱焉).' 하셨다.
 자공이 한마디 말로 평생 실천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묻자, '그것은 ()로다(其恕乎),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己所不欲 勿施於人).' 하셨다.


'유익한 벗 셋 있고 해로운 벗 셋 있다. 정직한 사람을 벗하고, 성실한 사람을 벗하고, 견문 많은 박학다식한 사람을 벗하면 유익하고겉치레 하는 사람과 벗하고, 아첨 잘하는 사람과 벗하고, 거짓말 잘하는 사람과 벗하면 해로우니라.'

'오랜 벗은 큰 잘못이 없으면 버리지 말고, 한 사람이 모든 걸 갖추어지기를 기대하지 말라.(故舊 無大故則不棄也 無求備於一人).'

'여러 사람이 미워하여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며, 여러 사람이 좋아해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호사스럽게 살면 불손하기 쉽고, 검소하면 고루해진다거만한 것보다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났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것을 바로 잘못이라 한다.'
'자신 꾸짖기 엄하게 하고 남 책망하길 가볍게 하면원망하는 소리를 멀리할 수 있다.'

 

 기타

 

 공자님은 네 가지 일은 하지 않았다. 억측하지 않았고, 무리하지 않았고, 고집하지 않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다.

 공자님은 좌석 깔개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으셨고, 설 때는 문의 중앙을 피하셨고, 들어갈 적에는 문지방을 밟지 않으셨다.

 밥은 정결한 것을 좋아했고, 회는 잘게 썬 것을 좋아했고, 상한 생선, 썩은 고기는 먹지 않았고, 냄새 나쁜 것, 잘 익히지 않은 것, 익지 않은 곡식이나 과일은 먹지 않으셨다. 고기는 바르게 자르지 않은 것은 먹지 않았고, 간장이 없으면 먹지 않았고, 고기가 많아도 밥보다 많이 먹지 않았고, 술은 일정한 양만 먹었으며 난음(亂飮)하지 않았다.

 저자에서 파는 술과 포는 먹지않았고, 과식하지 않았으며, 생강은 끼니마다 먹었다.

 종묘에서 내린 제사 고기는 밤을 넘기지 않았고, 제사에 쓴 고기는 사흘을 넘기지 않았고, 주변에 나누어 주었으며, 사흘이 지나면 먹지 않았다. 비록 나물국이라도 반드시 곡신에게 제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표시하였고, 식사할 때 남과 이야기 하지 않았고, 잠자리에 들어서 말을 하지 않았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며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지자는 동적이며, 인자는 정적이다(知者動 仁者靜), 지자는 즐겁게 살며 인자는 장수한다(知者樂 仁者壽).'

 

공자가 구이(九夷) 땅에 가서 살려고 하자, 제자가 물었다. '누추한 나라에서 어이 살겠습니까?' 그러자 '군자가 사는 곳에 어찌 누추함이 있으리(君子居之 何陋之有)?' 하고 대답하셨다

 

*구이(九夷)는 중원 동쪽 낙랑 고구려 등 동이(東夷)를 말한다.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그 나라를 군자국무궁화나라, ‘근화향(槿花鄕)'이라 불렀다.   
 *공자님 조상이 동이족이라는 설이 있다. 어쨌던 공자님이 구이의 땅을 언급한 것은, 도가 실행되지 않는 중원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다. '공야장(公冶長)' 6 편에 '뗏목을 타고 바다에 나아가고 싶다(道不行 乘桴浮於海)'는 기록이 있다.

 

공자님이 냇가에서, '지나가는 것은 흐르는 물과 같구나. 밤낮 멈추지 않는구나(逝者 如斯夫 不舍晝夜).' 하셨다

  

계로(季路)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묻자, '살아 있는 사람도 제대로 섬기질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리' 하시었다죽음에 대해 묻자, '아직 삶도 잘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알겠는가?' 하셨다.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검소해야 되고 초상에서는 형식을 갖추기보다는 슬퍼해야 한다조상 제사 모실 때에는 앞에 계신듯이 하고, 신을 제사 지낼 때는 신이 있는듯 한다.' 하셨다.

 

 

 

맹자(孟子) 

호연지기(浩然之氣)란 무엇인가?

 

  요즘은 엄마와 아기는 외국 나가고 나홀로 남는 '기러기 아빠'가 많다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떠오른다.

 맹자가 세살 때 부친이 돌아가시자어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맹자가 구덩이를 파고 곡()을 하며 장례 치르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이를 본 맹자의 어머니는 안 되겠다 싶어 당장 이사를 하였는데, 이사 간 곳이 시장 근처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맹자가, 시장에서 물건 사고파는 장사꾼 흉내를 내며 놀았다. 여기도 아이 키울 곳이 아니라고 판단한 어머니는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맹자가 글 읽는 시늉을 하고, 제기(祭器) 늘어놓고 제사 지내는 흉내 내며 놀았다. 맹자의 어머니는 그제야 마음 놓고 아들과 함께 그곳에 머물러 살았다.

 

 맹자는 () 나라 사람으로 BC 372 년부터 289 년까지 살았다. 공자 손자인 자사(子思) 문하에서 배웠는데()은 성이고, 이름은 가(). '맹자'라 함은 '()'가 원래 선생님의 높임말이기 때문이다.

 사십 초반에 (), (), (), (), (), (), ()나라를 다니며 제후에게 왕도정치를 설파했고, 62세에 고향에 돌아와 은둔 생활을 하다가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맹자 초상

 

  <맹자>란 책 내용은 양혜왕편(梁惠王篇), 공손추편(公孫丑篇), 등문공편(滕文公篇), 이루편(離婁篇), 만장편(萬章篇), 고자편(告子篇), 진심편(盡心篇)  7편이 상하로 되어 있다.

 

  호연지기(浩然之氣)

 

 호연지기(浩然之氣)란 말은 제자 공손추(公孫丑) 용기 기르는 법에 대한 이야기 중에 나온다.

 '여쭙건대,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하는 것입니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네. 지극히 크고 지극히 넓으며 강하고 곧은 것으로, 잘 길러 나가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는 것 이네호연지기는 대장부가 지녀야 할 광명정대한 용기인데진정한 용기는 부동심(不動心) 이네. 그것은 도()와 짝이 되며, 정의와 올바른 길() 존재하여, 올바르게 살면 얻을 수 있지만, 마음이 흐트러지면 사라져 버리네

 의로운 일이라면 그만 두지 말고, 마음을 망녕되게 갖지 말고, 무리하게 잘 되게 하려고도 하지 말게전에 송()나라 사람이 자기가 심은 곡식의 싹이 빨리 자라도록 밭의 싹을 억지로 뽑아올린 자가 있었네. 그는 집으로 와서 자기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자랑하였네. 그러나 아들이 가보니 싹은 말라죽어 있었네. 호연지기도 이 같은 것이네억지로 하는 것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되는 것 일세.

 

 대장부(大丈夫)

 

 '대장부는 천하의 넓은 데서 살고(居天下之廣居),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고(立天下之正立), 천하의 대도를 실천하며(行天下之大道),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해 나가고(得志,與民由之), 얻지 못하면 혼자서 그 도를 실천하고(不得志,獨行其道), 부귀도 혼란케 하지 못하고(富貴不能淫), 빈천도 옮기지 못하고(貧賤不能移), 무서운 무력도 굴복시키지 못한다(威武不能屈). 이것을 대장부라 이른다(此之謂大丈夫).'

 

 경춘(景春)이 묻기를,

'진나라 장군 공손연(公孫衍)과 위나라 재상 장의(張儀)는 위엄과 세 치 혀로 제후를 설복하여, 제후들이 두려워하고 천하의 정세를 마음대로 했으니, 이들이 진정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어찌 대장부가 되겠는가? 대장부는 임금이 바른 길로 나라를 다스리게 도와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못했고, 섬기는 임금의 요구나 명령이 정도에서 벗어나도 순종했고, 온갖 사술과 기교를 다 피우고 다녔소. 이것은 남편 앞에 순종만 옳은 것으로 알고 사는 부녀자와 다를 바 없소.'

 

 성선설(性善說)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고. 순자(筍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고자(告子)'인간은 본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로, 악하게 키우면 악하고, 선하게 키우면 선하게 된다'는 성무선 무불선론(性無善 無不善論)을 주장했고한비자는 '인간이 천성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상과 벌을 함께 줘야 한다' 주장했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애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측은한 마음을 가진다. 이것은 동네사람에게 칭찬받으려는 때문이 아니다측은해 하는 마음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며, 부끄러움 없는 사람도 인간이 아니며,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 역시 인간이 아니다.' 하였다

 

  사단지설(四端之說)

 

'측은해 하는 마음은 인()의 단서요(惻隱之心 仁之端), 부끄러워 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요(羞惡之心 義之端),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요(辭讓之心 禮之端),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다(是非之心 智之端).' 

 '사람은 사지(四肢)를 가진 것처럼 이 네 단서를 지니고 있는데이를 불이 처음에 타오르기 시작하듯, 샘이 처음 솟아나듯 확충시키면, 사해(四海)를 편안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을 확충시키지 않으면 (옹졸하여) 제 부모 섬기기에도 부족하다.'

 

 우산지목(牛山之木)의 예를 들었다.

 

'우산(牛山)에 있던 나무와 풀은 사람과 동물로 인하여 없어져 버렸고 그 결

 

과 민둥산이 되었다처음 인간의 본성도 이와 같았으나, 후천적으로 나쁜

 

모습이 된 것이다그러니 인간의 본성을 포기해서는 않된다인간은 착하

 

게 살아서는 생존할 수 없다고 자신에게 포악하게 대하는 것을 자포(自暴)

 

고 한다. 나는 불가능하다고 자신을 버린 사람을 자기(自棄)라고 한다.

 

둘을 합해 자포자기(自暴自棄)라 한다.' 

 

 

 *맹자와 고자(告子)의 성선(性善) 논쟁.

 고자는 인간의 본성은 버들가지와 같고 인의는 버드나무로 만든 술잔과 같다인의는 본성에서 곧바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모종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본성과는 무관하게 외재하는 것이며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했다.

 맹자는 '술잔을 버드나무의 결을 따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의라는 것도 사람의 본성에 따라 행하는 것이지강제적 힘을 가해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때문에 인의는 인간의 선천적 본성 자체로 본다'  하였다.

 고자는 '인간의 본성은 갇힌 채 소용돌이 치는 물과 같다. 물꼬를 동쪽으로 트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흐른다. 이처럼 선과 악도 후천적인 것이다'고 했다.

맹자는 '물이 좌우로 흐르는 것도 사실이지만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도 사실이다물의 본성은 좌우 구분 없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이다. 이처럼 사람의 본성도 선과 불선의 구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왕도(王道)와 패도(覇道)

 

  맹자가 살았던 시기는, ()은 상앙(商鞅)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책을 실시하고위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였고, () 병가(兵家)인 손자(孫子)를 등용하는 등합종연횡의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며 힘만을 숭상하던 패도정치(覇道政治) 시대였다.

 이때 맹자는 '힘으로 인()인양 가장하는 것을 패()라 한다.'고 규탄하며, 패도를 행한 대표적 제후로 제() 환공(桓公), () 문공(文公), () 양공(襄公), () 목공(穆公), () 장공(莊公)을 들었다. 이들을 '춘추5(春秋五覇)'라 한다.

맹자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주장했는데유가의 성왕(聖王)들을 예로 들면서, '덕이 많은 사람만이 천명을 받들어 임금이 될 수 있고, 덕의 유무는 백성들이 그를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또 이렇게 말했다.

'힘으로써 인()을 가식하는 자는 패()이다. 패는 간혹 큰 나라(大國)를 이룬다. 덕으로써 인을 행하는 자는 왕이 된다. 그러나 왕자라고 반드시 큰 나라를 기대하지는 못한다. ()임금은 칠십리로써 했고문왕(文王)은 백리로써 했다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심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이 심복시키는 것이다. 공자의 칠십 제자가 그랬다.(공손추(公孫丑) 상편)

 

 제나라 선왕이 물었다.

'왕도정치에 대하여 묻겠소이다.'

 맹자가 답하였다.

'옛날 문왕이 기주(岐周)를 다스릴 때 경작하는 자들에게 9분의 1을 세금으로 받았고, 벼슬하는 자들에게 대대로 녹()을 지급하였으며, 국경과 시장에서는 기찰할 뿐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습니다.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금하지 않았으며, 죄인을 처벌하되 그 죄가 처자식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였습니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을 환()이라 하고남편 없는 것을 과()라 하며, 자식 없는 것을 독(), 어리면서 부모 없는 것을 고()라 합니다.

 이 넷이 천하의 불쌍한 백성들이며 하소연 할 곳 없는 자들 입니다. 그래서 문왕은 정치를 할 때반드시 이 넷을 먼저 돌보았습니다시경에서도 '부유한 사람은 괜찮지만, 홀로인 자들이 걱정스럽다'고 하였습니다.

 

 ()나라 혜왕(惠王)이 맹자에게 물었다.
'노인장께서 천 리를 멀다 않고 찾아오셨는데, 우리나라에 어떤 이익을 주시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 하필이면 왜 이익만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로울까?’ 하시면, 관리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에 이로울까? 어떻게 하면 내 한 몸 이로울까?’ 합니다어진 사람은 어버이를 버리는 법이 없고, 의로운 사람이 자기 임금을 가볍게 여기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왕께서는 오직 어질음과 의로움을 좇으셔야 합니다.'

그 말에 혜왕이 입을 다물었다. 

 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나는 나랏일에 정성을 다하는데 왜 백성이 늘어나지 않소이까?'

맹자가 대답했다.
'전쟁 이야기를 예로 들겠습니다진격을 알리는 북소리 따라 무기를 들고 싸우다가 갑옷을 버리고 도망치는데, 어떤 사람은 백 보를 가서 멈추고, 또 어떤 사람은 오십 보를 가서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오십 보 도망친 사람이 백 보 도망친 사람을 비웃습니다. 왕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십 보건 백 보건 도망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와 같이 오십보 백보의 선정(善政)으로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혜왕이 맹자에게 부탁했다.
'나는 어리석어 나아갈 수 없으니 부디 선생께서 가르쳐 주시오.'

이에 맹자는. '5(五畝=한 묘는 30 )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세의 어른들이 비단을 입을 수 있습니다. 돼지, 개를 기르면서 번식 시기를 잃지 않게 하면, 칠십 노인이 고기를 먹도록 할 수 있습니다. 100 묘의 밭에 일하는 시기를 징병이나 부역으로 빼앗지 않으면, 8식구의 집이 굶주리지 않게 됩니다.

 가르침을 신중히 베풀어 효도와 우애를 가르치면, 머리 희끗한 노인이 길거리에서 짐을 지고 이고 다니지 않게 됩니다. 노인이 비단옷 입고 고기 먹고, 백성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시달리지 않게 만들면, 왕노릇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공손추가 왕도와 패도의 차이점을 물었다.

'세관에서 기찰만 하고 세금을 받지 아니하면 모두 기뻐서 그 나라 길로 통행하기를 원할 것이다. 밭 가는 사람에게 조법을 적용하고 세금을 받지 아니하면 천하의 농부들이 모두 기뻐서 그 나라 땅에서 농사짓기를 원할 것이다상가에서 인두세와 공한지세를 받지 아니하면 천하의 백성들이 그 나라 백성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진실로 이 몇 가지를 잘 시행한다면, 이웃나라 백성들이 우럴러 보기를 부모와 같이 하리라. 백성이 이처럼 나라를 공경한다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게 되면 이는 하늘이 내신 분으로, 이렇게 되고 왕이 되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맹자는 토지를 인민에게 공평히 분배하는 정전법(井田法)을 주장했고, '()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먹고사는 환경이 넉넉하고, 규제가 없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관에서 각종규제를 풀고, 세금을 적게 부과해야 된다는 뜻이다.  

 

  민본주의(民本主義)

 

 맹자는 '백성이 제일 귀하고, 나라가 그 다음이고, 군주가 가장 가볍다. 그러므로 뭇 백성의 마음을 얻는 자가 천자가 되는 것이요, 천자의 신임을 얻는 자가 제후가 되는 것이요제후의 신임을 얻는 자가 대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제후가 무도하여 국가 사직을 위태롭게 만든다면제후는 갈아치워야 한다.' 했다.

 이런 민본주의는, '군주가 잘못하면 군주를 바꾸어야 한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의미한다.

 '임금이 크게 잘못하면 간언하고, 만약에 여러 번 간언해도 듣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그 임금을 폐하고 덕이 있는 다른 사람으로 임금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 나라 선왕(宣王)이 물었다.

'무왕(武王) ()를 몰아냈다고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옛 기록에 있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죽여도 좋습니까?'

'()을 해치는 자를 적()이라 하고, ()를 해치는 자를 잔()이라고 합니다. 이런 잔적을 일개 필부라 합니다. 일개 필부인 ()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아직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노자(老子) 도덕경

 가장 좋은 선은 물과 같다

 

 노자 도덕경(道德經) 상편 하편 5,000()으로 이루어진 짧은 책 이다. 그러나 이 책은 유가의 논어, 불가의 불경, 기독교의 성경과 함께 동서양을 통틀어서 가장 심오한 경전으로 꼽힌다.

 도가 경전인 이 책은 하바드대 인문 고전 선정 도서이기도 하다.

 첫 구절은 '따오 커 따오 페이창 따오.(道可道 非常道, 말 할 수 있는 도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도가 아니요), 밍 커 밍 페이 창 밍(名可名 非常名,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으로 시작된다

 

 노자의 생몰 연대는 후스(胡適)나 펑유란(馮友蘭) 같은 근대 학자들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나라 사마천은 사기 노장신한열전(老莊申韓列傳)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초나라 여향(術鄕사람으로, 성은 이(. 이름은 이(), 시호는 담()이다. 주나라 종묘의 수장실(守藏室) 사관 이었다. 천문 점성(占星) 성전(聖典) 전담하는 학자였다.

 공자가 와서 가르침을 청하니, 노자는 공자의 오만과 야망을 질책했고, 그 후 공자는 그를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에 비유했다.

  노자는 주나라 덕이 시드는것을 보고, ()으로 들어가는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러관문지기 윤희(尹喜) 글을 남겨달라 해서남긴 것이 도덕경(道德經) 이다

 160여 세를 살았다고도 하고, 2백 세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아들 종()은 위나라 장군이 되었다일설에 의하면, 공자와 같은 시대에 산 노래자(老萊子)가 노자라기도 하고, 공자 사후 2백 년 후 주나라 태사(太史)였던 담()이 노자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른다.'

도교에서 태상노군으로 섬기는 노자

 

도덕경(道德經)

 

 말 할 수 있는 도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도가 아니다.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미()는 언제던지 미요, ()은 언제던지 선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감정의 움직임에 따라 미가 도리어 추가 되고, 의지의 움직임에 따라 선이 도리어 불선(不善)이 된다는 것을 모른다.

 성인은 상대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세계에 살지 않는다. 모든 것의 근거가 되는 무위자연 도의 세계에 살며, 말로써 사람을 교화하지 않고 말 없이 행동으로 본보기를 보여준다.

 

 선 가운데서 가장 좋은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물은 모든 만물을 자라게 하지만, 높고 깨끗한 곳에 있으려고 다른 것과 다투지 않는다. 사람들이 항상 비천하고 더럽다고 싫어하는 곳에 스며든다. 그러므로 ()와 비슷하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개인의 주의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다만 백성의 마음을 종합하여 자기 마음으로 삼는다. 강과 바다는 시냇물 보다 낮은 하류에 있어 냇물을 모아 왕자가 된다.

 백성 위에 서려하지 않고 몸을 낮추니모두가 즐거이 그에 귀의한다. 관리들이 몸에 비단옷을 두르고, 허리에 예리한 칼을 차고 다니고, 식탁에 맛있는 음식이 남아돌고, 집에 귀중한 재화가 있다면, 이런 몹쓸 행위로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교만한 도적이라 한다.

 

 도는 한없이 크므로 상하좌우에 충만되어 있다. 만물은 도를 나타내며 생성한다. 그렇지만 도는 만물을 생성하면서도 자기 소유로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무위자연의 도가 타락된 뒤에 덕이 나타나고, 덕이 타락된 뒤에 인()이 나타나며, 인의 타락된 뒤에 의()가 나타나고, 의가 타락된 뒤에 예()가 나타난다. 예는 사람의 성실성이 박약한 데서 일어나는 것이요,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첫걸음이 된다.

 

 도를 잘 닦은 사람은 그 마음이 미묘 심원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억지로 그 태도를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일에 신중을 기하여 빨리 단안을 내리지 않는 태도는 추운 겨울에 냇물을 건너갈까 말까 망서리는 것과 같다.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는 봄날에 얼음이 풀어져 녹는 것과 같다. 엄연한 태도는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 같고겸허한 태도는 빈 골짜기 같다. 시비청탁 가리지 않는 태도는 더러운 흙 속에 섞인 물 같다. 누가 물처럼 군중 속에 들어가서 탁한 것을 탁한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서서히 맑게 할 수 있겠는가?

 

 도를 가진 이는 매사에 욕망을 만족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족 뒤에 불만이 오기 때문이다. 부족한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는 사람만 항상 낡은 것을 아끼고, 새로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속인들은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데는 아주 똑똑하지마는, 도를 가진 이는 홀로 어리석은 듯하다. 속인들은 세밀하고 자상하지마는, 도를 아는 이는 담박하고 무미하여 답답스러워 보인다.

 도는 다만 어렴픗할 뿐이다. 있으면서도 꼴 없는 무형(無形) 속에 동작이 있고, 없으면서 꼴 있는 유형(有形) 속에 형상이 있다

 

 가장 교묘한 것은 졸열한듯 하다. 아주 가득 차 있는 것은 텅 빈 것 같다. 훌륭한 웅변은 말을 더듬는 듯하다.

냉정한 것은 조급한 것을 이긴다. 찬 것은 더운 것을 이긴다. 깨끗함과 고요함이 천하의 규범이 된다.

 

 스스로 슬기롭다고 자처하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은 남이 옳다고 여겨 주지 않는다.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공()을 잃고 만다. 자기가 유능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참으로 유능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행위는 자연을 벗어난 것으로, 도를 행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먹다 남은 밥이나 얼굴에 달린 혹처럼 쓸데없는 것이다.  

 사람은 발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서서 오래 있을 수 없다. 두 다리를 벌려 큰 걸음 걷는 사람은 먼 길을 갈 수 없다. 자연스럽지 못한 행위는 오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 몸은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죽으면 굳어진다. 초목도 그렇다. 그러므로 부드럽고 유한 것이 생의 현상이요, 굳고 강한 것이 죽음의 현상이다.

 미더운 말은 꾸밈이 없고, 꾸밈이 있는 말은 미덥지 않다.

 솔직한 사람은 변명하지 않고, 변명하는 사람은 솔직하지 않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무엇이나 다 널리 알지 못하고, 무엇이나 다 널리 아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

 자연 법칙을 도덕률로 삼으면, 영구불변의 덕이 온 몸에 충족하게 되어, 인공을 가하지 않은 산의 원목 같이 질박하게 된다. 그러나 목수가 원목을 베어 인공을 가하게 되면, 다만 기구(器具)가 된다

 대장부는 자연에 따른 질박한 생활을 하고, 인위를 따른 허식에 찬 생활을 하지 않는다.

 

 상류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은 도를 들으면 열심히 실행한다. 중류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 한다. 하류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은 도를 들으면 우스광스럽게 여긴다. (이런 사람에게 우스꽝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도는 참 도가 아니다.)

 

 나는 세 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으니, 첫째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둘째는 사물을 검약하는 태도요, 셋째는 남보다 앞서지 않으려는 행동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자비로운 마음이 있기에 용감 할 수 있다. 사물을 검약하므로 도리어 궁하지 않고 넉넉할 수 있다. 남보다 앞서지 않는 겸손이 있기에 완전한 경지로 나갈 수 있다.

 

 

장자(莊子) 남화경(南華經)

도둑에게도 도가 있나이까?

 

 예수 뒤에 바울이, 플라톤 뒤에 아리스토텔레스가공자 뒤에 맹자가, 노자 뒤에 장자가 있다. 인류 8성현 중에 노자, 장자는 도교(道敎)의 창시자로 꼽힌다.

 장자는 '인간은 인간의 작은 지혜에 집착해서 자연의 도를 거역하지말고 순리로 살 것'을 강조한다.

'남화경' 소요유(逍遙遊), 제물론(齊物論), 양생주(養生主)  내편(內篇), 병무(騈拇) 등 외편(外篇), 경상초(庚桑楚) 등 잡편(雜篇3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장은 대체로 노자의 '도덕경' 보다 더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다.

33편 가운데 장자가 쓴 것은 내편 7편이고, 외편과 잡편은 후세 사람이 썼다는 것이 통설이다이중 제물론(齊物論)은 수학과 과학의 천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와 비슷하다는 학자도 있다.

 

  

장자

 

 장자는 기원 전 290년 춘추전국 시대 송나라 사람이다. 이름은 주(). 일개 아전이었으나, 초나라 위왕(威王)이 그 이름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재상을 시키려 하자, 코웃음 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다. 천금은 큰 이득이다. 재상은 훌륭한 지위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그대는 제사에 희생되는 소를 보았는가수년간 잘 먹이지만 결국 태묘(太廟)에 끌려가지 않을 수 없고, 그 때 가서는 소 같은 큰 짐승보다 살아있는 돼지라도 되었으면 하고 소원해도 쓸데없다. 그대가 나를 초빙함은 이와 같으니 빨리 가라. 일생을 속박되지 않고 벼슬 없이 살련다.'

 

  '소요유(逍遙遊)''대붕도남(大鵬圖南)'  

 

 북녘 바다에 곤()이라는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그 크기가 몇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붕()이라는 새가 된다. 그 등 넓이는 몇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고,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을 덮는 검은 구름 같다. 이 새는 바다에 큰 바람이 이는 계절이 오면 천지(天池)라는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

 물이 깊지 않으면 배를 띄울 수 없다. 한 잔의 물이 마루에 괴면 작은 풀잎은 배처럼 뜰 수 있다그러나 거기에 잔을 올려놓으면 바닥에 닿고 만다. 물은 얕은데 배는 크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것도 이와 같다. 바람이 두껍게 쌓이지 않으면 날개를 띄워 올릴 힘을 얻을 수 없다. 9만 리 높은 하늘에 올라야만 붕의 날개가 바람의 힘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붕은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푸른 하늘을 등지고 자유롭게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매미와 비둘기가 붕을 비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공중으로 날라 갈대밭을 빙빙 돌다가 내릴 줄 안다. 이만하면 날 만큼 나는 것이다그런데 무엇 때문에 9만 리 먼 하늘까지 올라가 남쪽으로 가려 하는가?'

 교외로 소풍을 나가면 하루 세 끼만 있으면 충분하지만, 백 리 길을 가려면 하룻밤 곡식을 찧어야 하고, 천 리 길을 가려면 세 달 동안 식량을 모아야 한다. 조그만 날짐승이 대붕의 비상을 어찌 알랴.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수명은 긴 수명에 미치지 못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녂에 지는 조균(朝菌)이라는 버섯은 밤과 새벽을 모르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모른다. 둘 다 살아있는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제물론(齊物論)''조삼모사(朝三暮四)'

 

 장자의 '제물론'은 만물을 고르게 하는 논리라는 뜻이다. 모든 것은 상대성을 지닌다. 시시비비를 초월하여 모든 사물을 평등하게 바라보라는 뜻 이다유일 절대의 도의 입장에서 현실 세계의 갖가지 현상, 시비 선악, 미추, 정사, 화복, 길흉, 생사등을 명확히 구분하는 상대적 가치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가를 밝히고 있다.

 사물은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또 이것 아닌 것도 없다. 이쪽에서 보면 모두가 저것, 저쪽에서 보면 모두가 이것이다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삶이 있다한쪽에서의 분산은 다른쪽에서의 완성이며, 한쪽에서의 완성은 다른 쪽에서의 파괴이다사물은 완성이건 파괴건 다같이 하나이다. 이처럼 세상 일은 모두 상대적이므로, 성인은 그런 방법에 의하지 않고, 그것을 절대적인 자연의 조명에 비추어 본다커다란 긍정의 세계에 의존한다.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에 불과하다. 내 손가락으로 저 사람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저 사람 손가락으로 내 손가락이 자기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이것이 저것이고 저것 또한 이것이다, 저것과 이것, 그 대립을 없애버린 경지를 '도추(道樞)'라고 한다.

 

 조련사가 어느 날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아침에는 3, 저녁에는 4개를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가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래서 말을 바꾸었다. '미안그러면 아침에 4, 저녁에는 3개를 주지.' 그러자 원숭이는 좋아했다실제는 아무 차이가 없는데도 노여움과 기쁨이 일어난다. 이것은 마음이 시비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시비의 구별을 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천균(天鈞)’(자연 평등의 이치)에 맡긴다. 이것을 양행(兩行)’(사물과 내가 서로 어울림)이라 한다

 

  '양생주(養生主)''포정해우(庖丁解牛)'


  유명한 요리사 포정(庖丁)이 위()나라 혜왕(惠王) 앞에서 소 한 마리를 잡았다.
 포정이 소를 손으로 잡고, 어깨에 힘을 넣어 발의 위치를 잡으며 무릎으로 소를 누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고기와 뼈가 깨끗이 발라졌다리듬을 탄 칼질소리는 마치 상림무(桑林舞)’(은나라 탕왕이 즐기던 무곡)경수회(經首會)’(요임금이 즐기던 무곡)처럼 들렸다.
'참으로 신기하도다!' 혜왕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발했다. 포정은 그 말을 듣고 혜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황공하오나 이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기술이 극에 이르면 도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란 모두 소뿐이었으나, 3년이 지나자 소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이르렀습니다. 요즘 저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소를 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감각이 멈추고 마음만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를 뿐입니다. 소의 몸에 자연스레 나 있는 틈을 따라 칼질을 하므로 커다란 뼈는 물론이고 근육이나 살이 마구 얽힌 부분이라도 하나 흐트러짐 없이 발라낼 수 있습니다.

 보통 요리사는 한달에 한번 칼을 바꾸고솜씨 있는 요리사는 1년에 한번 칼을 바꿉니다. 칼날은 오래 사용하면 뼈에 부딪쳐 날이 빠지거나 무디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칼은 19년이나 사용하여 벌써 수천 마리 소를 발랐지만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지 않습니까?

 저는 근육과 뼈가 얽힌 어려운 부분에 이르러, 눈을 한 점에 집중하면, 동작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칼이 움직이는지 안 움직이는지 모를 지경에 이릅니다. 이윽고 하는 소리와 함께 살점이 흙덩어리처럼 뼈에서 떨어집니다
 이 말을 듣고 혜왕은 감동하여 말했다. '정말 훌륭하구나. 포정은 양생(養生)의 이치를 터득했다.'

 

 '인간세(人間世)''무용(無用)의 용()'

 

 목수 석()이 제나라를 여행하다가 곡원(曲轅)이라는 곳에 이르러 토지신을 모신 사당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상수리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가릴 수 있을 만큼 크고, 굵기는 백 아름이나 되며, 그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정도였다.

 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큰 가지만 해도 수십 개가 되었다. 그 주위에 구경꾼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으나 목수 석은 본 척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그냥 지나쳐 버렸다그러자 제자가 석에게 물었다.
'제가 도끼를 들고 선생님을 따라다닌 이래로 이렇게 훌륭한 나무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석이 대답했다.
'저 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다. 배를 만들면 그냥 가라앉을 테고, 널을 짜면 금방 썩을 것이고, 그릇을 만들면 곧 망가질 것이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를 테고, 기둥을 만들면 좀이 쓸 게야. 그러니 저건 재목으로 쓸데가 없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저렇게 오래 살 수 있는 게야.'
 목수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 그 상수리나무가 꿈에 나타나 말했다.
'너는 도대체 나를 어디다 비교해서 쓸모없는 나무라 하느냐? 필시 인간에게 유용한 나무에 비교했을 테지. 하기야 배, , 유자 같은 나무는 열매가 익으면 사람들이 따 먹고, 그러다 보면 가지도 부러질 테지.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찢어질 것이야. 결국 그 나무는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삶이 괴롭고, 그러니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도중에 죽어 버리지. 스스로 세속의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야.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오늘날까지 오로지 아무 소용이 없는 존재이기를 바라며 살아왔고이제 천수를 마감하려는 때에 이르러 마침내 아무 쓸모 없는 나무가 되었다. 너희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내게는 정말 소중한 것이니, 만일 내가 쓸모 있는 나무였다면 벌써 베어졌을 것이야.
 너와 나는 자연계의 사소한 현상에 지나지 않아. 한 물건이 다른 물건의 가치를 정해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건가? 너처럼 쓸모 있는 존재이고 싶어 스스로의 생명을 갉아먹는 자야말로 실제로는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야. 그런 쓸모없는 인간이 나처럼 쓸모없는 나무의 진가를 알아볼 리 없지.'

   

  '지식' 상대성에 관한 글

 

 사람이 무엇에 대해서 안다고 하지만, 소위 내가 안다는 것은 참으로 아는 것인가? 사람은 생명에 한도가 있으니, 한도가 없는 것을 한도가 있는 생명으로 쫒아감은 위태로우며, 무엇을 참으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태로운 것이다.  

 사람은 습한 곳에서 자면 요통이 생겨 죽는다. 그러나 미꾸라지는 어떤가? 사람은 나무 위에 살면 불안하고 신경이 고통스럽다. 그러나 원숭이는 어떤가? 사람, 미꾸라지, 원숭이의 거처 중에서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가사람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고, 올빼미와 까마귀는 쥐를 먹는다.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구미를 가졌는가사람은 미인을 사모하는데물고기는 미인을 보면 물 속 깊이 도망가고, 새는 공중으로 날라가고, 사슴은 도망간다. 어떤 것이 올바른 미의 표준이라고 하겠는가?

 

 나는 꿈에 나비가 되어 이리저리 날라다니니 어디로 보나 나비였다. 나는 내가 나비인 줄로 알고 기뻐했고장자인 것을 알지 못했다. 곧 나는 깨어났고, 다시 장자가 되었다. 지금 나는 사람으로써 나비 꿈을 꾸었는지, 나비인데 사람이라고 꿈을 꾸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과 나비 사이엔 반드시 구별이 있다.  

 

 도둑이 상자를 열고 꿰짝의 재물을 훔치려는 것을 막으려면, 상자를 노끈으로 단단히 묶고 자물쇠를 잠그면 된다. 그러나 강한 도둑은 돈궤와 상자를 몽땅 어깨에 메고 도망한다. 도둑은 동여맨 노끈이 약해서 끊어질까 염려할 뿐 이다. 그러니 세상의 지식이라는 것은, 강한 도둑이 들고 가기 좋게 한 것 밖에 더 되는가? 도둑에게 편의를 보아준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도척(盜跖)의 제자가 '도둑에게도 도가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무엇에나 도가 없을 것인가? 방 안에 감춰둔 물건을 알아맞히는 것은 성()이요,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기요, 뒤에 나오는 것은 의리다. 성공할 것을 예상함은 지(), 장물을 고루 나누는 것은 인() 이다. 이 다섯가지를 갖추지 않고 능히 큰 도둑이 된 자는 천하에 없었다.‘ 하였다.

 

 활이나 그물에 대한 지식이 늘면 공중의 새들이 괴롭고, 낚시와 그물에 대한 지식이 늘면 물 속의 고기들이 불안하다. 함정과 덫에 대한 지식이 늘면 들짐승이 괴롭고, 교활과 거짓 말솜씨가 늘면 세상이 어지러워 진다. 임금이 지식을 갈망하면 어떻게 되는가그 나라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노자는 '큰 재주는 오히려 졸()해 보인다' 하였다단순하고 덤덤한 것을 제쳐놓고, 보기 좋고 간사한 것을 좋아하면 세상이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욕심

 

 장자는 언젠가 조릉(彫陵)이라는 곳에서, 이상한 까치가 자기 이마를 스칠 정도로 낮게 날아서 밤나무 숲으로 가는 것을 보고, 활로 그 까치를 잡으려고 급히 따라갔다.

 그런데 가서보니, 그 까치는 장자가 자기를 잡으려고 하는 줄 모르고 숲속의 버마재비를 잡으려고 정신없이 날라간 것인데, 막상 버마재비는 까치가 자기를 잡으려고 하는 줄 모르고, 나무 그늘에 쉬고있는 매미를 잡으려고 집중하여 자신을 잊고 있었다.

 장자는 이를 보고 깜짝 놀랬다. '모든 것은 이()와 해() 두가지를 서로 부르고 있으니, 욕심이라는 것이 두렵다.' 하고 활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런데 이때 숲의 밤나무를 지키던 사내는, 장자가 밤을 따러 온 도둑으로 오해하여 따라오며 욕을 했다. 집에 돌아온 장자는 자기도 까치를 잡으려는 욕심에 집착하여 밤 지키는 사내가 쫒아오는 걸 몰랐음을 뉘우쳐, 3개월간 뜰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자사(子思) 중용(中庸)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한다.


 

 중용(中庸)은 원래 한 권의 책이 아니다예기(禮記) 49 편 중에서 31편만 뽑은 것이다. '예기'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 춘추(春秋) 등 오경(五經)의 하나로, 예법을 중심으로 풀이한 책이다

 중용의 저자는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라는 설송나라 때 주희(朱熹)라는 설, 두가지가 있다.

사기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보면,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가 급()을 낳으니 그가 자사(子思). 그가 나이 62세에 송나라에서 중용을 지었다'라는 대목이 있다. 또 주희(朱熹)  예기 가운데서 대학, 중용 두 편을 사서(四書)로 정하고사서집주(四書集注)를 내놓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자사는 공자가 아들 공(孔鯉)가 죽자 며느리는 개가시키고 데리고 살았던 세 살짜리 손자였던 점을 미루어 중용(中庸)을 지었다고 봄이 타당할 것 같다

자사

 

  먼저 중용(中庸)의 말뜻부터 살펴보자.

 주자(朱子)()이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침도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不偏不倚無過不及)’을 일컫는다 했고, '()'이란 떳떳함(平常)을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자(程子)기울어지지 않는 것(不偏)을 중이라 하고, 바꾸어지지 않는 것(不易)을 용이라 했다

 

인생을 살아감에 중용은 무엇일까? 모난 것과 둥근 것의 중간이 중용일까?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지 않는 것이 중용일까? 중용이란 무엇일까?   

중용은 총 33장으로 되어 있는데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져 있다.

전반부는 주로 중용(中庸) 또는 중화(中和)를 논하고, 후반부는 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장부터 살펴보자.

 

1.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하늘이 명한 것을 이라 하고성을 따름을 라 하고도를 닦는 것을 라고 한다)

是故 君子愼乎其所不睹(고로 군자는, 그가 보이지 않는 때 조심하고), 恐懼乎其所不聞(그가 들리지 않을 때 두려워하고), 愼其獨也(그가 홀로 있을 때 삼간다).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희로애락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이라 하고), 發而皆中節謂之和(나타나 절도에 맞는 것을 라고 한다).

中也者天下之大本也(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고), 和也者天下之達道也(라고 하는 것은 천하의 達道 이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中和가 이루어지면, 천지에 질서가 잡히고만물이 자란다).

 

*중용 첫머리 제1장을 선비들이 가장 많이 논의하였다. 중용이 인생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 희노애락이 미발(未發)된 것을 말하며()하여 중()에 의해 조절된 것을 화()라고 한다이런 중화(中和)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수양 방법으로 '신독(愼篤)'이 있다.

 

2.

仲尼曰 君子中庸  小人 反中庸(중니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중용이요소인은 중용에 반대된다).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군자의 중용은 군자로서 때에 알맞게 처신하는 것이고), 小人之反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소인의 중용에 반하는 것은 소인으로서 제멋대로 꺼리낌 없는 것이다). 

 

6.

子曰 舜 其大知也與(공자 가라사대, 순임금은 큰 지혜를 지니신 분이었다). 舜 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묻기를 좋아하시고, 평범한 말도 살피시기 좋아하시고악함은 숨기시고, 선함을 드러내시며),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斯以爲舜乎(그 두 끝을 잡아 그 가운데를 백성들에게 쓰셨으니, 그것이 순이 된 까닭이다). 

 

7.

子曰 人皆曰予知 驅而納諸罟擭陷阱之中而莫之知辟避也(공자 가라사대, 사람들은 자신을 지혜롭다고 말하나사실은 그물이나 덫이나 함정 가운데에 치우치게 몰아넣어도 그것을 피할 줄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人皆曰予知 擇乎中庸而不能期月守也(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지혜롭다고 말하나, 중용을 택하여 한달도 지키지 못한다).  

 

14.

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군자는 자기 바탕을 따라서 행동하고바탕 밖은 바라지 않는다).

在上位 不陵下 在下位 不援上 (윗자리에 있어서는 아래를 업신여기지 아니하며아랫자리에 있어서는 웟사람에게 매달리지 않고), 正己而不求於人 則無怨(자기를 바르게 하고 남에게 구하지 않아 원망이 없고), 上不怨天 下不尤人(위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 남을 탓하지 않는다).

 

子曰 射有似乎君子 (공자께서, '활쏘기가 군자와 비슷함이 있으니),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정곡을 잃으면 도리어 그 자신의 자세를 돌아본다' 하셨다).

 

20.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 하늘의 도요정성스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誠者 不勉而中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 힘쓰지 않아도 맞게 되며,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져中道를 따르는 성인과 같다).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널리 배우며, 자세히 물으며신중히 생각하고밝게 분별하며두터이 그것을 행한다).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남이 한번 해서 능하다면자기는 백 번 하고남이 열 번 해서 능하다면, 자기는 그것을 천 번 한다).

果能此道矣 雖愚 必明 (이런 도에 능하다면 비록 어리석다 하더라도 반드시 밝아질 것이며), 雖柔 必强(비록 유약하다 하더라도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22.

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오직 천하의 至誠 을 다할 수 있다).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을 다할 수 있으면곧 사람의 을 다할 수 있고),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사람의 성을 다할 수 있으면, 곧 사물의 을 다할 수 있고),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사물의 을 다할 수 있으면천지 화육을 도울 수 있고),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천지에 동참하는 경지가 될 것이다).

 

*사람의 일이 어느 하나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냥 아무렇게나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면 비로소 일의 형태가 보이게 되고 밖으로 드러나고 분명하게 된다. 환하게 밝으면 만물과 통하고, 사람을 감동시키게 되고, 천지변화에 동참하는 경지에 이른다

 

24.

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지성의 도는 가히 앞을 알수 있게되니, 국가가 장차 흥하려면 반드시 상서로움이 있다).

國家將亡 必有妖孽 見乎蓍龜 動乎四體(국가가 장차 망하려면 반드시 재앙이 있어서 시초점()이나 거북점()에 나타나고집권자 사지(四肢)의 움직임에 나타난다). 

禍福將至 善 必先知之, 不善 必先知之, 故 至誠 如神(화와 복이 장차 이를 것을 반드시 선에서 먼저 알며, 불선에서도 반드시 먼저 그 징후가 나타나니, 고로 至誠과 같다).

 

25.

誠者 物之終始, 不誠無物 是故君子誠之爲貴(은 사물의 시작과 끝이다. 성이 없다면 사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성을 귀하게 여긴다).

 

32.

唯天下至誠 (오직 천하의 至誠), 爲能經綸天下之大經(천하의 대경(大經=孝經)을 경륜할 수 있으며), 立天下之大本(천하의 대본을 세울 수 있으며), 知天地之化育(천지 화육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夫焉有所倚(어찌 우리가 의지할 딴 무엇이 있겠는가).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하게 할 수 있으며 이루지 못할 일 없다. 천지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제 할 일을 다 하는 것은 을 다하려고 일부러 애쓰기 때문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저절로 그렇게 되지 않기에 항상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순자(荀子) 성악설(性惡說)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맹자(孟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고, 순자(荀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맹자는 '사람은 태어나면서 악을 거부하고 선을 실행하려는 마음씨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반대로 순자는 '사람은 누구나 다 관능적 욕망과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고 하였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도 성악설 이다. 그는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자연 상태의 삶은 고독하고 불결하며, 야만적이고 부족하다. 자연 상태란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라고 주장했다.

 

 순자의 이름은 황()이며 기원 전 315년에 조()나라에서 태어났다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와 자유(子游)의 학통을 전승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나라 재상 춘신군(春申君)에 기용되어 만년에 난릉(蘭陵) ()을 지냈고, 진시황의 천하 통일 뒤까지 살았다.

순자의 제자는 한비자와 이사(李斯)가 있다. 한비자는 법가(法家)였고, 이사는 진시황의 측근으로 소전(小篆) 글씨체의 창시자다

 순자(荀子) 32 편이 있는데, 권학(勸學), 수신(修身), 비상(非相), 중니(仲尼), 군도(君道), 신도(臣道), 천론(天論), 성악(性惡) 등이다.

 

  성악설(性惡說)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 착하지 않다. 착하게 보이는 것은 인위적으로 꾸민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한다. 이익을 따르기 때문에 싸우고 빼앗는 일이 일어나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나면서부터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이를 따르기 때문에 잔악한 사건이 생겨나고 일이 진실되게 진행되지 않는다. 나면서부터 눈과 귀의 욕심이 있어 좋은 색과 소리를 좋아한다. 이를 따르기 때문에 음란한 일이 생겨나고 예의와 교양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과 감정에 따르면, 분수를 어기고 도리를 지키지 못하여, 반드시 싸우고 빼앗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사회가 혼란해지고 난폭해진다반드시 스승의 교화와 예의의 인도가 있은 연후에 안정으로 돌아간다.

 굽은 나무는 반드시 그것을 바르게 하는 도지개(틈이 가거나 뒤틀린 활을 바로잡는 틀)에 대거나 찜 쪄서 교정해야 반듯하게 되고, 잘 들지 않는 칼은 반드시 숫돌에 간 다음에야 예리하게 되는데, 이처럼 인간의 본성은 스승의 교육을 배운 연후에 잘 다스려 진다.

 요 임금이 순()에게'인간의 성정은 어떠한 것인가?'물었더니, 순이 대답하기를, '인간의 성정은 심히 불미스럽습니다. 장가 들어서 처자가 생기면 효도가 쇠퇴하며, 물질적인 것이 충족되면 친구에의 신의가 쇠퇴하고, 지위나 봉록이 높아지면 임금에 대한 충성이 쇠퇴합니다. 인간의 성정은 불미스럽습니다. 오직 현인만이 그렇지 않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착한 것인데, 그 본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악하게 되는 것'이라 하나, 이는 잘못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후천적인 인위(人爲)를 구별하여 잘 살피지 못한 것이다.

 본성이라는 것은, 하늘이 내놓은 그대로 자연적인 것이므로 후천적으로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반면 인위라는 것은 예의나 학문처럼 배우고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본성과 인위의 구별이다. 인간이 착한 것은 인위의 결과이며, 본성은 원래 악한 것이 분명하다.

 

  권학편(勸學篇)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고,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반성하면 지혜가 명석해지고 행동에 과오가 없게 된다. 높은 산에 올라가 보지 않으면 하늘의 높음을 알지 못하고, 깊은 골짜기에 가 보지 않으면 땅의 두터움을 알지 못하며, 고대의 성왕(聖王)이 남긴 훌륭한 말을 듣지 않으면 학문의 광대함을 알지 못한다.

 수레나 말을 잘 이용하면 다리가 약해도 천리를 갈 수 있고, 배와 노를 잘 이용하면 헤엄을 칠 줄 몰라도 강과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군자는 학문을 배울 때 주변을 잘 가려야 하나니, 거처함에는 반드시 마을을 잘 가리고, 공부함에는 반드시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배운다.

 군자의 학문은 자기 몸을 훌륭하게 하고, 소인의 학문은 남의 기분에 들기 위한 것이다. 묻지 않는데 대꾸하는 것은 오(, 경솔하고 거만함)라 하고, 하나 물었는데 둘을 대답하는 것은 말이 많다 하고, 말할 처지인데 말하지 않는 것은 은(, 숨김)이라 하고, 상대의 기색을 살피지 않는 것을 장님이라 한다. 군자는 거만하지 않고, 말이 많지 않고, 숨기지 않고, 상대의 기색을 잘 살피어 근신한다.

 화살 백 발 가운데 한 발이 실패하더라도 훌륭한 사수라 하기에 부족하고, 천리 길에서 반걸음 미치지 못해도 훌륭한 어자(御者, 마차 부리는 사람)라 하기에 부족하다.

 마찬가지로 인의의 문제를 추구함에도, 그 예법이 정해지지 않은 곳까지 유추하여 전일(全一)하게 통하지 못한다면, 그를 훌륭한 학자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학문이란 ()에 전일함이니, 들락날락 무상함은 길거리의 평범한 사람이나 할 일이다.

 학문이란 중지하지 말아야 한다. 푸른색은 쪽(, 마디풀과의 일년 생 초본)에서 나오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다.

*여기서 청출어람(靑出於藍) 고사가 나온다.

 남북조 시대 북조(北朝)의 공번(孔磻)이란 선비가 있었다. 이밀(李謐)이란 제자가 있었는데이밀의 실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여 몇 년 지나 그를 앞서자, 공번은 스스로 이밀의 제자가 되었다는 실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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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륜편(天倫篇)

 

 하늘의 운행은 사람의 일과 관계없이 일정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 임금 때문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 임금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늘의 운행에 잘 맞추어서 잘 다스리면 길하고, 잘 다스리지 못하면 흉하다.

 농업과 같은 근본적인 산업에 힘쓰고, 쓰는 것을 절약하면, 하늘도 그를 가난하게 할 수 없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올 것을 대비하여 여름 준비를 하고, 여름이 되면 가을 준비를 하는 것처럼, 미리 준비하여 때 맞추어 움직이면, 하늘이 그를 병들게 할 수 없다.

 자연의 운행을 미리 예측하여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잘 챙겨서 일관되게 대비하면 하늘이 그에게 화를 줄 수 없다. 그러므로 홍수나 가뭄이 그를 굶주리거나 목마르게 할 수 없고, 추위와 더위가 그를 병들게 할 수 없으며, 요괴가 그를 흉하게 할 수 없다.

 농업과 양잠 같은 근본 산업이 황폐해지고 쓰임이 사치스러워지면 하늘도 그를 온전하게 할 수 없으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인간의 일을 어기고 함부로 행하면, 하늘도 그를 길하게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홍수나 가뭄이 이르지 아니해도 굶주리게 되고, 추위와 더위가 다가오지 아니해도 병들게 되며, 요괴가 이르지 아니해도 흉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늘과 사람의 경계에 분명히 해야 최고의 사람이다. 하지 않고도 이루어지고 구하지 않고도 얻어지는 것은 하늘의 직분이다. 이러한 하늘의 직분은 심오하다. 고로 사람은 하늘과 더불어 직분을 다투지 않는다.

 하늘은 스스로 운행질서를 가지고 있고, 땅은 스스로 재물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은 스스로 해야 할 도리가 있다. 이와 같이 각각 일을 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어울리는 방법이다. 이를 모르고 하늘과 같아지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수신편(修身篇)

 

 군자는 나를 그르다고 충고해 준 사람을 스승으로 존경하고, 옳다고 격려해주는 사람은 친구로 친애하며, 아첨하는 사람은 적이라 생각하고 미워한다. 그러면 진보하지 않으려 해도 진보하지 않을 수 없다.

 소인은 반대로, 극도로 난폭하게 행동하고서도 남이 나를 비방하면 증오하고, 극도로 어리석은 일을 하고서도 남이 나를 현명하다고 하길 바란다. 마음이 호랑이나 이리처럼 잔혹하고, 행동이 금수처럼 못됐으면서 남이 자기를 적으로 여김을 원망하며, 아첨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힘써 간()하는 사람을 멀리하며올바른 사람을 웃음거리로 알고, 성실한 사람을 적이라 한다. 그래서 망하지 않을려야 망하지 않을 수 없다.

 뜻을 잘 닦아 바르게 되면 부귀에 굴하지 않고, 도덕이 중후하면 왕공(王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도덕을 중시하는 사람은 때로 외계의 사물도 경시 할 수 있다. 옛말에 군자는 주체성을 지녀 외물을 마음대로 부리고, 소인은 주체성이 없어 외물에 부림을 당한다고 한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훌륭한 농부는 어쩌다 홍수나 한발이 있다해서 경작을 그만두지 아니하며, 훌륭한 상인은 어쩌다 손해를 본다해도 그 때문에 장사를 그만두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군자는 빈궁하다 해서 정도(正道)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태도가 공경스럽고 마음이 성실하며, 법도가 예의에 맞고 감정이 인애로우면, 이런 사람은 이적(夷狄)의 땅에 가더라도, 이적이 감화되어 그를 존경한다.

 괴롭고 수고스런 일에 맨 먼저 나서고, 즐거움 많은 일은 남에게 양보하며, 성실하고 정직하고 맡은 바 직분에 세밀하면, 이런 사람은 이적의 땅에 가더라도 이적이 감화되어 그를 신뢰한다.

 반면 오만하고 속임수가 많으며, 예를 지키지 않고 감정이 잡박하고 천하면, 이런 사람은 천하를 구석구석 돌아다녀도 사람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긴다.

 괴롭고 수고스런 일은 남에게 밀어붙이고 자기는 빠지고, 즐거운 일은 재빠르게 차지하여 남에게 양보하지 않으며, 사악하고 성실치 않고 적당히 일하는 사람은 비록 천하의 구석구석에 가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그를 버린다.

 군자는 빈궁하더라도 뜻이 광대하고, 부귀하더라도 태도가 공손하며고달플 때도 용모를 구차하게 흐트르뜨리지 않으며, 싫다고 지나치게 뺏지 않고, 좋아한다고 지나치게 주지 않는다.  

 

 비상편(非相篇)

 

  요 임금은 장신인데 순 임금은 단신이고, 문왕(文王)은 장신인데 주공(周公)은 단신이었다.

 위나라 공손여(公孫呂)는 얼굴이 매우 길어 석 자(90센티) 였고, 폭은 매우 좁아 세 치(9센티) 밖에 안 되고, 그 속에 눈, , 귀가 갖추어진 기형이었으나, 대단한 인물로 천하에 이름을 날렸다.

 초나라 손숙오(孫叔鰲)는 툭 튀어나온 대머리에 왼발이 더 길고 기형이었으나, 초나라를 패자가 되게 하였다초나라 섭공자고(葉公子高)는 수척하고 작은 단구척신(短軀瘠身)으로, 걸어다니는데 옷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할 것 같은 약골이었으나, 백공(白公)의 반란이 일어나자, 재상이던 자서(子西)나 사마(司馬, 국방상)였던 자기(子期)는 반란군에 살해되었으나, 서울로 들어가 백공을 벌하고 초나라 권세를 장악하여 나라를 안정시켰다.

 공자의 모습은 키가 장신인데다 얼굴이 마귀 쫒는데 쓰는 가면처럼 우습게 생겼고, 주공의 형상은 고목이나 꼽추 같았고, 고요(皐陶)의 형상은 안색이 껍질 벗겨낸 오이처럼 청록색이고, 굉요(閎夭)의 형상은 얼굴에 온통 털이 나서 살결을 볼 수 없었으며, 이윤(伊尹)은 얼굴에 수염과 눈섶이 없었고, 우 임금은 절룸발이처럼 뛰어다녔으며, 탕 임금은 반신불수였지만, 모두가 마음이 바르고 덕이 높았기 때문에 후세에까지 존숭되고 있다.

 반면에 걸()과 주()는 모습이 장대한 천하의 호남이었고, 근력은 백 사람에 필적하는 자들이었지만, 후세 사람들은 그들을 악의 표본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용모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견문이 좁고 논의가 비열한 데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니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형상을 취하는 것과 뜻을 취하는 것 중 어느 것을 취함이 옳겠는가?

 사람의 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옛 성인이 무시한 바이고, 학문하는 사람이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용모와 골격을 보고 점치는 것은 마음을 논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마음을 논하는 것은 실천의 근거가 되는 학술을 선택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학술이 올바르고 마음이 종순하면, 형상이 비록 추악하다 해도 군자라 해도 무방하다. 형상이 비록 잘생겼다 해도 마음 가짐과 학술이 약하면, 소인이라 해도 무방하다

 * 비상편(非相篇)을 요즘 관상학하는 사람들이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비상편을 자세히 읽어보면, 관상 보다 심상(心相)을 강조하고, 심상 보다 학문의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현장(玄裝)스님 반야심경(般若心經)

아제아제 바라아제

 

 불교도 아니라도 색즉시공(色不異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반야심경 구절은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시주승 독경, 혹은 초상집 염불, 또는 산사 예불에서 듣는 스님 염불 90프로가 이 반야심경이다.

 반야심경은 270자로 된 짧은 경문이다. 1300년 전 현장삼장(玄裝三藏) 스님이 천축에서 불경을 가져와 서안 자은사(慈恩寺) 대안탑(大雁塔)에 봉안하고한문으로 번역했다.

현장삼장 스님

 

 반야심경은 지구상에서 가장 빈틈없고 완전무결한 논리를 가진 사상이다서양철학의 큰 숙제인 유물사상과 유심사상을 합일하여 각()의 세계로 귀납시켰다 하여지금은 서양에서 오히려 깊이 연구하고 있다.

 

반야심경(般若心經)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摩訶)는 크다, 많다, 초월한다는 뜻이다. 반야(般若)는 프라즈냐(prajna)의 음사어로 지혜란 뜻이다. 바라밀다(波羅蜜多)는 파라미타(parammita)의 음사어로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다.

()은 흐리다야(hrdaya)의 음사어로 심장이라는 뜻이며, ()은 수트라(sutra) 즉 성전을 의미한다. 심경(心經)은 핵심되는 부처님 말씀이란 뜻이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부처님의 화신불인 관자재보살(관음보살)  반야바라밀다(深般若波羅密多)의 사상을 깊이 수행할 때오온(五蘊)이 모두 공(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고액(苦厄)과 고통을 넘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오온이란, 유형의 현상계와 물질을 총칭하는 색(), 감각작용을 뜻하는 수(), 지각(知覺)을 뜻하는 상(), 행위를 뜻하는 행(), 식별을 뜻하는 식(), 다섯가지를 말한다.

()은 무엇인가? 공은 우리 언어로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의 반대인 무()도 아니고, 실제 존재하는 실체에 반대되는 가공의 허상도 아니다. 불확실한 우리 오관(五官)에 포착되는 부정확한 것이 아니라,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떠난 실상이다프라톤의 '이데아' 비슷한 것이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불(舍利佛)이여, 깨닫고 보면, 물질 현상계인 색은 실상인 공과 다르지 않고, 반대로 실상인 공은 현상계인 색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적 현상이 곧 본질인 공이며, 공이 곧 물질적 현상이니라.

그러므로 중생의 마음에 새겨진 감각작용, 지각작용, 의지적 충동, 식별작용 같은 수상행식(受想行識)이 곧 여래(如來)의 마음에 새겨진 공()이요, 여래의 공()이 곧 깨닫지 못한 이의 색()과 같으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불이여, 이 우주(十方世界)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모든 존재와 현상과 법칙이 원래는 헛된 상이니, 이 모든 현상계는 관세음보살의 차원에서는, 새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죽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고깨끗한 것도 아니고증가하는 것도 아니고, 감소하여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부증불감(不增不減)이란 대목을 주목하자.

 사물의 본질은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는 질량불변의 법칙과 같다.

 불구부정(不垢不淨)은 선, , , 추 가치판단의 상대적 허무함을 말한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은 생사를 상대적 개념으로 해석하지 않고, 동일 개념으로 보고 있다

 

 *이 맥락에서 서산대사의 시도 그 뜻이 이해될 것이다.

生者一片浮雲起, 死者一片浮雲滅.

(태어남은 한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조각 뜬구름이 없어지는 것이다).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그러므로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떠난 실상의 세계인 공()에서는우리의 불확실한 오관에 포착되어오는 물질계의 모든 것은 없는 것이다육진(六塵)이라 불리는 눈, , , , , 의지 같은 감각 기능도 원래는 없고, 이 감각 기능을 통해서 들어오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사유작용 같은 육식(六識)도 원래 없다. 한마디로 우리의 불확실한 안계(眼界)나 의식계를 통해서 인식된 것은 다 오류요, 원래 없다는 것이다.

 

*신실재론(新實在論)

 여기서 칸트의 인식론(認識論) 버트란드 러셀의 신실재론(新實在論) 참고하자.

 이 세상에는 여러 대상들이 있는데 이러한 대상의 실존, 다시 말해 그것이 우리에게 지각되는 바대로 실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려고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태도를 '소박한 실재론'의 입장이라고 한다.

 '자연적 실재론(natural realism)'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은 인식의 감각적 단계를 인식과정 전체와 동일시하는 태도이다객관적 실재가 지각을 통해 완전히 우리에게 인식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소박한 실재론은 시간적, 공간적 규정과 감각적 성질까지도 객관적 사물의 구성요소로 본다. 그런 태도는 지각의 대상이 그 지각을 갖는 그 어떤 주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실재함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거론되는 '실재론'은 좀 더 정교한 이론적으로서, 이를 과학적 반성에 의해 도출되었다고 하여 '반성적 실재론'이라고도 한다.

 '과학적 실재론'은 상식적인 지각의 세계가 곧 실재의 세계라 보는 '소박한 실재론'의 견해를 비판한다. 실재와 지각이 다른 것으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색은 시각(視覺)에 나타나는 것처럼 존재하지 않고 에테르(ether)의 진동으로 비롯된 것이며, 소리 역시 색과 마찬가지로 주관적 감각에 불과하다맛이나 냄새도 객관적으로 우리의 밖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박한 실재론은 비록 상식에는 부합되지만, 과학을 통해 볼 때 많은 수정이 불가피함을 지적하고 있다. 과학적 실재론은 우리의 감각이나 지각과 상이한 에테르나 양자 등과 같은 것들이 실재한다. 이것들이 우리의 감각을 어떤 형태로든 자극하여 지각내용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공의 세계에서는 무명도 없고, 무명의 소멸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의 소멸도 없다.

 

*대승불교는 무명의 정의를 두 가지로 밝히고 있다.

하나는 일체법이 공()한 줄 모르고, 둘째는 마음의 본성이 불성(佛性)이며 진여(眞如)임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승의 중심사상이 공과 불성이므로, 무명의 문제도 공과 불성에 두고 설명을 한다. 공을 체달하지 못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이 부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이라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특징은 무명을 실체로 보지 않고 도리어 이를 불성과 진여의 한 작용으로 본다대승불교는 중생들에게 무명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지만 그 무명은 본래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은 부처님 마음과 똑같은 광명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대승에서는 연기설에 대해서도 무명으로 시작하는 연기설이 아닌 부처의 마음이라 할 수 있는 진여연기설을 따른다. 무명은 본래 진실하고 청정하고 밝고 변하지 않는 진여와 불성의 성질을 띠고 있으므로, 십이연기 또한 진여와 불성의 작용이라고 설한다.

 마치 물이 오염되어 흐리고 바람이 불어 파도가 치지만 물의 본래 성질은 맑고 고요한 것처럼(水不離波波不離水), 중생의 마음이 무명에 물들어 갖가지 번뇌가 일어난다 해도, 그 실상은 맑고 고요해서 부처의 마음과 같다는 것이다.

 12단계 인연연기(因緣緣起) 무명(無明), (), (), 명색(命色), 육입(六入), (), (), (), (), (), (), 노사(老死)를 말하는데, 이 모든 현상이 없으므로, 죽고 사는 현상을 생각하는 그 마음도 없다는 것이다.

 

無苦集滅道  

 

 사람은 태어나므로서 늙고 근심하고 병들고 슬퍼하고 죽게 되는데, 공의 세계에서는, 태어남으로 해서 생기는 사성제(四聖諦), 즉 고집멸도(苦集滅道)도 없다

 

*사성제는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도제(道諦)로 네 개로 구성되어 있다.

 고제(苦諦) ···(生老病死)4()와 원증회고(怨憎會苦) 애별리고(愛別離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 네 가지를 합해 8()라 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고요, 싫은 사람 만나고 함께 산다는 것이 고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거나 사별하는 것이 고요, 구하는데 얻지못하는 것이 고요오온성고는 앞의 일곱 가지를 개괄한 오온(五蘊)에 대한 자기 중심적인 집착 그것이 고라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괴로움(dukkha)이라는 것이 고성제이다.

 

집제(集諦) 집기(集起), 즉 사물이 모여 일어나기 쉬운 무명(無明)과 갈애(渴愛) 고의 원인으로 본다. 혹은 고통의 원인인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괴로움에는 원인(samudaya)이 있다는 것으로, 즐거움을 탐하고 추구하는 갈애, 살아남으려고 하는 갈애가 바로 그 원인이라고 하는 것이 집성제이다.

 

멸제(滅諦) 깨달음의 목표, 곧 이상향인 열반(涅槃)의 세계를 말한다번뇌를 일으키는 갈애를 남김없이 멸함으로써 청정무구(淸淨無垢)한 해탈을 얻는다고 말한다괴로움은 완전히 멸할 수 있으며 괴로움을 없앤 상태가 해탈이라고 본다.

 

도제(道諦) 이상향 열반에 도달하는 수행방법으로 팔정도(八正道)라는 여덟가지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른 수단으로 목숨을 유지하고(正命), 바르게 노력하고(正精進), 바른 신념을 가지며(正念), 바르게 마음을 안정시키는(正定) 수행법이다.

 

*참고; 절에 가서 사성제 설법을 듣고 부분만 불교의 진리라고 오해하는 보살들이 많다. 반야심경의 이 사성제도 없다는 無苦集滅道의 본뜻을 몰라 그런 것이다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 

 

 일체개공(一切皆空),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니, 안다고 생각하는 지혜도 없으며, 버리고 얻는다는 범부(凡夫) 취사지심(取捨之心)도 없나니, 그래서 잃고 얻는 것이 없는 고로,

 

菩提薩陀 依般若波羅密多 故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제법(諸法)을 다 깨친 청정무구한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공포와 두려움이 없고뒤바뀐 잘못된 생각, 잘못된 몽상을 멀리 떠나 마침내 구경 열반에 들었으며,  

三世諸佛依般若波羅密多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전생, 현생, 내생의 모든 부처님도 오온이 다 공하다는 도리, 즉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의 반야지(般若智= 완전한 깨달음)를 얻었느니라.

故知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고로, 이 반야바라밀다경은, 뜻이나 말로 전달할 수 없는 큰 신비한 주문(呪文, 眞言, 陀羅尼)이며, 우주를 밝힐 큰 밝은 주문이며, 이보다 더 뛰어난 것을 생각할 수 없고, 이와 견줄 수 있는 동격의 진언을 생각할 수 없는 최상의 주문이며

 

*참고불교의 주문은 부적과 주문으로 액을 때우는 속된 사술(詐術)과 다르다. 불교의 주문을 그런데 쓰는 것은, 마치 무식한 목수가 금도끼로 장작을 패는 것과 같다.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능히 일체의 고액을 소멸시키며 진실하여 거짓이 없나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설하시며 즉석에서 가로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우리 함께 피안으로 가자) 菩提(깨달음이여) 娑婆訶(영원하여라) 라고 하셨다.

 

*마지막 '아제아제 바라아제....' 부분은 범어(梵語)의 비밀신주(秘密神呪원음을 한문으로 옮긴 것이다

 

 

열자(列子)

도끼 도둑의 걸음걸이

 

  이 책은 중국 고대의 사상과 우화가 무진장하게 묻힌 책이다열자의 본명은 열어구(列禦寇)라 하지만, 실재했던 인물인지 가공 인물인지 량지차오(梁啓超)나 후스(胡適) 같은 학자도 결론 내리지 못했다.

실재 인물이 아니라는 설이 유력하지만열자는 노자의 제자이며, 장자의 선배로서, BC 400년 경에 정()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열자는 '천서(天瑞)', '황제(黃帝)', '주목왕(周穆王)', '중니(仲尼)', '탕문(湯問)', '역명(力命)', '양주(楊朱)', '설부(說符)' 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끼 도둑의 걸음걸이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렸다. 그후 그는 이웃집 아들이 훔쳐간 것이라고 단정했다그는 이웃집 아들이 걸음 걷는 모습만 보아도 도끼를 훔쳐간 도둑의 걸음걸이로 보였다. 그 얼굴을 보아도 도끼를 훔쳐간 도둑의 얼굴 같았다. 그가 말하는 모양을 보아도 도끼를 훔쳐간 도둑의 말투였다. 어떻든 그 이웃집 아들의 동작과 태도가 어느 하나라도 도끼를 훔쳐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얼마 안되어도끼를 잃어버린 사람이 산골짜기에서 뜻밖에도 그 잃어버린 도끼를 찾았다.

 이튿날 그 이웃집 아들의 동작과 태도는 암만 보아도 도둑질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설부편(說符篇)

 

 *이를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라고 한다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있지도 않은 귀신이 나오듯이 느껴진다.

 

 기우(杞憂)

 

 ()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져 내리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한 사람이,
'여보게, 하늘이란 공기가 가득 쌓인 것이야하늘이 무너질 염려는 없다네.'

하고 타일렀다. 그러자 그 남자는,
'공기가 쌓인 것이 하늘이라고? 그러면 해나 달, 별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고 물었다. 그래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자,

'그럼 땅이 무너지면 어떡하나?'

하고 물었다.

'땅이란 흙이 잔뜩 쌓인 것이야그것이 왜 무너지겠나?'

 그러자 남자는 걱정거리가 없어졌다고 몹시 기뻐했다.

 장려자(長廬子)라는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웃었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참으로 엉뚱한 일이지만, 절대로 안 무너질 것이라는 말도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다. 꼴을 갖춘 것은 모두 무너지는 자연의 현실로 미루어 보건대, 하늘과 땅 또한 반드시 무너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그 말을 듣고 열자가 말했다.
 '하늘과 땅이 무너질 것이라 말하는 것도 잘못이고, 무너질 리 없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무너질지 안 무너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사람이란 살아서는 죽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서는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과거에서는 미래를 모르고 미래에서는 과거를 모른다. 그러할진대 하늘과 땅이 무너지느냐 안 무너지느냐 그런 문제에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 천서편(天瑞篇)

 

 우공이산(愚公移山)

 

  옛날 북산(北山)에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산이 마주 보이는 곳에 살았다. 그의 집은 남쪽이 산으로 막혀 있어 나들이를 할 때 멀리 돌아가야 했다. 그래 어느 날 우공은 가족을 모아 놓고 의논했다.
'우리가 힘을 모아 저 산을 한번 옮겨 보지 않겠느냐? 그러면 곧장 갈 수 있을 것인데?'

 그 말에 다들 찬성이라 우공은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일을 시작했다.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에 담아 발해 끝으로 옮겼는데, 워낙 멀어서 한 번 갔다 오는 데 반년이나 걸렸다.

 하곡(河曲)의 지수(智叟)가 웃으며 말렸다.
 '정말 어리석은 짓을 하는구먼.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몸으로 산모퉁이 하나 무너뜨리지 못할 것인데, 그 많은 흙과 돌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에 우공이 말했다.
 '자네는 정말 앞뒤가 꽉 막혔어내가 죽으면 아들이 있지 않은가. 아들은 다시 손자를 낳을 테고, 손자는 다시 아들을 낳을 것이 아닌가. 그 아들이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아들에게도 손자가 생길 것인즉, 자손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야. 그러나 산은 더 자라지 못할 터이니, 어찌 옮길 수 없단 말인가?'

 산신이 이 말을 듣고, 만일 우공이 작업을 계속하면 큰일이라 생각했다. 천제에게 보고하자, 천제는 그 말에 감동하고 말았다과아씨(夸蛾氏, 전설상의 巨人族)의 두 아들에게 지시하여, 두 산을 하나는 삭동(朔東), 하나는 옹남(雍南)에 내려놓게 했다. 산을 옮긴 것이다.

 이때부터 기주의 남쪽과 한수 이북에는 조그만 언덕조차 하나 없게 되었다. 탕문편(湯問篇)

 

*마오쩌둥도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고 한다. 이 산의 실제 중국 동쪽에 있는 태행산(太行山)이다. 태행산은 하나의 산이 아니라 거대한 산맥이다. 하북성산서성산동성하남성에 걸쳐있고중국의 10대 협곡이다한겨울에도 도화꽃이 핀다는 도화곡(桃花谷)과 당나라 때 왕이 난을 피해 숨어 살았다는 왕상암(王相岩)이 있다.

 

 삼신산(三神山)

 

 발해의 동쪽, 몇 억만 리에 커다란 골짜기가 있다골짜기는 밑바닥 없는 골짜기로 한없이 깊어서 귀허(歸墟)라 부르는데, 천상계의 모든 물, 은하수 흐름도 전부 이 골짜기로 쏟아지는데, 수량은 조금도 늘거나 줄거나 하지 않았다.

 골짜기 속에 다섯 개 산이 있어서 대여(岱輿), 원교(員嶠), 방장(方丈), 영주(瀛洲), 봉래(蓬萊)라고 한다산의 주위는 3만리나 되고산과 산의 사이는 7만 리나 떨어져 있다.

 ()나무가 자라고 과실은 맛이 있으며, 그것을 먹으면 사람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거기 사는 자는 모두 선인(仙人)으로, 낮이건 밤이건 산에서 산으로 비행하며 왔다 갔다 하였다
 다섯 산은 뿌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늘 물결 따라 솟아났다가 내려갔다가 하면서 떠돌아서, 잠시도 가만 있지 않았다. 선인들은 이를 천제에게 호소하자, 천제는 북극을 관장하는 신인 우강(禺彊)에게 명하여 커다란 거북 열 다섯 마리가 머리를 들어 그 산들을 머리 위에 실어 산이 한 장소에 멈추게 되었다
 그후 용백(龍伯)의 거인이이곳에 와서 낚싯줄 드리워서 여섯 마리의 거북을 낚아 꿰어서 전부 메고는 자기 나라로 가서 거북의 껍데기를 태워서 점을 쳤다. 이에 대여 원교 두 산은 북쪽 끝으로 흘러가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다. 이것을 안 천제는 화를 내어, 용백의 영토를 축소시켜 좁게 만들고, 또 용백의 백성들은 키를 줄여서 작게 만들었다. 탕문편(湯問篇)

 

* 신화 같은 이야기지만 인간보다 뛰어난 성인, 성인보다 뛰어난 신령, 신령을 초월한 자연에 대해 논하면서 인간의 좁은 지식과 고착된 상식과 편향된 시각을 경계하였다
 

 싸움 닭 기르는 법 

 

 기성자(紀省子) 선왕(宣王)을 위하여 투계(鬪鷄)를 길렀다. 닭을 훈련한지 열흘이 지나자 임금이 물었다

'그만하면 싸움을 붙일 수 있겠는가?'

'아직 안됩니다. 그 놈이 지금 아무 실력이 없이 허세(虛勢)만 부리고 있습니다.' 

열흘 후에 임금이 또 물었다

'지금은 어떠하냐?'

'아직 안되옵니다. 그 놈이 지금 다른 닭 소리만 나면 따라 울고, 그림자만 보아도 거기를 향합니다.' 

그 후에 임금이 또 물었다

'지금 쯤은 어떠하냐?'

'아직 안됩니다상대를 질투하고반드시 제가 이긴다고 기세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 후에 임금이 또 물었다

'이젠 그만큼 훈련을 시켰으면 됐겠지?'

'. 아직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이젠 괜찮을 것 같습니다대드는 닭이 있더라도 안색을 변치 않습니다. 바라보면 꼭 나무로 조각한 닭(木鷄) 같습니다덕기(德氣)가 아주 완전합니다. 다른 닭들이 감히 응전(應戰)을 못하고 도리어 달아나 버립니다.' 황제편(黃帝篇)                           

 

 호랑이 기르는 법

 (선왕(宣王)의 짐승을 기르는 사람 중 양앙(梁鴦)이란 사람이 있었다. 호랑이, 승냥이, , 독수리 같은 짐승도 부드럽게 순종하게 했다.
 왕이 모구원(毛丘園)에게 그것을 전수케 하려고 보냈더니그가 호랑이 기르는 법을 설명했다.

'순종하면 기뻐하고 거역하면 분노함이 혈기를 가진 동물의 성품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기쁨과 분노를 망령되이 표현하겠습니까? 거역하면 범할 뿐 입니다.

 호랑이를 먹임에 감히 산 동물을 주지 않음은 그가 짐승을 죽일 때 노하기 때문입니다완전한 동물을 주지 않음은 그가 짐승을 찢을 때 노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배고프게 배부르게 하여 그 노한 마음을 관리 합니다. 호랑이는 사람과 다른 종류지만자기에게  잘해주면 순종하고 거역하면 죽입니다내가 어찌 감히 호랑이를 거역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겠습니까?

 내가 짐승의 마음을 거역하지 않으면 조수(鳥獸)도 나를 동료 보듯 합니다. 그래 내 동산에서 놀면서 높은 숲과 광대한 못을 생각지 않습니다. 내 뜰에서 잠 자면서 깊은 산과 그윽한 골짜기를 원하지 않습니다이치가 그러한 것입니다. 황제편(黃帝篇)  

 

 매미 잡는 법

 

 공자가 초나라에 갈 때, 숲 속의 한 꼽추가 매미 잡기를 땅에서 줍듯이 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 공자가,

'그대는 방도가 있습니까?'

 물으니, 꼽추가,

'방도가 있지요매미 채 끝에 공을 두 개 올려 떨어지지 않으면 매미를 놓침이 아주 적습니다. 공을 세 개 올려 떨어트리지 않으면 실수함이 열 번 중 한 번 입니다다섯 개 쌓아올려 떨어지지 않으면 매미를 그냥 땅에서 줍듯이 합니다.
 또 내가 조용히 서 있으면 마치 나무 그루터기 같고매미를 잡을 때는 마치 마른 나무 가지처럼 조용히 팔을 뻗습니다. 그때 나는 오직 매미 날개만을 집중 합니다오직 매미 날개만 집중하니 어찌 잡지 못하겠습니까?'
 이에 공자가 제자들을 보고 

'뜻을 씀에 오로지 하고 정신을 한 군데로 모았으니,  꼽추를 장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 했다. 황제편(黃帝篇)

 

 잘난 여자


 양주(楊朱)가 송나라를 지나다 객사에 들렀다. 객사 주인에게 첩이 두 명인데 그 한 여자는 예쁘고, 한 여자는 못생겼다. 그런데 못생긴 여자는 귀한 대접을 받고 예쁜 여자는 천대받고 있다.
 양자가 그 까닭을 묻자일하는 사람이 대답하길,

 '아름다운 여자는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겨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겠습니다못생긴 여자는 스스로 못생겼다고 여겨 그 추함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양자는,

'제자들아 이것을 기록하라. 현명함을 행하면서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랑하지 않는다면어찌 귀한 대접을 받지 않겠는가?' 황제편(黃帝篇)

 

  인재 구하는 법

 

 진나라 목공이 말을 잘 감별하던 백락을 불러놓고 말했다.

 '그대가 지금까지 좋은 말을 잘 골라주어 고마웠는데 이제 그대의 나이도 많이 늙었으니, 후계자가 있어야 하겠소. 그대를 대신할 만한 사람이 있겠소?' 

 이에 백락이 말했다.

 '보통 좋은 말 같으면 그 생긴 모습이나 골격을 보고서 알아낼 수 있지만, 천하의 명마는 형체나 골격이나 털빛만 가지고는 쉽게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말은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알 듯 모를 듯 긴가민가하고, 또 너무 빨리 달아나서 남긴 발자국조차 볼 수가 없으니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제 아들 녀석은 보통 좋은 말은 알아볼 수가 있지만 천하의 명마는 알아보지 못합니다제 친구  '구방고'가 있는데, 그가 말에 대해서 저보다 훨씬 많이 압니다.'

 목공은 그 말을 듣고 그를 만나서 말을 구해오라고 했다.

 그는 석 달만에 돌아와서,

 '발견했습니다. 그 말은 사구라는 곳에 있는 암말인데 털빛은 누런빛입니다.'

하였다.  

 목공은 곧 사람을 보내어 말을 보고오게 했더니보고 온 사람이,

 '암말이 아니고 숫말인데, 털빛도 누런빛이 아니고 검은 빛 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래 백락을 불러,

 '이번 일은 실패했소. 그대의 말을 듣고 말을 구해오라고 보냈는데, 그 사람 말이 말의 털빛이 누런지 검은지 조차 구별할 줄 모르고, 또 암말인지 숫말인지도 몰랐다니, 그런 사람이 어찌 말의 좋고 나쁜지를 알겠소?'

 하였다. 이에 백락이 깊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그 사람이 그런 경지에까지 도달했던가. 이것이 바로 저 같은 사람은 천만 명을 갖다 놓아도 그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방고 같은 사람은 말의 형체와 골격과 털빛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말의 기상을 봅니다. 그는 말의 정기를 보았고 그 형체를 잊어버렸으며, 말의 내면을 보았고 외면은 잊었으며, 말의 살펴보아야 할 것은 보았고 보지 않아도 될 점은 보지 않았습니다. 구방고 같은 사람은 말의 상을 보는 것보다 더 귀중한 그 무엇을 본 것 입니다.'

 

 돈에 눈이 어두우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옛날 제나라 사람 가운데 돈을 탐내는 사람이 있었다. 이른 새벽에 평상시와 같이 옷을 잘 차려입고 시장으로 갔다. 어느 금은방에 들어가서 금붙이를 훔쳐가지고 뺑소니를 쳤는데, 관리가 그를 뒤따라가 끝내는 잡히고 말았다. 관리가 그에게 물었다.

 '대낮에 사람도 많이 있고 한데, 어떻게 남의 금붙이를 훔칠 생각을 했는가?'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내가 금붙이를 훔칠 때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붙이만 눈에 보였습니다. 설부편(說付篇)

 *돈에 눈이 어두우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확금자불견인(攫金者不見人)'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묵자(墨子)

겸애란 무엇인가

 

 묵자(墨子)는 기원 전 480-390 사람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 끝머리 '맹자순경열전(孟子筍卿列傳)'에 의하면, '묵적(墨翟)은 송나라 대부(大夫)로 성()을 방위하는 기술이 뛰어났고, 절용(節用)을 주장하였다. 공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고도 하고, 혹은 공자보다 후세 사람이라고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양계초(梁啓超)는 묵자에 대해서, '그의 집안은 사회 하층계급인 공인(工人)이나 노동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묵자는 몸소 성을 방위하는데 필요한 기구 제조법에 능통하였고, 나무로 하늘을 나는 솔개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하였다.

 

묵자

 

 *묵자는 고죽국(孤竹國) 사람으로 동이족이라는 설도 있다. 고죽국은 고대 발해만(渤海灣) 북안(北岸) 산해관(山海關) 근처에 있던 나라로 군주는 묵태씨(墨胎氏)이다. 백이 숙제 역시 고죽국 군주의 자손이다. 수서(隋書) 배구전(裵矩傳)고려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이다.’ 하였다. 또 사고전서(四庫全書)의 명일통지(明一統志) 5 영평부(永平府)에 따르면, '고죽국은 상()나라였으며, 주나라 때는 유주(幽州),  북연 때는 평주(平州) 혹은 낙랑군(樂浪郡)이었다. 명나라에 와서 영평부(永平府)라 하였다오늘날 평주의 노룡에 조선성(朝鮮城)이 있었다' 하였다.

 

 묵자의 겸애설(兼愛說)은 한마디로 아무 조건 없이 모두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박애(博愛)는 신()과 이교도를 구별하고,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말라는 차별적 사랑이다인간적 좌절과 고통을 '사랑'으로 극복 승화시킨 점이 기독교 철학의 장점이긴 하지만, 묵자는 한차원 더 높은 피아의 구별 없는 '겸애'를 주창하였다

 신분적 인종적 차별을 살펴보자. 근래 이스람 국가와 기독교 국가간의 복수와 테러가 횡행하고 있다. 유대인과 예수의 조상은 이삭이고, 아랍인 마호메트의 조상은 이스마엘 이다.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수천년간 종교전쟁과 문명 충돌을 일으킨 것은 차별적 사랑에 기인한다

이런 의미에서 묵자의 겸애사상은 일견 단순한듯 하지만, 그 이론적 기초는 한 없이 깊다.

 

 겸애편(兼愛篇)

 

 일찍이 세상의 혼란이 어디서부터 생겨나고 있는가 살펴 보았는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생겨나고 있었다.

 임금과 신하가, 아버지와 자식이, 형과 아우가 각각 자기 자신만 사랑하고 상대방은 사랑하지 않고 소홀히 하며, 자신만의 이익을 도모하기 때문에 천하에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도적들은 그의 집안만을 사랑하고 다른 집안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집안의 물건을 훔치어 자기 집안을 이롭게 한다. 마찬가지로 대부들과 제후들도 자기만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지 않은 데서, 남의 나라를 공격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마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를 자신의 나라처럼 보거나, 다른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자신을 보는 것처럼 대하는 것이다.

 그러니 천하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무엇인가? 겸애하고 서로 사랑하는 일이다. 제후가 서로 사랑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대부가 서로 사랑하면 약탈하지 않으며,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잔혹하게 해치는 일이 사라진다.

 

이 일은 임금이 먼저 좋아하고 행한다면 백성들도 따라 올 수 있는 일이다. 임금의 영향력은 크다.

 옛날 초나라 영왕(靈王)은 선비들의 가는 허리를 좋아했다. 그러자 신하들은 모두 한 끼 밥만 먹고 허리를 조절했고, 숨을 크게 내쉰 다음에야 띠를 매고, 힘이 없어 담에 의지하고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이런 폐단은  무슨 까닭인가? 임금이 그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남을 비난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에 대한 대안(代案)이 있어야 한다. 만약 남을 비난하면서 대안이 없다면, 마치 불을 가지고 불을 끄려는 것 같아 옳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분별하는 것을 대신해야 한다.

 만약 여기 두 선비가 있는데, 한 사람은 분별을 주장하고 한 사람은 겸애를 주장한다고 하자. 분별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의 친구가 굶주리는 것을 보고도 먹을 것을 주지않고, 헐벗은 것을 보아도 옷을 주지않고, 병에 걸려도 돌보아 주지않고, ()을 당하더라도 장사지내 주지 않는다. 반면 겸애를 주장하는 사람은, 굶주린 친구를 먹여주고, 헐벗은 친구를 입혀주고, 병 든 친구를 간호해주고 상()을 당한 친구를 장사 지내 준다.

 감히 묻건대 누가 믿을 수 있는 친구일 것인가?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따라서 그를 사랑하게 되며,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은 남도 따라서 그를 이롭게 해준다. 남을 미워하거나 해치면 남도 나를 미워하고 해치게 된다.

 

 친사편(親士篇 

 

 임금에게는 반드시 뜻을 거스르는 신하가 있고, 웃사람에게는 반드시 이론을 따져서 논하는 부하가 있다. 그래서 논쟁이 진지하게 벌어지고 서로 훈계하고 따지므로, 그 임금과 웃사람은 오래도록 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

 그런데 신하가 그 직위를 잃을까봐 말을 하지 않고 벙어리 노릇 하며 입을 다문다면, 백성들의 고통은 위에 알려지지않아 백성들 마음 속에 원한이 맺히게 될 것이다. 아첨하는 자들만 곁에 있어 좋은 논의가 막혀버린다면, 곧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은 천하의 어진 선비를 곁에 두지 못했기에 천하를 잃고 죽지 않았던가?

 좋은 활은 당기긴 어렵지만 높이 갈 수 있고 깊이 들어갈 수 있다(良弓難張). 좋은 말은 타기 어렵지만 무거운 것을 싣고 멀리 갈 수 있다. 훌륭한 인재는 부리기는 어렵지만, 임금을 이끌어 존귀함을 드러낼 수 있다.

 

 장강(長江)이나 황하(黃河)는 작은 시냇물이 자기에게 가득 차도록 흘러드는 것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커질 수가 있는 것이다. 성인은 일을 함에 사양함이 있고, 물건에 대하여 어긋나는 것이 없으므로 천하의 그릇이 될 수 있다장강이나 황하 물은 한 근원에서 나온 물이 아니며. 갖옷은 여우 한마리에서 나온 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반드시 자기와 뜻이나 방식이 같은 사람만 취하여 쓰겠는가? 이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큰 임금의 도()가 아닌 것이다.

 

 수신편(修身篇)

 

 군자는 전쟁을 함에 있어서 포진법(布陣法)이 있지만 용기를 근본으로 삼는다. ()을 치룸에 예의가 있다고는 하지만 슬품을 근본으로 삼는다. 선비에게 학문이 있다고 하지만 실천을 근본으로 삼는다.

 근본이 안정되지 않는 사람이면서 말단적인 결과를 풍성히 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가까운 사람과 친하지 않으면서 먼 사람들과 가까이 하려 애써서는 안된다. 친척들이 따르지 않는다면 밖의 사람들과 사귀려고 애써서는 안된다. 하는 일이 밑도 끝도 없이 정리가 안되어 있는 사람이 많은 일을 하려고 애써도 안된다.

 그러므로 옛 임금들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반드시 가까운 것을 잘 살핀 다음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하였던 것이다. 군자란 가까운 것을 잘 살피고 가까운 것부터 닦아나가는 사람이며, 수양이 되지 않은 행동이나 비난 받을 행동을 보고, 반드시 자신도 반성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이다.

 

 절용편(節用篇)

 

 성인이 정치를하면, 천하의 부()가 배로 늘어난다. 그가 부()를 배로 늘리는 것은, 전쟁을 해서 남의 땅을 뺏음으로써 늘리는 것이 아니다. 쓸데없는 비용을 없앰으로써 부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성인이 의복을 입는 목적은 무엇인가? 겨울에는 추위를 막고 여름에는 더위를 막을 뿐이다. 화려하기만 하고 불편한 것은 피한다. 성인이 집은 무엇을 위해 지었는가? 겨울에는 바람과 추위를 막고, 여름에는 더위와 비를 막으며, 도적을 막기 위해 튼튼히 짓는다. 화려하기만 하고 불필요한 것은 없애버린다.

 그러므로 재물의 사용에 낭비가 없었고, 백성들의 생활은 수고롭지 않았으며, 그로 인한 이익이 더 많았던 것이다. 이것이 성왕(聖王)의 법()인 것이다.

 옛날 성왕들은 먹고 마시는 법을 제정하여 선언하였다. 배고품을 채우고 기운을 차리며, 팔다리를 강하게 하고, 귀와 눈을 분명하고 밝게 하기에 충분한 정도에서 그치고다섯 가지 맛의 조화와 향기로움의 조화를 원하지 않았고, 먼 나라의 진기하고 특이한 물건을 쓰지 않았다.

 옛날 요() 임금이 곡식을 아낀 정도로 말하면, 두 종류의 국을 들지 않았고, 고기반찬을 두 가지씩 장만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토기(土器)에 밥과 국을 담았다. 성왕들은 쓸데없이 몸을 굽혔다 폈다하면서 인사차 왔다갔다 하며 형식적인 예()를 채리지 않았다.

 그런데 유가(儒家)에서는 장례절차를 논의할 때 성대히 지냄을 주장한다. ()과 덧관을 반드시 여러 겹으로 만들고, 매장할 땅을 크게 파며, 사자(死者)의 옷과 이불도 많이 하며, 신분에 따라서 금()과 옥(), 수레와 말, 솥과 북, 창과 칼도 곁들여 많이 매장해야 만족한다

 복상(服喪, 상복 입는) 하는 법은 어떤가? ()을 함에 소리내어 흐느끼는 방법이 보통과 다르며, 거친 삼베옷과 거친 삼베띠를 머리와 허리에 두르고 눈물을 흘리며, 움막에 거처하면서 거적자리 위에서 흙덩이를 베고 잔다. 억지로 먹지 않고 굶주리며, 얇은 옷을 입고 추위에 떨어 얼굴이 앙상하게 야위고 얼굴빛이 검어지며, 귀와 눈은 흐릿하며, 손발은 쓰지 못하여 반드시 부축해야 일어서고, 지팡이를 짚어야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3년 동안 복상해야 공경히 지낸 것이라 한다.

 이것은 그동안 모아놓은 재물을 한꺼번에 묻어버린 셈이며, 가족이 3년 동안 일을 금지당한 꼴이다. 이렇게 하고서도 부유해지기를 바랄 것인가? 이것은 가난을 벗게하고, 위태로운 시국을 안정시켜 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짊()도 아니고, 의로움()도 아니며, 효자로서 할 일도 아니며, 남을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다.

 마땅히 장사 지내는 관은 2-3치로 하고, 옷과 이불은 세 벌로 하고, 매장할 때 아래로는 지하수에 닿지 않도록 깊이 묻지 않고, 땅 위로 냄새가 샐 정도로 얕게 묻지 않으며, 봉분(封墳)은 세번 간 밭이랑 정도로 만들어 그 장소를 다시 찾은 표지가 될 정도면 충분하다. 곡을 하며 상을 치르되 돌아와서는 생산에 종사하여야 하고, 제사는 적절히 지내어 어버이에 효성을 다함이 좋다.

 

 한비자(韓非子)

 진시황을 감탄시킨 문장가

 

 진시황은 6국을 통합하려는 자신의 숙원을 위해 인재를 적극 모으고 있었다. 그는 한비자의 저술인 <고분(孤憤)><오두(五蠹)>를 읽고는 깜짝 놀랐다이 책을 쓴 사람은 틀림없이 기재일 것이며 자신의 통일대업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이사(李斯)에게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라고 했다.

 초나라 출신이던 이사는 한비자와 순자(筍子)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그가 한비자를 소개했고진시황은 한비자를 얻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하였다그러나 이사는 한비자가 말을 더듬었지만, 자신보다 재주가 뛰어난 것을 시기하여, 한비자가 한나라를 위해서 진나라를 배반할거라고 참언을 하여, 한비자는 옥에 갇히게 하여 한비자가 자살했는데나중에 진시황이 후회하고 용서해주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한비자는 한나라 왕족 출신으로 노자의 무위자연과 순자의 성악설을 배우고, 법가(法家)의 학설을 대성시켰다. 그의 세난편(說難篇), 말로써 남을 설득하는 화술(話術)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지적한 불후의 문장이다. 여기 그의 고분(孤憤)과 오두(五蠹) 두 편과 세난편(說難篇)을 소개한다.

 

 세난편(說難篇)

 

 상대가 명예나 지조를 동경하여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인데, 막대한 이익을 들어 설득하려 하면, 그는 오히려 이쪽을 지조가 없는 사람이며 너절하고 비천한 사람이라 하여 멀리할 것이다. 상대가 막대한 이익을 동경하는 사람인데, 명예나 지조를 가지고 설득하려 하면, 그는 이쪽을 욕심이 적고 세상 일에 어두운 사람이라 하여 멀리 하려 할 것이다.

 또 설득하려는 상대가 속으로는 이익을 동경하면서 겉으로는 명예를 내세우는 경우에 그를 명예로써 설득하려 하면, 그는 겉으로는 이쪽을 받아드리지만 실제로는 그를 멀리 할 것이며, 그를 이익으로 설득하려 하면, 속으로는 이쪽을 받아드리면서 겉으로는 이쪽을 버릴 것이다.

 또 말이 상대방의 뜻에 어김없이 멋지게 줄줄 나오면, 이쪽을 겉만 번드레하고 실속이 없다고 생각하며, 말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면, 곧 졸열하고 조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비유를 들어가며 말을 하면, 헛되이 필요없는 말을 한다고 여기고, 반대로 미묘한 뜻을 총괄적으로 요약하고 불필요한 말을 생략하면, 이쪽을 부족하고 약하다고 여기기 쉽다. 말을 빨리 노골적으로 하면서 친근하면, 불손하고 건방지다 하며, 말씨가 귀에 거슬리지 않고 나긋나긋 하면 아첨이 아닌가 의심한다.

 

 용이란 짐승은 잘 친해지기만 하면 올라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 아래에 직경 한 자쯤 되는 꺼꾸로 박힌 역린(逆鱗)이 있어 만약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이고 만다. 임금 또한 역린이 있다. 유세하는 사람이 임금의 역린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에 부자가 있었다. 비가 와서 담이 무너졌다. 그 아들이 말하기를 '담을 새로 쌓지 않으면 반드시 도둑이 들 것입니다.' 하였고, 이웃집 노인도 똑같은 말을 했다. 밤이 되자 과연 도둑이 들어 부자는 재물을 크게 잃었다. 그러자 부자는 자신의 아들은 매우 지혜롭다고 여겼지만 이웃집 노인은 의심했다.

 똑같은 말을 하고도 한 사람은 칭찬을 받고 한 사람은 의심을 받았다. 그러니 말은 무엇을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사용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나라 임금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있었다. 왕의 총애를 믿고 허가를 받았노라고 거짓말을 하고 어머님의 병문안에 왕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나라에는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타는 사람은 다리를 자르게 하는 형벌이 있었다. 그런데 뒤에 이 말을 들은 왕은 '효자로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 다리가 잘리는 죄도 잊었도다'면서 칭찬을 했다. 한 번은 왕과 미자하가 놀던 과수원에서 미자하가 자기가 먹던 복숭아가 맛있는지라 먹다가 말고 남은 복숭아를 임금께 바치자, 왕은 '실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구나. 자기의 입맛을 잃고서 나에게 먹여 주는도다' 하면서 칭찬을 했다.

 그런데 미자하가 나이 들어 볼품이 없어지자 총애를 잃고 미움을 받게 되었다. 이때 왕은 '이 녀석은 거짓말을 해서 내 수레를 탔으며,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나에게 먹인 일도 있도다' 하면서 벌을 내렸다.

 본시 미자하의 행동은 변함이 없지만, 그런데도 전엔 어질다고 여겼던 것이 뒤에 가서 죄가 된 것은, 임금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 이다.

 

 고분편(孤憤篇)

 

 고분(孤憤)'고독한 분노'라는 뜻이다. 개혁가가 끝내는 좌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파하고 있다.

'올바른 선비는 반드시 멀리 보고 밝게 살핀다. 밝게 살피지 않으면 사사로운 책략을 밝혀낼 수 없다. 올바른 선비는 반드시 강하고 굳세며 곧다. 굳세고 곧지 아니하면 간악한 이들을 바로잡을 수 없다.

 반면 권세가는 임금의 명령이 없어도 멋대로 일을 처리하고, 법을 어그러뜨리면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며, 나라에 해를 끼치면서 자기 집안 일을 도모한다

 

 그런데 올바른 선비는 임용되면 권세가들의 음흉한 실태를 밝히려 하고, 간악한 행동을 바로 잡으려 한다. 이것이 선비와 권세가 양자가 병립할 수 없고 원수가 되는 까닭이다. 권세가가 선비를 추천하지 않는 이유다.

 한편 권세가는 오래 동안 임금을 사귀어 왔으므로 임금과 싫어하는 일 좋아하는 일이 비슷하다임금의 비위를 잘 맞추어 임금에게 신임과 사랑을 못받는 일이 드물다이웃 제후들은 그에게 기대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를 칭송하고, 관리와 백성들도 그에게 기대지 않으면 업적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그를 칭송한다. 학자들도 그에 기대지 않으면 봉록과 대우가 낮아지기 때문에 그를 선전하고, 임금의 측근도 마찬가지다. 그의 나쁜 일을 숨겨준다. 이 네가지 부류가 권세가를 옹호하는 자들 이다.

 반면 올바른 선비는 임금과의 친분도 없고 혜택도 없으면서 임금의 비뚤어지고 편벽한 마음을 바로 잡으려 하니, 이는 임금의 마음과 반대되는 것이다. 더구나 세력이 비천하고 지지하는 정치 패거리도 없고 외롭고 유별나기만 하다.

 따라서 임금과 먼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임금의 사랑을 받는 자들과 다투면 결코 이길 수 없다. 임금 뜻에 반대하는 선비가 임금 뜻에 맞장구치는 사람과 다투니 이기지 못한다새로 온 사람이 오래 사귄 사람과 다투니 이기지 못한다. 낮은 벼슬이 높은 벼슬과 다투니 이기지 못한다한 사람의 입으로 온 나라 사람들의 입과 다투니 이길 수 없다.

 올바른 선비는 이런 이치로 인해 몇 해가 지나도 임금을 한번도 만나지 못한다. 반면 권세가는 아침저녁으로 임금 앞에서 홀로 이야기를 나눈다. 군주가 이런 현명치 못한 자들과 선비를 논한다면, 이것은 현명치 못한 자와 더불어 현명한 자를 논하는 것이다. 그러니 올바른 선비가 나갈 길이 어디 있으며임금은 어느 때  깨달을 수 있겠는가?

 

 오두편(五蠹篇)

 

 '오두(五蠹)'란 다섯 마리 해충이라는 뜻이다한비자는 나라를 좀먹는 다섯 마리 해충과 같은 부류의 인간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첫째는 학자이다. 학자는 서적을 쌓아놓고 변론을 일삼으며 제자를 모아놓고 학문을 닦고 논설을 편다. 선왕(先王)의 도와 인의(仁義)를 말하고용모와 의복을 꾸며서 변설을 그럴듯하게 하며 법을 의심하게 하고 임금의 마음을 흐리게 한다

 ()나라 사람 중에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풀숲에서 갑자기 한 마리의 토끼가 뛰어나오다가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었다. 농부가 이것을 보고 그 후부터 일도 하지 않으며 매일같이 그루터기 옆에 앉아서 토끼가 뛰어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 밭은 황폐해져 쑥대밭이 되고 말아 농부는 온 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 이 수주대토(守株待兎) 고사는 언제까지나 낡은 습관에 묶여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학자들을 비꼬고 있다학자 중에는 옛날 정치가 이상적이라 하여 낡은 제도로 돌아갈 것만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다.

 

 둘째언담자(言談者)와 세객(說客) 이다. 거짓으로 외력을 빌어 사기(詐欺)치고 제 욕심 채우니사직에 이익이 않된다

셋째, 칼 든 대검자(帶劍者)로서 이른바 협객(俠客)인데그들은  무리를 지어 조직을 만들어 이름을 휘날리고 국법을 범한다

넷째근어자(近御者)로서 임금 측근(側近) 이다. 뇌물로 축재하며 권세가 청만 들어주며, 수고하는 사람들의 노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섯째, 상공인(商工之民)이다. 이들은 사치품을 사 모았다가 때를 보아 폭리를 얻고, 농민이 애써 얻는 이익을 힘들이지 않고 뺏아간다

 이상 다섯 버러지를 인민이나 군주가 제거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 길러내지 못하면파망지국(破亡之國)이 된다. 소멸 되어 없어질 조정이라 해도 괴이한 것이 아니다.

 

 

갈홍(葛洪) 포박자(抱朴子)

신선이란 무엇인가?

 

 요즘 구구팔팔이란 말이 유행한다. 99 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것이다. 이 참에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선사상을 한번 알아보자.

 일찌기 팔선(八仙)이 있었다종리권(鍾離權) 여동빈(呂洞賓) 장과노(張果老) 한상자(韓湘子) 이철괴(李鐵拐) 조국구(曹國舅) 남채화(藍采和) 하선고(何仙姑)가 그들이다노자(老子)도 신선이라 한다. 마고선녀(麻姑仙女) 하마선인(蝦蟆仙人) 동방삭(東方朔) 왕자진(王子晋) 서왕모(西王母)도 신선이라 불리웠다

 서양도 영생불사를 원했던 것 같다.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된 '사자(死者)의 서()', '나는 현재이며, 과거이며, 또한 미래이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탄생을 거듭할 때마다 나는 더욱 젊고 활기차게 변해간다'고 적혀 있다

사람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불로장생을 원한다.

 

  포박자의 저자 갈홍(葛洪)은 동진(東晉때 사람으로 남경(南京) 근처 단양(丹陽) 사람이다그의 호 '포박자(抱朴子)'는 노자(老子)견소포박(見素抱樸)’에서 따온 것이다. '있는 그대로 순박한 것을 껴안는다'는 뜻이다

갈홍

                                                                           

 갈홍은 좌원방(左元放)의 제자다. 좌원방이 어느 날 천주산(天株山)에서 신인(神人)으로부터 금단(金丹)에 관한 경전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연회에서 조조가 송강의 농어회가 없다고 아쉬워하자시종에게 구리로 만든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부어 가져오도록 하고는 나무젓가락에 실을 달아 낚싯대로 삼고 세숫대야 속에서 싱싱한 농어를 낚아올렸다고 한다또 조조가 농어는 사천의 생강으로 요리해야 제 맛이 난다고 말하자잠시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축지법을 써서 사천의 생강을 구해왔다고 한다

 좌원방은 갈홍의 종조(從祖갈선공(葛仙公)한테서 '태청단경(太淸丹經)' '구정단경(九鼎丹經)' '금액단경(金液丹經)'을 받았다좌원방의 제자가 정은(鄭隱)이고, 갈홍은 정은의 제자다.

 갈홍은 81세에 신선이 되어 관 속에 지팡이와 의복만 남겨두고 떠났다 한다.

 

포박자(抱朴子)

신선이란 무엇인가?

 

포박자의 주내용은 양생법과 환단(還丹) 금액(金液)을 만드는 금단(金丹) 제조법이다

 선인이 되고 싶으면 다만 그 지극히 중요한 골자만 터득하면 된다. 골자라고 하는 것은 정()을 아낄 것, ()를 온 몸에 돌게 할 것, 금단(金丹)의 선약(仙藥)을 복용할 것 등으로 충분하다. 그 밖의 많은 술()을 닦을 필요는 없다금단(金丹)의 선약(仙藥)을 복용하고, 생식의 근원인 정()을 소모하지 않고 뇌로 돌리고태식(胎息) 호홉법을 행하면선인(仙人)이 된다.

 

 학과 거북은 천 년을 살고, 두꺼비는 3천 년, 기린은 2천 년을 산다. 양자강과 회하(淮河) 사이에 사는 어느 사람이 어렸을 때, 거북으로 침대의 발을 괴었다. 그 뒤에 그 사람은 늙어서 죽고, 가족이 침대를 옮기다가 그때까지 거북이 살아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동안 거북이가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살았다면 거북이 수명이 천년이라도해도 이상할 것이 아니다. 선도의 경전에 거북이 호홉법을 흉내낸 도인술(導引術)을 설하여 놓은 것도 당연한 것이다

 

 누가 '신선(神仙)이 과연 존재하느냐'고 묻자 갈홍은 이렇게 대답했다.

 '신선에 대한 이야기는 갈대 대롱구멍으로 하늘을 엿보는 것처럼, 한 발 두레박으로 백 길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질문이다선도의 경전에 세 종류의 신선이 있다. 최상의 신선은 육신 그대로 하늘로 오르는 천선(天仙)이다. 그 다음은 명산에서 노니는 지선(地仙), 세번째는 죽은 뒤에 껍질을 벗고 떠나는 시해선(尸解仙)이다.' 

 

동방삭과 팽조와 귀곡자

 

 '선도를 얻은 사람은 드물고 세상 사람들은 숨어있는 선인을 모른다선인들은 고위고관을 맘에 두지 않고, 깨끗한 지조를 지킨다기린은 집 지키는 개 노릇은 하지 않는다. 봉황은 아침을 알리는 닭 노릇은 하지 않는다. 몸과 이름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 최상이지만, 이름을 버리고 은거하여 자유를 누리는 것을 옛사람은 옳다고 하였다.

 그들은 원기가 헛되이 흩어지지 않도록 인간 세상에 먼 곳에 살고, 높고 험한 산꼭대기를 큰 다락으로 삼고, 푸른 녹음을 휘장 삼고연꽃 이슬을 삼키고하늘에 마음을 씻어낸다명산에서 자기 그림자와 메아리를 유일한 벗으로 삼고, 안으로는 형태없는 마음의 세계를 주시하고, 밖으로는 정적 속에서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다. 이런 사람은 천년에 한 사람 있을까 말까 이다.

 그는 호홉으로 생명의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단전(丹田)에 북극성을 잡아매고, 해 달 별의 빛을 뇌 속에 끌어들이고, 영혼을 천상에 날려서 몸을 단련한다. 만월 또는 상현(上弦)의 달을 발 밑에 깔고, 일월(日月)의 정()과 함께 소요하고, 육정(六丁)의 신녀(神女)를 불러내고꽃을 먹고 그 이슬을 삼키어, 주림도 목마름도 없어지고 온갖 병이 생기지 않는다.'   

 

금단법

 

'포박자'란 책의 많은 부분은 '금단(金丹)'에 관한 것이다. 금단의 종류와 효용제조법이 설명되어 있다.

 

'금단(金丹)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금단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소 발자국에 괸 물에서 헤엄치는 장구벌레는 넓은 바다가 있는 것을 꿈에도 생각치 못한다. 과일 씨 속에 기는 작은 벌레는 세상이 그것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탕약(湯藥)이나 침구(針灸)도 믿지 않는데, 이보다 더 깊은 '불노(不老)의 술()'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당귀 작약은 복통을 낫게 하고, 독활(獨活)은 감기에 들으며, 창포와 건강(乾薑)은 신경통을 낫게 한다. 토사 종용은 정력 감퇴에 효력이 있고, 황련(黃蓮)은 소갈(消渴)에 듣고, 마황은 장질부사를 다스리며, 감초는 모든 중독을 다스린다.

 약은 상약, 중약, 하약으로 구별된다. 하약은 치료 예방약이고, 상약은 금단(金丹)이다선약은 보통 소소한 처방전과 크게 다르다. 금단 하등품도 초근목피 상등품 보다 낫다. 곤륜산을 보면 개미 탑이 얼마나 낮은 가를 알 것이다보통약은 일만 석()을 마신다해도 조금 이익이 있을 뿐이지, 사람을 늙지 않고 죽지 않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금단을 복용하면, 수명은 천지와 더불어 영원하게 되고, 구름에 오르고, ()에 멍에를 메우고 푸른 하늘을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다. '황제구정신단경(黃帝九鼎神丹經)'에 황제가 이 약을 복용하고 선인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하였다.

 

 ‘()’은 단사(丹砂= 수은과 유황 성분을 가진 주황색 광물)를 태워서 만든 것인데, 오래 구우면 구울수록 그 변화가 신묘하다.

 구단(九丹)이야말로 불로장생의 비결이다. 단화(丹華), 신부(神符), 신단(神丹), 환단(還丹), 이단(餌丹), 연단(鍊丹), 유단(柔丹), 복단(伏丹), 한단(寒丹) 아홉 종류가 있다.

 신부(神符)를 마시면 100 일만에 선인이 된다. 물 위나 불 위를 걸을 수 있다신단(神丹)을 마시면 칼로 베고 창으로 찔러도 튕겨버린다. 산천의 귀신이 모두 와서 모신다이단(餌丹)30일 복용하면 귀신이 호위를 하고 선녀가 앞을 선다유단(柔丹)을 딸기즙과 한 숟가락씩 100 일 마시면 90세 늙은이도 어린애를 낳게 할 수 있다한단(寒丹)100일 마시면 날개를 사용 않고 하늘을 날 수 있다

 

 금액(金液)은 태을(太乙)이 마시고 신선이 된 것이다. 구단(九丹)에 지지않는 효과가 있다.

금액을 입에 넣으면, 그 신체는 전부 금석(金石)으로 변한다. 황금과 단사를 넣은 뒤 밀봉해 두면 액체가 된다이런 금액을 제조하려면, 동으로 흐르는 냇가에 따로 정사(精舍)를 지어서 착수한다. 명산에 틀어박혀 오랜 시간 몸을 청결히 하고 각종 금기를 지켜야 한다.

 만일 이 세상을 떠나기 싫어 지선(地仙)이나 수선(水仙)이 되어 있고 싶은 사람은 백일재계만 하고 먹고, 승천하고 싶을 때에는 그에 앞서서 곡기(穀氣)를 끊고 그 뒤에 복용하면 된다.

 

 선약을 합성하는데 적합한 산은 태산, 화산, 항산, 숭산, 태백산, 종남산, 아미산이 있지만, 이는 선계(仙界)에서 말하는 태원지산(太元之山)은 아니다

태원(太元)의 산은 해와 달이 각각 제자리에 있고, 금과 옥이 산을 이루고, 붉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열매는 진주와 같고, 검은 지초(芝草)가 자라고, 모퉁이에 술의 샘물이 있는데 다시 젊어지고 싶은 사람은 그 샘물을 마시면 된다어리석은 자가 함부러 가다가는 모두 죽어서 돌아온다

 

 양생법

 

양생법은 행기(行氣)와 섭생법과 방중술(房中術)이 골자다

 단약을 먹는 것은 불로장생의 근본이지만, 만일 호홉법까지 겸하여 실행한다면 효과는 더욱 빨라진다. 만약 단약을 얻지 못하고 호홉법만 행한다해도 그 이치에 맞도록 행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수백 살의 수명을 얻을 수 있다방중술(房中術)도 알아야 한다. 음양의 술()을 모르고 자주 정력을 소모하면 호홉법을 실행해도 효과가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를 온 몸에 돌게 하는 것을 행기(行氣)라 하는데행기에도 여러 법이 있고, 정력(精力)을 아끼는 방중술(房中術)도 백 가지 이상 기술이 있다

 행기(行氣)의 핵심은 태식(胎息)에 있다. 어린애가 태중에 있을 때처럼 코나 입을 사용하지 않고 호홉하게 되어야 행기가 완성된 것이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코로 기를 빨아들인 다음, 코를 막고 마음 속으로 120까지 수를 센다. 그런 다음 입으로 기를 뿜어내는데, 빨아들일 때나 뿜어낼 때 자신의 귀에 기가 출입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들이쉬는 양이 많고, 내쉬는 양이 적게 한다. 가벼운 새의 깃털을 콧구멍 위에 붙혀놓고, 기를 내쉬면서 깃이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점점 익숙해지면 마음 속으로 세는 수를 더하여 천()까지 세게 된다. 그렇게 되면 늙은이도 하루하루 젊게 된다.

 '선인(仙人)은 육기(六氣)를 복용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하루는 12()가 있어, 야반부터 정오까지 여섯 시()는 생기(生氣)의 시이며, 정오부터 야반까지 여섯 시()는 사기(死氣)의 시이다. 사기(死氣)의 시에 행기를 하면 이익이 없다.

 행기의 술을 익히면백 가지 병을 치료할 수 있고, 전염병이 유행하는 땅에 가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물 속에 들어앉아 있을 수 있고, 물 위를 걸어다닐 수 있다. 칼에 베인 상처도 호홉의 주술을 사용하면 피가 흐르지 않는다. 뱀이나 범 같은 짐승을 기()로 제압 할 수 있고, 굶주림과 목마름도 방지 할 수 있고, 수명도 연장할 수 있다.

 

 배고프지 않을 때 음식을 먹지 말며, 목이 마르지 않을 때 마실 것을 마시지 말라. 날고기, 기름진 것은 먹지 말아야 하니, 이런 것을 먹으면 기가 강해져서 스스로 막기 힘든다. 몸은 일상적으로 노동해야 하지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음식은 될수록 적게 먹어야 하나 배가 고플 정도로 적어서는 안 된다. 겨울 아침에 공복이지 말며, 여름 저녁에 포식하지 말아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지 말 것이며늦게 일어나도 안 된다.

 

 인간이 죽는 원인은 정력의 소모가 첫째이고, 늙는 것이 둘째이고, 질병이 셋째이고, 중독이 넷째이고, 사기(邪氣)의 해를 입는 것이 다섯째이고, 바람이나 찬기운에 당하는 것이 여섯째이다.

 인체에 해로운 6가지를 없애야 한다. 명리에 담백하고, 가무와 여색을 금하고, 재물에 집착하지 말며,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지 말고, 질투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라.

 

'십이소(十二少)'를 지켜야 하는데소사(少思), 소념(少念), 소소(少笑), 소언(少言), 소희(少喜), 소노(少怒), 소락(少樂), 소수(少愁), 소호(少好), 소악(少惡), 소사(少事), 소기(少機) 이다. 만약 '십이소'를 실행하지 못하면도끼가 사람 상하게 하듯이, 승냥이 이리가 사람 해치듯 몸을 상한다.

 '사무(四無)'를 실행해야 한다오래 앉아 있지 않는 무구좌(無久坐), 오래 움직이지 않는 무구행(無久行), 오래 보지 않는 무구시(無久視), 오래 듣지 않는 무구청(無久聽) 이다.

 

 방중술(房中術, 성교 방법)은 이것으로 정력 감퇴를 구할 수 있고, 각종 질병을 치료할 수 있고, 음정(陰精)을 채취하여 양정(陽精)을 증강시킬 수 있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친 이야기다. 헛된 정력의 낭비를 막는 것에 그친다.

 황제(黃帝)가 천 이백 명의 여자를 거느리다가 승천했다고 하지만, 방중술 때문이 아니고, 구단(九丹)을 만들어 완성했기 때문이다. 현녀(玄女) 소녀(素女)는 이 술()을 물과 불에 비유했다. 물과 불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요는 잘 이용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골자는 정()을 되돌려서 뇌를 보하는데 있다. 악고불사(握固不瀉), 종녀불시(從女不施), 환정보뇌(還精補腦) 하면 늙지 않는다.

 둑이 튼튼하면 물이 헛되이 샐 리가 없다. 도끼는 날마다 사용하므로 날이 빠지고 무디어 진다. 엷은 비단도 싸서 경갑(鏡匣)에 넣어두면 언제까지 바래지 않는다. 진흙은 풀어지기 쉬운 것이지만 구워서 기와를 만들면 영구히 갈 수 있다.

 사람은 음양 관계를 아주 끊어서는 안된다. 오래 되면 기가 막혀 폐색의 병에 걸린다무절제 해도 안되니 절도와 조화를 얻은 사람만 오랜 수명을 유지할 수 있다.

 

 *방중술에 관한 경()은 황제내경(黃帝內經), 현녀(玄女) 소녀(素女) 자도(子都) 공성공(容成公) 팽조(彭祖) 등이 있다.  

 

 하늘은 높은 곳에 있으면서 낮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고 있으니, 먼저 선행(善行)을 닦아야 한다. 그 다음 도인(導引)으로 기()를 충만하게 하고, 방중술로 정기(精氣)를 새지 않게 하고 체내로 환원하여 뇌를 보()하고, 음식과 기거에 절도를 지키고, 약물을 복용하여 정신을 통일하고, 횡사를 가져오는 악귀를 막기 위해서 호부(護符)를 차고, 생명을 단축시키는 진미(珍味)나 미인을 멀리하는 일체의 선술(仙術)을 널리 알고 행하면, 장생불사할 수 있다.  


 

 

 

  굴원. 어부사(漁夫辭)

 

  동양에서 절개를 논하려면 반드시 알아야할 문장이 있다. 굴원의 어부사(漁夫辭)다. 그래 탁영(濯纓)이니, 창랑(滄浪)이니 하는 단어도 존중되었으니, 연산군 때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어 무오사화의 피해를 입은 김일손 선생 호가 탁영(濯纓)이며, 1950년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씨의 호가 창랑(滄浪)이다.

 창랑이나 탁영이란 말은 기원 전 3세기 초(楚)나라의 대시인이었던 굴원의 어부사에서 유래된다.

'창랑지수(滄浪之水)가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겠다'는 구절이다. 세상에 도가 행해지면 머리를 감고 갓끈을 씻고 의관을 정제하고 나가서 벼슬 하고, 도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이라면 거기다 발이나 씻고 벼슬자리 버리고 초야에 묻혀, 청탁(淸濁)에 맞게 처신하겠다는 것이다.  

 굴원은 주나라 말기 전국시대 초나라의 왕족이다.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뛰어났고 역대의 치란(治亂)에 밝아 회왕(懷王)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삼려대부가 되어 초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헌령(憲令)을 기초하였다. 그런데 상관대부 늑상이 그걸 가로채려 하자 거절하였고, 이에 늑상은 '굴원을 학식이 빙자하여 믿고 대왕을 업신여기며 무엇인가 딴마음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하고 회왕에게 참소하였다.

 현명치 못한 회왕이 그 말을 믿고 굴원을 멀리하자,  굴원은 비통해하면서 장편의 시를 지어 울분을 토로하니 이 시가 유명한 '이소(離騷)'이다.

 그후 초나라는 진나라의 장의가 6백리의 땅을 베어 주겠다는 미끼에 속아 제나라와의 친교를 끊자 끊임없이 진나라의 침략을 받게 되어 고립무원의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굴원을 다시 불러들여 굴원이 수도인 영으로 돌아왔으나 재차 녹상의 참소를 입어 강남지방으로 추방되었다. 이때 굴원은 상수(湘水)가를 방황하면서 '천문(天問)'을 써냈다.  172가지 문제를 제기하여 비통한 울부짖음으로 천지에 의문을 호소하였다. 
 그후 경양왕 27년(B.C. 278)에 진나라 장수 백기(白起)가 드디어 초나라 수도 영을 함락시키고 선왕의 무덤인 이릉(夷陵)을 불태워버리니 이 소식을 듣고 굴원은 '어부사'를 남기고, 분연히 음력 5월 5일 돌을 품고 멱라수(호남성 상수의 지류)에 몸을 던져 순국(殉國)하였다. 그의 나이 62세 때 였다.

 현재 호남성 도강현 굴원이 투신한 멱라수 옆에는 그의 무덤과 사당이 세워져 있다. 굴원이 죽은 음력 5월 5일은 단오절(端五節)이라 하는데, 매년 이 제일(祭日)이 오면 사람들은 뱃머리에 용 머리를 장식한 용선(龍船)의 경주를 성대히 벌이고, 갈대잎으로 싼 송편을 멱라수 물고기에게 던져 주고 있다.

  

 어부사(漁父辭)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담(江潭)에서 노닐고 못가를 거닐면서 시(詩)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몸이 수척해 있었다. 어부(漁父)가 그를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닌가? 어인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렇소?'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그래서 추방을 당했소이다.'
어부(漁父)가 이에 말했다.
'성인(聖人)은 사물에 얽매이거나 막히지 않고 능히 세상을 따라 옮기어 나가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왜 그 진흙을 휘젖고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며,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으면 왜 그 술 지게미를 먹고 박주(薄酒)를 마시지 않고, 무슨 까닭으로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소?'
굴원이 이에 대답하였다.
'내 듣기로, 막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관(冠)을 퉁겨서 쓰고, 막 목욕을 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하였소이다. 어찌 몸의 반질반질 깨끗한 곳에 외물(外物)의 얼룩덜룩 더러운 것을 받겠소? 차라리 상강(湘江)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배속에 장사(葬事)를 지낼지언정, 어찌 희디흰 순백(純白)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쓴단 말이요?'

이에 어부는 빙그레 웃고는 배의 노를 두드려 떠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것이요(滄浪之水淸兮 可以濁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그리고 떠나가고 굴원은 다시 그와 더불어 말하지 못하였다.





  도연명. 귀거래사(歸去來辭) 도화원기(桃花源記) 

  전에 광화문에 '귀거래(歸去來)'란 다방이 있었다. 그 이름은, '돌아가리라. 전원이 장차 거칠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으랴(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란 명구로 시작되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도연명은 팽택(彭澤, 심양 부근) 현령을 지내다가 현실에 아부하기 싫어, '나는 쌀 다섯 말 때문에 허리 굽혀가며 살지 않겠다'며 인수(引綏)를 풀어주고, '귀거래사'를 읊고 떠났다.

 함께 소개하는 '독산해경'은 고향에 돌아와 사는 은자의 모습을 그렸고, '도화원기'는 그의 이상향을 나타내고 있다.

 '귀거래사'는 한.중.일 3국 전원시의 시초로 볼 수 있고, '도화원기'는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 사상처럼 동양의 파라다이스 '무릉도원(武陵桃源)' 사상의 출발점 이다. '도화원기'는 어빙 워싱튼(Irving Washington)의 소설 <Rip Van Winkle)과 스토리와도 비슷하다. 산 속의 선경(仙境)에 은둔한 사람을 만나고 온 이야기다. 

 도연명은 365년, 동진(東晉) 때 시인으로, 20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자 관리가 되었지만, 41세 때 이를 사임하고 전원으로 돌아가 63세 때 세상을 떠났다.

 

귀거래사(歸去來辭)

 

돌아가리라. 전원(田園)이 장차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어찌 초창히 홀로 슬퍼만 하였던가.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고, 앞으로 바른 길 좇는 것이 옳다는 걸 알았노라.

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 정도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이제 깨달아 바른 길 찾았고, 지난 날이 그릇되었음을 알았노라.

 (고향으로 가는)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나아가고, 바람은 펄럭펄럭 옷깃을 스쳐가네,

나그네에게 노정을 물어보나니, 새벽빛 희미한 것이 애석하구나.
마침내 저 멀리 내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노라.

아이 머슴 길에 나와서 반기고, 어린 자식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구나.    
뜰 안 세 갈래 오솔길은 잡초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그대로 있다.
어린 놈 데리고 방에 들어가니, 항아리엔 술이 가득하다. 술단지 끌어당겨 자작(自酌)하며, 마당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기쁜 얼굴 지어본다.
남쪽 창가에 척 기대어 거만을 떨어보니, 무릎 탁 펴고 사는 편안함을 이제야 알겠구나.

전원의 날들은 나날이 아취가 무르익어간다.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아두네.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걷다가 발길 멎는 대로 쉬고, 때때로 머리 들어 먼 곳을 바라본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서 나오고, 새들은 권태롭게 날아 집으로 돌아올 줄 아는구나.
서산에 저녘해 지려 할 때, 나는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서성이노라.
돌아가리라!

사귐도 그만 두고 어울림도 끊으리라. 

세상도 나도 서로 어긋나기만 하니, 이제 다시 수레에 말을 매고 무엇을 구하러 다니겠는가.
친척들과 정담 즐기고, 거문고 타고, 책 읽는 걸 낙 삼아 시름을 달래보련다.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려주니, 장차 서쪽 밭이랑에 할 일이 있겠구나.

간혹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간혹 외로운 배를 저어, 깊고깊은 골짜기 찾고, 구불구불한 언덕 지나가리라.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나고, 샘물 연연히 흘러내린다.

물이 때를 얻음을 부러워하면서 나의 인생 끝나감을 느껴보노라.
끝이로구나!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 그 얼마이리.
어찌 마음을 가고 옴의 섭리에 맡기지 않고, 황황히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부귀는 내 바라는 바 아니고,  신선의 나라는 기약할 수 없는 일.

다만 좋은 날 홀로 거닐고, 가끔 지팡이 세워 놓고 밭이나 갈리라.
동녘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고, 푸른 시냇가에서 시를 읊으리라.
오로지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돌아가는 것이니,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더 무엇을 의심하리.

 

 
산해경을 읽으며(讀山海經)

 

초여름에 초목이 자라 집 주변 숲이 울창하도다.
새들은 의탁할 곳 있음을 즐거워하고, 나 역시 내 초가집을 사랑하네.
이미 밭도 갈고 씨도 뿌렸나니, 때때로 돌아와 내 책을 읽노라.
외진 마을이라 번화가와 먼데, 간혹 찾아온 친구 수레도 돌려보내노라.

흔연히 봄 술 마시고, 안주 삼아 내 채원의 채소를 뜯네. 

보슬비는 동쪽에서 오고, 좋은 바람은 함께 오는구나.

주왕전(周王傳)도 읽어보고, 산해경(山海經) 그림들도 두루 들춰본다오.

우주를 굽어보고 올려다 보니, 즐거워 않고 또 어쩌겠는가.

 

 도화원기(桃花源記)

 

 진(晉)나라 태원(太元) 연간, 무릉(武陵) 사람으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물길 따라 가다가 길의 멀고 가까운 것을 잊어버렸다. 홀연히 복숭아 꽃밭을 만났는데, 강 양쪽  수백보 중간에 잡목은 없고, 향기나는 풀들은 싱싱하고 아름다웠고, 떨어진 꽃잎 가득하였다.

어부는 이러한 광경을 무척 기이하게 여겨 더 나아가 그 숲의 끝까지 가보고자 하였다. 

 숲이 끝나는 물의 발원지에 이르러, 문득 산 하나를 발견했다.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고, 마치 그 속에서 희미한 빛이 비치는 듯 했다. 

 어부는 곧 배에서 내려 동굴 입구로부터 들어갔다. 처음은 극히 좁아서 겨우 사람이 통과할 수 있었다. 다시 수십보 걸어가자 탁 트이고 밝아졌다. 

 토지는 평탄하고 넓었으며 가옥은 잘 정돈되어 있고, 기름진 전답, 아름다운 연못에는 뽕나무 대나무들이 있었다. 밭 사이 길들은 서로 교차해 통해 있고, 닭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곳에서 사람들이 오가며 농사일을 하고 있는데, 남녀의 옷차림새는 모두 딴 고장 사람 같았다. 노인과 아이들은 유쾌한 모습으로 제각기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부를 보고 깜짝 놀라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상세하게 대답해주자 집으로 데려가, 술을 내고 닭을 잡아 대접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와서 소식을 물었다. 스스로 말하길 '우리 선조가 진(秦)나라 때 난을 피해 처자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이 절경(絶境)으로 와서 다시 나가지 않았으므로 바깥 세상 사람들과 격리되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이 어느 시대냐고 묻는 것을 보니, 그들은 한(漢)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위진(魏晉)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부가 일일히 상세히 말해주자, 듣고 나서 모두 탄식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각기 제 집으로 초청해서, 모두 술과 음식을 냈다.

 어부가 며칠 머물다 작별하고 떠나려 할 때, 사람들이 말하길. '바깥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어부는 나오면서 배를 얻어 타고 왔던 길을 곳곳에 표시를 해두었다.

 군에 도착하자 태수를 배알하고 이러이러한 일을 보고하였다. 태수는 즉시 사람을 파견하여 그를 따라가 표시해 놓은 곳을 찾게 했으나 결국 길을 잃어 다시 찾아내지 못했다.

 남양(南陽)의 류자기(劉子驥)는 고상한 선비로,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찾아가려 했으나, 실현하지 못하고 얼마 후에 병으로 죽었다. 그 후로는 뱃길을 묻는 자가 없었다.

 


 

   육우(陸羽). 다경(茶經)

 

  '다경(茶經)'은 세계 최초의 차에 관한 책이다. 당나라 때 육우(陸羽, 733-804) 저술로, 우리나라 초의(草衣, 1786~1866) 스님이 홍현주로부터 차를 알고 싶다는 부탁을 받고 편지로 답한 '동다송(東茶頌)' 보다 천 년 전 책이다. 

 육우는 733년 용개사(龍蓋寺)의 지적선사(智積禪師)가 복주(復州) 경릉군(竟陵郡) 호수 제방을 걷다가 풀숲에서 아기를 발견하여 절로 데리고와 키웠다고 한다. 성은 스님 성을 따 '육(陸)'으로, 이름은 점괘에 '큰기러기가 서서히 땅에서 날아오른다' 뜻이 나와 '우(羽)'로 지었다. 자는 큰기러기를 뜻하는 홍점(鴻漸) 이다.

 육우는 얼굴이 못생기고 말마저 심하게 더듬었지만 재주가 많았다. 20세 때  경릉 사마(司馬, 병권 통솔자)  최국보 눈에 들어 그가 추부자(鄒夫子)에게 보내 공부를 시켰는데, 거기서 찻잎 따고 차 끓이는 법을 배웠다. 화문산 남쪽 샘물로 차를 끓여, 이 샘을 육우천(陸羽泉)이라 부른다. 22세 때 최국보와 헤어질 때 육우에게 흰 나귀 한 마리와 괴목으로 만든 서함을 선물하였으니, 최국보가 그를 얼마나 아꼈던가 알 수 있다.

 756년 '안록산(安綠山)의 난'이 일어나자 피신하여, 24세 때 절강성(浙江省) 호주(湖州)의 한 암자에 은거하면서 차를 연구하였다27세 때 여류 시인 이야(李冶)의 차 스승이 되기도 했다. 이야는 도관(道觀, 도교 사원)의 여도사였고 나중에 덕종의 총애를 받았다.

 또 시인이던 교연(皎然)스님과 교분을 가져, 육우는 교연의 묘희사(妙喜寺) 근처에 초가집을 짓고 내왕하면서 차와 시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교연은 어느 해, 국화를 감상하며 ‘9일 육처사 '우'와 함께 차를 마시다(九日與陸處士羽飮茶)’란 시를 읊었다.

 
9 산승의 암자엔(九日山僧院)
국화가 동쪽 울타리에 노랗게 피었는데(東籬菊也黃)
속인들은 흔히 술에 국화를 띄우지만(俗人多泛酒)
누가 국화 향을 빌려와서 차 향을 돕게 하는가(誰借助茶香)

 

 육우는 교연스님 권유로 옛사람의 차의 내력을 집대성하기로 결심하고, 오흥(吳興)의 암자에 은거하면서, 호를 '상저옹(桑苧翁)'으로 하고, 저서를 집필하여 28세 때 '다경(茶經)' 초고(草稿)를 완성했다.

 774년 육우는 명필 안진경(顔眞卿)이 호주자사(湖州刺使)로 부임해 '운해경원(韻海鏡源)'을 저술할 때  참여했고,  안진경은 왕희지와의 교류를 주선해주었다. 그 때 들은 차의 고사를 제7장에 보충하여 '다경(茶經)'을 탈고했다.  

 804년 72세의 나이로 호주(湖州)에서 생을 마쳤고, 육우의 묘는 항주에 있다. 다성(茶聖) 다신(茶神)으로 숭앙 받아, 1995년 10월, 항주시 인민위원회가 묘역에 ‘당옹육우지묘’라는 비석을 세웠다.

  

  다경(茶經)

 

 다경(茶經)은 310장으로 되어있다.

 

 제1장차의 근원을 기술하였다

 차는 남방에서 자라는 상서로운 나무로 한두 자에서 수십 자까지 자란다. 나무는 과로목(瓜蘆木) 같고, 잎은 치자(梔子) 같으며, 꽃은 흰장미 같고, 열매는 종려(棕櫚) 같으며, 줄기는 정향(丁香) 같고, 뿌리는 호도(胡挑)를 닮았다.

 차를 뜻하는 글자는 차(茶), 가(檟), 설 (蔎), 명 (茗), 천 (荈)이 있다. 곽홍농(郭弘農)은 말하기를 '일찍 딴 것을 차라 하고, 늦게 딴 것을 명(茗), 혹은 천(荈)이라 한다' 하였다.

 상품(上品) 차는 자갈밭에서 나며, 중품(中品)은 사질(砂質)에서 나며, 하품(下品)은 황토땅에서 자란다.

 심는 법은 참외 심듯이 하는데, 삼 년이면 딸만 하다. 차나무는 산야의 야생차가 상이며. 밭에서 재배된 차는 차등품이다.

 색깔은 자색(紫色)이 으뜸이요 녹색(綠色)이 그 다음이다.

 첫 순이 상품이고, 싹이 그 다음이며, 잎이 말린 것이 상이며, 펴진 것이 다음이다.

 

 제2장은 다구(茶具)를 설명하였다.

 바구니, 광주리, 시루(甑), 절구통(杵臼), 송곳칼(棨), 두드리개 채찍(撲), 선반(棚), 꿰미(穿), 차를 보관하는 장육기(藏育器) 등을 기술하였다.

 

 제3장은 채엽(採葉)과 제다(製茶) 과정을 기술하였다.

 차를 따는 시기는 음력 2-4월 사이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 밤이슬 흠뻑 머금은 잎을 딴 것이 상품이고, 한낮에 딴 차는 그 다음이며, 흐린 날씨나 비가 올 때는 따지 말아야 한다.

 차 싹 중에서도 송곳의 끝처럼 쑥 빼어난 자순(紫筍)과 녹아(綠芽)를 골라 딴다.

 차를 만드는 방법은 수증기로 찌고(蒸), 절구통에 찧고(搗), 떡차의 경우는 두드리고(拍), 불에 쪼이고(焙), 틀에 넣고 압착하여 동그라미, 네모나 꽃 모양으로 박아내고, 대발에 펼쳐 말리고, 말린 차의 한가운데 창으로 구멍을 뚫은 후, 막대기로 꿰어 배로(焙爐)위에서 다시 불에 쬐어 말리고, 대나무나 닥나무 껍질을 꼬인 꿰미에 차를 꿰어서, 습기가 스미지 않는 종이나 나무통에 보관한다.

 떡차를 달여 마시고자 할 때는 장육기(藏育器)에서 차를 꺼내어 집게에 끼워서 불에 바싹대고, 여러 번 뒤쳐 가며 바르게 구워지도록 맞춘다. 떡차의 표면이 마치 두꺼비의 잔등처럼 우굴 쭈굴할 정도로 부풀어 오르게 굽는다.

 

 제4장은 차 끓이고, 병차(餠茶) 건조하는데 필요한 29가지 다기(茶器)를 소개하였다.

 *차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기구를 다구(茶具)라고 하, 차를 달이고 마시는데 필요한 것을 다기(茶器)라 한다.

 풍로(風爐), 타고 남은 재를 회수하는 회승(灰承), 떡차를 불에 쪼일 때 쓰는 청죽(靑竹)으로 만든 죽협(竹莢), 불에 쪼인 차를 담아 향기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한 지낭(紙囊). 차가루 모울 때 쓰는 불말(拂末), 탕 젓는데 쓰는 젓가락 목협(木莢), 소금 뜨는 숟가락 게(揭), 찻잔 완(碗), 생수 담는 수방(水方), 뜨거운 열탕 담는 숙우(熟盂),  다기 씻는 척방(滌方), 차 찌꺼기 담는 재방(滓方), 다기 집어넣는 대(竹)로 만든 도람(都籃) 등이다. 

 

 제5장은 차 끓이는 법을 기술하였다. 

 차 달이는 불은 숯을 쓰며, 그 다음으로는 섶나무를 쓴다.

 숯의 선택은 고기를 구웠던 적 없는 깨끗한 것을 사용한다. 뽕나무, 홰나무, 오동나무가 적당하다. 측백나무 계수나무 같이 기름성분이나 특이한 향을 지닌 것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썩은 나무나 오래된 폐가구나 수레바퀴처럼 다른 곳에 사용되었던 나무는 사용할 수 없다.

 

 차에 사용하는 물은 산수(山水)가 상이요, 강물이 중이고, 우물물이 하등품이다.

산수는 젖처럼 돌 사이 못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좋으며(乳泉 石池漫流), 폭포같이 용솟음 치는 물과 여울물은 오래 먹으면 사람 목 부분에 병이 생길 수 있다. 강물은 가급적 사람과 멀리 떨어진 것을 취함이 좋고, 우물물은 사람이 많이 긷는 곳의 물이 좋다.

 

 찻물 끓이는데 있어서는, 첫번째 어슴푸레하게 물 끓는 소리에서 솥바닥에 물고기의 눈(魚目)과 같은 기포가 생겨나며 약간의 소리가 난다. 이때가 일비(一沸)이다. 이때 숯불에 의해 물위에 검은 수막(黑雲母)이 뜨면 이를 제거한다. 흑운모는 차의 순정한 맛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마시지 않는다.

 두 번째는 솥의 가장자리까지 열이 전도되어 물이 뒤집히며 기포가 구슬같이 올라온다. 이때가 이비(二沸)이다. 세 번째 단계는 물결이 넘실거리고 북치는 소리가 난다. 이때가 삼비(三沸)이다. 그 이상 올라가면 물이 쇠어서 먹지못한다.

 표주박으로 미리 떠내어 물바리에 식힌 물을 찻솥에 붓고 찻물의 온도를 급히 식힌다. 이것을 구비(救沸) 혹은 육화(育華)라고 하는데, 이는 찻물의 정기(精氣)를 기르기 위함이다.

 찻물 위에 뜨는 차가루의 거품을 말발(沫餑)이라고 한다. 큰 꽃모양 거품을 발(餑)이라 하고, 작은 거품은 말(沫)이라 하며, 가늘고 가벼운 거품을 화(花)라 한다. 말(沫)의 모습은 녹색 이끼가 물가에 떠 있는 것과 같고, 국화꽃이 쟁반에 떨어져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 모양이 마치 대추꽃이 둥근 연못가로 두둥실 떠 있는 것 같고, 연못이나 구부러져 흐르는 물가에 푸른 부평초가 자라는 모양 같으며, 맑게 개인 날 하늘에 비늘구름이 떠 있는 것 같다. 발(餑)과 말(沫)이 포개어져 있는 모습은 희끗희끗하게 눈이 쌓인 것 같다.

 차를 나눌 때 특히 주의할 것은 말(沫) 발(餑) 화(花)를 고르게 나누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세가지 거품을 총칭하여 '화(華)'라고 한다. 거품은 차탕의 꽃으로서, 한사발 춘설차는 제호(醍醐)보다 낫다.

 물 한되를 끓이면 차가 다섯 사발정도 나온다. 끓여낸 차 가운데 가장 향기로운 것은 첫 번째와 두번 째 사발이다. 세번 째는 그 다음이고, 그 다음이 네 번째 다섯 번째 사발, 그 다음은 갈증이 심하지 않으면 마시지 말도록 한다.

차탕은 뜨거울 때 잇대어 마셔야 한다.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에 엉키고, 정화는 위에 뜨기 때문이다. 만약 차가 식으면 정화의 향기도 열기를 따라서 사라진다.

 차의 성품은 검소하므로 진하게 마셔서는 안된다. 차가 진하면 참된 맛이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차탕의 빛깔은 담황색이다. 그 향기는 매우 아름답다. 차 맛은 단 것은 (檟)이며, 달지 않고 쓴 것은 천 (荈)이고, 마시면 쓰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단 것이 차(茶) 이다.

 목이 마르면 장((醬)을 마시고, 근심과 번뇌를 벗어버리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깨려면 차를 마신다. 

 

제6장은 차의 음용편이다. 

 육우는 이 장에서 '물을 마시는 것은 생명을 위해서이며, 차를 마시는 것은 정신을 위한 것'이라 선언해서, 물 마시는 것과 차 마시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했다. '음차의 요체는 정미함을 맛보고 마음의 참모습과 자연의 도를 깨달으려면 마땅히 맑게 마시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삼아야 한다' 하였다. 

 

 趙原의 陸羽烹茶圖

 

 차를 음료를 삼은 것은 신농씨(神農氏)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춘추, 진한(秦漢), 삼국시대 사람들이 모두 차 마시기를 좋아했고, 당(唐)에 이르러 극성에 달했다. 당시 차는 조차(粗茶), 산차(散茶), 말차(末茶), 병차(餠茶) 등이 있고, 일부 사람들은 파, 새양, 대추, 귤껍질, 수유(茱萸), 박하 등을 넣고 끓이기도 했다.

 차에는 아홉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는 제조인데, 흐린 날에 채집하고 야간에 말리면 제조가 부당하다. 둘째는 감별하는 법인데, 입으로 씹어 냄새를 분별하고, 코로 향기를 쿵쿵 맡는 감별법은 부당하다. 셋째 다기 다루는 법인데, 노린내 나는 가마와 비린내 나는 대야를 사용하면 용기가 부당하다. 넷째 불 다루는 법인데, 연기 나는 장작과 고기 구운 숯을 사용하면 연료가 부당하다. 다섯째 물 선별하는 법인데, 급히 흐르는 물과 막혀서 정체된 물을 사용하면 용수가 부당하다. 여섯째 떡차 굽는 법인데, 밖은 익고 안은 생것으로 구우면 굽는 방법이 부당하다. 일곱째 떡차 가루 내는 방법인데, 너무 가늘게 찧어 티끌같이 부순 가루를 만들면 찧는 법이 부당하다. 여덟째 차를 다리는 방법인데, 조작이 숙련되지 못해 너무 휘저어 급하게 다리는 것은 부당하다. 아홉째 음다방법인데, 여름에 마시고 겨울에 마시지 않으면 음용이 부당하다.(사시사철 마시어 심장과 폐장을 청량하게 해야 한다)

 상술한 '9가지 어려운 점'을 해결하면, 한 공기의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다.

 

 제7장은 차의 고사를 설명하였다.

 삼황(三黃) 때에 염제(炎帝)인 신농씨(神農氏)로 부터, 노(魯)나라 주공(周公), 제(齊)나라 안영, 한(漢)나라 때 선인(仙人)인 단구자(丹丘子), 황산군(黃山君), 사마상여(司馬相如), 양웅(楊雄) 등 선인(仙人)들이 차 마신 일화를 기술하였다.

 

 제8장은 차 산지를 기술하였다.

 당시 전국 40여 차 생산지의 차를 등급을 매겨 소개하였다. 그가 매긴 차의 등급은 상(上), 차(次), 하(下), 우하(又下)의 4등급이다. 산남지방의 협주(峽州), 양주(襄州), 형주(荊州), 형주(衡州), 금주(金州), 양주(梁州) 차를 품평하고. 회남(淮南)지방의 광주(光州), 의양군(義陽郡), 서주(舒州), 수주(壽州), 황주(黃州) 차를 소개했다. 또 절서(浙西)지방의 호주(湖州), 상주(常州), 선주(宣州), 항주(杭州), 윤주(潤州), 소주(蘇州) 차를 품평하고, 검남(劒南)지방의 팽주(彭州), 면주(綿州), 촉주(蜀州), 미주(眉州), 한주(漢州) 차를 소개하고, 절동(浙東)지방의 월주(越州), 명주(明州), 태주(台州) 차를 소개했다.

 

 제9장에서는 다구의 간소화를 설하고 있다.

 간소함(簡)은 검약함(儉)에서 나오고 검약해야 고상하다.

 벌판의 절간이나 동산에서 제다를 할 때에는 송곳칼인 계(棨), 두드리게 채찍인 박(樸), 꿰뚫개 관(貫), 선반 붕(棚), 꿰미 천(穿), 차 보관하는 장육기(藏育器) 등 7가지는 모두 쓰지 않는다.

 다기들을 돌 위에 앉힐 수 있다면 다기를 거두어 진열하는 구열(具列)은 필요 없고, 마른 섶나무와 다리 굽은 솥을 쓸 수 있다면 풍로(風爐), 재받이 회승(灰承), 부젓가락 화협(火夾) 따위는 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

 만약 샘물이나 산골물 근처에서 차를 달이면 물통 수방(水方), 개숫물통 척방(滌方) 등은 필요치 않다.

 또 가루차가 정제된 것이라면 체로 쓰는 라(羅)는 휴대할 필요가 없고, 가루털개 불말(拂末)도 필요치 않다 대젓가락 죽협(竹夾), 주발 완(碗), 물바리 숙우(熟盂), 소금단지 차궤(茶櫃)를 대광주리에 담았다면, 모듬바구니 도람(都籃)은 필요치 않다.

 그러나 정식 다법을 행할 때는 24개의 다구나 다기 중에서 하나만 빠져도 좋은 차를 우릴 수 없다.

 

 제10장에서는 흰 명주천에 앞의 9장까지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다경(茶經)'을 보면, 인류 최초 차 마신 사람은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다. 신농씨는 호북성(湖北省) 기산(岐山) 아래 강수(姜水)에서 양을 몰던 부락민과 살았으므로 성(性)을 강(姜)씨라 했다.

 머리가 소 모양인 신농씨를 염제(炎帝, 불 임금)라고 부르는데, 그가 처음 음식을 불로 끓여 먹는 방법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는 농사짓는 법을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고 온갖 초목을 헤치고 다니며 수백종의 식물을 맛보아 약초를 찾아내었다. 산야를 거닐면서 하루 칠십여 가지씩 풀잎, 나뭇잎을 씹어 그 효용을 알아보다가 독에 중독되었는데 찻잎을 씹었더니 그 독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찻잎에 해독의 효능이 있음을 알고 이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

 지금 그의 능(陵)을 차능(茶陵)이라 부른다. 중국인은 지금도 햇차가 나오면 먼저 다신(茶神)인 신농씨에게 차례를 지낸다. 차(茶)라면 먼저 동이족 신농씨를 생각해야 한다. 


 

 혜능(惠能) 육조단경(六祖壇經)

 

 인도 천축국(天竺國)의 왕자 달마대사가 중국에 와서 입적할 때 불법을 혜가대사(慧可大師)에게 넘겼다. 혜가는 법을 승찬대사(僧璨大師)에게 넘겼다. 이렇게 여섯번째 법을 이은 분이 육조(六祖) 혜능(惠能)이다.

 혜능 대사가 보림사에 있을 때, 절 앞에 못이 있었다. 거기에 용이 늘 출몰하면서 안개와 바람을 일으키는 등 작난이 심했다. 이를 보고 하루는 대사께서 용에게 '네가 만일 신통이 장하여 몸집을 크게도 작게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으면 어디 작은 몸을 나타내 보아라.' 하였다. 이에 용이 곧 작은 몸으로 변하니, 대사가 발우(鉢盂)를 보이며, '네가 이 발우 속에도 들어갈 수 있느냐' 하여, 용이 발우 속에 들어갔다.

 대사가 이를 거우어 당(堂)으로 올라와 앞에 놓고 법을 설하니,용이 그 공덕으로 몸을 벗고 갔다. 그 뼈가 지금도 전해오는데, 길이가 7촌 쯤 되고 두미(頭尾)와 각족(角足)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대사는 713년 국은사(國恩寺)에서 재를 마치고 '내 이제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제자들에게 고하고 게송을 설하고 단정히 앉아서 삼경이 되자 천화 하셨다.

 이때 향기가 절에 가득하고 무지개가 땅에서 뻗쳤다고 한다. 제자들이 대사의 진신(眞身)을 조계산(曹溪山)의 탑 속에 모셨다.

 

 혜능은 세살 때 부친 노씨를 여의고 나무장사를 하면서 자란 무식쟁이였다. 하루는 나무를 팔고 나오다가 어떤 사람이 읽고있는 <금강경>을 듣고 마음이 후련히 열림을 깨달아 그에게 그 경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물어보니. 황매현(黃梅縣) 동선사(東禪寺)에서 얻었다고 한다.

 이에 혜능은 은 열 량을 구해 어머님 양식을 구해드린 후, 동선사로 찾아가 장작 쪼개고 방아 찧는 막일부터 시작했다. 

 동선사는 달마대사의 다섯번째 법을 이은 홍인대사(弘忍大師)가 주석하고 있었다. 혜능이 동선사에 온지 8개월 되던 어느 날 이다. 홍인대사는 문인들에게 '제각기 돌아가서 제 성품을 살펴보고 하나씩 게송(揭頌)을 지어 오너라. 그것을 보고 큰 뜻을 깨친 자에게 법을 전하여 6조(六祖)로 삼으리라' 하였다.

 여러 스님이 물러나 공론을 벌인 결과, 자기들 중에 제일 재주가 좋은 신수(神秀) 상좌 한 사람만 게송을 짓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신수는 야반삼경에 복도에다 게송을 써놓았다.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

(몸이 보리수라면 마음은 밝은 거울 같구나.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 앉고 때 끼지 않도록 하세.)

 

 홍인대사가 이를 보고, 겨우 문 밖에 이르고 문 안에 들오지 못한 경계라고 평하였다.

 혜능이 이소식을 듣고 자신은 글을 모르는지라, '나도 게송을 하나 지어볼 터이니, 누가 좀 써주기 바라오' 하며 게송을 불렀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

(보리에 본디 나무가 없고, 명경 또한 틀(臺)가 아닐세.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것인데, 어디에 때가 끼고 먼지가 있을 것인가.)

 

 홍인대사가 이를 보고 혜능이 큰 그릇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 자리서 인정하면 사람들이 해칠까 두려워, 그날 밤 삼경에 아무도 모르게 불러, 법을 전한다는 표시로 의발(衣鉢, 가사와 바리때)을 전해주었다.

 혜능은 의발을 가지고 멀리 남쪽 지방으로 가서 사냥꾼 틈에 숨어 15년을 지냈다.

 하루는 생각해보니 이제는 불법을 펼 때가 되었다. 그래 광주 법성사로 갔는데, 마침 바람이 불어 깃폭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걸 보고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 하고, 한 스님은 '깃폭이 움직인다' 하며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이에 혜능은 '그것은 바람의 움직임도 아니고, 깃폭의 움직임도 아니며, 당신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세.' 하고 알으켜 주었다. 여기서 스님들은 깜짝 놀라, 혜능이 범상치 않은 분인걸 알았다. 혜능은 여기서 비로소 신분을 숨기려고 기르고 있던 머리를 깍고, 자신이 6조 대사임을 밝히고 법문을 했다.

 

'세상 사람들이 종일 입으로는 반야(般若, 진리)를 염하지만, 자신의 성품이 바로 반야임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먹는 이야기를 아무리 해봐도 배가 부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사람의 본래 성품이 곧 부처라, 이 성품을 떠나서 부처가 없다. 깨닫지 못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한 생각 깨달으면 중생도 부처니라. 스스로 마음을 관(觀)하여 자기 본성을 보도록 하라.'

'어떻게 함이 제 성품을 건지는 것인고? 마음 속의 사견(邪見)과 번뇌와 중생의 우치(憂痴)를 정견(正見)으로 건지는 것이니, 그릇된 생각은 올바름으로 건지고, 미혹은 깨달음으로 건지고, 어리석음은 지혜로 건지고, 악은 선으로 건져야 한다.'

'사람들은 아미타불을 외며 서방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한다. 이것은 어리석어서 자성(自性)을 모르므로 그런 것이다. 제 몸 속의 정토를 알지 못하고, 동방이니 서방이니 찾고 있지만, 깨달은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한가지임을 아느니라.'

'어떠한 것을 좌선(坐禪)이라 하느냐? 법문 중에 걸리고 막힘이 없어서, 밖으로는 일체 선악 경계에 마음과 생각이 일어나지 않음이 좌(坐)이며, 안으로는 자성(自性)을 보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선(禪)이니라.

'무엇을 선정(禪定)이라 하는가? 밖으로 상(相, 모양)을 떠남이 선(禪)이며,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정(定)이니, 만약 밖으로 상에 걸리면 안으로 마음이 곧 어지럽고, 만약 밖으로 상을 떠나면 마음도 어지럽지 않느니라.

 본 성품은 저절로 조촐하며 스스로 안정된 것이언마는, 다만 경계를 보고서 경계를 생각하므로 곧 어지럽게 되나니, 만약 모든 경계를 보되 마음이 어지럽워지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참된 정(定)이니라.'

'밖으로 상을 떠나면 곧 선(禪)이며, 안으로 어지럽지 않으면 곧 정(定)이니, 외선(外禪)과 내정(內定), 이것이 곧 선정(禪定)이니라.'




 

'무경칠서(武經七書)' 제1편

손자병법(孫子兵法). 오자병법 (吳子兵法). 손빈병법(孫臏兵法)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제갈량, 당태종, 이순신 장군이 탐독했고, 나폴레옹, 모택동, 독일 황제 빌헬름 2세,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찌로가 애독했다. 1772년 프랑스 신부 아미오(P. Amiot)가 불어로 번역했고, 1906년 영문판이 나왔다

 현재 전해지는 병법은 조조가 해석을 붙인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 13편이다. 조조는 손자병법에 주석을 달고 후에 '맹덕신서'라는 병서를 저술하기도 했다.

 

 손무(孫武)는 기원 전 559년에 태어나 공자와 동시대를 살았다. 선조 진완(陳完)은 진(陳)나라 공자로  제(齊)나라에 피신해 성을 전(田)씨로 바꾸었다. 할아버지 전서(田書)는 전쟁에서 공을 세워 제 경공(景公)으로부터 손(孫)이란 성을 하사받았다. 손무는 내란이 일어나자 오나라로 망명하여, 합려(闔慮)를 도와 3 만 군사로 30 만 초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병가에서 불후의 명저로 꼽히는 '손자병법'을 완성했다. 말년에 산속에 들어가 은둔의 삶을 살다가 기원전 470년에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합려(闔閭)가 손무를 기용할 때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합려는 오자서를 통해 손무의 명성을 익히 들었지만, 지휘 능력을 보고 싶었다

'실제로 군대를 훈련시켜 보일 수 있겠소?

'좋습니다.'

'여자라도 상관 없을지?'

'상관 없습니다.'

 합려는 궁녀 180 명을 불러 내었다. 손자는 궁녀를 두 편으로 나누고, 갑옷과 투구를 착용시키고 검과 방패를 들게 한 뒤, 총희 두 사람을 각각 대장으로 삼았다. 그리고 북소리에 따라 진퇴, 좌우, 회선()하는 군율()을 일러주었다.
'북을 1번 치면 모두 일어나고, 2번 치면 큰소리를 외치며 전진하고, 3번 치면 전투대형으로 전개한다. 내가
‘좌로’ 하면 왼손을 보고, ‘우’로 하면 오른손을, ‘앞으로’ 하면 앞을, ‘뒤’로 하면 등 쪽을 보아라.'

 그리고 북을 치면서 ‘우로’라고 호령하자, 궁녀들은 까르르 웃기만 했다. 이에 손무는,

'명령이 분명치 않고 호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장수의 잘못이다.'

라고 말한 후, 친히 북채를 잡고 북을 울리며 재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설명한 후 ‘좌로’하고 호령했다. 그러나 궁녀들은 여전히 입을 가리고 웃기만 했다. 그러자 손무가 집법에게 지시했다.

'부질()을 대령하라!'
부질은 사람의 목과 허리를 짜르는 도끼와 그 밑받침 이다. 집법에게 물었다.
'금령()이 명확치 않고 하명()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장수의 죄다. 그러나 이미 금령을 내리고, 되풀이하여 분명히 명했는데도 병사가 군령을 좇아 진퇴를 않았으니, 이는 부대장의 죄다. 군법에 따르면 어찌 해야 하는가?'

'마땅히 참수()해야 합니다.'

그러자 손무는,

'모든 사졸을 참할 수 없다. 그 죄는 두 대장에게 있다. 군령에 따라 즉시 두 대장을 참하라!'

좌우에 늘어선 아장들이 즉시 합려의 두 총희()를 끌어내어 결박했다.

합려는 대 위에서 이 광경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과인은 이미 장군의 용병술을 보았소. 과인은 그들이 없으면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니 참수하는 일은 하지 마시오.'

 그러나 손무는,
'장수는 군대에서 법을 집행할 때 군주가 설령 하명할지라도 이를 접수하지 않는 법입니다!'

 하고 총희 둘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에 궁녀들은 새파랗게 질려 감히 손무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손무가 다시 북채를 잡고 지휘하자, 대오는 좌우 진퇴가 명하는 대로 정확히 이루어졌다. 웃기는커녕 기침소리 한번 없었다.

 이때 오자서가 합려에게 간했다.
'신이 듣건대 용병은 흉사()니 헛되이 시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용병하는 사람은 함부로 시험하지 않는 법 입니다. 지금 대왕은  초나라를 치고 천하의 맹주가 되어 제후들을 호령하고자 합니다. 만일 손무를 장수로 삼지 않으면 누가 회하()와 사수()를 넘고 천리를 달려가 작전을 펼 것입니까?'
 
  이 말을 듣고 합려는 손무를 상장()으로 삼은 뒤 군사()의 예로 대우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총 13편으로 되어있다.

 

 제1편 시계(始計)


 싸움은 속임수이다.(兵者 詭道也). 그러므로 능하면서도 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준다. 쓰면서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준다(用而示之不用).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 보이게 하고, 멀리 있으면서도 가깝게 보이게한다. 이롭게 하여 유인한다(利而誘之). 어지럽게 하여 취한다(亂而取之). 실하면 대비한다(實而備之). 강하면 피한다. 성내게하여 동요시킨다(怒而撓之). 비굴하게 굴어서 교만하게 한다편안하면 수고롭게 한다(佚而勞之). 적들이 친밀하면 이간질한다(親而離之). 대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고, 뜻하지 않는 곳을 친다.

 
제2편 작전(作戰) 

싸움은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 질질 끌면 패망한다. 날카로움이 꺾이고 힘이 꺽하고 재정이 고갈되면, 다른 제후들이 그 틈을 타서 일어날 것이다.
싸움은 신속해야 한다고 들었으나 교묘하게 오래 끌라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지혜로운 장수는 적의 물자를도록 힘쓴다. 현지 조달이 전략이다. 적의 말 먹이 한 석은 본국의 이십 석과 맞먹는다.

 

제3편 모공(謀攻)

최고의 전술은 적의 계략을 깨뜨리는 것이고, 다음은 적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고, 그 다음은 적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싸울 수 있을 경우와 싸울 수 없는 경우를 아는 자는 승리하고, 많은 병력일 경우 전술과 적은 병력일 경우 전술을 두루 아는 자는 승리하고, 상하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승리하고, 조심하여 경계하면서 적이 경계하지 않기를 기다리는 자는 승리하고,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간섭하지 않으면 승리한다. 이 다섯가지는 승리하는 길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진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위태롭다.(不知彼不之己 每戰必殆)

 

제4편 군형(軍形)

 
옛날에 전쟁을 잘한다고 일컬어졌던 자들은 모두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어 놓고 적과 싸워 쉽게 승리하였다. 잘 싸우는 자는 패배하지 않을 위치에 서서 적의 패배를 놓치지 않는다. 승리하는 군대는 전투하기 전에 먼저 유리한 위치를 얻은 다음에 싸우며,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우면서 승리를 구한다.

 

제5편 병세(兵勢) 

적에게 패하지 않으려면 정상적인 공격과 변칙적인 공격을 모두 할 줄 알아야 한다.
변칙 공격을 잘 쓰는 자는 천지와 같이 끝이 없으며 강하와 같이 마르지 않는다.

세차게 흐르는 물길이 돌(石)을 뜨게 하는 것은 기세다. 매가 다른 새의 목을 꺾는 것은 절도다. 그러므로 잘 싸우는 자는 기세가 험하고 절도가 빠르다. 기세는 쇠뇌를 당겨놓은 것과 같고, 절도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같다.

 

제6편 허실(虛實) 

싸움터에 먼저 나아가 기다리는 자는 편하고, 뒤늦게 싸움터에 달려가는 자는 수고롭다. 
적이 편안하면 수고롭게 만들고, 배부른 것을 배곯게 하고, 안정된 것은 흔들리게 한다.
공격을 잘하는 자는 적이 지켜야 할 곳을 모르게 하고, 수비를 잘하는 자는 적이 공격할 곳을 모르게 한다.

 

제7편 군쟁(軍爭)


사기가 날카로운 적은 공격하지 말고, 유인하는 적은 쫒지 말고, 돌아가려는 적은 끊지 말고, 포위된 적은 한 쪽을 터놓고, 궁지에 몰린 적은 끝까지 압박하지 말라. 싸움은 속임수로서 성립되고, 유리하도록 움직이고, 분산과 집합으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그 빠르기가 바람과 같고, 고요하기가 숲과 같고, 쳐들어 갈 때는 불길과 같고, 묵직하기가 산과 같고, 알 수 없기가 어둠과 같고, 움직임은 벼락과 같다.

제8편 9변(九變)

 진퇴가 용이한 곳은 빼앗아 봐야 뺏기기도 쉬우므로 싸움보다는 교섭하여 얻는다.

보급이 어려운 곳에서는 머물지 말고, 사방이 막힌 포위된 곳은 벗어난다.

싸움은 적이 오지 않을 것을 믿지 말고 내가 대비해야 하며, 적이 공격하지 않을 것을 믿지 말고 그들이 나를 공격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아야 한다.


제9편 행군(行軍) 

산에서는 시야가 트인 높은 곳으로 행군하며, 높은 곳의 적은 올라가서 치지 않는다.

이것이 산에서의 행군이다.

물에서는 적의 병력 절반이 건널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 상류의 적을 거슬러 치지 않는다. 이것이 물가에서의 행군이다.


제10편 지형(地形)

 

나도 갈 수 있고 적도 올 수 있는 곳을 통(通)이라 한다. 통형(通形)에서는 높고 양지 바른 곳을 먼저 차지하고 보급선을 튼튼히 해두고 싸우면 이롭다.
갈 수는 있으나 돌아오기가 어려운 곳을 괘(掛)라 한다. 괘형(掛形)에서는 적이 준비가 없으면 나가서 이길 수 있으나, 만일 적이 준비가 되어있으면 이겨 돌아오기 어려우므로 불리하다.

내가 나가기에 불리하고 적이 나가기도 불리한 곳을 지(支)라 한다. 지형(支形)에서는 적이 비록 나를 이롭게 하더라도 나가지 말아야 하며, 그 적을 반쯤 나오게 하여 치면 이롭다.

 

제11편 9지(九地)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적으로 하여금 앞뒤가 상응치 못하게 하며, 대부대와 소부대가 서로 믿지 못하게 하며, 장교와 사병이 서로 구원하지 못하게 하며, 상하가 서로 돕지 못하게 하고, 병사가 흩어져 모이지 못하게 하며, 모인다 하더라도 질서가 잡히지 못하게 한다
잘 싸우는 자는 솔연(率然)과 같다. 솔연은 상산(常山)에 사는 뱀으로 그 머리를 치면 꼬리가 덤비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비고, 그 중간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덤빈다.

처음에는 얌전한 처녀처럼 시작하지만, 문을 열면 뛰쳐나온 토끼처럼 적이 미처 항거하지 못하게 한다.

 

제12편 화공(火攻)

 

화공은 불이 안에서 일어나면 밖에서도 호응하여 공격하고, 불이 났는데도 적진이 고요하면 때를 기다려서 공격하고, 불이 바람부는 위 쪽에서 일어났으면 바람부는 아래 쪽에서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제13편 용간(用間)

 
장군이 뛰어난 성공을 거두는 까닭은 적정을 먼저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향간(鄕間)은 지역 사람을 쓰는 것이고, 내간(內間)은 상대 국가의 벼슬아치를 쓰는 것이고, 반간(反間)은 적국의 간첩을 역이용하는 것이고, 사간(死間)은 일부러 정보를 노출하여 간첩이 속아서 적에게 알리도록 하는 것이며, 생간(生間)은 적지에서 생환하여 돌아와 보고하게 하는 것이다.
치고자하는 성(城)이나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먼저 장수와 좌우의 측근, 당번, 문지기, 심부름꾼 이름을 아군 간첩으로 하여금 찾아서 알아내야 한다. 

 

 오자병법 (吳子兵法)

 

 '오자병법(吳子兵法)'은 '손자병법'과 함께 중국의 양대 병법서로 꼽힌다.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서 한 말, '살기 바라는 자는 죽고, 죽기 각오한 자는 산다(必生卽死 必死則生)'는 말은 '오자병법'에 나온다.

 오기(吳起)는 어떤 사람인가. '사기(史記)'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을 소개한다.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인데 공부는 증자(曾子)한테 배웠다. 젊었을 적에 집안에 천금이 있었으나, 벼슬 얻지 못하고 파산하자 마을 사람들이 비웃었다. 이에 오기는 비방한 30여 명을 죽이고 위()나라 성문을 빠져나갔다. 그때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자기 팔을 깨물며 '저는 재상이 되기 전에는 위()나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했고, 그후 얼마 뒤 어머니가 죽었지만, 오기는 끝내 돌아가지 않았다. 

 오기가 노나라로 갔을 때, 노나라는 제나라의 침공을 받고 있었지만, 노나라 군주는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라 장군으로 임명하기를 주저하였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오기는 집으로 와 아내 전씨에게 물었다.

'남편이 적군과 싸워 대공을 세우고, 만석의 국록을 받고 이름을 천추만세에 남긴다면 이는 집안을 크게 일으키게 되는 것이오. 부인은 내가 그리되기를 바라오?'

'남편이 그리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오기는,

'지금 제나라가 노나라를 치고 있소군주는 나를 대장으로 시킬 생각이지만 내가 제나라 전씨 집안에 장가 들었다는 이유로 머뭇거리고 있소.'

하고는 칼을 뽑아 아내의 목을 치고 비단으로 아내의 머리를 싼 뒤 노목공을 찾아갔다.

 이에 노목공이 오기를 대장으로 삼자, 오기는 제나라를 물리쳐 상경 벼슬을 얻었. 그러나 오기는 '모친이 죽었는데도 분상(奔喪)하지 않고, 자신의 처를 죽이면서 장수가 되고자 한 각박한 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으므로 노나라 군주도 끝내 오기를 해임했다.

 그후 오기는 위()나라 문후(文侯)를 섬기면서, 진()나라 성 다섯 개를 빼앗았다.

장군이면서 병사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잠을 잘 때 자리를 깔지 않고, 행군할 때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식량은 직접 들고 다니며 병사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한번은 종기가 난 병사가 있었는데, 오기가 그 병사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었다. 병사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 했다. 옆에서 그 이유를 물었다.

 '당신 아들은 졸병에 지나지 않는데 장군께서 직접 고름을 빨아주셨소. 그런데 어찌 그토록 슬피 우시오?'
그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장군께서 애 아버지 종기를 빨아준 적이 있었는데, 남편은 장군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몸을 돌보지 않고 싸우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아들 종기를 빨아 주셨다니, 그 애 또한 곧 죽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는 것입니다.'
 
 문후는 오기를 서하(西河)의 태수로 임명했는데, 재상에 전문(田文)을 임명했다. 오기는 전문을 찾아갔다.
 '당신과 공로를 비교해보고 싶은데 어떻소? 삼군(三軍)을 다스리는 장수가 되어 병사들에게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우게 하고, 적국으로 하여금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한 점에 있어서 당신과 비교하면 누가 더 낫소?'
 '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관리를 다스리고 국민과 화합하며 나라의 창고를 가득 채운 점에서는 누가 더 뛰어나오?'

'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서하를 지켜 진나라 군사들이 동쪽으로 쳐들어 오지 못하게 하고, 한나라와 조나라를 복종시킨 점에서는 누가 낫소?'

'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다시 물었다.

'이 세 가지 점에서 당신은 모두 나보다 못한데, 윗자리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그러자 전문이 대답했다.

'왕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신하들은 왕의 말을 듣지 않으며, 백성들은 왕을 믿지 못하고 있소. 이런 시기에 재상 자리를 당신이 맡는게 좋겠소, 내가 맡는게 좋겠소?'

 이에 오기는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당신이 맡는게 낫소.'
 하고 말했다.  

 

 문후(文侯)가 죽자 오기는 그 아들 무후(武侯)에게 신임 받았으나, 간신들 농간으로 초나라로 망명하였다. 

초나라 도왕(悼王)은 오기를 재상에 임명하자, 오기는 법령을 자세히 밝히고, 필요하지 않은 벼슬을 없애고, 부강병책을 실시했다. 주변국을 제압하고 국세를 떨쳤지만, 도왕이 죽자, 평소 오기를 미워하던 대신들과 왕족들이 일제히 오기를 공격했다. 오기는 쫒기다가 가망이 없자, 도왕의 시신 뒤에 엎드렸다. 오기를 공격하던 무리들은 여기다 화살을 쏘아댔다. 화살은 오기를 죽였지만, 도왕의 시신까지 꿰뚫었다.

 도왕의 장례식이 끝나자, 새 임금이 된 태자는 왕의 시신에 화살을 쏜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멸족의 화를 입은 집이 70여 세대나 되었다. 죽음까지도 전략을 택한 오기였다.

 

 오기(吳起)는 기원전 440년 위(衛)나라에서 태어났으며, 노(魯)나라에서 첫 벼슬을 하다가 위(魏)나라를 거처 초(楚)나라 재상으로 있다가 기원전 381년에 살해되었다.

 춘추시대 주인공이 손자라면 전국시대는 오자가 주인공이다. 오기는 76번의 큰싸움에서 64번의 완전승리와 12번의 무승부로 위나라의 영토를 사방 천리나 넓혔다.

 '오자병법'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48편이라 했으나, 현재 6편이 남아있다.

 

 오자병법(吳子兵法)

 

 1 도국(圖國)

 

군주가 각별히 유념해야 할 4가지

 

 나라가 하나로 결속되어 있지 아니하면, 군대를 출진시켜서는 아니된다.

()이 하나로 뭉쳐있지 아니하면, 부대를 움직여서는 아니된다.

진영(陣營)이 단합되어 있지 아니하면, 나아가 싸우게 해서는 아니된다.

전투에 임하여 일사불란하지 아니하면, 결전을 해서는 아니된다.


전쟁을 해서는 안될 시기

 

 통치자와 국민이 화합하지 못할때, 군대의 상하가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이루지 못하여 불화할때, 투입된 부대가 상호협조하지 못하고 불화할때, 공격중 부대가 일치단결하지 못하여 불화할때.

제2편 요적(料敵)

 

의 핵심전력으로서 선별하여 아끼고 우대해야 할 병사

호랑이처럼 용맹한 자. ()이 남다른 자. 매우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자. 적의 군기를 빼앗고 적장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자.

 

교전을 피해야 하는 경우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으며, 경제력이 풍부할 때.

군주가 어질고 현명하여 정치가 잘 이루어질 때.

신상필벌이 공정하고 엄격할 때.

전공을 세운 자가 높은 지위에 오르고,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될 때.

병력이 많고 군비가 충실할 때.

외교에 능하여 유사시에 인접국이나 강대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때.

 

지체없이 공격해도 무방한 경우

 

겨울날 이른 아침에 적이 얼어붙은 강을 도강하려 하는 경우.

여름날 오랜 강행군으로 적의 말과 군사들이 갈증과 허기를 느낄 때.

적이 출병한지 오래되어 식량이 떨어졌으며백성들이 원망하고 불길한 조짐들이 나타남에도 군주가 이를 무마 못할 때.

적의 군수품이 고갈되고 땔감이 부족한데, 날씨마저 악천후가 거듭되어 현지조달이 어려울 때.

적의 병력이 부족하고 수질과 지형이 나빠 군사와 말들이 질병에 시달리는 데도 증원군이 오지 않을 때.

오랜 행군 중에 병사들은 지치고 사기가 떨어졌으며, 귀찮은 나머지 식사도 하지 않고 갑옷을 벗고 쉬려고만 할 때.

지휘관은 무능하고 간부들은 경솔하며, 병사들은 단결되지 않아 상호간에 협조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진지 배치가 불안정하고 숙영상태도 어수선하며, 지형을 높은 곳에 선정해 절반 이상이 노출되어 있을 때. 

 

3 치병(治兵) 

 

 무후(武侯)가 물었다. 

'용병에서 우선시 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소?' 
오기(吳起)가 대답했다. 
'먼저 사경(四輕), 이중(二重), 일신(一信)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오?'

'땅이 말을 가벼이 여기고, 말이 수레를 가벼이 여기며, 수레가 사람을 가벼이 여기고, 사람이 싸움을 가벼이 여기도록 해야 합니다. 지휘관이 지형을 잘 선택할 수 있다면 말이 경쾌하게 달릴 수 있을 터이니 땅이 말을 가벼이 여길 것이요, 제때에 먹이를 주면 힘이 넘치므로 말은 수레를 가벼이 여길 것이며, 바퀴 축에 기름칠을 충분히 하면 수레는 사람을 가볍게 여길 것이고, 병기와 갑옷이 예리하고 튼튼하면 병사들은 싸움을 가벼이 여길 것이니 이를 사경(四輕)이라 합니다. 

 나아가 싸운 자에게는 큰 상을 주고, 뒤로 물러난 자는 무거운 형벌을 내려야 합니다. 이를 이중(二重)이라 하는 것입니다.

상벌의 시행이 공정하고 분명하여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이를 일신(一信)이라 합니다.

이러한 이치를 헤아려 시행하는 것이 바로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잘 육성된 군대 

 

 잘 육성된 군대란 평상시에는 예절이 깎듯하고, 일단 움직였다 하면 위풍 당당하여 공격에 당할 상대가 없고, 후퇴하면 쫓아오지 못합니다. 전진과 후퇴에 절도가 있고, 좌우 이동이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면, 설령 부대가 단절되더라도 진을 유지하고, 분산되어 있더라도 대오를 갖추게 됩니다. 또한 상하가 동거동락하고, 생사를 함께 합니다.

 이러한 군대는 흩어지는 일이 없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지칠 줄 모르므로 어디에 투입해도 천하에 당할 자가 없습니다. 이를 일컬어 '부자지병(父子之兵, 부자간처럼 끈끈한 정으로 이뤄진 군대) 이라 합니다.

 전쟁터란 항상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살고, 요행히 살아남기를 바라는 자는 죽습니다(必死卽生, 幸生卽死). 훌륭한 장수는 그 임전 태도가 마치 물이 세어 침몰하는 배나 불에 타 무너지는 집에 있는 사람처럼 결연합니다.' 

 

 4 논장(論將)

 

 오자(吳子)가 말하였다. 

 문()과 무()를 겸비하는 것은 지휘관의 요건이요, 강()과 유()를 겸용하는 것은 용병의 요건입니다.   사람들이 장수를 논할 때 흔히 용()만을 보는 경우가 많지만, 은 지휘관의 덕목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용장(勇將)은 무턱대고 적과 싸우려고만 하는 법입니다. 경솔하게 싸울 줄만 알고 득실을 살필 줄 모른다면, 훌륭한 장수라 할 수 없습니다.

 

  장수는 일단 출전명령을 받으면, 집에 알리지 않고 나아가 적을 무찌른 후에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지휘관의 자세입니다.  

 

 전투의 승패를 가늠하는 요소 네 가지

 

 첫째가 기세(氣勢)이고, 둘째가 지세(地勢)이며, 셋째가 용병술(用兵術)이고, 넷째가 전투력(戰鬪力)이다. 

백만 대군이라 하더라도 그 위용과 사기는 지휘관의 역량에 좌우된다. 이를 '기세'라 한다. 

길이 좁고 험하며 큰 산이 가로막고 있는 지형은 열 명이 지켜도 천 명의 적이 지나가지 못한다. 이를 '지세'라 한다.

첩자를 잘 이용하고 기동부대를 적절히 운용하면 적의 병력을 분산시킬 수도 있고, 군신 상하간을 반목시킬 수 있다. 이를 '용병술'이라 한다.

전차나 배를 튼튼하게 만들도 잘 손질하며, 병사들에게 전투기술과 진법을 숙달시키고, 말이 잘 달릴 수 있도록 조련하는 것을 '전투력'이라 한다. 이 네 가지를 잘 아는 자라야 지휘관으로 삼을 수 있다.

 
 적진의 파악

 

 전투의 요결은 반드시 먼저 적장(敵將)이 어떤 인물인지 판단하고 그 능력을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적장이 만약 어리석고 남을 잘 믿는다면 속임수를 써서 유인합니다.

탐욕스럽고 명예를 가볍게 여기면 재물로 매수합니다.
변덕이 심하고 책략이 없으면 피로하게 만들어 곤경에 빠뜨립니다.
상관은 넉넉하고 교만한데, 부하들은 궁핍하고 불평하면 그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진퇴에 결단력이 부족하여 부하들이 믿고 따르지 못하면 놀라게 하여 도망치게 합니다.
병사들이 지휘관을 경시하고 향수에 젖어 있으면 평지를 차단하고 험지를 열어놓아 요격합니다.
 
제5편 응변(應變) 

 

 무후(武侯)가 물었다. 

'만약 적이 아군보다 수가 많을 때는 어찌하오?'

오기(吳起)가 대답했다. 

 '평탄한 지형을 피하고, 험한 지형에서 적을 맞아야 합니다. 옛말에 하나로 열을 치는데는 좁은 곳이 가장 좋고, 열로 백을 치는 데는 험한 곳이 가장 좋으며, 천으로 만을 치는 데는 막힌 곳이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소수의 병력이 좁은 길에 있는 적에게 갑자기 징과 북을 울려댄다면 적은 아무리 병력이 많다 해도 혼비백산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대를 거느리면 평지를 차지해야 하며, 소부대를 거느리면 험지를 차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좌우에 높은 산이 있고, 지형이 아주 협소한 곳에서 갑자기 적과 마주쳐 공격도 후퇴도 여의치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오?'

오기(吳起)가 대답하였다. 

 '이러한 경우를 곡지전(谷地戰)이라 합니다. 이때는 병력이 많아도 쓸모가 없으므로, 유능한 병사들만을 가려 적과 상대해야 합니다.

몸이 날랜 병사들에게 예리한 무기를 주어 앞에서 싸우도록 하여, 적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전차와 기병은 분산시켜 사방에 숨겨두고, 멀찍이 간격을 띄워서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합니다.

 적은 필시 진지를 강화하느라 전진도 후퇴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틈을 이용하여 본대는 대열을 갖추고 유유히 빠져 나와 산 밖에 진을 칩니다. 이렇게 되면 적은 틀림없이 깜짝 놀라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때 전차와 기병을 움직여 계속 공격을 가함으로써 적에게 숨돌릴 여유조차 없게 만듭니다. 이것이 곡지전의 요령입니다.'

 

 6 여사(勵士)

 

 여사(勵士)병사들을 격려한는 뜻이다

 무후가 물었다.

'상벌을 엄정하게 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소?'

'제가 생각하기에는 군께서 평소에 전공자를 우대하여 잔치를 베푸시되, 전공이 탁월한 자들은 앞줄에 앉혀서 고급 기물과 최고의 음식을 올리고, 약간의 공이 있는 자들은 가운데 줄에 앉혀서 조금 못한 기물과 음식을 꾸며주며, 공이 없는 자들은 뒷줄에 앉히고 평범한 식탁을 차리며, 연회가 끝나고 나가려 할 때, 상금을 하사하고, 해마다 그 부모를 위로하면 될 것 입니다.

 무후는 오기의 이 말을 3년간 시행하였는데, 후에 진(秦)나라가 침범했다. 위나라 장정들은 이 소식을 듣자 동원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스스로 갑옷을 입고 달려가 용감히 싸워 진나라 군대를 격퇴하였다.

진나라를 격퇴한 후 무후가 오기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가르침대로 해서 일이 잘 이루어졌소.'

오기가 대답했다.

'죽음을 각오한 도적 한 명이 벌판에 숨어 있다고 한다면, 천 명 인원도 그를 겁먹을 것 입니다. 죽기로 작정한 도적처럼 싸움에 임하였으니 아무도 상대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손빈병법(孫臏兵法)

 

 *손빈병법은 무경칠서는 아니지만 소개한다.

 

손무가 죽고 백 오십 년 쯤 지나, 손빈(孫臏)이라는 후손이 나타났다.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또 다른 손자(孫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중기 제(齊)나라 손빈이다. 젊어서 손빈과 방연 두 사람은 은자인 귀곡자 밑에서 병법을 배웠다고 한다.

 

*귀곡자는 전국시대 중기 천하를 풍미한 종횡가의 시조로 알려진 인물이다. '일통지(一統志)'에 귀곡자의 이름을 왕훈(王訓), 왕선(王禪), 왕후(王栩), 왕후(王詡) 등으로 기록해놓았다. 지금 하남성 일대인 초나라의 운몽산(雲夢山)에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수도했고영천(潁川)과 양성(陽城) 근처에 소재한 귀곡(鬼谷)에 은거한 까닭에 ‘귀곡선생’으로 불렀다고 한다.

 

 손빈은 방연(龐涓)과 병법을 배웠는데, 방연은 공부를 마친 다음 위나라  혜왕(惠王)의 장군으로 등용되었다. 방연은 자신이 손빈만 못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까닭에 혜왕이 손빈을 초청하자 용할 것이 두려워서 죄를 뒤집어 씌웠다. 손빈의 선조 손무가 남긴 병서를 손에 넣기 위해 손빈을 죽이지 않고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형벌인 빈형(臏刑)을 가해 앉은뱅이로 만들고, 손빈의 얼굴에다 경형(黥刑)까지 남겼다.

그러나 손빈은 제나라 사자의 수레에 숨어 탈출하여 제나라 전기(田忌)라는 장수를 섬겼다.

 때마침 전기는 공자들과 경마 내기를 즐기고 있었다. 손빈은 내기를 구경하다가 이기는 법을 간파하여 전기에게 일러주었다.

즉, 먼저 제일 못한 하등 말을 상대의 상등 말과 붙여서 한 판 져주고, 다음 상등 말을 상대의 중등 말과 붙여 한 판 만회한 다음, 상대의 하등 말과 내 중등 말을 붙이라는 것이다. 전기는 2승 1패로 내기에 이겨 천금을 얻자, 손빈을 신임하게 되었다. 손빈이 제기한 이 방법을 '삼사법(三駟法)'이라 부른다.

   

 훗날 위나라와 싸움을 하게 되어 손빈은 방연의 10만 군대와 마주치게 되었다, 손빈은 위나라 군사가 사납고 용맹스러워 제나라 군사를 깔봄을 알았다. 그래서 약한듯 보이고자 일부러 후퇴하면서 숙영지를 옮길 때마다 아궁이 수를 오늘은 5천 개 내일은 3천 개 하는 식으로 줄였다.

 이를 본 방연은 도망병이 속출한 것으로 판단하여, 보병을 떼어놓고 정예부대만 끌고 급히 추격했다.

 손빈은 방연의 진군 속도를 계산해보고, 그들이 저녁에 마릉(馬陵)이라는 곳에 도착할 것임을 알았다. 

 마릉은 길이 좁고 험한 산속이라 복병을 두기에 알맞았다.

 손빈은 길가 큰 나무에다 '방연은 이 나무 밑에서 죽으리라(龐涓死于此樹之下)'고 써두었다. 그리고 사람을 뽑아 활과 쇠뇌를 가지고 길 양편에 숨도록 한 후, '날이 저물어 이곳에 불이 밝혀지면, 즉시 일제히 쏘도록 하라.'고 명해 두었다.

 과연 날이 저문 후 방연이 그 나무 밑에 이르게 되었고, 거기 쓰여진 글씨를 보기 위해 불을 밝히게 했다. 그러자 미쳐 그것을 다 읽기도 전에 수많은 화살이 쏟아졌다. 방연은 더 이상 지혜를 써볼 수 없음을 알고, '내가 오늘 기어히 그 녀석 이름을 떨치게 만들었구나.' 하고 스스로 칼로 목을 쳐 죽었다.

 손빈은 이 승리로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고, 병법이 전해지게 되었다.

 

'손빈병법'은 30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편명이 밝혀진 것은 금방연(擒龐涓), 위왕문(威王問), 진기간루(陳忌間壘), 찬졸(纂卒), 월성(月城), 팔진(八陳), 지보(地葆), 세비(勢備), 행찬(行纂), 살사(殺士), 연기(延氣), 관일(官一), 십진(十陳), 사간(士間), 약갑(略甲), 객주인분(客主人分), 선자(善者), 오명오공(五名五恭), 장의(將義), 장패(將敗), 기정(奇正), 모두 21편이다.

 금방연(擒龐涓, 방연을 잡다)은 '사기'에도 기록되어 있고 마오쩌둥의 논문에도 인용되고 있다. 진기문루(陳忌問壘, 진지를 굳건히 다져라), 위위구조(圍魏救趙,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하라.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법이다), 감조유적(減灶誘敵, 솥을 줄여 적을 유인하라), 연기(延氣병사들 사기를 진작시켜라)와 같은 전법은 현재도 유용하다.

  

 

 

 무경칠서(武經七書) 제2편

육도(六韜). 삼략(黃石公三略). 사마법(司馬法) 편

 

 '무경칠서(武經七書)'는 중국 북송 때부터 무인들의 과거 시험 과목일 정도의 병가 필독서다. 육도(六韜), 삼략(黃石公三略), 사마법(司馬法), 울료자(尉繚子), 손자병법(孫子兵法), 오자병법(吳子兵法), 당리문대(唐太宗李衛公問對)  등이 있다.

 

  육도(六韜)


 '육도'는 태공망() 여상()이 지은 것이다역대 병서 중 가장 오래된 3,000년 전 병법이다.

 강태공은 염제신농황제(炎帝神農皇帝)의 51세손이요, 백이(伯夷)의 36세손이다. *晉州 姜씨 선조이다.  

 태공은 젊은 시절 곤륜산에서 수도 하였고, 은나라 주왕(紂王)의 폭정을 피해서 동해(東海)에 숨어살면서 10년 동안 위수() 반계()에서 곧은 낚시를 물에 드리웠다. 주(周) 문왕(文王)을 만났는데, 문왕은 사냥을 나가기 전 점괘에 하늘이 내려주신 스승을 만난다고 해서 사흘 목욕재계 하고 나갔다고 한다.

 문왕이 낚시에 대해 묻자 태공망이 대답했다. '낚시에는 세 가지 권도가 있습니다. 미끼로 물고기를 취하는 것은 녹봉을 주어 인재를 취하는 것과 같고, 좋은 미끼를 쓰면 큰 고기가 잡히는 것은 후한 녹봉을 내리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충신이 나오는 것과 같으며, 물고기의 크기에 따라 쓰임이 다른 것은 인품에 따라 벼슬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낚시줄이 가늘고 미끼가 뚜렷하면 작은 물고기가 물고, 낚시줄이  굵고 미끼가 향기로우면 중치의 물고기가 물고, 낚시줄이 굵고 미끼가 크면 큰 물고기가 물게 마련입니다.'

 

 천하에 대해서 묻자. '천하는 군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며, 만백성의 천하입니다. 천하의 이익을 백성과 더불어 나누는 군주는 천하를 얻고, 천하의 이익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군주는 반듯이 천하를 잃게 됩니다.

하늘에는 춘하추동 네 계절이 있어 음과 양이 순환하고 그로 말미암아 대지에는 생산이 이루어져 재물과 보화가 있게 됩니다.

  이 하늘의 시와 땅의 재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조금도 사심이 없는 것을 인(仁)이라고 합니다.  인이 있는 곳에 천하의 인심은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게 된 것을 건져주고, 재난을 당한 사람을 도와 주며, 사람의 환란을 구제해 주고, 위급한 사람을 구원해 주는 것은 덕(德)입니다. 덕이 있는 곳에 천하 인심은 돌아가는 것입니다.

 뭇 사람들과 시름을 같이 하고, 뭇 백성들과 즐거움을 같이 하며,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면 이것은 의(義)입니다. 의가 있는 곳에 천하의 인심이 쏠리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죽는 것을 싫어하고 사는 것을 즐거워하며, 덕을 좋아하고 이득을 따릅니다. 애써 사람을 살리며 사람을 부유하게 하려고 꾀하는 것을 도(道)라고 합니다. 도가 있는 곳에 천하의 인심은 귀의하는 것입니다.' 하고 답했다.

 

 이때가 기원전 1140년으로  태공망 나이 72세 때다. 문왕은 태공을 국사(師)로 모셨고, 주나라는 견융(犬戎), 밀수(密須) 등을 공격하고려(黎), 한(邗), 숭(崇)을 멸망시키어, 문왕(文王) 만년에 천하의 3분의 2를 얻었다.

 아들 무왕(武王)이 주왕을 토벌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유명한 주왕은 달기와 녹대(鹿台)에서 한창 술을 마시고 있다가 병사 70만을 편성하여 목야(牧野) 전선에 나갔지만 무왕의 4만6천 소수 군대에 패전하여 스스로 마른 풀을 쌓아 불을 지르고 타죽었다.   

 무왕은 개국공신 강태공을 산동성(山東省) 군주에 봉했으니, 나라 이름을 제(濟 )라 한다. 제나라는 강태공으로부터  20 대 강공(康公)까지 왕위를 계승했다.

 

 '육도(六韜)'의 죽간(竹簡)이 1972년 임기현 은작산에 있는 한무제(BC 140년경)의 고분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동안 전해 내려온 전본(傳本)과 일치했다.

 

 '육도'의 '도(韜)’는 원래 활집이나 칼 전대를 말한다.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군사적 비밀 책략, 혹은 병법의 비결을 뜻한다. 국력 양성과 전쟁 준비, 전략 전술, 지휘 계통, 보병, 전차,·기병의 배치와 전투, 무기와 군사 조련등 전반적인 군사문제를 다루고 있다. 
'육도'는 총 6권 6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왕(文王), 무왕(武王)의 물음에 대해 강태공의 답변 형식이다.

 

 1)문도(文韜 ) 

 

 천하의 인심을 끌어 다니는 방법

 

 문왕이 물었다.

'민심을 어떻게 끌어들여야 천하를 얻을 수 있습니까?'

'하늘에는 사계절이 있어 만물을 키우고, 땅에는 갖가지 재물이 있어 사람을 살아가게 합니다. 이 하늘의 시(時)와 땅의 재화(財貨)를 함께 나누는 것이 인(仁)입니다. 인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내고 어려움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덕(德) 입니다. 또 남들과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하며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남들이 미워하는 것을 함께 미워하는 것이 의(義)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삶을 즐기려고 하고, 덕을 좋아하며 이익을 쫓는 법입니다. 이익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도(道)입니다. 도가 행해지는 곳에 천하 사람들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왕이 주의해야 할 육적(六賊)과 칠해(七害)

 

 왕이 항상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육적과 칠해가 있습니다. 먼저 육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신하가 있으면 왕의 덕을 해칩니다.

둘째, 생업에 힘쓰지 않고 법을 어기고, 관리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백성이 있으면 왕의 교화에 흠이 가게 됩니다.

셋째, 작당하여 현인을 음해하고 왕의 총명을 가리는 신하가 있으면 왕의 권위를 손상시킵니다.

넷째, 외국의 제후와 사귀면서 군주를 가볍게 보는 자가 있다면 왕의 위엄을 실추시킵니다.

다섯째, 직위를 경시하고 직무를 우습게보며 윗사람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창피해하는 신하가 있으면 공신의 노고에 허물이 가게 합니다.

여섯째, 백성의 재물을 빼앗고 능욕하는 세도가가 있으면 서민의 생업을 망치게 됩니다.

 

 칠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지략도 없고 재간도 없는 자에게 큰 상을 주면 허세를 부려 요행수를 바라는 자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 자를 장수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평판은 좋아 보이지만 실력이 없고, 안과 밖에서의 의견이 다르며 남의 장점을 무시하고 결점만을 들추어내어 교묘하게 처세하려는 자와는 큰일을 의논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 검소해보이려고 허술한 옷을 입고 욕심이 없는 것처럼 꾸미지만, 사실은 명예와 이익에 눈이 어두운 자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다섯째, 중상모략과 아첨을 일삼으며 지위나 봉록에만 관심이 있는 자, 원대한 계획도 없이 목전의 이익만 보는 자를 등용해서는 안 됩니다.

여섯째, 화려한 것이나 잡기에 빠져 농사를 게을리 하는 것을 금해야 합니다.

일곱째, 요술이나 주술, 불길한 예언으로 양민을 현혹하는 일을 금해야 합니다.

   

 성현들의 다스림

 

  태공이 대답했다. 

 '요임금이 천하의 임금노릇을 하실 적에는 금이나 은 또는 주옥으로 장식하지 않았고, 수놓은 비단이나 무늬 있는 비단 옷을 입지 않고, 이상야릇하고 유별난 것을 보지 않고, 가지고 놀 기물을 보배롭게 여기지 않고, 음탕한 음악을 듣지 않고, 궁의 담이며 방을 백토로 칠하지 않고, 수키와며 서까래며 기둥은 조각하지 않고, 띠풀이 뜰에 우거져도 깎지 않고,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으로 추위를 막고, 소박한 옷으로 몸을 가리고, 거친 쌀과 기장밥에 명아주나 콩잎국을 먹었습니다.

 부역을 시킴으로써 백성의 밭 갈고 베 짜는 시간을 빼앗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다듬으며 뜻을 제약하여 백성의 일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천하가 저절로 다스려지는 무위로 정치하셨습니다.

관리로서 충성되고 정직하며 법률을 잘 받드는 자는 그 직위를 높이고, 청렴결백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자는 그 녹을 두터이 하고, 백성으로서 효도하며 자애로운 자는 이를 공경하며 사랑하고, 농사하며 누에치기에 힘을 다하는 자는 이를 위로하여 힘쓰게 하였습니다. 선과 악을 분명히 구별하여 마을 입구의 문에 그것을 나타냈습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예절을 바르게 하며, 법도로써 간사함과 거짓됨을 금하고, 미운 사람도 공이 있으면 반드시 상주며, 사랑하는 사람도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하였습니다. 세상의 홀아비나 홀어미, 고아나 홀로 된 노인을 보호하고 양육했습니다. 재난이나 초상난 집을 물건을 주어 도와주었습니다.' 

 
 2)무도(武韜)

 

 무력을 쓰지않고 적을 이기는 법


 '그 방법에는 열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군주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어 그를 교만하게 하는 것이 첩경(捷徑)입니다.

 둘째는 적국의 중신에게 접근하여 재물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공작을 벌이는 것입니다.

 셋째는 왕의 측근에게 뇌물을 보내 몸과 마음이 따로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

 넷째는 적국에 많은 뇌물과 미인을 보내 즐기게 하면 적국은 자연히 망하는 길로 갈 것입니다.

 다섯째는 적국의 충신에게는 융숭하게, 군주에게는 약소하게 대해 충신이 가로챈 것처럼 보여 군신 사이를 이간질시킵니다.

 여섯째는 적국의 신하를 매수하고 그 신하로 하여금 적국의 내부를 붕괴시키도록 부추깁니다. 일곱째는 적국 군주에게 뇌물을 계속해서 보내 백성들을 아끼지 않도록 부추깁니다. 그 결과 생산량이 감소하여 창고가 비우게 될 것입니다.

 여덟째는 적의 중신에게 뇌물을 주어 모의를 하게 합니다.

 아홉째는 적국의 군주를 천자처럼 받들어 오만하게 하여 정사를 등한시하게 합니다.

 열 번째, 적국의 군주를 받들어 믿게 하여 신임을 얻은 뒤에 은밀하게 공격합니다.

 열 한 번째, 적국의 신하들에게 뇌물을 주어 군주의 이목을 막게 합니다.

 열 두 번째, 적국의 난신(어지럽히는 신하)을 길러 군주를 어둡게 하고 좋은 개와 말을 보내 사냥에 빠지게 하고 신하들까지 따라다니게 하여 피곤하게 합니다.'

 

  3)용도(龍韜)

 

장수가 갖추어야 할 5가지 자질 

 

(1)용기를 갖추면 용감하게 행하여 침략당하는 일이 없다.

(2)지혜를 갖추면 올바른 판단을 내려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다.

(3)인을 갖추면 부하들을 굳게 단결시킬 수 있다.

(4)신의를 갖추면 다른 사람도 속이려 하지 않는다.

(5)충성을 갖춘 장수는 성의를 다하며 배반하는 일이 없다.

 

장수가 경계해야 할 10가지 허물

 

(1)너무 용감하여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

(2)성급하게 속단하는 것

(3)탐욕스럽고 이익만 추구하는 것.

(4)너무 신중하여 결단력이 없는 것.

(5)미리 내다보고 겁이 많은 것

(6)누구나 쉽게 믿는 것.

(7)너무 청렴결백하여 남을 용서할 줄 모르는 것.

(8)지능을 믿고 긴장을 푸는 것

(9)지기 능력이 최고라고 과신하는 것

(10)의지가 약하여 어려우면 남에게 쉽게 맡기는 것. 

 

 인물 감정법

 

(1)질문하여 응답하는 모양이나 내용을 관찰한다.

(2)잇따른 질문으로 상대의 변화를 관찰한다.

(3)은밀히 일상생활을 추적하여 성실성을 관찰한다.

(4)솔직한 대답을 유도하여 인품을 관찰한다.

(5)금전의 관한 일을 맡겨 보아 청렴성을 관찰한다.

(6)여자로 하여금 유혹하게 하여 정결성을 관찰한다.

(7)위험이 닥쳤다고 알려 그 용기를 관찰한다.

(8)술을 먹인 다음, 그 취한 모양을 관찰한다.

 

 장수가 승리하는 세 가지 길

 

 예의 바른 장수는 추운 겨울철에도 혼자 따뜻한 털가죽 옷을 입지 않고, 무더운 여름철에도 혼자 부채를 잡지 않으며, 비가 내리더라도 혼자 우산을 펼치지 않아야 한다.

 노력하는 장수는 좁고 험한 길을 행군하거나 진흙탕을 거쳐가야 할 때, 반드시 수레나 말에서 내려 함께 걸으며 병사들과 더불어 괴로움을 나누어야 한다.

 욕심을 절제하는 장수는 군사들이 앉기 전에 먼저 앉지 말고, 군사들이 먹기 전에는 먹지 말 것이며, 추위와 더위를 군사들과 반드시 한가지로 한다.

 

 병농일치(兵農一致)

 

 무왕이 물었다

'천하가 안정되고 분쟁이 없을 때는 전쟁 도구를 만들 필요도 없고, 수비도 하지 않아도 됩니까?'

'공격과 방어하는 도구는 모두 농민에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농부가 사용하는 쟁기는 적의 침공을 막기 위해 흩어놓는 무쇠덩어리를 대신하고 농사에 쓰는 마소나 수레는 군대의 진영을 가리는 방패가 될 수 있습니다. 김매는 도구는 방패와 창이고 도롱이나 삿갓은 갑주와 방패이며 호미, 가래, 도끼, 톱, 공이 등은 성을 공격할 수 있고, 마소는 양식을 수송할 수 있으며, 닭과 개는 척후임무를 할 수 있습니다.

 부인들의 길쌈은 깃발에 해당하고, 남자 가 흙을 고르는 것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며, 잡초를 제거하는 것은 전차와 기마를 싸우게 하는 것 이고, 김매는 것은 보병을 싸우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추수를 하는 것은 군량을 비축하는 것이고, 부락에 몇 집씩 조를 짜는 것은 군중의 약속과 같고, 마을에 관리나 장이 있는 것은 장수와 같습 니다. 성곽을 수리하고 도랑을 치우는 것은 참호와 보수를 수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4)호도(虎韜)

 

 국경에서의 대치

 

 무왕이 물었다

'아군과 적군이 국경에서 대치하는데 어느 쪽도 먼저 손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먼저 군사를 세 곳에 나눕니다. 그리고 전군(前軍)은 참호를 깊이파고 보루를 높이고 수비를 완전하게 합니다. 이때 우리는 후군(後軍)에게 양식을 저축하게 합니다. 그리고 중군을 습격하게 하고 준비가 소홀한 곳을 공략합니다. 또 전방에 있는 아군 병사를 매일 투입해서 먼지로 대부대로 위장하며 적진으로 백보를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면 적진은 지치고 불안해 할 것입니다. 그때 전 군이 신속하게 공세를 취하면 이길 것입니다.'

 '그 밖의 방법으로 작전에는 신속하고 과감한 작전이 있어야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또 적의 동정을 미리 알아내는 것이 싸움에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의 안전은 엄중한 경계로 하여금 유지하게 하고 항복한 자는 죽이지 말 것이며 화공에는 화공으로 맞서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5)표도(豹韜)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치는 법

 

 무왕이 물었다.

'소수의 병력을 가지고 다수의 강한 적군을 치며, 약소국이 강대국을 치려면 어떻게 합니까?'

 태공이 대답했다.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치려면 해가 저물었을 때 매복해 있다가 불의의 습격을 가해야 합니다. 또 약소국이 강대국을 칠때는 이웃 나라와 큰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많은 예물과 예의를 갖추고 제후와 임금을 외교술로 설득해야 합니다.'

 '그 밖의 방법으로는 숲속에서의 싸움에서는 수비를 단단히 한 후에 아군의 병사를 서로 번갈아 싸우고 휴식을 취하게 합니다. 또 기습은 달이 없는, 어두운 밤에 해야 합니다. 높은 산이나 바위산에 이르렀을 때 포위가 되어 아군이 혼란해졌을 때는 오른쪽에 처하면 왼쪽을 방비하고 왼쪽에 처하면 오른쪽을 방비하고 법령이 엄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물가에서 싸울 때 혼란에 빠져있다면 적의 사자에게 뇌물을 주고 퇴로를 찾아내 철수해야 합니다.'

 

6)견도(犬韜)

 

열 네 가지 공격하기 좋은 시기

   

첫째, 대열이 정비되지 않았을 때

둘째, 식사하지 않아 배가 고플 때

셋째, 천시가 적에 불리할 때

넷째, 지리를 치지하지 않고 있을 때

다섯째, 분주하게 돌아다닐 때

여섯째, 지쳐있을 때

일곱째, 방심하고 있을 때

여덟째, 지위관이 대열에서 떨어져 있을 때

아홉째, 강을 건널 때

열번째, 장거리를 행군해 왔을 때

열한번째, 쉬지도 않고 일하고 있을 때

열두번째, 험하고 좁은 길을 지나고 있을 때

열세변째, 대열이 흩어져 있을 때

열네번째, 불안 동요하고 있을 때

  

기병전에서 승리를 얻는 법

 

(1)적이 막 도착하여 진이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전방의 기병을 격파하고 좌우를 공격한다.

(2)적의 진열이 정비되어 있으면 좌우에서 협공하여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며 공격한다.

(3)적의 진영도 견고하지 않고 전의도 없으면 앞뒤좌우에서 조여서 몰아낸다

(4)추격을 적이 두려워하면 양쪽과 후방을 신속하게 공격한다.

(5)견고한 방비도 없이 깊숙히 침입해 왔을 때는 보급로를 끊는다.

(6)적이 돌아다니다 지쳐 뿔뿔이 흩어지며 혼란을 일으키고 있을때 양쪽과 앞뒤를 습격한다.

(7)해가 저물어 돌아갈 때는 기병대와 전차대로 화살공격을 퍼붓는다.

 

 

 삼략(黃石公三略) 

 

 '삼략'의 '략(略)'은 꾀, 모략을 뜻하며 상략·중략·하략의 3편으로 이루어졌다.

 '삼략(三略)'은 원래 태공망의 병법서지만, 신비의 노인 황석공(黃石公)이 한고조 유방의 참모였던 장자방(張子房)에게 전해준 것이라 하여 '황석공삼략(黃石公三略)'이라 불린다.

  진시황을 박랑사((博浪沙)에서 척살하려다 실패한 장량이 하비에 숨어 있을 때다. 하루는 다리 위를 산책하다가 거친 삼베옷을 입은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은 신발을 다리 밑으로 떨어뜨리고 장량에게 그것을 가져오도록 부탁했다. 장량이 다리 아래로 내려가 신발을 주워왔더니, 노인은 신발을 신겨달라고 했다. 신발을 신겨주자 노인이 '내가 보니 너는 가히 가르칠 만하다. 닷새 뒤 새벽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고 하였다. 닷새 뒤 노인은 책 한 권을 내주며, '이 책을 읽으면 왕자()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아마 10년 뒤 그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13년 뒤에는 제수() 북쪽에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곡성산() 아래에 있는 황석()이 바로 나일 것이다.' 라고 말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곡성산은 지금 산동성 동아현 동북쪽에 있는 황산()이다. 책이 '태공병법()'인데. 장량은 그 병법으로 유방의 천하통일을 도왔다. 
 

 상략

 

 장수가 갖추어야 할 12가지 조건

 

(1)청렴할 것.

(2)사리판단에 밝을 것.

(3)균형감각을 지닐 것.

(4)빈틈이 없을 것.

(5)아량이 있을 것.

(6)불평불만에 귀를 기울일 것.

(7)도량이 있을 것.

(8)안목이 있을 것.

(9)풍속과 습관을 무시하지 말 것.

(10)지리에 밝을 것.

(11)객관적인 사회 정세를 알 것.

(12)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 것.

 

 장수가 범할 수 있는 과실

 

(1)충고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유능한 인물이 떠나가버린다.

(2)좋은 계책을 채택하지 않으면 지략 있는 선비들이 배반하게 된다.

(3)선과 악의 구별이 없으면 신하들이 일을 게을리 한다.

(4)자기주장대로 일을 처리하면 사람들이 책임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5)재물을 탐하면 부하들이 간사한 행동을 해도 단속할 수 없다.

(6)참소하는 말을 믿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가버린다.

 

 중략

 

 삼황(三皇)과 오제(五帝), 삼왕(三王)과 오패(五覇)의 차이점

 

 황제(黃帝), 복희(福羲), 신농(神農) 삼황 시대에는 임금이 말을 하지 않아도 덕이 사해에 퍼졌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그것이 누구의 공로로 이루어진 줄 몰랐다.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穀), 요(堯), 순(舜)의 오제 시대에도 덕이 사해에 미쳤으나 백성들은 천하가 다스려지는 까닭을 알지 못했다.

 우(禹), 탕(湯), 문(文), 무(武) 삼대에는 도덕으로 사람을 통제하던 시대였다.

 그 다음 패자의 시대에는 권력으로 사람을 통제하여 서로의 신뢰가 떨어지면 떠나고, 상이 부족하면 군주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  

 

 하략

 

 몸을 복종시키는 것은 예로 하고 마음을 복종시키는 것은 낙으로 한다. 또 거창한 것보다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꾀해야 한다. 선량한 백성에게는 선의로 흉악한 백성에게는 악의로 보답해야만 모든 명령이 잘 지켜진다. 싸움은 포악한 군주를 토벌하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를 치기 위해서 이다. 그러므로 횡포와 불의를 일삼아서 세상을 혼란으로 몰아넣는 자가 있을 경우에 한해서 할 수 없이 병기를 써야 한다. 

 

 경영육법(經營六法)

 

1) 획고수지(獲固守之) : 견고한 땅을 얻거든 이를 지켜 다시 빼앗기지 마라.
2)
획애색지(獲隘塞之) : 좁은 목을 얻거든 적의 통행을 막고 또 적을 기다리기도 좋다.

3) 획난둔지(獲難屯之) : 험난한 곳을 얻거든 아군이 진을 쳐 머물도록 한다.
4)
획성할지(獲城割之) : 적의 성을 빼앗아 얻거든 이를 나누어 장수에게 주도록 한다.

5) 획지열지(獲地裂之) : 적의 땅을 빼앗아 얻으면 이것을 나누어 장수에게 주어야 한다.
6)
획재산지(獲財散之) : 적의 재물을 얻으면 이것을 흩어서 병사에게 주어야 한다.

 

 경계팔법(警計八法)

 

1) 적동사지(敵動伺之) : 적이 움직이거든 살펴보아야 하며
2)
적근비지(敵近備之) : 적이 가까운 곳에 있거든 엄중히 군비를 갖추며
3)
적강하지(敵强下之) : 적의 세력이 강맹하거든 나를 낮추어 상대로 방심케 하며
4)
적일거지(敵佚去之) : 적이 편안하고 고달프지 않거든 싸우지 말고 피하며

5) 적능대지(敵陵待之): 적이 왕성하여 강할 때에는 그 세력이 약화되기를 기다리며
6)
적포수지(敵暴綏之): 적이 난폭하거든 꾀로서 이를 편안히 하여 누그러지게 하며
7)
적패의지(敵悖義之): 적의 행패가 심할 때는 대의로 이를 밝혀 바른길로 이끌며
8)
적목휴지(敵睦携之): 적의 상하가 화목하거든 간첩을 보내어 이간질 하라.
 

 

 사마법 (司馬法)

 

 '사마법' 저자는 분명하지 않다. 대개 춘추시대 제(齊)나라 사마양저(司馬穰苴) 저술로 본다.

 하, 은, 주 삼대의 군사 제도와 전쟁 경험을 총괄하여 고대의 전쟁 준비, 전투 지휘, 전장 상황, 각종 병기와 군사상 행정 업무,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인화(人和)의 중요성, 간첩의 활용, 병사의 심리 파악 등을 다루고 있다.

 

 양저(穰苴)는 제나라 사람으로 본래 성이 전(田)씨로, 환공 때 대부를 지낸 전완(田完)의 후손이다. 본명은 전양저(田穰苴)다. 

 경공(景公) 때 진(晉)나라가 공격해오고 연(燕)나라가 침범했는데, 제나라가 크게 패하자, 경공은 안영(晏嬰, 晏子)의 추천으로 전양저를 출정시켰다.

  출정식 날 양저는 해시계와 물시계를 설치해놓고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데, 군을 감독하는 감군(監軍) 장가(莊賈)가 전날 송별연으로  늦게 나타나자, '장수는 명을 받으면 그날로 집을 잊어버려야 하고, 군령이 정해지면 그 육친을 잊어버려야 하고, 북을 치며 진격할 때에는 자기 몸을 잊어버려야 한다. 지금 적군이 침입해 나라가 혼란하다. 병사들은 변경에서 낮에는 땡볕을 쬐고 밤에는 노숙하고 있으며, 왕께서는 잠자리에 들어도 편하지 않고 음식을 드셔도 맛을 모른다. 백성들의 목숨이 모두 그대들에게 달려 있거늘, 이 위급한 때에 무슨 송별연이란 말인가?' 하면서 목을 베어버렸다. 

 왕이 장가를 사면시키라는 왕명을 내려, 사자가 말을 달려 군영으로 들이닥치자, 양저는 단호히 말했다. '장수는 진중에 있는 한, 왕의 명이라도 받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군정에게 '군영에서 말을 타고 달린 자는 군법으로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고 물었다. '참형에 처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왕의 사자는 죽일 수 없다. 하지만 군법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면서, 말을 몬 마부의 목을 베고, 영내를 침입한 수레의 왼쪽 부목(駙木)을 잘라내고, 두 말 중 왼쪽 말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사자를 왕에게 보내 상황을 보고한 후 전쟁터로 출전했다.  

 군대의 편성이 완료되자, 양저는 병사들의 막사, 우물, 아궁이, 식수, 취사, 문병, 의약 등을 친히 살폈다. 장군에게 주어지는 재물과 양식을 모두 병사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병사들과 똑같이 의식주를 나누었다. 특히 병약한 병사들을 잘 보살폈다. 3일 후, 적과 싸우기 위해 병사들을 통솔하니 모든 병사들이 앞 다투어 나섰다. 심지어 아픈 병사들도 용감하게 출전했다.

 진(晉)나라는 이 소식을 듣고 공격해오다가 군사를 철수해버렸고, 연나라도 이 소식을 듣고 말머리를 돌려 황하를 건너 귀국했다. 전양저는 이를 무자비하게 추격하여 실지를 완전 수복했다.

 경공은 이 공로로 그를 대사마(大司馬=국방장관)에 임명했고, 이때부터 그를 사마양저(司馬穰苴)라 불렀다.

 그후 전양저는 기존 세력의 모함으로 병권을 박탈당하고 울분 속에 죽었으나, 양저의 후손 전화(田和)가 혼란기를 틈타 제후(齊侯) 반열에 들고, 전화의 손자 인제(因齊)는 스스로 위왕(威王)이 되었다.

 위왕은 태공망 병법과 양저의 병법을 정리하여 '사마양저병법(司馬穰苴兵法)' 155편을 편찬하였는데, 현재 5편만 남아있다.

 

 제1편 인본(人本) 

 

 평상시 인의(仁義)를 바탕으로 국가와 백성을 다스려 전쟁을 준비하되, 불가피한 경우만 전쟁을 치러야 한다. 무인과 문인, 통치자와 수명자의 역할수행을 구분하고, 민심(民心)과 군심(軍心) 관리에 역점을 두되, 농번기가 아닐 때는 군사훈련을 통해 전략 전술을 연마하고, 유사시는 적의 동태와 민심을 살펴 허점을 포착하여 일사불란한 공격으로 최소한의 피해로 전승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인의를 근본으로 하되 전쟁을 좋아하면 나라가 망한다. 나라가 비록 크다해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고, 천하가 비록 편안해도 전쟁을 망각하면 반드시 위태롭다.

 전투능력 상실자, 부상자,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인이다.


 제2편 천자지의(天子之義)

 
 현명한 군주가 있다 하더라도 백성을 사전에 교육해 두지 않으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없다. 백성을 먼저 가르쳐라.

 조정에서의 법을 군대에 적용하지 않는다. 국가를 경영하는 방식으로 군대를 지휘하지 말고, 군대를 통솔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통치하지 말라.

 문무는 서로 보완되어야 한다. 조정의 관리(國容)들은 무관의 일에 관여치 않고, 무관의 관리(軍容)들은 문관의 일에 관여치 않는다.

   
 제3편 정작(定爵)

 

 장군이란 몸통 같은 것. 사병은 사지(四肢), 대오는 손가락(五指) 같은 것이다. 전투 대형․ 전투 지휘는 내손바닥의 손가락 같아야 한다.

 전쟁은 권모술수다, 전투는 용맹해야 하고, 포진은 교묘해야 한다.

 국정에 있을 땐 신뢰로 은혜를 베풀고, 군에 있을 땐 전략 전술에 널리 힘쓰고, 교전이 됐을 땐 민첩하고 과감해야 한다.

 

 제4편 엄위(嚴位)

 

 병력의 과다보다는 전술을 우선해야 한다. 만약 부하들이 극심할 정도의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땐 죽이지 말라.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안심을 시키고 '살려주니 공을 세우라'고 하라.

 군법은 엄격하라. 부하들은 교육훈련으로 결속되면 사람들은 죽음조차 가벼이 여기고, 도의로 결속되어 있으면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죽어간다. 한 명이 죽어 여럿 살리면 그것이 정의고, 번영의 길이다. 

 승패는 장군 한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 대장이 부화뇌동하면 부하의 신뢰를 잃고, 대장이 외골수면 많은 부하를 죽이고, 대장만 살려고 한다면 많은 의혹이 부풀리고, 대장이 죽으면 전투에서 이기지 못한다.

 장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않된다. 싸움에서 패하면 책임은 자신이 져라. 전투에서 승리하면 부하들과 공적을 나누어라. 

  

 제5편 용중(用衆)

 

 병력이 적으면 빈번하게 부대를 운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고, 병력이 많으면 정면공격 가능한 이점이 있다.

 병력수로 적의 변화를 관찰하라. 진퇴(進退)로 적의 방어상태를 관찰하라. 위협을 가해 적의 심리상태를 관찰하라. 전투 중지를 통해 적의 마음을 관찰하라. 기습으로 적의 질서와 규율을 관찰하라. 

 적의 수도를 공격할 때는 반드시 진입로와 퇴출로를 생각하라.

 싸움에 이겼을 경우 적의 달아날 구멍을 열어 주어라.

 


 

 '무경칠서(武經七書)' 제3편

'울료자(尉繚子)', '당태종이위공문대(唐太宗李衛公問對)' 편

  

  '울료자(尉繚子)'

 

 전국시대 울요(尉繚)라는 사람이 쓴 '울료자(尉繚子)'는, 1972년 산동성 임기현 은작산 한무제 고분에서 죽간본  일부가 발굴되어, 송대에 '무경칠서(武經七書)'의 하나가 되었다.

 저자로 알려진 울료(尉繚)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기(史記)' '진시왕본기'에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하기 16년 전에 울료라는 사람이 당시 정(政)이라 부르던 진시황을 만났고, 나중에 진나라 군사의 최고 장관인 태위직을 맡고 6국을 병탄할 모략을 획책하여 그 대업을 성취했다'고 나와 있다. 전국 시대 말기 인물로  짐작된다. 일설에 그는 맹자와 동시대를 살았고, 귀곡자(鬼谷子)의 수제자 였으며, 상앙(商鞅)을 숭상했다고 한다.

 본(原文)은 29편 혹은 31편이라는 설이 있지만 현재 24편만 남아 있다.

 중요 내용을 소개한다.


1. 천관(天官) 


 '천관’은 천체의 방위와 운행 및 바람, 구름, , 눈 등의 기상 현상을 뜻하는데, 울료자는 전쟁은 이 '천관'보다 사람의 일,'인사(人事)'에 있다고 주장했다.

 양혜왕이 울료자에게 물었다.

'황제(黃帝)는 덕과 형벌을 사용해 백전백승을 거두었는데그런 일이 있었소?' 

료자가 대답했다.

'지금 성곽이 하나 있다고 합시다. 만일 동쪽과 서쪽에서 남쪽과 북쪽에서 협공을 가해도 함락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천관<天官, 시일(時日), 음양(陰陽), 향배(向背)> 알아보고 공격한 것이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습니다. 그러나 공격이 성공하지 못한 원인은 성벽이 높거나, 성을 둘러싼 해자가 깊거나, 무기가 잘 정비되어 있거나, 군량을 포함한 물자가 풍부했거나, 뛰어난 인재가 있어서 입니다이로써 보면 천관(天官)을 따지는 일은 인사(人事)만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병담(兵談)   

 

 군사 다스리는 일은 마치 땅이 모든 것을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하늘이 드높아 높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병력을 분산시킬 때 넓게 포진시킬지라도 통제를 잃는 일이 없고, 밀집대형으로 포진시킬지라도 좁은 공간으로 인해 전투력을 발휘 못하는 일이 없다.

   

 장수는 마음이 넓어 쉽게 자극을 받아 화를 내는 일이 없고, 청렴하여 재물을 탐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만일 마음이 광포하거나, 남의 말을 듣지 않거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우장수 자격으로 실격이다.

  

  전쟁은 무력(武力)을 줄기, 문략(文略)을 뿌리로 삼는다. 무력이 겉이라면, 문략은 속에 해당한다. 문무의 관계를 꿰면 승부의 큰 줄기를 장악할 수 있다

 3. 제담(制談)

 

 군대는 모름지기 제도부터 완비해야 한다제도가 완비되면 병사들이 문란하지 않고, 병사들이 문란하지 않으면 부대의 기강이 바로잡힌다.

 군령이 지엄하고 군법이 세밀하면 능히 군을 돌진하게 만들 수 있다. 싸움에 임하기 전에 포상을 분명히 약속하고, 싸움이 끝난 후 잘잘못을 가려 반드시 처결해야 한다. 그래야 용병을 하여 공을 세울 수 있다

 

 10만 명 병력을 이끌고 싸우면 천하에 당할 자 없으니 그런 자가 누구인가? 바로 제환공(齊桓公)이다. 7만 명 병력을 이끌고 싸우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으니 그런 자가 누구인가? 바로 오기(吳起). 3만 명 병력을 이끌고 싸우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으니 그런 자가 누구인가? 바로 손무(孫武) 


4. 전위(戰威)   

 

 명령은 장병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수단이다. 지휘관이 명령을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모르면 명령이 자주 변경되고, 그러면 설령 하달될지라도 장병들은 이를 믿지 못하게 된다.

 명령 내릴 때 사소한 착오는 굳이 고칠 필요가 없고, 작은 의문점은 구태여 해명할 필요가 없다. 지휘관이 명령을 내리면서 주저함이 없어야 장병들이 이를 좇고, 행동하면서 주저함이 없어야 장병들이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

 

 분대나 소대 단위로 함께 생활하는 병사들이 서로 친척처럼 가깝고, 중대와 대대 단위로 함께 움직이는 병사들이 서로 다정하게 지내야 한다. 이같이 하면 방어할 때는 마치 철벽을 세운 듯하고, 공격할 때는 마치 질풍뇌우가 몰아치는 듯하고, 전차는 거침없이 돌진하고, 병사는 물러설 줄 모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용병작전의 기본 이치다.

 

 왕도를 행하는 나라는 백성을 부유하게 만들고, 패도를 행하는 패국은 병사와 선비를 부유하게 만들고, 현상유지에 애쓰는 존국은 관원과 대부를 부유하게 만들고, 패망의 길로 치닫는 망국은 군주와 주변 사람의 창고만 부유하게 만든다백성의 곳간이 비어 있어, 내란과 외침의 병란이 빚어질 경우 구제할 길이 없다.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5. 공권(攻權)

 

 장수를 사람의 마음에 비유하면 부하는 사지의 관절에 해당한다. 마음이 진정을 갖고 움직이면 사지의 관절도 반드시 힘을 얻게 된다. 반대로 의심을 품게 되면 사지의 관절은 반드시 따로 놀게 된다장수가 회의하며 결단하지 못하면 병사 역시 사지의 관절이 따로 노는 것처럼 절도 있게 움직일 수 없다

 

 병사가 자신의 지휘관을 두려워하면 적을 업신여기고, 적을 두려워하면 자신의 지휘관을 업신여긴다. 업신여김을 당한 쪽은 패하고, 위엄을 세운 쪽은 승리하게 마련이다. 장수가 이런 이치에 정통하면 군관은 장수를 두려워하고, 군관이 장수를 두려워하면 병사는 군관을 두려워하고, 병사가 군관을 두려워하면 적은 아군 병사를 두려워한다.

 

 병사를 잘 다독여 마음으로 복종하도록 만들지 못하면 병사들은 지휘관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위엄으로 병사를 두렵게 만들어 복종하도록 만들지 못하면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을 좇지 않는다. 잘 다독이는 것은 병사들을 순종하도록 만드는 길이고, 위엄을 세우는 것은 지휘관이 병사로부터 존경을 받는 길이다지휘에 뛰어나다는 것은 곧 부하를 잘 다독이고 위엄을 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6. 수권(守權)  

 

 방어작전의 요체는 지형의 이점을 상실하지 않는 데 있다.

성을 방어하는 방법은 1()의 간격마다 10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공병과 취사병은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출격부대는 수비에 가담하지 않고, 수비대는 출격하지 않도록 한다. 이같이 하면 1명이 10, 10명이 100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

 성이 견고하고 구원병이 온다는 확신이 있으면 성안의 우부우부(愚夫愚婦)까지 모두 나서 물자를 총동원하고 피로 성을 물들이는 혈전을 치를지언정 성을 사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 구원병까지 수비에 가세하는 까닭에 성을 지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반면 성이 견고할지라도 구원병을 기대할 수 없다면 성안의 우부우부 가운데 절망에 빠져 눈물을 흘리며 비통해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이때는 반드시 정예하고 용맹한 장병을 동원하고, 뛰어난 무기로 무장하고, 쇠뇌와 활 등으로 무장한 부대를 최전선에 배치하고, 노약자와 병자를 뒤에 배치해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구원군은 반드시 포위망을 열어 성안의 일부 수비 병력이 출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을 수비하는 수권(守權)의 전술이다.


7. 십이릉(十二陵) 

 

 후회는 우유부단한 데서 나온다. 죄를 짓는 빌미는 함부로 살육하는 데서 나온다. 편파적인 일처리는 사사로운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불상사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듣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된다. 방만한 경비는 백성의 재산을 아까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리에 어두운 것은 이간책에 놀아난 탓이다. 힘만 들고 성과가 없는 것은 경거망동하기 때문이다. 고루한 것은 현명한 자를 멀리한 후과다. 화난은 늘 재물과 이익을 탐하는 데서 비롯된다. 해를 입는 것은 소인을 가까이한 탓이다. 영토를 잃는 것은 방비를 소홀히 한 결과다. 위험이 닥치는 것은 명령이 엄정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8. 무의(武議)  

 

 태공망 여상은 나이 70에 은나라 수도 조가(朝歌)에서 백정 노릇 하고, 맹진(盟津)에서 음식을 팔았다. 7년이 지나도록 알아주는 군주가 없었고,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미치광이라며 놀렸다. 그러나 주문왕을 만나자 그는 3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가서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천하를 평정했다.

 군주의 단호한 결단이 없었다면 그가 어떻게 이런 대공을 세울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말하기를, “좋은 말이 임자를 만나면 능히 먼 길도 갈 수 있고, 현명한 선비가 때를 만나면 능히 대업도 이룰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주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치기 위해 맹진을 건널 때 오른손에 백모(白旄), 왼손에 황월(黃鉞)을 들었다. 결사대는 300, 병사는 3만 명이었다. 이에 대해 은나라 주왕의 군사는 7십만 명에 달했다. 비렴(飛廉)과 악래()는 앞장서 군사를 이끌며 창과 도끼를 피하지 않았고, 대열이 수백 리에 달했다.

 주무왕이 은나라를 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병과 백성이 피로에 지치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무슨 상서로운 징조나 기이한 조짐은 없었다오직 인사에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장수는 위로 하늘에 좌우되지 않고, 아래로 땅에 얽매이지 않고, 옆으로 사람에게 구애되지 않는다장수는 생살을 관장하는 관원이다일단 용병하면 위로 하늘, 아래로 땅, 뒤로 군주, 앞으로 적의 제지를 받지 않아야 한다. 장수 한 사람이 전군에 대한 지휘권을 장악한 까닭에 그 성위(聲威)가 마치 호랑이나 이리처럼 흉맹하고, 폭풍우처럼 신속하고, 천둥번개처럼 돌발적이다. 위세가 이처럼 혁혁한 까닭에 천하가 모두 떨 수밖에 없다.

 

 오기는 진()나라와 싸울 때 고르지 못한 밭고랑에 군막을 치고, 잡목의 나뭇가지로 그 위를 덮어 이슬과 서리를 막았다이는 스스로를 장병들보다 높이지 않으려고 그리했던 것이다.

 부하에게 헌신을 요구하면서 자신에게 공경할 것을 바라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 전력투구를 요구하면서 번다한 예절을 주문해서는 안 된다.

 옛날에는 갑옷과 투구를 갖춰 입은 장수와 장병에게 무릎을 꿇는 궤배(跪拜)를 요구하지 않았다. 번다한 예절로 군사를 번거롭게 만들지 않으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오기가 진나라 군사와 대치해 아직 교전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한 병사가 넘치는 용맹을 참지 못해 적진으로 뛰어들어 적군의 목을 베어가지고 돌아왔다. 오기가 즉시 참수하려 하자 군관들이 만류하기를, '이 사람은 용사이니 죽여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다. 오기가 말하기를, '용사는 용사다. 그러나 내 명에 따른 게 아니다'라며 기어코 그의 목을 베었다.

11. 치본(治本)  

 

  남자가 사치품에 조각을 새겨 넣거나, 여자가 비단에 자수를 놓도록 해서는 안 된다. 조각을 하면 보기에는 좋으나 목기는 물기가 쉽게 스며들고, 철기는 비린내가 난다. 옛 성인들은 마시고 먹는 것에 모두 토기를 사용했다. 이는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천하에 낭비가 없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쇠와 나무가 추위와 무관한데도 수를 놓은 장식을 입히고, 소와 말은 풀과 물을 먹는데도 콩과 좁쌀을 먹인다. 나라를 이처럼 다스리면 입국(立國)의 근본을 잃은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백성이 이기적인 인간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데 있다개개인이 이기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면 천하가 한 가족과 같이 되어 자신만 배부르고 따뜻이 지내려 하지 않고, 추위와 굶주림을 함께 나눌 줄 알게 된다.

  

12. 전권(戰權) 
 

 병사들이 진공의 결심을 다지고 전혀 의혹이 없을 때 진공하고, 적의 사기가 떨어지고 아군이 유리한 지형을 점거했을 때 적과 교전하고, 여러 측면에서 실정을 정확히 파악해 우위를 점했을 때 위세로써 적을 굴복시킨다. 이같이 하면 가히 병법의 지극한 이치를 깨우쳤다고 할 수 있다.

 

 '적이 결전을 치르고자 할 때 즉각 응전하거나수비하는 쪽의 미약한 모습을 보고 이에 넘어가 상대방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작전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고 했다전투에서 주도권을 빼앗기면 사기가 떨어지고, 적을 두려워하면 진지를 방어할 길이 없다

 
13. 중형령(重刑令)

 

  1,000명 이상의 병사를 거느리는 지휘관으로 전투에서 패해 도주하거나, 방어하다 투항하거나, 부하를 버리고 달아난 자를 일컬어 국적(國賊)이라 한다. 이런 자는 참수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명부에서 삭제하고, 조상의 묘를 파헤쳐 그 유골을 저잣거리에 늘어놓고, 식솔을 관청의 노비로 보낸다.

 100명 이상의 병사를 거느린 지휘관으로 전투에서 패해 도주하거나, 방어하다 투항하거나, 부하를 버리고 달아난 자를 일컬어 군적(軍賊)이라 한다. 이런 자는 참수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식솔을 관청의 노비로 보낸다

 
14. 오제령(伍制令)

 

군대의 편제는 5명으로 구성된 단위를 오()라고 한다. 이들은 서로 모든 일에 연대책임을 진다. 10명으로 구성된 단위를 십()이라 한다. 이들 역시 서로에 대해 연대책임을 진다. 50명으로 구성된 단위를 속()이라 한다. 이들 또한 서로에 대해 연대책임을 진다. 100명으로 구성된 단위를 여()라고 한다. 이들도 서로에 대해 연대책임을 진다. 법령을 위반한 자가 오에서 나왔을 때 이를 고발한 자는 면죄되지만 알고도 고발하지 않은 나머지 오의 대원은 모두 참수한다. 이런 원칙은 십과 속, 여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 밖에 관할구역 통행 제한에 대한 분새령(分塞令), ()를 다스리는 규정 속오령(束伍令)편제와 지휘 요령을 다룬 경졸령(經卒令), 전투의 방법 늑졸령(勒卒令), 장군의 명령을 정의한 장령(將令), 선두부대의 임무를 규정한 종군령(踵軍令), 상벌과  훈련에 대한 병교(兵敎) 상하, 도망병과 병사들에 관한 규정인 병령(兵令) 상하가 있다.

 

'당태종이위공문대(唐太宗李衛公問對)'

 

 '당태종이위공문대(唐太宗李衛公問對)'는 이정(李靖)이 태종(太宗)의 물음에 답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명칭은 '당태종이위공문대(唐太宗李衛公問對)' 혹은 줄여서 '당이문대(唐李問對)','이정문대(李靖問對)',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라 부른다. '문(問)'은 당 태종의 질문, '대(對)'는 이위공의 대답이다.

 643년 태종이 고구려를 치기 전에 이정(李靖)을 불러서 병법을 묻는 데서 첫 장은 시작된다.

 '고구려가 자주 신라를 침략하기에 짐이 사자(使者)를 보내 설유(說諭)해도 조서(詔書)를 받들지 않아 치려하는데, 그대 의향은 어떠한가?'

 이정(李靖)이 답하되,

'탐지해보니 연개소문(蓋蘇文)은 자신이 병법을 안다고 믿고, 중국은 멀다면서 임금님의 명령 어겼으니, 신에게 3 만 병력을 주시면 연개소문을 사로잡아 바치겠습니다.'

고 하였다.

'3 만의 작은 병력으로 머나먼 고구려를 무슨 전법으로 정벌할 계획인가?'

'신은 정공법(正攻法)을 쓰겠습니다.'

 

 이상이 당태종과 이정이 군사에 대해서 논한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첫머리 기록이다.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당을 건국한 이연(李淵)의 둘째 아들이다. 수나라를 치고 각처에 할거한 군벌을 타도한 용장으로 아버지 이연에게 천책상장(天策上將), 즉 하늘이 내린 장수라는 별호를 얻었다. 628년 천하를 통일하자. 23년간 재위하였으며, 수나라가 망한 것을 거울삼아 황제 재위 기간 통치술을 기록한 내용이 '정관정요(貞觀政要)'이다. 그의 통치철학은 '정관정요'요, 군사철학은 '이위공문대' 다. 두 책이 당 태종의 문무(文武) 두 축이다. 

 당태종은 645년 신라의 요청으로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안시성 싸움에서 패하여 철군했다.

 

이정(李靖)의 는 약사(藥師)다. 건국에 참여했고, 이세민이 중앙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경쟁관계에 있던 군웅들을 평정할 때 활약했다. 돌궐을 공격하여 길리가한(頡利可汗)을 포로로 잡았고, 토욕혼(吐谷渾)의 침입을 막는 큰 공을 세워 위국공(衛國公)에 봉해졌다. 사후에 당 태종의 소릉(昭陵)에 배장(陪葬)되었다.

 

 '당태종이위공문대(唐太宗李衛公問對)'는 상, 중, 하 3권으로 나뉘어 총 98개의 질문과 대답을 묶어 49 개 장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강태공의 육도(六韜), 손병법, 황제(黄帝), 사마양저, 장량, 한신, 조조, 제갈량, 마륭(馬隆)의 병법과 보병, 기병, 전차 사용법, 8진, 육화, 오행 진법 등 출전(出戰) 사례를 고증하고 의미를 재해석한 것 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권(卷) 상

 
1) 고구려가 신라를 괴롭히니
2) 정병(正兵)과 기병(奇兵)
3) 병법 실행은 사람에게 달렸다
4) 기정(奇正)의 무궁한 응용
5) 무형(無形)의 오묘한 이치
6) 변화와 순환
7) 뛰어난 자와 못 미치는 자
8) 악기문(握奇文)의 뜻
9) 악기진(握奇陳)
10) 구정지법(丘井之法)
11) 사마법(司馬法)과 사마양저
12) 장량과 한신의 병법서
13) 수수(蒐狩)의 뜻
14) 초 장왕의 이광지법(二廣之法)
15) 순오(荀吳)가 적(狄)을 칠 때
16) 이민족 통치하는 방법
17) 제갈량의 군사 훈련
18) 형세를 조성하라
19) 만이(蠻夷)로 하여금 만이를 제압하도록 하라

2. 권(卷) 중

 

1) 허실(虛實)의 의미
2) 민족을 차별하지 말라
3) 내용을 모른 채 병법 문장만 외워서야
4) 군사 훈련의 방법
5) 육화진법(六花陳法)
6) '파진악무(破陳樂舞)'
7) 오방색(五方色)과 신호 방법
8) 전기(戰騎)와 함기(陷騎), 그리고 유기(遊騎)
9) 어려진(魚麗陳)의 선편후오(先偏後伍)
10) 오행진(五行陳)
11) 음양과 기정상변(奇正相變)
12) 사수(四獸)의 진법
13) 사랑을 베풀고 나서 형법을 엄히 해야
14) 항복한 자를 사랑으로 용서하라
15) 사간(死間)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
16) 주도권을 잡는 방법
17) 철질려(鐵蒺藜, 마름쇠)와 행마(行馬)

3. 권(卷) 하

 

1) 유리한 지형인데 물러나다니
2) 분산과 집취(集聚)
3) 단 한 번의 실수가 패배를 불러온다
4) 수비와 공격은 똑같이 중요하다
5) 지피지기(知彼知己)
6) 사기(四機)와 기기(氣機)
7) 내쫓았다가 다시 등용하라
8) 장수를 잘 다스리는 군주
9) 장수에게 부월(斧鉞, 지휘권을 상징하는 도끼)을 내리는 의미
10) 음양과 술수(術數)
11) 승패를 조절할 줄 아는 장수
12) 공수를 결정하는 주도권
13) 병법의 세 가지 경지 




 이태백(李太白)

 

 동서고금 술을 마신 사람은 많지만, 이태백처럼 좋은 시를 남긴 사람은 없다. 사람들이 달을 소재로 빈번히 시를 썼지만, 청련거사(靑蓮居士) 이태백 이 사람처럼 달과 관련된 주옥같은 시 남긴 사람 없다.

 이태백은 62세 때 채석강에서 뱃놀이 하면서 술에 취한 채, 물 속의 달을 붙들려고 하다가 빠져 죽었다고 한다. 여기서 천의무봉 그의 술과 달에 관한 시 몇 편 소개한다.

 흔히 이태백을 시선(詩仙), 두보를 시성(詩聖)이라 부른다.

이태백은 701년에 태어나 762년에 세상을 떠났다. 티베트 근처 이민족 출신이다.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태백성(금성)을 품었다고 태백이라고 이름 지었다.

 42세 때 당 현종의 부름을 받고 궁정에 불려가서 시를 지을 때, 궁정의 세력가이던 고역사(高力士)가 그의 신발을 벗겨주고, 양귀비가 벼루의 먹을 갈아주었다는 호방한 일화를 남겼다.

 

우인회숙(友人會宿)

 

천고의 시름을 씻어 버리고자, 연이어 백병의 술을 마시리로다.

아름다운 밤은 이야기로 지새기 알맞고, 밝은 달빛엔 잠들지 못하리라.
취하여 빈 산에 누웠으니, 천지가 곧 이불과 베개로다.

 

滌蕩千古愁   留連百壺飮
良宵宜且談   晧月未能寢
醉來卧空山   天地即衾枕

 

산중대작(山中對酌)

 

두 사람이 마주앉아 술을 마시니 산꽃이 피네.

한 잔 들게 한 잔 들게 또 한 잔 들게.

나는 취해 잠 자려 하니, 그대는 잠깐 갔다가,

내일 아침 생각이 있으면 거문고 안고 오시게. 

 

兩人對酌山花開

一盃一盃復一盃

我醉欲眠君且去

明朝有意抱琴來

 

월하독작(月下獨酌) 1
 

꽃 사이에 놓인 한 동이 술을 대작할 사람 없어 홀로 마시노라.
잔 들고 밝은 달 맞이하니 그림자와 더불어 셋이 되었도다.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盃邀明月 對影成三人

 

달이야 본래 술 마실 줄 모르거니와 그림자는 부질없이 내 몸짓 따를 뿐.
암커나 잠시 달과 그림자 벗하여 행락 모름지기 봄에 미치리라.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내가 노래하면 달은 머뭇거리고 내가 춤 추면 그림자는 어지러이 흔들리네.
깨어서는 이렇게 함께 즐거움 나누고 취한 후엔 각기 흩어져 분산되지만
무정과 맺은 인연 영원히 맺어, 아득한 은하 저편에서 만나고저.

 

我歌月排徊 我舞影凌亂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월하독작(月下獨酌) 2

 

하늘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하늘에 주성(酒星)이 있지 않았을 것이고,
땅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땅에 응당 주천(酒泉)이 없었으리.

 

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주천(酒泉); 공융(孔融)이 조조에게 보낸 '논주금서(論酒禁書, 술 마시지 말라는 글에 대한 변론)'에서 '하늘에는 주성의 빛이 드리워 있고, 땅에는 주천이라는 고을이 있다'고 했다. 주천의 물맛이 술과 같았다고 한다. 

 

천지가 이미 술을 사랑했거니, 술을 사랑해도 하늘에 부끄러울게 없노라.
내 듣기로 청주는 성인에 비할만하고, 거듭 말하거니와 탁주는 현인에 비겼도다.
성과 현을 이미 마셨거늘 하필 신선을 구하리오.


天地旣愛酒 愛酒不愧天
已聞淸比聖 復道濁如賢

聖賢旣已飮 何必求神仙

 

 

석 잔은 대도로 통하고, 한 말 술은 자연과 합치돠는도다.
오직 술 가운데 멋을 얻었나니, 술 안 마시는 자에겐 이를 전하지 말라.

 

三盃通大道 一斗合自然
但得醉中趣 勿謂醒者傳

 

將進酒(장진주)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내달은 물이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그대는 보지 못 하였는가, 권문세가의 늙은이가 아침에 푸르던 털이 저녂에 백설같은 백발이 되었음을 슬퍼함을.

인생은 득의했을 때 모름지기 기쁨을 즐길지니, 달밤에 술동이만 쓸쓸히 놓아두는 일 없도록 하라.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廻 

又不見 高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如雪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하늘은 나의 재주를 쓸모가 있어 만들었고, 돈이란 쓰고나면 다시 또 오느니라.

양을 삶고 소를 잡아 마음껒 즐길지니, 모름지기 한번 마심에  삼백 잔을 넘길 것이라.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

烹羊宰牛且爲樂 會須一飮三百杯

 

친구인 잠부자와 단구생아! 술을 권하노니 잔을 멈추지 말게나.

그대에게 노래 한 곡 보내나니, 청컨대 나를 위해 귀 기우려 주게.

 

岑夫子 丹丘生. 將進酒 君莫停

與君歌一曲 請君爲我側耳聽  

 

멋진 음악과 맛있는 음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래 취하고 깨어나기를 바라지 않노라.

옛부터 성현은 다 적막하였고, 오직 마시는 사람은 그 이름을 남겼네.

조조의 아들 진왕 식(植)은 낙양 평락관이란 데서 잔치할 때, 한 말 술에 만금을 뿌리며 즐겼다지 않던가. 

 

鍾鼎玉帛不足貴 但願長醉不願醒 

古來賢達皆寂莫 惟有飮者留其名

陳王昔日宴平樂 斗酒十千恣歡謔

 

주인인 내가 어찌 돈이 없다고 하겠는가? 즉시 술을 사가지고와 그대와 대작하리라.  

오색 말과 천금의 모피 처분해도 좋다. 아이야! 즉시 좋은 술과 바꾸어오라.

그대와 함께 마시면서 만고의 시름을 녹여보려 하노라.

 

主人何爲言少錢 且須沽酒對君酌

五花馬 千金裘.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銷萬古愁

 

정야사(靜夜思)

 

침상 앞의 달빛을 보나니, 마치 땅에 내린 서리여라.

고개 들어 달빛 보다가,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두보(杜甫)

 

 중국에서 두보(杜甫)는 시성(詩聖), 이백은 시선(詩仙), 왕유는 시불(詩佛)이라 부른다. 그 중 이태백은 타고난 천재로 남성적인 시를 남겼다면, 두보는 후천적 노력가로 여성적인 시를 남겼다.

 태어난 해는 당 현종이 즉위한 선천(先天) 원년이니 712년이다. 낮는 관리 집안에 태어나 관직을 얻고자 했으나 여러번 과거에 실패했고, 출세를 위해 고관과 황제에게 열심히 시를 지어 보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안록산의 난을 만나 당현종이 촉나라로 몽진하자, 그때 임시 수도 봉상을 찾아간 공로로 좌습유 벼슬을 얻었다. 그러나 눈치 없는 두보는 패전한 재상을 변호하여 좌천되어 벼슬을 버렸다. 이후 가족을 끌고 고달픈 유랑생활 하다가 죽으니, 나이 59세 때다. 그는 시에서는 만고의 천재였으나, 생활은 만고의 바보였다.

 두보는 '나의 시가 사람을 놀래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그만 둘 수 없다(語不驚人 死不休)'고 하였다.

이리 말한 걸로 보아, 그가 한 편의 시를 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고치고 다듬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江村(강촌)

 

淸江一曲抱村流   푸른 강 한 구비 마을을 안아 흐르나니

長夏江村事事幽   긴 여름 강촌은 일마다 그윽하도다

自去自來堂上燕   절로 가고 절로 오는 것은 집 위의 제비요

相親相近水中鷗   서로 친하고 서로 가까운 것은 물 가운데 갈매기로다

老妻畵紙爲棋局   늙은 아내는 종이를 그려 바둑판을 만들거늘

稚子敲針作釣鉤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낚시를 만든다

多病所須唯藥物   다병하여 얻고자 하는 바는 오직 약물이니,

微軀此外更何求   미미한 이 몸이 이 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

 

春日江村(봄날 강촌)

扶病垂朱紱  병든 몸 관직을 맡았다가
歸休步紫苔  은퇴하여 푸른 이끼 위를 거닌다.
郊扉存晩計  교외의 작은 집에 노후가 있으니
幕府愧群材  관청은 부끄럽구나 그 많은 선비들.
燕外晴絲捲  밖은 제비날고 아지랭이 감돌고
鷗邊水葉開  물풀들 피는 곳에 갈매기 나네
隣家送魚鼈  이웃은 고기와 자라 보내오고
問我數能來  자주 찾아올 수 있는지 나에게 묻네.

季秋江村(늦가을 강촌)

喬木村墟古  큰 나무 있는 마을의 오래된 터
疎籬野蔓懸  성긴 울타리에 들 넝쿨이 엉켜 있구나.
素琴將暇日  한가한 날 줄 없는 거문고 가지고
白首望霜天  백수(흰머리)는 서리 내린 하늘을 바라본다.
登俎黃柑重  도마에 올린 노란 감귤 무겁고
支牀錦石圓  평상을 괸 비단 돌 둥글다.
遠遊雖寂寞  멀리 와 노님은 비록 적막하나
難見此山川  다시 보기 어려우리 이 같은 산천.

 

春日憶李白(봄날에 이백을 생각하며)                     

 

白也詩無敵   이백(李白)의 시(詩)는 겨룰 자가 없고

飄然思不群   표연한 그의 생각 따를 자 없네.

淸新庾開府   청신함은 북주(北周)의 유신(庾信)과 같고

俊逸鮑參軍   준일함은 참군 벼슬 포조(鮑照)와 같네

渭北春天樹   위수의 북쪽 봄 날 나무 밑에서 

江東日暮雲   양자강 동쪽 저무는 구름 보며

何時一樽酒   언제쯤 한 동이 술 놓고

重與細論文   다시 한 번 문장을 논하여 보리.

  

* 두보(杜甫) 35세시 작품

 

絶句(절구) 


江碧鳥逾白  강이 푸르니 새 더욱 희고
山靑花欲燃  산이 푸르니 꽃이 타는듯 하다
今春看又過  금년 봄도 또 보고 지나가는데
何日時歸年  어느 날이 고향 돌아갈 해 일가.

 

絶句漫興(흥이 넘친 절구)

 

糝徑楊花鋪白氈  오솔길 버들 꽃 흰 융단 펼친 것 같고

點溪荷葉疊靑錢  점점 연잎 수놓은 개울 푸른 동전 쌓인듯

筍根雉子無人見  죽순 아래 새끼 꿩 보는 사람 없고

沙上鳧雛傍母眠  모래 위 오리 새끼 어미 곁에 잠들었다

 

춘망(春望)

 

國破山河在  나라는 망했으나 산하는 그대로라

城春草木深  옛 성에 봄이 오니 초목은 우거지네.

感時花濺淚  시절이 느껴워서 꽃을 보아도 눈물 나고

恨別鳥驚心  이별이 한스러워 새소리 가슴 아파

烽火連三月  전쟁의 봉화불 석 달째 이어지니

家書抵萬金  집에서 오는 편지 만금같이 귀하구나

白頭慅更短  흰 머리 긁으니 더더욱 짧아져서

渾欲不勝簪  이제는 비녀도 꽂지 못할 지경이구나

 

夜(달밤)

 

今夜鄜州月  오늘 밤 부주에 뜨는 달
閨中只獨看  규중의 아내가 홀로 보고 있으리.
遙燐小兒女  멀리 있는 가엾은 어린 딸
未解憶長安  장안의 나를 그리는 어미 마음 모르리라.
香霧雲濕  향기로운 안개 구름같은 머리 결 적시고,
淸輝玉臂寒  맑은 달빛 옥 같은 팔에 차가우리.
何時依虛幌  어느 때 얇은 휘장 창가에 의지하여,
雙照淚痕乾  나란히 달빛 아래 눈물 자국 말리나. 
 


 


 

 

   시불(詩佛) 왕유(王維)

 

  왕유(王維)는  과거에 장원 급제했으나 당 현종(玄宗)의 눈에 벗어나 제주(濟州)에 귀양살이를 한데다, 그를 후원해준 장구령이 간신 이임보에게 밀려 파면 당하는 것을 보고, 실의에 빠져남산 기슭 남곡천(藍谷川) 흐르는 곳에 망천장(輞川莊)이란 별장에 은거하여 불교의 참선 수행에 심취하였다.

 자는 마힐(摩詰)인데 고승 유마힐(維摩詰)을 닮고자 그리 정했다고 한다.

  <구당서(舊唐書)>에 의하면, '왕유는 망천 계곡 어구에 있는 송지문(宋之問)의 남전별장을 샀는데, 망천의 물이 집 둘레를 감싸며 흘렀다. 따로 물을 끌어 대나무와 꽃 언덕을 축조하고, 함께 수도하던 친구 배적(裵迪)과 더불어 배를 띄워 왕래하고, 거문고를 타고 시를 지으며 종일토록 읊조리고 노래하였다. 망천계곡 경치가 뛰어난 20경(景)을 택하여 5언절구로 각각 20수를 읊어 총 40수 의 시를 모아서 <망천집>이라 이름하였다. 조정에서 파하고 돌아오면 향을 피우고 홀로 앉아 참선독경을 일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동파(蘇東坡)는 왕유의 시를 평하기를,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詩中有畵)'고 하였다. 시론(詩論)에서 최고 품격으로 삼는 시화일치론(詩畵一致論)이 여기서 비롯된다.
 왕유는 망천장 벽에 망천계곡 20경을 그려 놓았는데, 그림에도 뛰어나 왕유의〈망천도>는 남종화의 시조가 된 그림이다.

청(淸)나라 황배방(黃培芳)은 왕유의 시를 평하기를,  '한가로운 정경은 속세의 먼지와 소음에 찌들어 있는 자들이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오직 평정한 마음에서만 경물 묘사가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 하였다.

신운설(神韻說) 시론으로 청나라와 우리 북학파(北學派, 박제가, 박지원)에 큰 영향을 준 왕사정(王士禎)은 왕유의 시에 대하여, '송(宋)의 엄우(嚴羽)는 시선일치(詩禪一致)를 주장하였으나 왕유와 배적의 망천(輞川) 절구(絶句)는 글자마다 선(禪)에 들어가 있다'고 평하였다.

 

 

鹿柴(사슴 울타리)

 

空山不見人  텅 빈 산에 사람은 않보이고
但聞人語響  어디서 사람 말소리만 들리는데
返景入深林  지는 햇볕 깊은 숲에 스며들어
復照靑苔上  다시 파란 이끼를 비추고 있다

 

* 이 녹채(鹿柴)란 시가 문제의 시다.  왕유의 시 가운데 가장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 시며,  언외(言外) 선미(禪味)가 가득하여, 그를 시불(詩佛)이라 칭하게 한 시다.

<당시전주(唐詩箋注)>에는 이 시를 '인적이 없다'와 '사람의 말소리 들린다'라고 한 것은 숲이 깊기 때문이다. 숲이 깊어 햇볕이 덜 들면 이끼가 자라기 쉽다. 저녘에 되비치는 빛이 스며들고 빈 산이 고요하니, 노루가 살기에 알맞다. 시가 매우 섬세하다'고 평하고 있다. 

 

田園樂(전원의 즐거움)

 

桃紅復含宿雨   붉은 복숭아꽃 간밤 빗물 머금었고
柳綠更帶春烟   푸른 버들잎 봄안개 감고 있다.
花落家僮未掃   꽃은 떨어져도 동자는 아직 쓸지 않았고
鶯啼山客猶眠   꾀꼬리는 울건만 산사람은 아직 자고 있다

 

終南別業(종남산 별거)

 

中歲頗好道   중년 되어 불도를 좋아하다가
晩家南山陲   만년에 종남산에 집을 지었다.
興來每獨住   흥이 일면 매번 혼자 나서는데
勝事空自知   즐거운 일 그저 혼자 알 뿐이네
行到水窮處   다니다가 샘 솟는 곳에 이르면
坐看雲起時   앉아서 구름 일어나는 때를 보고
偶然値林叟   우연히 숲 속 늙은이 만나면
談笑無還期   담소하다가 돌아갈 걸 잊노라.


答張五弟(장오제에게 답하여)

 

終南有茅屋 종남에 초가집 있어
前對終南山 앞으로 종남산 마주보고 있
終年無客長閉關 
해가 가도록 찾는 손님 없어 문은 오래 닫혀있
終日無心長自閒  
종일 무심하여 마음 항상 한가하
不妨飮酒復垂釣  
음주나 낚시에 방해 받지 않으니
君但能來相往還   
그대가 와서 서로 오고 갈 수 있었으면.

 

臨湖亭(호수가 정자에서)

 

輕舸迎上客  가벼운 쪽배에 객을 태우고
悠悠湖上來  한가로이 호수 위로 건너와서.
當軒對樽酒  난간에 기대어 술 통 마주하니
四面芙蓉開  사방에 연꽃이 피어 있구나.

 * 쪽배와 술, 그리고 연꽃의 조화는 미술의 구도를 시에 도입한 기법으로, 호수를 바탕으로한 한 폭 그림을 그려놓았다.

 

竹里館(대숲 속 집)

 

獨坐幽篁裏  그윽한 대숲에 나홀로 앉아
彈琴復長嘯 
문고도 타보고 긴 휘파람도 불어본다
深林人不知  깊은 숲이라 사람들은 모르는데
明月來相照. 밝은 달 찾아와 서로를 비춰준다

 

春日上方卽事(봄날 상방에서)

 

好讀高僧傳  <고승전> 읽기 좋아하고
時看辟穀方  때때로 곡식 먹지않고 솔잎 대추 먹는 벽곡 처방 본다.
鳩形將刻杖  비둘기 모양을 지팡이에 새기고
龜殼用支牀  거북껍질을 써서 침상을 괴었다.
柳色春山映  버드나무 빛 봄산에 비치고
梨花夕鳥藏  배꽃 사이에 저녁 새 숨어든다.
北牕桃李下 북쪽 창가 복숭아 자두나무 아래
閒坐但焚香  한가히 앉아 다만 향불 피운다.

 

酬張少府(장소부에게 드리며)

 

晩年惟好靜  만년에 오로지 고요함이 좋아
萬事不關心  세상만사에 관심 두지 않았노라
自顧無長策  스스로 돌아봄에 생계의 방책 없고
空知返舊林   헛되이 아노매라 옛 숲으로 돌아가는 것.
松風吹解帶  솔바람 시원해 허리띠 풀어놓고
山月照彈琴  산 달은 비치노라 거문고 타는 이
君問窮通理  그대는 묻는가 궁통의 이치
漁歌入浦深  어부의 노래소리 포구에 들리네.


過香積寺(향적사를 지나며)


 

不知香積寺  향적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채

數里入雲峰  구름 덮힌 봉우리 몇 리 들어가니

古木無人逕  고목 울창한데 사람 다닌 길 없고

深山何處鐘  깊은 산 속 어디서 종소리 울려오네

泉聲咽危石  샘물 소리 가파른 바위에 흐느끼고

日色冷靑松  햇살은 푸른 솔숲에 차갑도다.

薄暮空潭曲  황혼의 텅 빈 연못가에서

安禪制靑龍  좌선하며 망념을 씻어내리라.

 

早秋山中作(초가을 산에서)

 

無才不敢累明時   재주 없어 관직에 머물러 있을 수 없으니

思向東溪守故籬   동쪽 냇가 돌아가 옛 울타리 지키고 싶어라.

不厭尙平婚嫁早  상평이 자식 혼사 일찍 마치고 유람 떠난 일 멋지고

卻嫌陶令去官遲  도연명이 관직 버림을 미적거린 것 밉도다.

草堂蛩響臨秋急  초당의 귀뚜라미 울음 가을이 급하고

山裏蟬聲薄暮悲  산 속 매미소리 저녁이 슬퍼진다.

寂寞柴門人不到  적막한 사립문에 오는 사람 없는데

空牀獨與白雲期  텅 빈 침상에서 혼자 흰구름과 약속한다.

 

秋夜獨坐(가을밤 혼자 앉아)

 

獨坐悲雙鬢  홀로 앉아 희끗희끗한 양 귀밑머리 슬퍼할제

空堂欲二更  빈 집은 이경(二更, 밤 9-11시)이 되어가네

雨中山果落  빗속 산 과일 떨어지고

燈下草虫鳴  등불 아래 풀벌레 울고 있네.

白髮終難變  흰머리는 끝내 검어지기 어렵고

黃金不可成  금단의 선약은 만들 수 없네

欲知除老病  늙음과 병듬 없애는 법 알려면

唯有學無生  오직 삶과 죽음 초월하는 법 배움에 있네.

  

山居秋暝(산속의 가을 저녂)

 

空山新雨后   빈 산에 새 비 내린 후
天氣晩來秋   날씨는 어느새 가을이구나
明月松間照   밝은 달 소나무 사이로 비치고
淸泉石上流   푸른 샘 돌 위로 흘러간다
竹喧歸浣女   대숲 소란터니 빨래하던 여인들 돌아가고
蓮動下漁舟   연잎 흔들리더니 고깃배 지나간다
隨意春芳歇   봄향기 제맘대로 시들어가도
王孫自可留   왕손은 의연히 머물만 하네


送別(송별)

 

山中相送罷   산에서 그대와 서로 이별한 후
日暮掩柴扉   날 저물어 집에 와 사립문 닫네
春草明年綠   봄풀은 내년에도 푸르련마는
王孫歸不歸   귀한 그대 한번 가면 다시 오려나.


送別(송별)                            

  

下馬飮君酒  말을 내려 그대에게 술을 권하면서
問君何所之  어느 곳을 가시려나 그대에게 물었더니
君言不得意  그대는 말하네 세상 일 뜻대로 않돼
歸臥南山陲  종남산 근처로 돌아가 누우려 한다고
但去莫復問  그러면 가시게 더 묻지 않으리
白雲無盡時  흰구름 무궁무진 다할 때 없으려니.

 



 

 백낙천(白樂天) 비파행(琵琶行)

 

 백낙천(白樂天)의 시 '비파행(琵琶行)'을 읽으면,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읽는 느낌이 든다. 한 슬픈 여인의 인생이 시 속에 스며있다.

 이 시는 당 헌종 때  백낙천이 가을에 친구를 배웅하러 양쯔강 분포강(湓浦江)이라는 곳에 갔다가, 비파 타는 여인을 만나 쓴 것이다.

 비파행(琵琶行)이니 제목을 '비파의 노래'라 함이 옳다. 그러나 모파상의 여인 '잔느'를 생각하며 '비파 타는 여인의 노래'라고 의역했다. 첫 부분이 문장 중 명문장이다. 비파의 음율을 시각화 하여 동서고금 가장 희귀한 명문장으로 꼽히고 있다.

 백낙천 혹은 백거이(白居易)의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이다. 벼슬은 형부상서에 올랐고 75세에 사거했는데, 44세 때 지은 서사시 '비파행' 때문에 당나라의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시는 칠언(七言) 87행 609字로 본문이 이루어 졌는데, 당나라 강주(江州) 사람들이 비파행의 배경인 심양 강가에 비파정(琵琶亭)을 지어 백거이의 시를 기념했다. 1200년 전 낭만을 음미해보자.

 

비파행(琵琶行) 서문(序文)

 

원화 10 년에 나는 구강사마로 좌천되었다. 다음 해 가을 손님을 배웅하러 분포강(湓浦江) 포구에 나갔다가, 배 속에서 비파 타는 소리를 들었다. 쟁쟁(錚錚)하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전에 서울(京都)서 듣던 소리였다. 사람을 찾아보니 원래 장안에서 노래하던 여자였는데, 유명한 선생에게서 비파를 배운 고수였다. 술상을 차리게 하고 몇 곡 청해 들었는데, 연주를 끝내자 마음이 착잡해 졌다. 그는 한때 젊고 예뻤던 시절 보내고 늙어서 이제 시골구석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나(백거이) 역시 그러하다. 시골로 쫓겨 귀양살이 한지 2년 되었다. 그리하여 노래를 지어 이 여인에게 바친다.

 그날 밤 양자강 강나루는 빨갛게 단풍이 불타고 하얀 갈대는 흔들리고, 강물에 명월(明月)은 잠겼고, 소쩍새는 피를 토하고 원숭이는 슬프게 울었다. 자리를 함께 했던 사람들은 비파 소리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다.

 

본문

 

심양강(潯陽江) 어귀에 객을 전송하려고 밤에 가니, 단풍잎과 갈대꽃은 가을 바람이 불어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말에서 내리고 손님은 배에 타려할 즈음 이별의 술잔 나누려 했으나 피리나 거문고가 없어 취해도 허전하였다. 이별 때문에 마음만 아픈데, 강 위를 보니 강은 아득하고 물엔 달빛이 젖어 있다.  

 그때 홀연히 어디서 비파소리가 들려와 둘은 갈 길을 잊었다. 나는 집에 가길 잊었고, 객은 떠나길 잊었다. 

 '비파 타는 사람 누구요?' 어둠을 향해 물어보니, 잠시 비파 소리 멎고 대답이 없었다. 

 배를 움직여 가까이 닥아가 청하여 인사하고 술을 내놓고 등을 밝혀 자리를 마련했는데, 여인은 천번만번 청하자 겨우 나오기는 하였으나, 비파를 안고 다소곳이 얼굴을 가리더라. 

 이윽고 비파의 굴대(軸)를 돌려 두어번 가락을 조절하는데, 곡조를 채 이루기도 전에 소리에 먼저 정이 담겨 있었다. 한 줄 한 줄 손가락을 퉁겨 일어나는 한 소리 한 소리에 생각이 담긴듯, 평생 불우하던 정을 하소연 하는듯, 아미를 숙이고 가락을 퉁기는데, 심중의 이야기를 하는듯, 가볍게 눌렀다가 천천히 매만지다가, 줄 아래 위로 손가락을 퉁겨 올리다가 한다. 처음에는 예상(霓裳, 무지개 치마. 당 현종이 지은 서역풍의 무곡)을 치고, 나중에는 육요(六幺, 아래 줄 한가락이 우뢰소리를 내는 가락)를 치는데, 큰 줄은 우렁차 소나기가 내리는듯 하고, 작은 줄은 가늘게 이어지면서 절절이 속삭이는데, 급한 가락 낮은 가락 어지럽게 뒤섞여, 탄주할 때 큰 구슬 작은 구슬이 옥쟁반에 구르는듯 했다. 사이사이 앵무새 소리 꽃 가지 아래로 미끄러지고, 흐느끼는 냇물 소리 얼음 밑을 흐르는듯, 시냇물 얼어붙듯 차급게 끊겼다가, 이윽고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깊은 시름과 한(恨)이 일어난다.  이때  소리 없음은 소리 있음 보다 더 나았다.

 그러다가 잠시 은항아리(銀甁) 깨어져 그 속에 담긴 술(酒)과 장(漿)이 비산하듯, 쇠갑옷의 기마병 돌진하여 칼과 창 부딪치듯, 곡조가 용장하게 급전한다. 이윽고 곡을 끝내고 술대로 줄을 한번 그으니, 네 줄이 일성(一聲)인데, 비단 찢는 소리 같았다. 동쪽 서쪽 배  두 척 모두 황홀히 소리에 취한듯 조용한데, 오직 강에 보이는 것은 가을 달 흰빛 이다.

  (연주가 끝나자) 여인은 깊은 한숨을 뱉어내고 술대를 비파 줄에 꽂은 다음, 의상을 정돈하고 낮빛을 가다듬고 스스로 말하기를, '저는 본래 서울(京城) 살던 계집인데, 하묘(蝦蟇, 장안에 있던 동중서의 무덤) 아래에 집이 있었습니다. 

 13세에 비파를 배워 이름이 교방(敎坊, 기생학교) 제일에 올랐고, 곡을 타고나면 선생님도 선재로다 감복하였습니다. 화장을 하면 당대 제일 명기 추랑(秋娘)도 투기할 정도였고, 곡 하나 끝나면 장안 오릉 근처 부잣집 도령들이 다투어 붉은 무늬 비단을 수 없이 선물했습니다. 시절이 좋아 귀한 청패(靑貝)로 장식한 은빗을 노래 장단 맞추노라고 깨트려도 아까운 줄 몰랐고, 얇고 붉은 비단 바지 술을 엎질러 더러워져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금년이 유쾌하니 내년도 그렇겠지 하며 가을 달 봄 바람(秋月春風) 걱정 없이 흘러보냈습니다. 그동안 남동생은 군인이 되어 달아나고, 양어미 돌아가고, 아침 저녂 오가는새  내 얼굴 추해지니, 문전이 쓸쓸해지고 찾아오는 안장 얹은 말과 수레도 뜸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늙은 장사꾼 아내가 되었으나, 원래 상인은 이득을 중히 여기고, 이별을 대수롭게 생각치 않아, 지난 달 부량(浮梁)에 차를 사러 떠나갔습니다. 나는 강 어귀를 서성거리며 빈 배를 지키노라니, 밝은 달은 배를 비추고 강물은 차겁기만 합니다.

 밤 깊어 문득 어린 시절을 꿈 꾼 날에는, 꿈 속에서 슬픈 정을 억제치 못하여, 연지 단장한 얼굴의 눈물이 주루룩 난간에 흘러내립니다.'

 나는 이미 비파 소리를 듣고 탄식하였지만, 이 이야기를 듣자 거듭 마음이 착잡하여 말하였다.

'그대와 나, 다같이 영락하여 하늘가를 헤매는 신세. 우리 만남에 어찌 일찌기 서로 아는 사람만 택하겠는가?

나는 작년에 황제 계신 장안을 떠나 심양성에 귀양와서 병들어 누워있다오. 심양 땅은 궁벽한 곳이라 일년이 가도 피리 거문고 연주 듣질 못했다오.   

 내가 살고있는 곳은 분강(湓江) 근처 저습지인데, 누런 갈대와 고죽(苦竹)만 집을 에워싸고 있다오. 두견이 피를 토하는 울음과 원숭이 애달픈 소리 뿐,  그 사이에서 아침 저녂 무엇을 들었으리? 봄 강변, 꽃 피는 아침, 가을 달밤, 왕왕 혼자 술을 마시며 외로움을 달래보았을 뿐. 

 간혹 나무꾼의 노래, 촌 사람 피리소리야 없지않지만, 서투르고 조잡하여 듣기 거북했는데, 오늘 밤 그대가 타는 비파 소리를 들으니, 마치 신선의 음악 듣는듯 금방 귀가 번쩍 뜨이는구려.

부디 사양말고 좌정하여 다시 한 곡조 타 주시면, 내 그대를 위해 '비파행(琵琶行)' 시 한 수를 짓고자 한다오.'

 여인은 이 소리를 듣고 감동하여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다시 좌정하여 비파 줄을 바짝 조이고  빠른 가락으로 비파를 타는데, 그 슬프고 처절함은 앞의 소리와 또 달랐다. 만좌(滿座)가 눈물을 못가누게 하니, 좌중(座中)에서 누가 가장 눈물을 많이 흘렸던고? 강주사마(江州司馬)의 푸른 옷소매가 눈물로 촉촉히 젖었도다.  


 


 소동파(蘇東坡) 적벽부(赤壁賦)

 

 고려와 요나라까지 알려진 천하의 명문장 적벽부(赤壁賦)는 지금부터 약 8백년 전 1082년, 소동파가 유배지인 호베이성(湖北省) 황저우(黃州)의 한천문(漢天門) 밖 장강(長江,양쯔 강) 암벽 아래 배를 띄워 적벽 아래 선유하면서 지은 것으로, 음력 7월에 지은 〈전적벽부〉와 음력 10월에 읊은 〈후적벽부〉가 있다.

 전편은 적벽에서 벌어졌던 삼국시대의 고사를 생각하고 덧없는 인생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합일을 노래한 것이고, 후편은 적벽야유의 즐거움을 구가한 것이다.

 소동파(蘇東坡)의 이름은 식(軾)이고, 호가 동파(東坡) 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鐵)과 함께 '삼소(三蘇)'라 불리며, 당송8대가 중 한 사람이다. 

 

 

 전적벽부(前赤壁賦)

 

 임술년 7월 보름 다음 날, 나 소동파는 손님과 함께 배를 띄워 적벽 아래에서 노는데. 맑은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고, 물결은 잔잔하였다.
 잔 들어 손님에게 권하며, '시경'의 시를 읊조리고 있노라니, 잠시 후 달이 동산 위에 솟아 북두칠성 사이를 배회하는데, 하얀 물안개 강을 가로 지르고, 물빛은 하늘에 닿아있다. 그 가운데 갈대잎 같은 한 척 작은 배로 만이랑 창파를 넘어 아득히 가노라니, 호호하기 허공에 의지해 바람 타고 멈출 바 모르는 듯 하고, 표표하기 속세를 떠나  홀로 서있는 듯 마치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된 듯 싶다.
 술을 마시고 흥이 올라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였다. '계수나무 노여, 목란 삿대여! 물에 비친 달을 치며 흐르는 빛 거슬러 오르네. 아득하구나 나의 회포여, 하늘 저편 임을 기다리네'.
 마침 손님 중에 퉁소 부는 이가 있어 노래에 화답하는데, 그 퉁소 소리 구슬퍼 누구를 원망하듯, 그리워하듯, 우는 듯 하소연 하는 듯, 남은 음이 가냘프게 이어져 실처럼 끊어지지 않으니. 그 슬픈 가락 깊은 골짜기에 잠긴 교룡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의 과부를 눈물짓게 할만했다.
  그래 내가 옷깃 바로하고 정색하여 객에게 묻되, '퉁소를 어찌 그리 부시오?' 하니, 그가 말하길,

' 밝아 별빛 드물고, 까막까치 남으로 날아가는 건 옛날 조조가 시 아닙니까? 서쪽으로 하구를 바라보고, 동쪽 무창을 바라보니, 산천은 서로 엉겨 울창하고 푸르디 푸른 곳, 이곳은 조조가 주유한테 곤욕을 치른 곳 아닌가요?
 조조가 바야흐로 형주를 격파하고 강릉으로 내려와, 순풍을 타고 동으로 진군할 때, 배의 선미와 선수를 이은 대선단(大船團)은 천리에 뻗치었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지요. 그때 조조가 창을 옆에 끼고 강을 바라보며 술잔 들고 시를 읊었으니, 참으로 일세의 영웅이었지요. 그런데 지금 그는 어디 있습니까? .
 그대와 나는 강변에서 나무하고 고기 잡으며물고기와 새우, 고라니와 사슴 벗하며. 일엽편주를 타고 조롱박 술잔을 들어 서로 권하고 있으니, 이는 천지간의 하루살이바다 속 한알 좁쌀같은 존재지요.

 그래서 우리네 인생의 수유처럼 짧음을 슬퍼하고, 장강(長江)의 영원한 흐름을 한없이 부러워하면서, 우리가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명월(明月)을 안고 길이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음을 알기에, 이 슬픈 노래를 가을 바람에 날려보낸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그대는 저 강과 달을 아시지오? 강물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으나 일찌기 돌아온 바 없고, 달은 차고 비움이 저와 같지만, 결국 본체는 소멸(消滅) 증장(增長) 하는 것 아니겠소? 모든 것은 변한다는 현상에서 보면, 천지 역시 한 순간도 변하지 않음이 없으며. 변하지 않음에서 보면, 만물과 내가 무한하여 다함이 없는 것인데, 하필 무엇을 부러워 하겠소?

 대채로 하늘과 땅 사이 만물에 각기 주인이 있어, 진실로 내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라도 취해서는 않되지만, 오직 강 위 맑은 바람과 산 속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음악이 되고  눈으로 만나면 빛을 이룹니다. 이를 취하여도 누구 하나 금하지 않고, 또 아무리 사용해도 없어지는 법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조물주의 무궁무진한 세계 아니겠소? 그래 그대와 내가 이 세계를 함께 즐겨야 하지 않겠소?'

 객이 이 말을 듣고, 웃으며 잔 씻고 다시 대작하니. 안주와 과일은 이미 다 떨어지고, 잔과 쟁반은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두 사람이 배안에서 함께 팔베개 하고 누웠다가, 동쪽 하늘이 하얗게 밝아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적벽부(後赤壁賦)

 

  임술년 10월 보름에 설당(雪堂)에서 걸어서 임고정(臨皐亭)으로 갈 때 두 객(客)이 나를 따라왔다. 황토 언덕 지나니 서리와 이슬 이미 내리고, 나뭇잎은 다 떨어졌고, 사람 그림자 땅에 비쳐 있다. 우럴러 밝은 달 보며 길을 걸으며 노래부르니 객도 화답한다.

 잠시 후 내가 '객(客)은 있는데 술이 없고, 술은 있는데 안주거리 없구나. 달 밝고 바람 시원한 이처럼 좋은 밤을 어이 보낼꺼나?' 탄식하자, 객이 말하기를 '오늘 어스럼 저녁에 그물로 고기를 얻었는데, 주둥아리가 크고 비늘이 가는 걸 보니 영락없이 송강(松江)의 명물 송어 같습디다. 그런데 어디서 술을 구하지요?' 한다.

 내가 돌아와서 부인에게 상의하니, 아내가 '영감이 불시에 찾을 때가 있지싶어 내가 술 한 말을 감춰둔지 오래되었지요.' 한다.

 그래 술과 농어를 가지고 적벽강(赤壁江) 아래로 가니, 강은 소리 내어 흐르고, 깍아지른 절벽은 천 길 높이로 솟아있다. 까마득히 높은 산에 자그마한 달이 걸렸고, 물 빠지자 바위가 들어났다. 도대채 세월이 얼마나 갔기에 이렇게 강산이 알아볼 수 없게 변한걸까.  

  내가 옷자락 걷어잡고 높은 바위를 밟고 우거진 풀 속을 헤치고 올라가, 호랑이 표범 모양의 바위에 걸터앉아보고, 꿈틀대는 이무기 모양의 괴목(怪木)에 걸터앉아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찔한 송골매가 살고 있는 위험한 둥지에 기어올라가, 풍이(馮夷)의 그윽한 용궁을 굽어보니, 두 객(客)은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길게 휘파람 불어보니 초목은 진동하고, 산이 울리자 골짜기가 대답한다. 바람 일자 물결이 춤 추는데, 시릴 정도로 맑고 차거운 느낌에  나 역시 슬며시 숙연하고 두려운 맘이 들어, 거기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몸을 돌려 배에 올라 강 한복판에 배를 띄우고, 물결 치는대로 배를 내버려 두고 물소리를 듣는데, 야반 넘어 사방을 돌아보니 적료하고 고요함 뿐이다.

 그때 동쪽에서 마침 외로운 학 한 마리가 강을 가로질러 오니, 날개는 수레바퀴 같고, 검은 치마 흰 옷 입은듯, 길게 한울음 울면서 내 배를 스쳐 서쪽으로 사라져 버린다. 

 잠시 후 객은 떠나고 나는 잠들었는데, 꿈에 우의(羽衣)를 입은 도사를 만났다. 그가 임고정(臨皐亭) 아래에 와서 나에게 읍하고 말하기를 '적벽강(赤壁江)의 뱃놀이 즐거웠소이까?' 하고 물어, 그 이름 물었으나 고개 숙이고 대답은 않는다. '오호라 알겠구나! 그대는 지난 밤 길게 울며 내 옆을 스쳐간 학이 아니신가?' 물으니, 도사가 돌아보며 빙그레 웃는다.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창을 열고 밖을 보았으나, 그가 간 곳을 모르겠더라.

 


 

  동양화의 육법전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이립옹(李笠翁)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은 동양 공부에 필요한 화법 이론과 청나라 이전 대가들의 그림 모사본(模寫本)을 소개한 책 이다. 이를 모르고 동양화의 근본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우선 물에 대한 사상부터 먼저 소개하면, '돌은 산의 뼈요 물은 돌의 골수다. 골수(骨髓)는 뼈에 영양을 공급한다. 만약 뼈에 골수가 없다면 바위는 흙덩이와 같으니 이미 뼈가 아닌 것이다. 물의 성질은 지극히 부드럽지만, 산을 밀어젖히고 돌을 뚫는다. 개울이 되고 대하(大河)와 바다가 되어, 만물을 기른다.' 심오하다.

  

 이 책은 17세기 청나라 초기 남경(南京)에 살던 부호 이어(李漁)의 별장 개자원(芥子園)에서 만들어졌다. 별장 이름을 따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이라고도 하고, 이어(李漁,)의 호를 따서 '입옹화전(笠翁畵傳)'이라고도 부른다.

 강희(康熙) 18년에 1집이 출간되고, 22년만인 1701년에 3집이 완성되었다. 이어(李漁,)가 타계하자 사위 심심우(沈心友)가 책을 마무리 지었다. 

  '개자원화전' 1집은 산수 수석보(山水 水石譜)다. 산, 구름, 바위, 물, 봉우리, 나무, 그리는 법이 실려있다. 2집은 난죽매국보(蘭竹梅菊譜)로 매, 난, 국, 죽 치는 법이 실려있다. 3집은 초충영모화훼보(草蟲翎毛花卉譜)로 벌레, 새, 짐승, 나비, 꽃 그리는 법이 실려있다. 각 집 첫머리에 화론을 싣고, 그 다음에 그리는 기법, 마지막에 역대 명인들 작품 모사본(模寫本)이 실려있다.

 화본(畵本)은 명나라 이유방(李流芳)의 모사본(模寫本), 청나라 왕개(王槪) 왕시(王蓍) 왕얼(王臬) 삼형제가 편찬한 '산수화보(山水畵譜)'가 토대이다.

 

 산수화 그리는 법

 

 산수화를 그리는 데는, 포국법(布局法), 용필법(用筆法), 용묵법(用墨法), 구륵법(鉤勒法), 찰법(擦法), 준법(皴法), 염법(染法), 점법(點法), 설색법(設色法), 임모법(臨摹法), 수목법(樹木法), 수천화법(水泉畵法), 시경화법(時景畵法)이 있다.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준법(皴法)이다. '준'은 산, 바위, 토파(土坡)의 입체감, 양감(量感), 질감(質感), 명암(明暗) 등을 나타내는 기법이다. 뽀죽붓에 엷은 먹을 묻혀 가로뉘어 문질러 만든 주름이 '준'이다.

 여기에 다시 엺은 먹을 칠하는 것을 '선(渲)'이라 한다. 그 위에 붓끝을 가지고 하나하나 직필로 가필하여 긴장미 낸 것을 '탁(擢)'이라 한다.

 '점(點)'은 멀리 있는 인물을 그릴 때 쓰고, 점태(點苔)라고 해서 돌을 그릴 때 이것으로 이끼를 나타내거나, 먼 산의 나무를 그릴 때 사용한다.

 아무 것도 안 그린 비단에 맹물을 칠해 그 젖은 곳에 햇무리나 달무리 고리를 내어 안개인 것처럼 필묵의 자취 보이지 않는 것을 '염(染)'이라 한다. 폭포를 그릴 때 양쪽 벼랑과 물을 나누는 것을 '분(分)'이라 한다.

 

 산(山) 

 

 뽀족하게 생긴 산을 봉(峰)이라 한다. 평평한 산을 정(頂)이라 한다. 둥근 산을 만(巒)이라 한다. 산이 마주 이어진 것을 영(嶺)이라 한다. 산에 구멍이 있는 것을 수(岫)라 한다. 험준한 벼랑을 애(崖)라 한다. 그 사이나 밑을 암(巖)이라 한다.

 길이 있어서 산으로 통하게 된 곳을 곡(谷)이라 한다. 통하는 길이 없는 것을 욕(浴)이라 한다. 가운데 흐르는 물을 계(溪)라 한다. 산 사이에 낀 물은 간(澗)이라 한다. 산 밑에 있는 못을 뢰(瀨, 여울)라 한다.

 산 사이 평탄한 곳을 파(坡, 고개)라 한다. 물 속에 돌출한 바위를 기(磯, 물 가)라 한다. 바다 속에 있는 산을 도(島)라 한다.

 

 산 그리는 법

 

 산을 그릴 때는 먼저 대체적인 윤곽을 그린 다음에 준(皴)을 베풀어야 한다. 사람들은 세부부터 그리어 높은 산을 만들어 가는데, 이것은 큰 병폐다. 옛 사람들은 큰 화면을 앞에 놓고 산이 나뉘고 만나는 대체적인 형세를 먼저 그렸다. 그러므로 걸작이 되었다.

 빈(賓)은 나그네요, 주(主)는 주인이다. '빈주조읍(賓主朝揖)'이란 나그네와 주인이 손을 모아 인사하는 것이다. 주인 격인 산과 나그네 격인 산이 서로 기맥 상통해서 떨어지는 일 없이 적절히 안배해야 한다.

 

 산에는 삼원(三遠)이 있다. 밑에서 산마루를 우러러보는 것을 고원(高遠)이라 한다. 산 앞에서 산 밑을 굽어보는 것을 심원(深遠)이라 한다. 가까운 산에서 먼산을 바라보는 것을 평원(平遠)이라 한다.

 고원의 형세는 돌올(突兀)하여 치솟고, 심원의 의취(意趣)는 끝없이 중첩하며, 평원의 멋은 표묘한 데 있다.

 파(坡)는 석파가 있고 토파가 있으며, 어느 것이나 위가 평평하게 생겼다. 파의 상면(上面)은 깍아서 평평히 다져진 것 같아야 하고, 측면의 준(皴)은 흙이나 돌이 긴 세월 풍설에 시달린 나머지 깨어지고 벗겨져서 저절로 생긴 듯해야 한다.

 

 나무 그리는 법

 

 산수화는 먼저 나무를 그리고, 나무를 그릴 때는 먼저 줄기를 그린다. 줄기를 그린 다음에 거기에 점을 가하면 무성한 숲이 되고, 가지를 많이 그리면 고목이 된다. 고목은 반드시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겨울에 잎이 시들어 떨어진 나무를 의미한다.

 노근(露根)은 겉으로 들어난 뿌리이다. 산이 기름지고 땅이 두터운 데서 자란 나무는 대개 뿌리가 땅 속에 숨겨져 있다. 천인절벽 바위 틈에서 돌에 끼이고 물에 씻기고 있는 나무가 높이 치솟은 고목이 되면, 매양 뿌리를 노출시키게 마련이다. 마치 세속을 벗어난 신선이 바짝 야위고 나이가 늙어서 힘줄과 뼈가 들어난 것처럼 보여 한층 특이한 느낌을 준다. 

 한 떨기 잡목을 그릴 때, 그 중 한두 그루 뿌리가 드러나게 하여 변화를 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반드시 나무에 혹이 있고 마디가 있는 것을 가려서 뿌리가 드러나게 해야 한다. 모든 나무 뿌리가 드러나게 하면 아취가 없어진다.

 

 산수화 속 인물 그리는 법

 

 산수화의 인물은 너무 정교하게 그려서도 않되며, 너무 기세가 없어도 않된다. 산과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사람은 산을 보고 있는듯 하고, 산은 사람을 굽어보고 있는 듯 해야 한다. 거문고는 달에게 들려주는 듯하고, 달은 고요히 거문고를 듣고 있는 듯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그림 속에 뛰어들어 그림 속 인물과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함을 한탄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산은 산이요, 사람은 사람이라는 식이 되어 전혀 관계없는 것이 된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예운림(倪雲林)의 그림처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공산인 쪽이 낫다.

 산수화 속의 인물은 학처럼 맑게 여위어서 멀리서 보기에 신선 같은 느낌이 들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세속적인 냄새가 나서는 않된다. 세속적인 냄새가 나면 산수화의 흠이 된다.

 

 집과 오솔길 그리는 법

 

 산수화에서 집은 정다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인가를 난잡스레 막 그려넣으면 시정의 속된 기분이 되고 만다. 요즘 그림 속에 집을 적당한 곳에 그려 넣을 줄 아는 사람은 겨우 몇 명 있을 뿐이다. 이 몇 명을 제외하면 산수는 곧잘 그리면서도 거기 그린 인가는 치졸하다.

 전에 요간숙(姚簡叔)이 그린 그림을 보았는데, 수수알 정도의 작은 집이라도 반드시 전후가 상통하고 곡절(曲折)하여 아취가 넘쳐 있었고, 산은 집을 돌아보고 집은 산을 돌아보는 묘미가 있었다.

 집은 물론 신선을 살게 하는 곳이다. 그러나 콩이나 오이 시렁같은 청절(淸絶)한 것도 신선 못지않는 경치다. 그러므로 시골 경치를 그리는데 몇가지 담박한 것들도 착안해야 한다. 싸리문에는 등나무 덩굴이 감기고, 돌계단은 잡초에 묻혔으며, 기와는 찢긴 비늘처럼 여기저기 빠져있고, 벽은 거북이 잔등처럼 금이 가 있다. 아주 황폐한듯 하면서 자연스런 기운이 넘친다.

 산중의 은자는 반드시 서재에 있어야 유한(幽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으로 통하는 소로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덕이 높은 사람의 초막임을 알 수 있다. 사람으로 하여금 흠모의 정을 억누르지 못하게 한다. 이런 느낌이 드는 문(門)과 소로(逕)를 그릴 때 비로소 능수(能手)라 할 만하다.

 

 구름 그리는 법

 

 구름은 천지의 큰 장식이다. 산천에 금수(錦繡), 즉 비단옷을 입히며, 속력이 빠른 것은 달리는 말과 같아서 돌에 부딪치면 소리가 날 것 같다.
 옛사람들이 구름을 그린 것은 보면 두 가지 비결이 있다.

 하나는 천암만학(千巖萬壑)이 겹쳐 있는 곳을 구름으로 한가롭게 만드는 법이다. 푸른 봉우리가 하늘에 치솟았는데 갑자기 흰 구름이 가로 휘날리며 층층으로 산을 뒤덮는다. 왼쪽에서 구름이 개이면 푸른 산마루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문인들의 이른바 '망리투한(忙裏偸閑)', 바쁜 중에 한가로움을 훔쳐내는 법과 같다.
 또 하나 방법은 봉우리가 하나 밖에 없어 구도가 너무 한가한 경우, 구름을 가지고 화면을 바쁘게 하는 법이다. 산과 물이 다한 곳에서 구름이 일어나고, 갑자기 바다에 물결이 나타나는 것이 그런 식이다.
 그래서 산을 운산(雲山)이라 하고, 물을 운수(雲水)라 한다.

 내가 산수 그리는 법에서 구름을 마지막으로 돌린 것은, 옛사람들이 '구름은 산수의 마감'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까닭이다.

 

 매화 그리는 법

 

 매화나무가 맑고 깨끗한 것은 꽃이 야위기 마련이며, 나무 끝이 연한 곳에서 살찐 꽃이 핀다. 가지가 겹친 나무에는 많은 꽃이 피고, 홀로 나온 가지 끝에서는 성기게 핀다.

 줄기를 그리는 데는 용처럼 꾸불꾸불하고 쇠처럼 굳건하게 하며, 나무 끝을 그리는 데는 긴 것은 화살처럼, 짧은 것은 창처럼 그려야 한다.

 화폭에 공백이 있을 때는 나무를 끝까지 그리며, 아래가 좁을 때는 뿌리까지 다 그리지 않는다.

 만약 벼랑에 있어 가지가 기괴하고 꽃이 성긴 매화를그릴 때는, 꽃망울이나 반쯤 핀 매화를 그려야 한다. 만약 바람에 날리고 눈이 쌓여서 가지가 얕게 드리운 모습을 그리는 데는, 줄기는 늙고 꽃은 적을 필요가 있다. 만약 안개 낀 가운데 서있는 가지가 어리고 꽃은 예쁜 매화를 그리는 데는, 꽃이 반쯤 벌어져 있어야 어울린다. 만약 서리를 맞고 아침 햇빛에 비쳐서 굳세고 곧게 서 있는 모습을 그린다면, 꽃은 작고 향기가 풍기도록 해야 한다.

 꽃잎 그리는 법은 뾰족하지도 않고 둥글지도 않게 붓 따라 적절히 가감한다.  핀 모양을 그릴 경우, 만약 꽃이 칠푼(七分) 쯤 피어있을 때는 꽃잎을 전부 표현하고, 반개(半開)일 때는 그 반만 나타내고, 정면을 향해 피어있을 때는 전체를 나타낸다. 이것을 무분별하게 구분하지 못함은 불가하다.

 매화 그림은 여러 화풍이 있다. 성기면서 교태를 머금은 것이 있고, 번성하면서 굳센 것이 있고, 늙었으면서 고고한 것이 있고, 맑으면서 꿋꿋한 것이 있으나, 그 모두를 다 말할 수 없다.

매화 그리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이런 일들을 자세히 이해해야 한다.

 

 난초 그리는 법

 

 난은 먼저 잎을 그려야 하는데, 자유로이 팔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가벼운 붓이 좋다.

 잎은 두 잎 중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게 하며, 떨기로 뻗은 잎은 종횡으로 엇갈려야 한다. 꺽인 잎이나 아래로 드리운 잎을 그려넣어 형세를 돋우고, 굽어보는 잎이나 위로 향한 잎을 그려서 저절로 정취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 좋다.

 잎에서 앞 뒤 것을 구별하도록 하려면 진한 먹과 엷은 먹을 써서 차이가 나도록 한다.

 먼저 엷은 먹으로 꽃을 그리고, 그 다음 부드러운 줄기를 그려 그것을 받는다.

 활짝 핀 꽃은 위로 향해 있고, 피기 시작한 꽃은 반드시 비스듬이 기울어져 있다. 개인 날 꽃은 다투어 해를 향하고, 바람 속의 꽃은 웃으면서 객을 맞이하는 듯하다. 드리운 꽃의 가지는 이슬에 젖은 듯하고, 꽃술은 향기를 머금은 듯하다.

 다섯장 꽃잎을 손바닥처럼 그려서는 안된다. 손가락이 굽던가 펴지던가 하는 것처럼 그려야 한다.  

 꽃 핀 줄기는 가늘고 작은 잎으로 좌우에서 포위되고, 꽃술은 진한 먹으로 그린다. 꽃을 그린 다음에는 화면의 조화를 위해 다시 잎을 그려넣는다. 짧은 잎을 몇 개 그려서 뿌리를 싸듯이 한다.

꽃이 여러 개 피는 혜초(蕙)의 줄기는 빼어나게 서 있는 자세가 좋고, 잎은 굳세게 그릴 필요가 없다.

*일경일화(一莖一花)를 난(蘭)이라 하고, 일경다화(一莖多花)를 혜(蕙)라 한다. 

 

 국화 그리는 법

 

 국화는 성질이 고고하고 그 빛깔이 아름답고 그 향기가 늦다.

 이를 그리려면 먼저 가슴에 국화의 이런 모습을 품어야 비로소 그 그윽한 운치를 그릴 수 있게 된다.

 국화는 초본이지만 서리에도 오연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소나무와 아울러 일컬어진다. 따라서 그 가지는 외롭고 억세게 그려야 하니, 봄꽃의 가지가 부드러운 것과 처음부터 같을 수 없다. 잎은 윤끼가 있는 것이 좋으니, 늦가을 다른 초목이 시들어 있는 것과 같을 수 없다.

 꽃은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되 번잡하지 않아야 하며, 잎은 상하전후 서로 덮고 가리면서 난잡하지 않아야 한다. 가지는 서로 뒤얽혀 있으면서 무잡(蕪雜)하지 않아야 하며, 뿌리는 겹쳐 있으면서 늘어서지 않아야 한다.

 꽃과 꽃술은 미개(未開)한 것과 반개한 것을 고루 갖추어서, 가지 끝이 눕든가 일어나 있든가 하여야 한다. 만개한 것은 무거우므로 누워 있는 것이 어울리고, 미개한 것은 가벼울 수 밖에 없으므로 끝이 올라가는 것이 제격이다. 이것이 그 대략이다.

 만약 더 깊은 정취를 찾는다면, 일지일엽(一枝一葉)과 일화일예(一花一蘂)가 각기 그 멋을 나타내고 있어야 한다.

 

 

 

 이립옹(李笠翁)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은 동양 공부에 필요한 화법 이론과 청나라 이전 대가들의 그림 모사본(模寫本)을 소개한 책 이다. 동양화의 육법전서라 할만하니 이를 모르고 동양화의 근본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우선 물에 대한 사상부터 먼저 소개하면, '돌은 산의 뼈요 물은 돌의 골수다. 골수(骨髓)는 뼈에 영양을 공급한다. 만약 뼈에 골수가 없다면 바위는 흙덩이와 같으니 이미 뼈가 아닌 것이다. 물의 성질은 지극히 부드럽지만, 산을 밀어젖히고 돌을 뚫는다. 개울이 되고 대하(大河)와 바다가 되어, 만물을 기른다.' 심오하다.

  

 이 책은 17세기 청나라 초기 남경(南京)에 살던 부호 이어(李漁)의 별장 개자원(芥子園)에서 만들어졌다. 별장 이름을 따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이라고도 하고, 이어(李漁,)의 호를 따서 '입옹화전(笠翁畵傳)'이라고도 부른다.

 강희(康熙) 18년에 1집이 출간되고, 22년만인 1701년에 3집이 완성되었다. 이어(李漁,)가 타계하자 사위 심심우(沈心友)가 책을 마무리 지었다. 

  '개자원화전' 1집은 산수 수석보(山水 水石譜)다. 산, 구름, 바위, 물, 봉우리, 나무, 그리는 법이 실려있다. 2집은 난죽매국보(蘭竹梅菊譜)로 매, 난, 국, 죽 치는 법이 실려있다. 3집은 초충영모화훼보(草蟲翎毛花卉譜)로 벌레, 새, 짐승, 나비, 꽃 그리는 법이 실려있다. 각 집 첫머리에 화론을 싣고, 그 다음에 그리는 기법, 마지막에 역대 명인들 작품 모사본(模寫本)이 실려있다.

 화본(畵本)은 명나라 이유방(李流芳)의 모사본(模寫本), 청나라 왕개(王槪) 왕시(王蓍) 왕얼(王臬) 삼형제가 편찬한 '산수화보(山水畵譜)'가 토대이다.

 

 산수화 그리는 법

 

 산수화를 그리는 데는, 포국법(布局法), 용필법(用筆法), 용묵법(用墨法), 구륵법(鉤勒法), 찰법(擦法), 준법(皴法), 염법(染法), 점법(點法), 설색법(設色法), 임모법(臨摹法), 수목법(樹木法), 수천화법(水泉畵法), 시경화법(時景畵法)이 있다.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준법(皴法)이다. '준'은 산, 바위, 토파(土坡)의 입체감, 양감(量感), 질감(質感), 명암(明暗) 등을 나타내는 기법이다. 뽀죽붓에 엷은 먹을 묻혀 가로뉘어 문질러 만든 주름이 '준'이다.

 여기에 다시 엺은 먹을 칠하는 것을 '선(渲)'이라 한다. 그 위에 붓끝을 가지고 하나하나 직필로 가필하여 긴장미 낸 것을 '탁(擢)'이라 한다.

 '점(點)'은 멀리 있는 인물을 그릴 때 쓰고, 점태(點苔)라고 해서 돌을 그릴 때 이것으로 이끼를 나타내거나, 먼 산의 나무를 그릴 때 사용한다.

 아무 것도 안 그린 비단에 맹물을 칠해 그 젖은 곳에 햇무리나 달무리 고리를 내어 안개인 것처럼 필묵의 자취 보이지 않는 것을 '염(染)'이라 한다. 폭포를 그릴 때 양쪽 벼랑과 물을 나누는 것을 '분(分)'이라 한다.

 

 산(山) 

 

 뽀족하게 생긴 산을 봉(峰)이라 한다. 평평한 산을 정(頂)이라 한다. 둥근 산을 만(巒)이라 한다. 산이 마주 이어진 것을 영(嶺)이라 한다. 산에 구멍이 있는 것을 수(岫)라 한다. 험준한 벼랑을 애(崖)라 한다. 그 사이나 밑을 암(巖)이라 한다.

 길이 있어서 산으로 통하게 된 곳을 곡(谷)이라 한다. 통하는 길이 없는 것을 욕(浴)이라 한다. 가운데 흐르는 물을 계(溪)라 한다. 산 사이에 낀 물은 간(澗)이라 한다. 산 밑에 있는 못을 뢰(瀨, 여울)라 한다.

 산 사이 평탄한 곳을 파(坡, 고개)라 한다. 물 속에 돌출한 바위를 기(磯, 물 가)라 한다. 바다 속에 있는 산을 도(島)라 한다.

 

 산 그리는 법

 

 산을 그릴 때는 먼저 대체적인 윤곽을 그린 다음에 준(皴)을 베풀어야 한다. 사람들은 세부부터 그리어 높은 산을 만들어 가는데, 이것은 큰 병폐다. 옛 사람들은 큰 화면을 앞에 놓고 산이 나뉘고 만나는 대체적인 형세를 먼저 그렸다. 그러므로 걸작이 되었다.

 빈(賓)은 나그네요, 주(主)는 주인이다. '빈주조읍(賓主朝揖)'이란 나그네와 주인이 손을 모아 인사하는 것이다. 주인 격인 산과 나그네 격인 산이 서로 기맥 상통해서 떨어지는 일 없이 적절히 안배해야 한다.

 

 산에는 삼원(三遠)이 있다. 밑에서 산마루를 우러러보는 것을 고원(高遠)이라 한다. 산 앞에서 산 밑을 굽어보는 것을 심원(深遠)이라 한다. 가까운 산에서 먼산을 바라보는 것을 평원(平遠)이라 한다.

 고원의 형세는 돌올(突兀)하여 치솟고, 심원의 의취(意趣)는 끝없이 중첩하며, 평원의 멋은 표묘한 데 있다.

 파(坡)는 석파가 있고 토파가 있으며, 어느 것이나 위가 평평하게 생겼다. 파의 상면(上面)은 깍아서 평평히 다져진 것 같아야 하고, 측면의 준(皴)은 흙이나 돌이 긴 세월 풍설에 시달린 나머지 깨어지고 벗겨져서 저절로 생긴 듯해야 한다.

 

 나무 그리는 법

 

 산수화는 먼저 나무를 그리고, 나무를 그릴 때는 먼저 줄기를 그린다. 줄기를 그린 다음에 거기에 점을 가하면 무성한 숲이 되고, 가지를 많이 그리면 고목이 된다. 고목은 반드시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겨울에 잎이 시들어 떨어진 나무를 의미한다.

 노근(露根)은 겉으로 들어난 뿌리이다. 산이 기름지고 땅이 두터운 데서 자란 나무는 대개 뿌리가 땅 속에 숨겨져 있다. 천인절벽 바위 틈에서 돌에 끼이고 물에 씻기고 있는 나무가 높이 치솟은 고목이 되면, 매양 뿌리를 노출시키게 마련이다. 마치 세속을 벗어난 신선이 바짝 야위고 나이가 늙어서 힘줄과 뼈가 들어난 것처럼 보여 한층 특이한 느낌을 준다. 

 한 떨기 잡목을 그릴 때, 그 중 한두 그루 뿌리가 드러나게 하여 변화를 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반드시 나무에 혹이 있고 마디가 있는 것을 가려서 뿌리가 드러나게 해야 한다. 모든 나무 뿌리가 드러나게 하면 아취가 없어진다.

 

 산수화 속 인물 그리는 법

 

 산수화의 인물은 너무 정교하게 그려서도 않되며, 너무 기세가 없어도 않된다. 산과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사람은 산을 보고 있는듯 하고, 산은 사람을 굽어보고 있는 듯 해야 한다. 거문고는 달에게 들려주는 듯하고, 달은 고요히 거문고를 듣고 있는 듯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그림 속에 뛰어들어 그림 속 인물과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함을 한탄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산은 산이요, 사람은 사람이라는 식이 되어 전혀 관계없는 것이 된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예운림(倪雲林)의 그림처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공산인 쪽이 낫다.

 산수화 속의 인물은 학처럼 맑게 여위어서 멀리서 보기에 신선 같은 느낌이 들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세속적인 냄새가 나서는 않된다. 세속적인 냄새가 나면 산수화의 흠이 된다.

 

 집과 오솔길 그리는 법

 

 산수화에서 집은 정다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인가를 난잡스레 막 그려넣으면 시정의 속된 기분이 되고 만다. 요즘 그림 속에 집을 적당한 곳에 그려 넣을 줄 아는 사람은 겨우 몇 명 있을 뿐이다. 이 몇 명을 제외하면 산수는 곧잘 그리면서도 거기 그린 인가는 치졸하다.

 전에 요간숙(姚簡叔)이 그린 그림을 보았는데, 수수알 정도의 작은 집이라도 반드시 전후가 상통하고 곡절(曲折)하여 아취가 넘쳐 있었고, 산은 집을 돌아보고 집은 산을 돌아보는 묘미가 있었다.

 집은 물론 신선을 살게 하는 곳이다. 그러나 콩이나 오이 시렁같은 청절(淸絶)한 것도 신선 못지않는 경치다. 그러므로 시골 경치를 그리는데 몇가지 담박한 것들도 착안해야 한다. 싸리문에는 등나무 덩굴이 감기고, 돌계단은 잡초에 묻혔으며, 기와는 찢긴 비늘처럼 여기저기 빠져있고, 벽은 거북이 잔등처럼 금이 가 있다. 아주 황폐한듯 하면서 자연스런 기운이 넘친다.

 산중의 은자는 반드시 서재에 있어야 유한(幽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으로 통하는 소로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덕이 높은 사람의 초막임을 알 수 있다. 사람으로 하여금 흠모의 정을 억누르지 못하게 한다. 이런 느낌이 드는 문(門)과 소로(逕)를 그릴 때 비로소 능수(能手)라 할 만하다.

 

 구름 그리는 법

 

 구름은 천지의 큰 장식이다. 산천에 금수(錦繡), 즉 비단옷을 입히며, 속력이 빠른 것은 달리는 말과 같아서 돌에 부딪치면 소리가 날 것 같다.
 옛사람들이 구름을 그린 것은 보면 두 가지 비결이 있다.

 하나는 천암만학(千巖萬壑)이 겹쳐 있는 곳을 구름으로 한가롭게 만드는 법이다. 푸른 봉우리가 하늘에 치솟았는데 갑자기 흰 구름이 가로 휘날리며 층층으로 산을 뒤덮는다. 왼쪽에서 구름이 개이면 푸른 산마루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문인들의 이른바 '망리투한(忙裏偸閑)', 바쁜 중에 한가로움을 훔쳐내는 법과 같다.
 또 하나 방법은 봉우리가 하나 밖에 없어 구도가 너무 한가한 경우, 구름을 가지고 화면을 바쁘게 하는 법이다. 산과 물이 다한 곳에서 구름이 일어나고, 갑자기 바다에 물결이 나타나는 것이 그런 식이다.
 그래서 산을 운산(雲山)이라 하고, 물을 운수(雲水)라 한다.

 내가 산수 그리는 법에서 구름을 마지막으로 돌린 것은, 옛사람들이 '구름은 산수의 마감'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까닭이다.

 

 매화 그리는 법

 

 매화나무가 맑고 깨끗한 것은 꽃이 야위기 마련이며, 나무 끝이 연한 곳에서 살찐 꽃이 핀다. 가지가 겹친 나무에는 많은 꽃이 피고, 홀로 나온 가지 끝에서는 성기게 핀다.

 줄기를 그리는 데는 용처럼 꾸불꾸불하고 쇠처럼 굳건하게 하며, 나무 끝을 그리는 데는 긴 것은 화살처럼, 짧은 것은 창처럼 그려야 한다.

 화폭에 공백이 있을 때는 나무를 끝까지 그리며, 아래가 좁을 때는 뿌리까지 다 그리지 않는다.

 만약 벼랑에 있어 가지가 기괴하고 꽃이 성긴 매화를그릴 때는, 꽃망울이나 반쯤 핀 매화를 그려야 한다. 만약 바람에 날리고 눈이 쌓여서 가지가 얕게 드리운 모습을 그리는 데는, 줄기는 늙고 꽃은 적을 필요가 있다. 만약 안개 낀 가운데 서있는 가지가 어리고 꽃은 예쁜 매화를 그리는 데는, 꽃이 반쯤 벌어져 있어야 어울린다. 만약 서리를 맞고 아침 햇빛에 비쳐서 굳세고 곧게 서 있는 모습을 그린다면, 꽃은 작고 향기가 풍기도록 해야 한다.

 꽃잎 그리는 법은 뾰족하지도 않고 둥글지도 않게 붓 따라 적절히 가감한다.  핀 모양을 그릴 경우, 만약 꽃이 칠푼(七分) 쯤 피어있을 때는 꽃잎을 전부 표현하고, 반개(半開)일 때는 그 반만 나타내고, 정면을 향해 피어있을 때는 전체를 나타낸다. 이것을 무분별하게 구분하지 못함은 불가하다.

 매화 그림은 여러 화풍이 있다. 성기면서 교태를 머금은 것이 있고, 번성하면서 굳센 것이 있고, 늙었으면서 고고한 것이 있고, 맑으면서 꿋꿋한 것이 있으나, 그 모두를 다 말할 수 없다.

매화 그리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이런 일들을 자세히 이해해야 한다.

 

 난초 그리는 법

 

 난은 먼저 잎을 그려야 하는데, 자유로이 팔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가벼운 붓이 좋다.

 잎은 두 잎 중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게 하며, 떨기로 뻗은 잎은 종횡으로 엇갈려야 한다. 꺽인 잎이나 아래로 드리운 잎을 그려넣어 형세를 돋우고, 굽어보는 잎이나 위로 향한 잎을 그려서 저절로 정취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 좋다.

 잎에서 앞 뒤 것을 구별하도록 하려면 진한 먹과 엷은 먹을 써서 차이가 나도록 한다.

 먼저 엷은 먹으로 꽃을 그리고, 그 다음 부드러운 줄기를 그려 그것을 받는다.

 활짝 핀 꽃은 위로 향해 있고, 피기 시작한 꽃은 반드시 비스듬이 기울어져 있다. 개인 날 꽃은 다투어 해를 향하고, 바람 속의 꽃은 웃으면서 객을 맞이하는 듯하다. 드리운 꽃의 가지는 이슬에 젖은 듯하고, 꽃술은 향기를 머금은 듯하다.

 다섯장 꽃잎을 손바닥처럼 그려서는 안된다. 손가락이 굽던가 펴지던가 하는 것처럼 그려야 한다.  

 꽃 핀 줄기는 가늘고 작은 잎으로 좌우에서 포위되고, 꽃술은 진한 먹으로 그린다. 꽃을 그린 다음에는 화면의 조화를 위해 다시 잎을 그려넣는다. 짧은 잎을 몇 개 그려서 뿌리를 싸듯이 한다.

꽃이 여러 개 피는 혜초(蕙)의 줄기는 빼어나게 서 있는 자세가 좋고, 잎은 굳세게 그릴 필요가 없다.

*일경일화(一莖一花)를 난(蘭)이라 하고, 일경다화(一莖多花)를 혜(蕙)라 한다. 

 

 국화 그리는 법

 

 국화는 성질이 고고하고 그 빛깔이 아름답고 그 향기가 늦다.

 이를 그리려면 먼저 가슴에 국화의 이런 모습을 품어야 비로소 그 그윽한 운치를 그릴 수 있게 된다.

 국화는 초본이지만 서리에도 오연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소나무와 아울러 일컬어진다. 따라서 그 가지는 외롭고 억세게 그려야 하니, 봄꽃의 가지가 부드러운 것과 처음부터 같을 수 없다. 잎은 윤끼가 있는 것이 좋으니, 늦가을 다른 초목이 시들어 있는 것과 같을 수 없다.

 꽃은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되 번잡하지 않아야 하며, 잎은 상하전후 서로 덮고 가리면서 난잡하지 않아야 한다. 가지는 서로 뒤얽혀 있으면서 무잡(蕪雜)하지 않아야 하며, 뿌리는 겹쳐 있으면서 늘어서지 않아야 한다.

 꽃과 꽃술은 미개(未開)한 것과 반개한 것을 고루 갖추어서, 가지 끝이 눕든가 일어나 있든가 하여야 한다. 만개한 것은 무거우므로 누워 있는 것이 어울리고, 미개한 것은 가벼울 수 밖에 없으므로 끝이 올라가는 것이 제격이다. 이것이 그 대략이다.

 만약 더 깊은 정취를 찾는다면, 일지일엽(一枝一葉)과 일화일예(一花一蘂)가 각기 그 멋을 나타내고 있어야 한다.

 

 

 

  도륭(屠隆) '고반여사(考槃餘事)'

 

 '고반여사(考槃餘事)'는 명나라 도륭(屠隆)이 선비들의 문방(文房) 취미를 소개한 책이다. 그림에 대한 것, 종이, 먹, 붓, 벼루에 관한 것, 거문고에 대한 것, 향과 차에 대한 것, 학과 관상용 물고기에 대한 것 등이 16전(箋)으로 나누어져 있다.

도륭의 자는 장경(長卿), 위진(緯眞), 호는 동해인(東海人), 적수(赤水), 홍포거사(鴻苞居士)이다.

절강(浙江) 사람으로 안휘성(安徽省) 영상현(潁上縣) 지현(知縣)과 강소성(江蘇省) 청포현(靑浦縣) 현령(縣令)을 지냈으나, 원래 벼슬에 뜻이 없었고, 만년에 명사들과 더불어 임천(林泉) 간에 노닐며 마음껏 시주(詩酒)에 잠기고 살았다.

 고반(考槃)의 뜻은 시경(詩經)에서 따온 것이다. 국풍(國風) 고반장(考槃章)의 '악기를 타며 골짜기에 살고 있으니, 대인(大人)의 흉회(胸懷)의 넓고 큼이여!' 라는 구절에서 온 것이다. 몇대목 음미해보자.

 

 향에 대하여 

 

 속세를 떠난 은자가 노자의도덕경을 논하면서 향을 피우면 마음이 맑아지고 정신이 희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사경(四更)에 달이 기울어 흥도 깨지고 처량할 때에 향을 피우면, 심회가 통하여 시라도 읊조리게 될 것이다. 맑게 갠 날 창가에서 옛날 책자를 베끼거나 먼지를 털어 내고 한가롭게 앉아 있을 때, 혹은 밤에 등불을 밝히고 책 읽으면서 향을 피우면 졸음을 몰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리따운 사람을 옆에 앉히고 소곤소곤 이야기하며 손을 잡고 화로를 품고서 향을 피우면, 마음은 기쁘고 정은 뜨거워진다. 비가 올 때 창문 닫아걸고 낮잠에서 막 깨어나 책상을 당겨 책 읽으며 담담한 차를 맛보는데, 때마침 향불은 은근히 코를 찌른다. 달 밝은 밤에 가야금 줄을 퉁기면서 텅 빈 다락에 앉았노라니, 보이는 것은 푸른 산이요, 화롯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는데, 향연은 은은히 창가의 발(簾)을 맴돈다.

 이런 향불은 마귀를 쫒고 더러운 기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회심의 경계야말로 태청궁에서 신선과 함게 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 쾌재(快哉)라! 

  근래에 향을 피우는 사람들이 그 진정한 취미를 알지 못하고 여러 가지 향을 합쳐서 기교함을 자랑하니, 이런 인공의 농염한 것은 값이 비싸지만 어찌 정결한 부인이나 덕이 높은 고사(高士)에게 어울릴 수 있겠는가.

 

 *향(香)자는 벼 화()자 아래에 일(日=의 변형)자를 받친 글자로 쌀()로 밥 지을 때 풍기는 냄새가 입맛() 돋군다는 데서 향기롭다는 뜻이다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제사를 지낼 때, 불공 올릴 때 사른다.

 

 거문고

 

 오래된 거문고(古琴)는 칠이 완전히 퇴색하여 오목(烏木)같이 되는데, 이런 것이 가장 기고(奇古)하다.

 거문고 용재(用材)는 표면은 오동나무, 바닥은 가래나무로 한 것이 가장 좋다. 순전히 오동나무로 할 때는, 나무를 물에 띄워 뜨는 부분을 표면으로 하니, 곧 음재(陰材)와 양재(陽材)가  있기 때문이다.

 오동나무는 절 근처에서 종소리 북소리 음을 듣던 것이 가장 좋다. 오나라 충의왕(忠懿王)은 천태사(天台寺) 폭포 옆에 있던 집 기둥으로 2개의 거문고를 만들어, 하나는 세범(洗凡, 범속을 씻음)이라 하고, 하나는 청절(淸絶, 지극히 깨끗함)이라 이름하였는데, 세상에 드문 보배로 쳤다.

 거문고 타는 방은 누각 아래가 적합하니, 위에 천정이 있어 음이 흩어지지 않고, 아래는 텅 비어 소리가 잘 들리기 때문이다. 고당대루(高堂大樓)는 음이 산만해지기 쉽고, 두실소헌(斗室小軒)은 소리가 퍼질 여유가 없다.

 거문고를 안고 창가에 기대 앉으면, 못 가운데 연꽃 향기가 풍겨오기도 한다. 혹은 물가에 앉으면 비단결 같은 맑은 물결 하얀 모래톱에 미풍이 한들한들 불어오고, 물 속에 놀던 고기도 머리를 들고 소리를 듣는다. 그 즐거움이야 어이 끝이 있으랴. 

 빼어난 사람이 소나무나 대밭 속 혹은 바위 동굴과 샘터 같은 청광(淸曠)한 곳에서 타면, 소리가 맑고 청랑(淸朗)하기 달나라 월전(月殿)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봄 가을 천기가 고르고 맑은 밤중에 만가지 소리가 다 고요히 잠들고 달빛만 하늘에 차 있을 때, 거문고를 무릅 위에 비껴 놓고 한 곡조 타 보는 것도 또한 마음을 시원히 풀어보는 일이 아니겠는가.

 거문고를 탈 때는 향기가 맑고 연기가 가늘게 나는 수침(水沈) 향이 운치있고, 향이 진한 용연향(龍涎香)은 피해야 한다.

 거문고를 타기 전에는 손을 꼭 씻어야 한다.그래야만 줄이 더러워지지 않는다.여름에는 아침 저녁으로 타는게 좋다. 한낮에 타면 땀에 더러워질 뿐 아니라, 건조하여 줄이 끊어질 염려가 있다.

 거문고 타는 사람은 청초하여야 한다. 찻물 몇 모금 마신 정도가 좋다. 간혹 술기운이 흥을 돋우기도 하지만 약간 마심은 가하나, 취하여 거문고를 타는 것은 취태이니 경계해야 한다.

 거문고는 바람, 이슬, 햇볕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벽돌이나 진흙 벽에 걸어서는 않된다. 습기를 빨아드려 거문고 소리가 변하기 때문이다. 나무나 종이 벽에 걸되 바람이 소통되아야 좋다.

 

  서재

 

 서재는 밝고 조용한 곳이 좋으나, 너무 넓고 개방적인 곳은 좋지 않다.

 뜰에는 건란(建蘭) 좋은 것 한두 촉, 창 가까이 연못에 금어(金魚) 대여섯 마리 기르며, 섬돌 주변에 쌀뜨물 주어 기름지고 비에 젖은 취운초(翠雲草)를 심는다.

 담쟁이덩굴 뿌리를 담 밑에 심어두고 고기 씻은 물을 담 위로 뿌려주면, 그 비린 물 준 곳으로 덩굴이 뻗어간다. 달빛이 그 위에 비치면 마치 수신(水神)의 궁전인가 싶게 아름답다.

서재 안 책상과, 거문고와 검, 벼루나 찻단지 등은 제작이 속되지 않은 것을 취하고, 배열하는 법이 격에 맞아야 한다. 익숙한 동자(童子)나 고상한 손님이 아니면 방 안에 들이지 않는다.

 봄날 긴긴 해를 이 자리에 의지하고, 가을 긴긴 밤을 들불로 밝힐 때 마음의 근심도 사라지니, 이처럼 해야 한결같이 일생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그림은 고결한 재실(齋室)이나 정사(精舍)엔 한 폭만 거는것이 좋다. 대폭(對幅)은 고상한 맛이 부족하다.

 고인(高人)의 그림이란 우연히 흥이 났을 때 두어번 붓을 휘둘러 만든 것인데, 그런 것을 어찌 대(對)로 걸 필요가 있겠는가. 요새 두세 폭씩 걸어두는 무리들과는 함께 그림을 논할 것이 못된다.

 그림을 보는 법은 글씨를 보는 법과 한가지다. 조맹부(趙孟採)는 수석소림도(秀石疏林圖)에서 말하기를 '돌은 비백(飛白)과 같고 나무는 대전(大篆)과 같으며 대를 그리려면 팔법(八法)에 통달하여야 한다. 만약 이렇게 할 수 있는 이가 있으면 바야흐로 서화(書畵)가 본래 근본(根本)이 같음을 알게될 것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

 

 서법(書法)에 있어서는 육조(六朝)가 위진(魏晉)만 못하고, 송(宋), 원(元)은 육조와 당(唐)만 못하다. 그러나 그림에 있어서는 각자가 성불(成佛)하여 원조(元祖)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서 제한되지는 않는다.

 

 상고의 그림은 필적(筆跡)이 간결하고 의장(意匠)이 담백(淡白)하며 취향이 참되고 자연스럽다. 화보(畵譜)나 회감(繪鑑) 기록이 있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종이와 천이 부패해 버렸기 때문에 진적(眞跡)을 얻어 볼 수가 없다.

 

 당나라(唐代) 그림은 붓을 대기 전에 이미 마음 속에 충분히 의취(意趣)를 갖추고 있으므로, 그림이 완성되면 신기(神氣)가 충분히 나타난다. 장중(莊重) 엄률(嚴律)이 있어 교묘한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묘한 점이 많다. 후인(後人)들은 공교(工巧)에만 고심하기 때문에 물취(物趣)는 있으나 천취(天趣)가 부족하다.

 송나라(宋代) 그림은 비전문인(非專門人) 그림으로 그 화품(畵品)은 법을 온전히 하고 기운(氣韻)은 생동하며, 물취(物趣)는 구하지 아니하였다. 비평가들은 이것을 원화(院畵)라고 하여 그리 무게있게 생각하지 아니하는데, 그것은 기교가 지나쳐서 신기(神氣)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인(宋人)의 그림이라 하더라도 후세 사람들이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당(李唐), 유송년(劉松年), 마원(馬遠), 하규(夏珪)같은 사람들은 사대가(四大家)로서, 비록 잔산잉수(殘山剩水. 패망한 나라의 황폐한 풍경)라고 지목을 받기는 하지만 정공(精工)하기 이를 데가 없는 명수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원나라(元代) 그림은 비평가들이 사대부 그림이라고 한다. 대체로 사대부(士大夫) 그림이란, 소위 흥취를 나타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조송설(趙松雪), 황자구(黃子久), 왕숙명(王叔明), 오중규(吳仲圭) 4대가와 전순거(錢舜擧), 예운림(倪雲林), 조중목(趙仲穆)과 같은 사람 그림은 형사(形似)나 신운(神韻)이 모두 절묘(絶妙)해서 결코 사도(邪道)에 빠짐이 없으니 오래도록 후세에 전해서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옛그림을 임모(臨模)함에는 색칠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애써서 힘껏 모의(模擬)하면 비숫하게 되는 수가 있지만 홍색(紅色)만은 모방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요새 사람들이 그림을 임모할 때에는 다만 그 모양이나 빛깔을 본딸 뿐이고, 대부분은 자기 뜻으로 멋대로 붓을 쉽게 처리하기 때문에 비록 정교(精巧)함을 다 한다 하여도 천취(天趣)가 부족하게 된다.

 

 그림을 그릴 때 혹 산수(山水)의 아름다운 곳을 보게 되면 흉중에 문득 자연의 경상(景象)이 떠오르고 명화(名花), 절지(折枝)를 보게 되면, 자태의 작약(綽約)함을 생각하여, 나무가지는 전절(轉折)하여 태양을 향해서 빵끗 웃고, 바람에 불리어 흔들거리며, 안개 속에 감추어지거나 비에 젖기도 하며, 피어나는 봉오리와 낙엽지는 풍정을 붓 끝에 포치할 때에는, 그 묘리(妙理)가 절로 천취(天趣)에 합치되어 스스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이고, 만약 자연 본래의 생생한 모습을 법으로 삼지 않고 한갖 책 속의 형사(形似)만을 흉내내려고 하여서는 종내 속품(俗品)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림의 품제(品第)는 산수화(山水畵)가 상품이고, 인물화(人物畵) 작은 화폭이 그 다음이며, 화조(花鳥), 죽석(竹石)이 그 다음이며, 주수(走獸), 충어(蟲魚)를 그 다음으로 친다. 비단이나 종이 바탕이 완전하고 해지지 아니해야 하고, 빛은 비록 고색(古色)이라 하더라도 청결(淸潔)해야하며, 정신(精神)은 새것과 같아서 잘 살펴보아도 때우고 붙인 데가 없어야 하며, 냄새를 맡아서 말할 수 없는 이상한 향기가 나는 것, 이러한 것이 그 중 상품이 된다.

 

 그림 보관은 삼(杉)나무나 사라(撿岡)나무로 갑(匣)을 만들고, 갑 속에는 결코 칠을 하거나 종이를 붙여서는 안된다. 곰팡이와 습기가 생길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5월 6월이 되기 전에 화폭(畵幅)을 하나 하나 펴서 바람과 해를 살짝 쐰 다음 거두어 갑 속에 넣고, 종이로 입을 봉하여 공기가 통하지 않게 해야한다. 바람이 통하는 빈 다락에 넣어두거나 혹은 지면에서 한 자 가량 띄어서 놓아두는 것이 좋다. 사람 기운(氣運)에 가까이 두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해서 두 절후(節侯)가 지난 다음 열면 곰팡이가 희게 피는 것을 모면하게 된다. 보통 때에 명화(名畵)를 사흘이나 닷새에 바꾸어 거는 것이 좋다. 그리하면 보기에 싫증이 나는 일이 없고 먼지가 앉거나 습기가 생길 리도 없다. 오랫동안 걸어두면 풍습(風濕) 때문에 그 바탕이 손상될 염려가 있다.

 

 종이에 대하여

 

 진()의 왕휘지(王羲之), 왕헌지(王獻之)의 진적(眞跡)은 대개 회계(會稽)의 수문(竪紋) 죽지(竹紙)이다.

채색분전(彩色粉箋)이 있는데 빛깔이 있고 광활(光滑)하다. 소동파(蘇東坡)와 황산곡(黃山谷)은 주로 이 종이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썼다.

 고려 종이는 누에고치 솜으로 만들어져 종이 색깔은 비단같이 희고 질기기는 마치 비단과 같은데 글자를 쓰면 먹물을 잘 빨아들여 종이에 대한 애착심이 솟구친다. 이런 종이는 중국에는 없는 진기한 물품이다.

 

 차에 대하여

 

 

 연화차(蓮花茶)는 해가 아직 뜨기 전에 반쯤 핀 백련꽃을 열어 섬세한 차(茶) 한 주먹을 집어 꽃수염 속에 잔뜩 채운 다음 삼실로 동여매어 하룻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침 일찍 그 연꽃을 따서 차 잎사귀를 끌어내어 건지(建紙)에 싸서 불에 쬐어 말린다. 이렇게 여러 차례 반복하면 연꽃향이 차잎 깊숙이 스미어 맛이 가히 일품이다.

 말리화(茉莉花)는 꿇인 물 반 컵을 식혀 그 위에 죽지(竹紙)를 한 층 깔고, 그 위에 몇개의 구멍을 뚫어서 저녁 무렵 처음 피는 꽃을 따서 그 안에 넣고, 위를 종이로 봉하여 기운이 새어나지 않게 한다. 다음날 아침 꽃은 머리에 꽃고, 그 향기로운 물로 차를 마시면 좋다.

 

 물푸레나무, 때찔레, 장미, 난초, 혜란(蕙蘭), 귤, 치자, 목향, 매화꽃 등 모두 차와 섞어서 만든다.

제각기 꽃이 필 때에 반쯤 핀 것으로 꽃술의 향기가 온전한 것을 따서 거기에 섞을 차의 양에 따라 적당히 섞으면 된다. 꽃이 많으면 향기가 지나쳐서 차의 풍미가 감손되고, 또 꽃이 적으면 향기가 없어 덜 좋다.

차엽(茶葉) 서푼에 꽃 한푼이면 적당하다.

 

 차는 행실 바르고 덕을 닦은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음료다. 맑은 샘물을 길어 끓이는 절차를 법도에 맞게 하여 그 법식을 완전히 익히고 깊이 음미하여 정신이 융회하고 심취해서 제호나 감로에 비교할 만한 참다운 맛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서 다도를 휼륭하게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모처럼 좋은 차를 마시면서 사람 됨됨이가 미흡하다면 마치 좋은 샘물을 퍼서 잡초에 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이보다 더 큰죄가 없을 것이다.     

 

 차를 저장함에 죽순 잎사귀와는 성질이 맞지만 향약(香藥)은 두려워 한다. 따뜻하고 건조한 것을 좋아하고, 차갑고 습기 있는 것을 싫어한다. 청명(淸明)이 전에 죽순잎을 사두는데, 그 중 특히 푸른 것을 골라 불에 쬐어 잘 말린 다음 죽사(竹絲)로 묶어 사편(四片)을 한 덩이로 묶어 사용한다.

 차는 뒤적거려서 다시 한번 덖은 다음 오랜된 잎이나 쉰잎, 덖을 때 탄 것과 줄기가 부러지고 가루가 된 것을 제거한다.

 

  물은 가을 물이 제일 좋고, 매우(梅雨) 물이 그 다음이다. 가을 물은 희고 차며, 매우(梅雨)의 물은 희고 달다. 달면 차맛은 약간 덜하지만 차가우면 차맛이 온전하다. 

 눈(雪)은 오곡의 정(精)이다. 이것으로 차를 끓이면 고상한 취미가 될 것이다. 바위 사이를 흐르는 샘물을 취한다. 샘물은 돌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면 결코 좋을 수가 없다. 산맥이 꾸불꾸불한 데의 것을 취한다.

 산맥이 끊어지지 않은 곳에는 물도 반드시 정류(停留)하지 않는 법이다. 만약 흐르지 않고 멈추고 있다면 원천(源泉)이 없기 때문이다.

 여름 폭우는 안 좋다. 폭포처럼 급히 솟는 물은 마시지 않는다. 오랜 동안 마시면 목병이 생긴다. 온천(溫泉)은 먹을 것이 못된다 

 

 

  차는 약한 불에 덖어 말리고, 활화(活火)에 달인다. 활화란 불꽃이 나는 숯불을 말한다. 물이 끓을 때는 처음 물고기의 눈과 같은 포말이 생기면서 미미한 소리가 나는 것을 일비(一沸)라 하고, 구슬같은 방울이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것을 이비(二沸)라 하며, 거친 파도가 일고 물방울이 퉁기게 되면 삼비(三沸)라고 한다. 삼비(三沸)는 활화가 아니면 되지 않는다. 동파옹(東坡翁)이 '해안(蟹眼)이 지나면 어안(魚眼)이 생기고, 우수수 솔바람 소리가 일어난다.' 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차 그릇은  금, 은 그릇이 좋기는 하나, 그것을 구비하기가 어려우면, 자기나 돌로 된 것도 쓸만하다.

자기(瓷器)는 차의 기운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유인일사(幽人逸士)에게는 그 품(品)과 색이 모두 적합하다. 돌은 천지의 수기(秀氣)가 엉겨서 된 것이므로 이것을 잔손질해서 그릇으로 쓰면 수기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그 탕이 나쁠 이유가 없다.

 

 

 

 좋은 차를 마시려면 다른 과실류를 섞지 말아야 깨끗한 차맛을 알게 된다. 끓이거나 마실때에 진기한 과일이나 향초(香草)를 집어 넣어 차의 본성을 빼앗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차의 향기를 빼앗는 것으로는 송자(松子), 감등(柑橙), 목향(木香), 매화(梅花), 말리(茉莉), 장미(薔薇), 목서(木犀) 따위가 있고, 맛을 빼앗는 것으로는 번도(番挑), 양매(楊梅), 따위가 있다.

 

   진짜 차를 마시면 갈증을 없애고, 음식을 소화시키며, 담을 제하고, 잠을 덜 오게 하며, 소변이 잘 나오며, 눈을 밝게 하고, 머리가 좋아지고 걱정을 씻어주며, 기름기를 씻어낸다. 식사가 끝난 때마다 짙은 차로 입안을 가시면 기름기가 제거되며, 뱃속이 저절로 개운해진다.

 

 낚시질

 

강상(江上)에 도롱이 하나 걸치고 낚시를 드리우는 일은 진정 즐거운 일이다. 때로 단풍 든 여귀나무가 있는 여울 가에서, 때로 푸른 수풀 쌓인 옛 성터에서, 혹은 서풍(西風)이 얼굴을 때리기도 하고, 혹은 날리는 눈에 머리를 맞으면서, 삿갓과 도롱이를 쓰고 안개 낀 푸른 파도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마치 화가 미불(米)의 한강독조도(寒江獨釣圖, 찬 강에서 노옹이 홀로 고기잡는 그림) 속에 있는 듯하니, 부춘산에 은둔하여 벼슬하지 않고 낚시 즐기던 엄자릉(嚴子陵)과 위수에서 바늘 없는 낚시로 세월을 낚던 태공망(太公望)과 견주듯 고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홍자성(洪自誠) 채근담(菜根譚)

 

 십대는 톨스토이의 <인생 독본>이란 책을 좋아했다. 그 속의 톨스토이의 인생관과  세네카, 아우렐리우스, 파스칼, 루소의 사상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삼십대는 동양에도 이런 책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채근담(菜根譚)이란 책이다. <인생독본>이 라일락 향기라면, <채근담>은 매화 향기였다.  

 채근담(菜根譚)은 명나라 때 홍자성(洪自誠) 저술이다. 호는 환초도인(還初道人)인데, 그는 '사람이 미미(美味)를 탐하지 않고 순무 혹은 풀잎과 뿌리 같은 거친 음식(粗食)도 달게 먹을 수 있을 때, 세상에 임함에 지조를 세울 수 있다'고 했다. 당시 감탄고토(甘呑苦吐) 세태 맛보던 신문기자 때라 채근(菜根)이란 말에 더 끌렸던지 모른다.

 

 도덕을 지키는 자는 한때 적막하나 권세에 아부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 달관한 사람은 물욕 밖의 진리를 보고 죽은 후의 명예를 생각하니, 차라리 한 때 적막할지언정 만고에 처량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맛있는 술과 기름진 고기, 매운 것 달콤한 것 등의 조미(調味)가 진미는 아니다. 진미는 단지 담박한 맛이다. 신기하거나 탁이(卓異)한 사람은 도의 극치에 이른 사람이 아니다. 지극한 사람은 다만 평법해 보인다.

 

 명아주 잎으로 국을 끓이고, 비름 같은 나물로 배를 채운 사람은 마음이 얼음처럼 맑고 구슬처럼 고귀하다. 반면 미의미식(美衣美食) 하는 사람은 권세와 명예 앞에서 노비가 무릎을 꿇고 얼굴빛을 다듬는 것 같이 비굴한 경우가 많다. 대개 지조는 담박한 생활 속에서 길러지고, 기름진 고기와 맛있는 음식을 취하는 데서 기개는 상실되고 만다.

 

 하늘의 뜻은 헤아리기 어렵다. 어떤 때는 역경에 사람을 몰아넣기도 하고, 어떤 때는 순경(順境)으로 사람의 숨을 터 준다. 영웅호걸들도 별도리 없이 이 속에 부침한다. 그러나 군자는 천운이 역으로 올 때도 이것을 순하게 받아들이고, 평온할 때도 위험한 경우를 잊지않고 조심하며 조금도 당황하지 않으므로, 하늘도 그들에게만은 영향력을 구사할 수 없다.

 

 복더러 와달라고 아양 떨 필요없다. 복이 와서 상주할 환경을 만들면 되는데, 기쁜 마음과 명랑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화더러 떠나달라고 빌 필요는 없다. 화가 와서 기댈 환경이 아니면 되는데, 즉 남을 해칠 마음을 없애고 평온한 것이 화를 면하는 첩경이다.

 

 천지의 기운이 따뜻하면 곧 만물이 살아나고, 차가우면 죽는다. 성품이 냉혹한 사람은 복이 적고, 화기와 온정이 넘치는 사람은 하늘이 복을 내린다. 땅은 약간 더러워야 만물을 생산하나니, 물이 너무 맑으면 오히려 고기가 살지 못한다. 군자는 마땅히 더러움도 용납하는 도량이 있어야 하며, 깨끗하기만 하고 자기만 지조를 지키려 하지는 않는다.

 

 바람이 대밭에 불면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바람이 지난 뒤에는 다시 고요하다. 기러기가 못 위를 날 때, 못 속에 기러기 떼가 어지럽다. 그러나 기러기가 날아간 뒤에는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군자의 마음도 이 대나무밭이나 연못과 같다. 어떤 일이 생기면 마음에 반영하지만, 그 일이 다 끝나면 마음은 다시 고요함으로 돌아간다.

 

 귀는 마치 회오리바람이 골짜기에 소리를 울림과 같은지라 지나게 하고 남겨 두지 않으면 시비도 함께 사라진다. 마음은 마치 연못에 달빛이 비치는 것과 같아 텅 비게 하고 잡아 두지 않으면 외물(外物)과 나를 모두 잊게 된다.

 

 보잘것 없는 초가라도 잘 보살피면 아담한 맛이 생기고, 시골 촌부라도 잘 다듬으면 멋이 풍기는 법이다.

 학문과 덕을 수양한 군자는 어쩌다 불우한 처지에 빠져도 자포자기 하지않고 학문과 덕을 굳건히 지킬 것이다. 이 때는 비록 군색할지라도 범인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다.

 

 평민이라도 기꺼이 덕을 심고 은혜를 베풀면, 이것이 곧 재상이나 임금보다 백 배나 높은 것이다. 사대부라도 한갓 권세나 탐내고 이익을 위해 아첨이나 하면, 작(爵)이 있는 걸인과 다름 없다.

 

 권력을 쫓고 세력에 붙는 재앙은 참혹하고 아주 빠르며, 고요함에 살고 편함을 지키는 맛은 가장 맑고 가장 오래 간다.

 권세 있고 부귀한 사람들은 용처럼 다투고 영웅과 호걸들은 호랑이처럼 싸우는데,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면 마치 개미떼가 비린내 나는 고깃덩어리에 모여드는 것과 같고, 파리떼가 다투어 피를 빠는 것과 같다. 
 

 관원에는 두 마디의 말이 있으니 오직 공평하면 밝은 지혜가 생기고, 오직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
 가정에는 두 마디의 말이 있으니 오직 용서하면 불평이 없고, 오직 검소하면 살림이 넉넉하다.

 

 춥고 배고프면 돈푼이나 있는 자에게 달라붙고, 배부르면 떠나가고, 따뜻하면 따라오고, 추우면 언제 보았더냐 싶게 길에서 만나도 인사조차 않는 것이 동서고금의 인정이다.

 

 한 집의 가장이 집안을 통솔함에 너무 엄격해도 안되고 너무 너그러워도 못쓴다. 너무 노골적이어도 반발을 사기쉽고, 너무 서둘러도 역효과가 나기 쉽다. 대체적으로 화락한 분위기 속에서 만사를 원만하게 처리함이 좋다.

 

 허물을 꾸짖을 때 너무 엄격하게 나무라지 말고,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남에게 선을 베풀 때 지나치게 고상하게 행동하지 말고, 그 사람이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높은 관직에 있더라도 자연에 묻혀 사는 풍취를 지녀야하고, 자연에 묻혀 있어도 국가에 대한 경륜을 품어야 한다. 

 

 매는 새 중의 왕이지만 평소에 조는듯 느릿느릿하고, 호랑이는 백수의 왕이지만 걷는 모습이 느려 보인다. 군자는 마땅이 매와 호랑이처럼 평소에는 자신의 총명이나 재주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마치 무능한 사람처럼 보이다가, 일단 큰일을 당하면 책임을 두 어깨에 메고 천하국가를 위한 위대한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역경은 영웅호걸은 단련하는 하나의 용광로요 쇠망치다. 그 용광로에 불 피우고 그 쇠망치에 얻어맞는 동안 무쇠 속의 모든 불순물이 증발되고 단단한 강철이 되는 것이다.

 역경을 돌파한 인물은 마치 강철처럼 몸이 건강하고 의지가 굳다. 그런데 몸이 단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마치 달구지 않은 무쇠 같아서 심신이 유약하여 아무 쓸모없는 인물이 될 것이다.


 낮은 곳에 살아 본 후에야 높은 곳에 오르는 일이 위태로움을 알게 된다. 어두운 곳에 처해 본 후에야 밝은 곳의 눈부심을 알게 된다. 고요함을 지켜 본 후에야 분주한 움직임이 헛수고임을 알게 된다. 침묵해 본 후에야 말 많은 것이 시끄러움을 알게 된다. 

 글을 읽어도 성현의 뜻을 보지 못하면 종이와 붓의 노예에 불과하고, 공직에 있으면서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의관 입은 도둑에 불과하다.

가르치면서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입으로만 참선하는 것과 같고, 큰일을 하면서 덕을 베푸는 데에 인색하면 한순간 피고 지는 꽃일 뿐이다.

 

 세상은 재주있는 사람은 칭찬해도 덕을 기리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덕이 주인이고 근본이며, 재주는 종이요 지엽(枝葉)이다. 만일 재주만 있고 덕이 없으면, 마치 주인 없이 종이 위세부리는 식이요, 백주에 도깨비가 난장판 부림과 같다. 

 눈앞의 일에 만족하면 선경이지만 만족할 줄 모르면 속세이다.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인연은 잘 쓰는 사람에겐 생기가 되고 잘못 쓰는 사람에겐 살기가 된다. 갠 날 푸른 하늘이 갑자기 변하여 천둥 번개가 치기도 하며, 거센 바람, 억수 같은 비도 홀연히 밝은 달 맑은 하늘이 되나니 하늘의 움직임이 어찌 일정하겠는가.
 털끝만한 응체(凝滯)로도 변화가 생기는 것이니 하늘의 모습도 어찌 변함이 없겠는가. 털끝만한 막힘으로도 변화가 생기는지라 사람의 마음바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고, 술은 적당히 취하도록 마시면 그런 가운데 아름다운 취미가 있나니, 만약 꽃이 활짝 피고 술에 흠뻑 취하면 문득 재앙의 경지에 이른다

 글자 한 자 모를지라도 시의(詩意)를 가진 자는 시가(詩家)의 참맛을 얻을 것이요, 게(偈) 한 구절 연구하지 않더라도 선미(禪味)를 가진 자는 선의 현기(玄機)를 깨닫는다.

 

 꽃은 화분 속에 있으면 마침내 생기가 없어지고 새는 새장 안에 있으면 문득 자연의 맛이 줄어든다. 이 어찌 산 속의 꽃이나 새가 한데 어울리어 색색의 무늬를 이루며 마음껏 날아서 스스로 한가히 즐거워함만 같을 수 있겠는가.

 

 나무는 무성한 잎이 져 뿌리만 남게 될 때에야 꽃과 잎사귀가 허망한 것임을 알게 되고, 사람은 죽어서 관 뚜껑을 덮은 뒤에야 자손과 재물이 쓸데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산중의 오막살이에서 갈대 솜을 넣은 이불을 덮고, 백설을 완상하며 뜬구름을 바라보면, 이욕(欲)에 물들지 않은 고요하고 맑은 야기(夜氣)를 훔뻑 보전할 수 있으며, 죽엽(竹葉) 술잔으로 마신 술에 도연히 취하여 청풍명월 노래하면, 속세의 모든 번뇌에서 깨끗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대 울타리 엉성한 초가삼간에 한가로히 누웠다가 문득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더 없이 흐믓하여 마치 구름 속을 헤매는 것 같으며, 서재에 깊숙이 앉아 만권시서(萬券詩書)를 독파하는 중 은은히 들려오는 매미 소리, 까치 소리 들으면 뜻이 다없이 고고하여 태고적의 별천지에 사는 기분이다.

 

 차는 극상품만 바라지 않으면 찻단지가 마르지 않고, 술도 향기롭고 강렬한 것만 바라지 않으면 술통이 비는 일이 없으며, 변변찮은 거문고에 줄이 없어도 타면서 즐기고, 단소에 구멍이 없어도 유유자적 한다면, 비록 복희황제의 운치에는 미치지 못해도 죽림칠현 중 혜강(康)이나 원적(阮籍)의 멋에는 미치지 못하랴.

 

 옛날 고승이 말하기를 '대나무 그림자가 층계를 쓸어도 티글이 움직이지 않고, 달 그림자가 늪에 드리워도 물에 흔적이 없다'고 했다. 어떤 유학자는 '물이 아무리 급히 흘러도 주위는 고요하며, 꽃이 분분히 떨어져도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한가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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